어제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판결이 하나 있었다. 국회 안에서 기물을 파손한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과 민노당 국회의원에 대해 기물파손 혐의를 인정해서 벌금형이 처해진 판결이다. 공무집행 방해건에 대해서는 애당초 질서유지권 발동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며 무죄가 내려진 판결이다.
이에 프레시안은 "법원, 질서유지권 남발에 제동"이란 제목으로 기사가 올라왔는데, 구글 뉴스를 보다가 조선과 중앙에서 다룬 같은 판결에 대한 기사들을 읽었는데, 이건 완전히 다른 기사가 아닌가 할 정도로 내용이 달랐다.
먼저, 조선은 "국회 망치 폭력 '유죄' ... 문 부순 문학진에 벌금형"이란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달았는데, 기사 어디에도 공무집행 방해건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났다는 내용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중앙은 조선 보다는 좀 더 젊잖은 제목을 달긴 했지만 내용은 마찬가지로 국회 폭력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는 내용일 뿐, 무죄판결에 대한 부분이나, 양형이 가볍게 내려진 이유 (질서유지권 발동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는다.
한 쪽 눈을 가리고 외눈박이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거대 신문사들을 운영한다. 이제는 그 외눈박이 눈으로 방송도 시작하려 한다니 외눈박이 나라에서 외눈박이로 살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두 눈을 다 부릅떴다가는 괴물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중에서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한국 근대사라는 게 읽다보면 우울해지기 쉬워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 읽기를 시작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간 한겨레21에서 간간히 그의 글을 접해온터라 큰 실망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으리라 안심하고 책 읽기를 시작했다.

일단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뭐하나 자주적으로 이뤄내기가 쉽지 않았던 대한민국사에서 '시민'이 자리잡기 어려웠다고 지적한 점은 그간 내가 간과해 왔던 것이라 흥미로왔다.
친일파를 분류하는 기준도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점 또한 한홍구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재미있다.
서구에서는 치열한 투쟁을 통해 얻어진 보통선거와 같은 민주적인 절차들이 우리에겐 갑작스레 주어졌는데, 어쩌면 오늘 우리가 시민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왕의 목을 침으로써 봉건적 군주제를 무너뜨린 것도 아니고, 시민 운동을 통해 민주적 권리들을 쟁취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성군이 나타나면 대평성대를 이룰 것이라는 그런 봉건시대의 환상말이다.
우리가 대통령에게 투영하는 이미지가 봉건시대의 성군에게 바라는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