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역할
facebook에다가 이런 저런 자랑질을 했더니만 비줴이 왈.. no more show offs!! ;-)
그래서인지 몰라도 갑자기 지난 5년여 동안 하지 못했던 가장 역할 생각이 났다. 넉넉치 못하게 시작한 유학 살림이나 보니 변변한 보험을 들지 못해서 아이들에게나 꼼미에게나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린 아프면 안돼.. 우리 모두 아플 권리가 없어..
천운인지, 우리 모두, 그 미친 년이 저지른 음주 교통사고를 제외하고는, 큰 탈 없이 잘 지내주었다. 하긴 그 교통사고가 큰 탈이긴 하다.
아무튼, 한창 뛰어놀 아이들이 행여 어디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큰 일이라.. 큰 일이란게 아이들이 다쳤다는 그 사실보다 병원비 걱정이 앞섰고, 해서 늘 조심 조심.. 맘껏 뛰어놀지도 못하게 했었다.
직장을 얻어 이곳 미시간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 학교에서 우리 가족 모두 건강보험을 모두 들 수 있게 되었다. 이거 없다가 있어 본 사람 아니고서는 이런 기분 알기는 쉽지 않을거다.
처음 가족 모두 치과에 갔는데, 5년여 동안 제대로 그냥 저냥 지내온 내 이빨들이 제일 문제였고, 아이들과 꼼미는 그나마 이빨도 건강한 편이었다. 이렇게 가족들 데리고 치과에 다녀오니, 보험이 되더라도 치료비가 솔찮게 나갔지만 (특히 나), 우리 가족 모두 6개월마다 큰 부담없이 치과에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난 너무 좋았다는 것.
눈이 침침하고 머리가 아프다는 꼼미와 안경 도수가 잘 안 맞는다고 불평하는 호빵과 자기도 안경이 필요하다는 번개.. 이렇게 데리고 월마트 안경점에 가서 가족 모두에게 안경을 맞춰주었는데, 하하.. 그제서야 겨우.. 아빠 노릇 좀 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겨우 월마트 안경점에 다녀오고서 무슨 소리냐 할 수도 있겠지만, 보험없이 시력검사를 하고 안경을 맞추면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지난 6년여 동안 늘 비상 사태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와서인지, 그러는 동안, 나는 나답지 않게 걱정이 많아졌다. 늘 최악을 상황을 생각하는 나쁜 버릇도 생겼고, 한마디로 쓸데없는 걱정이 늘어난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나답지 않다.
이제 조금씩 '보통'의 '생활'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일상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지난 날 들에 축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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