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에 해당되는 글 5

  1. 2010/09/30 꼼지 달콤한 휴식 (3)
  2. 2010/09/15 꼼지 원희룡과 박지원 (2)
  3. 2010/09/13 꼼지 밤샘
  4. 2010/09/10 꼼지 이제 막바지 (1)
  5. 2010/09/01 꼼지 facebook
2010/09/30 15:09 | 일상

지난 금요일 아침 기말 프로젝트 발표를 마지막으로 이번 학기 일정이 모두 끝났다. 물론 아직 기말 채점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끝났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돌이켜보면 참 쉼없이 달려왔다. 유학준비 한답시고, 집 떠나 고시원 생활도 했었고, 입학 허가서가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출국준비에, 도착하자마자는 십 여년 만에 갑작스레 다시 시작한 공부가 낯설기도 하려니와 솔직히 어렵기도 했고, 사람 만나기 어려워하는 (어찌보면 병적이다싶으리만큼.. 아마도 병원가면 무슨 무슨 disorder 같은 진단은 쉽게 받아낼 수 있을거다) 내가 생면부지의 교수들의 문을 두드렸으니.. 그 와중에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좀처럼 마음 잡지 못하는 꼼미를 붙잡고 바보같이 꺼억 꺼억 울기도 했다. 천운으로 얻은 연구조교자리이긴 하지만, 그 덕분에 방학이라고 맘 편히 쉬어본 기억이 없다. 그러던 중 오스틴으로 집을 옮기는 바람에 주말부부신세가 되었으니 주말이 되어봐야 헤롱헤롱 정신을 못 차리고 살았었더랬다. 공부시작하고 처음으로 쓰게 된 논문을 올랜도 플로리다에서 발표하기로 되어 있어, 그야말로 처음으로 가족과 같이 휴양지 여행을 계획하고 가는 길에 묵을 호텔까지 모두 예약해 놓은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온 가족이 졸지에 사고를 당하고 나니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기초적인 생계도 이어가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날아오는 그 수 많은 병원비 청구서에 정말이지 파뭍힐 지경이었고, 경찰이든 변호사든 무슨 일을 그렇게 처리하는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일이 어렵게 어렵게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도 연구조교 일을 그만둘 순 없는 일이라 몇 주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그 다음부터는 불편한 발목으로 오스틴에서 칼촌까지 운전을 해야했다. 일주일치 식량을 싸 들고, 목발을 짚고, 주차장에서 연구실까지는 왜 그렇게 멀던지. 때마침, 주차비 조금 아낀다고 학교아파트 주차권을 사 놓은터라, 거리는 더 멀었다.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를 30분 넘게 걸려 걸어갔다. 그렇게 그렇게 악착같이 연구조교를 했지만, 그 전처럼 일에 집중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고, 병원비에 대한 걱정이 두 어께를 짓눌렀지만, 어디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고, 내색하기도 쉽지 않고, 내색해봐야 걱정만 더할 뿐이라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꼼미가 인복이 많아서 주변에 천사같은 분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헤쳐나왔다. 2009년 봄 졸업을 목표로 나를 다그쳐, 교수님께 조르다시피해서 2009년 겨울에 졸업하라는 말씀을 2009년 여름으로 고치고, 연말부터는 졸업논문 준비와 더불어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닥치는대로 알아봤지만, 2008년에 그 많던 자리들이 2009년이 되자 싹 사라져버린 듯 했다. 학교쪽으로도 가능성을 알아보기로 하고, 조사를 해 봤다. 가능성이 거의 없어보였다. 연구성과가 중요한 곳에 보이기에는 내 연구성과가 너무 보잘 것 없었고, 수업이 중요한 곳에도 내가 보여줄 만한 것이 없었다. 남들 다 하는 수업조교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고, 그렇다고 그 전에 수업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는 일. 교수자리가 뜨는 세 개의 웹사이트를 계속 찾아보면서 컴퓨터사이언스, 컴퓨터엔지니어링 학과에는 분야를 막론하고 무조건 지원했다. 나중에 세어보니 80군데 이상 지원했다. 그 중에 20군데 이상은 취소되었다는 편지가 왔었고, 또 그 만큼은 다른 사람 뽑기로 했다는 편지가 왔다. 두 군데와 전화 인터뷰 성사, 그 중 한 군데와 온사이트 인터뷰. 그것이 2009년 봄이었다. 만족스럽진 않은 조건이었지만 Kettering에서 일단 Visting Assistant Prof으로 경력을 시작하고, 그걸 기반으로 다시 다른 곳으로 도전해볼 생각으로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졸업은 2009년 8월이었지만 이미 봄에 진로를 결정하고, 졸업논문 발표하고, 졸업에 필요한 모든 서류 작업을 마친 7월 초에 미시간으로 이사를 왔다. 졸업을 축하하고 할 여유도 없었다. 봄학기가 끝나면서 내 연구조교 일 자리도 끝나버린 상태라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로 두 달 이상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7월부터 일을 시작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수업도 전혀 해 본적이 없으니 다른 교수들 수업을 참관하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배워야 했고, visiting이란 불안한 고용상태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영주권을 받기 위해 별도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그러던 중 천만다행으로 일단 visiting 딱지를 떼게 되어 한시름을 놓긴했다. 불안 불안, 첫 학기 수업을 마치고서는 우연찮게 새로운 과목 이야기를 하다가 몇 가지 안 중에 내 놓은 것을 학과장이 좋아라하는 바람에 덜컥 완전히 새로운 과목을 준비해서 가르쳐야할 상황이 되었다. 이런, 남들이 하던 과목도 겨우 겨우 공부해서 가르치는 마당에 새로운 과목이라니. 잘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해 놓긴했지만 준비해 놓은 것이 없으니 걱정도 걱정이려니와 수업과 실험을 잘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가고, 정신없이 다가온 여름학기를 그야말로 초치기 수업 준비로 수업을 했다. 수업받는 학생들보다 수업 준비하는 내가 더 정신이 없었으리라. 그 수업이 지난 금요일에 끝난 거다.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나의 방학.

방학이 되면 한다고 미루어 놓은 집안 일들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꼼미가 성화를 부려야 하는 시늉을 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것도 안 하면 했지만 이것 저것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이 기다렸다. 한국에서 '김대중 자서전'이 도착했다. 그분의 삶의 무게만큼 두꺼운 두 권으로 된 책이었는데, 한번 읽기 시작하니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나의 무위도식을 위한 핑계거리로라도 삼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서인지 열심히 열심히 읽어내려가 오늘 점심 때가 되어 다 읽었다.

오늘은 학교에서 입학식이 있다. 다른 학교와는 사뭇다른 학사일정 때문인데, 처음으로 입학식에도 참가해볼 생각이다. 졸업 때 가운과 모자를 사지 않아서 학교에서 임시로 빌려주는 것을 입고 갈 생각인데, 막상 가운과 모자를 받아 놓고 보니 기분이 묘하다. 이걸 입어보지 못했다는 생각과 무엇보다 어떻게 입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

다음 주부터 가을 학기가 시작하니, 나의 non-teaching term이 공식적으로 시작한다. 해야 할 일들의 목록에 이미 항목들이 주루룩 있지만, 십 수년 만에 처음으로 맞게되는 그야말로 달콤한 휴식이다.
2010/09/30 15:09 2010/09/3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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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5 23:07 |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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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적 보수를 한다면서 한나라당에 들어간 원희룡은 가끔 입바른 소리를 해서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한나라당에 앉아서 그런 소리를 하니 눈에 띄인 것이지 다른 당에 있었다면 그저 듣보잡 신세였을테다. 그러고보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구애를 동시에 받았던 그가 한나라당을 택한 것에는 그런 계산이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짱구를 굴려보니 민주당에서 도토리 키재기 하느니 아무래도 한나라당에 가서 튀는 게 낫겠다 싶었을 수 있다. 어쨌든, 사실 말로만 튀었을 뿐, 대부분 그저 용두사미에 불과했다. 좀튀는 목소리를 내어 언론플레이를 해 주목 받은 다음에, 정작 표결에 참가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듯 한나라당에 묻어간다. 그런 면에서 한나라당 주류의 강력한 공격을 받던 고진화나 이회창 탈당 후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된 남경필과도 차별화된다. 튀되 주류에게 미움 받지 않기. 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분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에서 자기 위치를 그런 식으로 자리매김한 탓에 대중적 인기는 있어서 국회의원 당선은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문제는 당내의 위치나 기반이다. 언제나 변방에 머물러 있던 비주류였다는 것. 그런 그가 최근에 주류로 편입하는 듯 하다. 한나라당의 중진 의원이 되더니 자못 한나라당 의원스러워졌다는 거다. 아마도 이제는 주류로 진입할 때라는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최근의 그의 행보를 보면 그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그가 원희룡인가 싶을 때가 많을게다.

특히 엊그제 민주당의 박지원 원내 대표에게 내뱉은 말은 그의 기본 자질을 의심케하면서, 드디어 한나라당 주류에 본격적으로 편입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에게 '휠체어타고 안대하고 다니던 때를 잊었나. 그러다 덜컥 어찌된다'는 어떻게 들으면 협박에 가까운 저질스러운 꽤 한나라당 주류스러운 논평을 내뱉더라는 거다. 박지원은 대북송금과 대기업자금 수수로 유죄를 받아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년이 채 되기 전에 형집행 정지로 풀려난 아픈 기억이 있다. 하지만 대북송금문제는 사실상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서 김대중대통령 대신 그의 영원한 비서실장이었던 박지원이 대신 감옥에 간 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튼 원희룡 이자의 한나라당 주류 편입기를 앞으로 주의깊게 살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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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일단 구시대의 인물이라 선뜻 호감이 가진 않는다. 미국에서 넥타이장사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남들이 폄훼해서 말을 하니 그렇지 어쨌든 어엿한 재미청년 사업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을테다. 뉴욕한인회장을 지내던 중 망명온 김대중과 인연이 닿았다는데, 그런 면에서 김대중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동교동계와도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아무튼 이 사람도 요즘에 뜬다. 내 사사로운 관전평이긴 하지만, 이 사람 정치를 안다. 게다가 감각이 있다. 민주당의 김진애 의원(이분, 비례대표인데도 불구하고 의정 활동의 공력이 장난 아니다. 역주 주목할 만한 인물)의 인터뷰 중에 박지원 대표가 워딩에 능하는 말을 했는데,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다. 그는 핵심을 꿰뚫는 문장을 마치 선승이 화두 던지듯 내 놓는다.

최근의 한 예를 들면, 얼마전 북한에서 체면불구하고, 쌀을 수십만톤 보내주십사 하는 요청을 남측에 했다. 좋은 일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체면도 좋지만 인민을 먹여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해와 자연재해 때문에 안그래도 안좋은 식량 사정이 더욱 더 안 좋아진 모양이다. 이에 대한 통일부의 대응은 정말 이사람들이 심장이 있는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아무튼 쌀 대신 햇반을 보낸다는 둥 하는 황당한 얘기들은 접어두고, 아무튼 5천톤의 쌀을 보내주마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에 대한 박지원 대표의 말.. "통일부 장관 집에나 갖다 줘라." 5천톤이 많네 적네 이런 구질 구질한 말이 필요없는 거다. 게다가 국민들은 몇 천 톤이니 몇 십 만 톤이니 하는 게 얼마나 되는 양인지 잘 와 닿지 않는다. 통일부 장관 집에나 가져다 주라는 그 한 문장에는 얼마되지도 않는 쌀로 장난하냐? 라는 말을 무엇보다 쉽게 확 와닿게 표현해 주는 말이다. 이런 "워딩"은 노회찬의 그것보다도 한 수 위다. 노회찬의 말은 재미는 있지만 깊이가 없는데, 박지원의 말에는 씹는 맛이 있다.

근래 청문회에서 김태호 총리서리와 천성관 검찰총창 후보같은 유력 후보를 낙마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 그의 앞으로의 행보 또한 눈여겨 볼 일이다.
2010/09/15 23:07 2010/09/15 23:07
2010/09/13 11:36 | 일상

지난 주 목요일 실험을 위해 수요일 밤에 시작한 수업 준비가 목요일 새벽 5시까지 이어졌다. 수업이 8시부터라 두 시간이라도 눈을 붙였다. 워낙 늦게 자 버릇하다보니, 새벽까지 깨어 있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은데, 문제는 그 다음 날이다. 요즘은 다음 날 뿐만이 아니라 그 영향이 이후로도 며칠을 간다.

그래서, 가능하면 일찍 눈을 붙이고 새벽에 일어나 준비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었고, 한 동안은 그렇게 해 왔는데, 지난 번에 한번 다시 잠이 드는 바람에 낭패를 겪을 뻔 한 이후로는 새벽 작업을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 지난 수요일 밤에는 조금 늦더라도 밤에 다 해 놓고 자기로 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조금 늦은 밤을 넘어 새벽 5시가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가 된 것이다. 그럭 저럭 그날 실험 수업은 마쳤는데, 문제는 역시나, 그 영향이 목요일 하루 종일 뿐만 아니라, 금요일을 거쳐, 이번 주말까지 끼쳤다는 것. 주말에 할 일을 잔뜩 싸 가지고 집에 왔지만, 손도 대지 못하고, 월요일 수업만 간신히 준비했는데,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 몸을 다그쳤으면 좋았을테지만, 아무래도 목요일 새벽까지 일한 것이 영향이 큰 것 같다.

몇 차례의 실험(?)을 해보니, 확실히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에 일어나는 편이 훨씬 몸이 덜 피곤하고 그 이후 회복도 빠르다. 관리하지 않은 체력이 이젠 밤샘을 이겨내기도 쉽지 않은 게 확실하다.

오늘도 수업 준비 마무리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야 했지만, 확실히 아침에 정신이 맑다. 이제 밤샘은 그만~




2010/09/13 11:36 2010/09/1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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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0 16:08 | 일상

정말이지 정신없이 달려온 한 학기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바쁘다 바쁘다 그래봐야 뭐 예전에 휴대폰 회사 다닐 적에 비하면 한가한 편이다 생각한다.
바쁘다는 게 이것 저것 다 제쳐놓고 무작정 바쁘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다르다.

전에는 무엇에 쫓기든 모든 일 팽개치고 바쁜 척 했지만, 이번에는 바쁜 와중에도 가능하면 수요일 오후마다 있는 Kettering Golf League도 참가하려고 노력했고, 노동절 휴가에 뉴욕에도 '후딱' 다녀오는 일을 감행하는가 하면, 새로 학교 체육관에서 하는 운동도 시작했으니 말이다. 바쁘긴 하지만 지난 몇 해 동안 미루고 미루던 많은 일들을 같이 하면서 바빴으니 그래도 좀 알차게 바쁜 것이라고나 할까.

때로는 잠을 줄여가며 수업준비를 해야했지만, 낮에 운동하느라 시간을 써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리 바빠도 운동도 가능하면 빼먹지 않으려고 했다.

이제 이곳 생활도 일년을 훌쩍 넘기고 9월에 들어서자마자 아침 저녁으로는 꽤 쌀쌀한 가을이 시작된 모양이다. 골프리그도 끝났으니 조금은 여유가 더 생길테고, 수업도 많이 마무리 되었으니 이제 시간이 많이 걸리던, 이 책 저 책 찾아가며 하는 수업 준비도 크게 줄었다. 그동안 잠시 제쳐두었던 논문 쓰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작년부터 낸 논문들이 잘 통과가 안되는데, 이게 블라인드 리뷰가 아닌 경우에는 아무래도 학교 명성도 감안이 되지 싶다. 좀 더 잘 준비하고, 욕심부리지 말고 컨퍼런스 두 개, 저널 한 개 정도를목표로 잡고 꾸준히 연구를 해야겠다.

이제 이번 학기 한 주 반 정도가 남았다. 마무리 잘 하자.
2010/09/10 16:08 2010/09/10 16:08
2010/09/01 10:23 | 일상

facebook에 대학동기들이 꽤 많이 모여들었다. 최근들어 부쩍 많아진 것을 보면 확실히 스마트폰 덕분인 듯 하다. 언제 어디서나 생각, 사진, 동영상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으니 이전에 Facebook을 쓰지 않던 애들도 새로 쓰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Facebook의 즉자성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블로그와는 달리, 생각의 조각들을 떠오르는 즉시 글로 옮겨버리니 머리 속에는 생각할 꺼리들이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본 글이 생각나는데, 글을 쓸 때는 억지로 짜내듯 쓰면 안되고 쓸거리가 차고 넘치는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써야 한다는식의 글이였던 것 같은데, 그 '이론'에 따르면 요즘은 글쓰기에 아주 좋지 않은 환경이 될 지도 모르겠다.

니콜라스 카가 The Sallows란 의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러다가 인류는 호흡이 긴 글을 읽거나 쓰는 능력을 영영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생각을 글로 써 놓은 바람에 깊이있는 사유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걱정했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어쩌면 나도 부질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의 두뇌나 행동양식은 호흡이 긴 읽기 쓰기에 점점 더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아무튼, 중늙은이들이 되어버린 애들 사진을 facebook에서 보고 있자니 정말 세월 무상하단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갑자기 '무상'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없을 무에 항상 할 때 상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항상 그대로인 것은 없다 뭐 이런 뜻인 것 같다. 그럼 세월이 무상하다거나 인생이 무상하다는 건 정확히 무슨 뜻이냐? 세월이나 인생에 항상의 상태인 것은 없다? 변화 무쌍하다? 뭐 이런 뜻인가? 그럼 우리가 흔히 쓰는 인생 무상, 세월 무상의 쓰임새와는 조금 다른 듯 하다.

구글을 해보니 '무상'이란 불교에서 온 말인 듯 하네. 항상의 반대말로,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모든 세상 만물은 변화하고 변천한다는 식으로 쓰이는 모양.

'세월 무상'이란 그러니까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한다. 세월 앞에 장사없다. 뭐 이런 뜻이로군.

facebook에서 시작한 글이 '무상'으로 마무리되는 걸 보면 확실히 두뇌활동에 문제가 생긴게야.. 흠..

2010/09/01 10:23 2010/09/0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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