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까지 뵈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이상하리만큼 실감이 나질 않는다. 선산에 묻히시는 모습까지 뵈었는데도 그렇다.

구리 집 주변에는 아버지가 산책하시다가 쉬시곤 하시던 아파트의 빈 의자가 자꾸 눈에 밟혀서 일부러 쳐다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소파에 앉아 계시거나 편찮으신 후론 누워계시는 경우가 더 많았다. 빈 소파 말고는 집 안에 아버지의 흔적이란 것이 그다지 남아있지도 않구나.
아버지는 20대 초반에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맨 몸으로 서울에 올라오셔서 이런 일 저런 일 닥치는대로 하셨고, 장사에 수완은 없으셨는지, 여기 저기서 빌린 돈 많이 까 먹고, 덕분에 마누라 고생도 단단히 시키고, 또 그 덕분에 자식들에게 마땅히 따뜻한 대접도 받아보시지 못하셨다. 그러다 늙어 병을 얻어 이렇게 돌아가시니 사람 사는 게 부질없다. 앞으로 한 십 년만이라도 더 사시면서 자식들 덕도 좀 보셨으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가시는 걸음을 어떻게 막을 수는 없구나
미우나 고우나 오십여년을 함께 하신 어머니의 상실감은 어쩔까. 괜찮다 괜찮다 하시지만 정말로 괜찮지는 않으실게다.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을까. 나도 미국으로 돌아와버리고, 큰 형도 이제 곧 브라질로 돌아갈텐데, 텅빈 집안에 아버지의 빈 자리가 어찌 작다할까.
전화나 더 자주 드려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