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레 한국을 오고 갔더니 마치 스타트랙의 순간이동처럼 한순간에 한국에 나타났다가 다시 한순간에 미국으로 돌아온 것 같다.
관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까지 뵈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이상하리만큼 실감이 나질 않는다. 선산에 묻히시는 모습까지 뵈었는데도 그렇다.
구리 집 주변에는 아버지가 산책하시다가 쉬시곤 하시던 아파트의 빈 의자가 자꾸 눈에 밟혀서 일부러 쳐다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소파에 앉아 계시거나 편찮으신 후론 누워계시는 경우가 더 많았다. 빈 소파 말고는 집 안에 아버지의 흔적이란 것이 그다지 남아있지도 않구나.
아버지는 20대 초반에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맨 몸으로 서울에 올라오셔서 이런 일 저런 일 닥치는대로 하셨고, 장사에 수완은 없으셨는지, 여기 저기서 빌린 돈 많이 까 먹고, 덕분에 마누라 고생도 단단히 시키고, 또 그 덕분에 자식들에게 마땅히 따뜻한 대접도 받아보시지 못하셨다. 그러다 늙어 병을 얻어 이렇게 돌아가시니 사람 사는 게 부질없다. 앞으로 한 십 년만이라도 더 사시면서 자식들 덕도 좀 보셨으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가시는 걸음을 어떻게 막을 수는 없구나
미우나 고우나 오십여년을 함께 하신 어머니의 상실감은 어쩔까. 괜찮다 괜찮다 하시지만 정말로 괜찮지는 않으실게다.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을까. 나도 미국으로 돌아와버리고, 큰 형도 이제 곧 브라질로 돌아갈텐데, 텅빈 집안에 아버지의 빈 자리가 어찌 작다할까.
전화나 더 자주 드려야겠다.
먼저, 자기 욕망에 충실할 것. 부모나 주위의 기대가 자기 자신의 욕망이라 믿고 살다가 행복하지 않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유는 자기 자신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알 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훈련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자기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끊임없는 시도와 실패 속에서 몸으로 깨달아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기본적인 준비가 되는 것.
자존감과 자신감. 자신감은 남과 비교해서 자신이 비교 우위에 있다고 느낄 때 생기는 것. 그렇기 때문에 열등감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 자신감은 더 나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언제나 쪼그라들기 마련. 반면에 자존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으로 자기 자신의 추악하고 유치하고 덜 떨어진 그런 모든 모습을 인정하고 그런 자신을 스스로 사랑해서 존중하는 마음. 남의 비교 우위를 쿨하게 인정하고 그것이 자기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자괴감으로 돌아오지 않는 그런 마음.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이기 때문에 좋고 나 자신으로부터 존중받는 존재. 자존감을 가지려면 자기 자신의 저 끝 나락까지 경험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님. 20대를 치열하게 좌충우돌 살아내면 30대 이후에나 가져보게 될 귀중한 것. 어찌보면 약점을 인정하고 강점에 집중하라는 조언과도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