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30 15:09 | 일상

지난 금요일 아침 기말 프로젝트 발표를 마지막으로 이번 학기 일정이 모두 끝났다. 물론 아직 기말 채점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끝났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돌이켜보면 참 쉼없이 달려왔다. 유학준비 한답시고, 집 떠나 고시원 생활도 했었고, 입학 허가서가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출국준비에, 도착하자마자는 십 여년 만에 갑작스레 다시 시작한 공부가 낯설기도 하려니와 솔직히 어렵기도 했고, 사람 만나기 어려워하는 (어찌보면 병적이다싶으리만큼.. 아마도 병원가면 무슨 무슨 disorder 같은 진단은 쉽게 받아낼 수 있을거다) 내가 생면부지의 교수들의 문을 두드렸으니.. 그 와중에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좀처럼 마음 잡지 못하는 꼼미를 붙잡고 바보같이 꺼억 꺼억 울기도 했다. 천운으로 얻은 연구조교자리이긴 하지만, 그 덕분에 방학이라고 맘 편히 쉬어본 기억이 없다. 그러던 중 오스틴으로 집을 옮기는 바람에 주말부부신세가 되었으니 주말이 되어봐야 헤롱헤롱 정신을 못 차리고 살았었더랬다. 공부시작하고 처음으로 쓰게 된 논문을 올랜도 플로리다에서 발표하기로 되어 있어, 그야말로 처음으로 가족과 같이 휴양지 여행을 계획하고 가는 길에 묵을 호텔까지 모두 예약해 놓은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온 가족이 졸지에 사고를 당하고 나니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기초적인 생계도 이어가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날아오는 그 수 많은 병원비 청구서에 정말이지 파뭍힐 지경이었고, 경찰이든 변호사든 무슨 일을 그렇게 처리하는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일이 어렵게 어렵게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도 연구조교 일을 그만둘 순 없는 일이라 몇 주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그 다음부터는 불편한 발목으로 오스틴에서 칼촌까지 운전을 해야했다. 일주일치 식량을 싸 들고, 목발을 짚고, 주차장에서 연구실까지는 왜 그렇게 멀던지. 때마침, 주차비 조금 아낀다고 학교아파트 주차권을 사 놓은터라, 거리는 더 멀었다.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를 30분 넘게 걸려 걸어갔다. 그렇게 그렇게 악착같이 연구조교를 했지만, 그 전처럼 일에 집중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고, 병원비에 대한 걱정이 두 어께를 짓눌렀지만, 어디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고, 내색하기도 쉽지 않고, 내색해봐야 걱정만 더할 뿐이라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꼼미가 인복이 많아서 주변에 천사같은 분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헤쳐나왔다. 2009년 봄 졸업을 목표로 나를 다그쳐, 교수님께 조르다시피해서 2009년 겨울에 졸업하라는 말씀을 2009년 여름으로 고치고, 연말부터는 졸업논문 준비와 더불어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닥치는대로 알아봤지만, 2008년에 그 많던 자리들이 2009년이 되자 싹 사라져버린 듯 했다. 학교쪽으로도 가능성을 알아보기로 하고, 조사를 해 봤다. 가능성이 거의 없어보였다. 연구성과가 중요한 곳에 보이기에는 내 연구성과가 너무 보잘 것 없었고, 수업이 중요한 곳에도 내가 보여줄 만한 것이 없었다. 남들 다 하는 수업조교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고, 그렇다고 그 전에 수업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는 일. 교수자리가 뜨는 세 개의 웹사이트를 계속 찾아보면서 컴퓨터사이언스, 컴퓨터엔지니어링 학과에는 분야를 막론하고 무조건 지원했다. 나중에 세어보니 80군데 이상 지원했다. 그 중에 20군데 이상은 취소되었다는 편지가 왔었고, 또 그 만큼은 다른 사람 뽑기로 했다는 편지가 왔다. 두 군데와 전화 인터뷰 성사, 그 중 한 군데와 온사이트 인터뷰. 그것이 2009년 봄이었다. 만족스럽진 않은 조건이었지만 Kettering에서 일단 Visting Assistant Prof으로 경력을 시작하고, 그걸 기반으로 다시 다른 곳으로 도전해볼 생각으로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졸업은 2009년 8월이었지만 이미 봄에 진로를 결정하고, 졸업논문 발표하고, 졸업에 필요한 모든 서류 작업을 마친 7월 초에 미시간으로 이사를 왔다. 졸업을 축하하고 할 여유도 없었다. 봄학기가 끝나면서 내 연구조교 일 자리도 끝나버린 상태라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로 두 달 이상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7월부터 일을 시작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수업도 전혀 해 본적이 없으니 다른 교수들 수업을 참관하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배워야 했고, visiting이란 불안한 고용상태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영주권을 받기 위해 별도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그러던 중 천만다행으로 일단 visiting 딱지를 떼게 되어 한시름을 놓긴했다. 불안 불안, 첫 학기 수업을 마치고서는 우연찮게 새로운 과목 이야기를 하다가 몇 가지 안 중에 내 놓은 것을 학과장이 좋아라하는 바람에 덜컥 완전히 새로운 과목을 준비해서 가르쳐야할 상황이 되었다. 이런, 남들이 하던 과목도 겨우 겨우 공부해서 가르치는 마당에 새로운 과목이라니. 잘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해 놓긴했지만 준비해 놓은 것이 없으니 걱정도 걱정이려니와 수업과 실험을 잘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가고, 정신없이 다가온 여름학기를 그야말로 초치기 수업 준비로 수업을 했다. 수업받는 학생들보다 수업 준비하는 내가 더 정신이 없었으리라. 그 수업이 지난 금요일에 끝난 거다.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나의 방학.

방학이 되면 한다고 미루어 놓은 집안 일들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꼼미가 성화를 부려야 하는 시늉을 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것도 안 하면 했지만 이것 저것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이 기다렸다. 한국에서 '김대중 자서전'이 도착했다. 그분의 삶의 무게만큼 두꺼운 두 권으로 된 책이었는데, 한번 읽기 시작하니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나의 무위도식을 위한 핑계거리로라도 삼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서인지 열심히 열심히 읽어내려가 오늘 점심 때가 되어 다 읽었다.

오늘은 학교에서 입학식이 있다. 다른 학교와는 사뭇다른 학사일정 때문인데, 처음으로 입학식에도 참가해볼 생각이다. 졸업 때 가운과 모자를 사지 않아서 학교에서 임시로 빌려주는 것을 입고 갈 생각인데, 막상 가운과 모자를 받아 놓고 보니 기분이 묘하다. 이걸 입어보지 못했다는 생각과 무엇보다 어떻게 입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

다음 주부터 가을 학기가 시작하니, 나의 non-teaching term이 공식적으로 시작한다. 해야 할 일들의 목록에 이미 항목들이 주루룩 있지만, 십 수년 만에 처음으로 맞게되는 그야말로 달콤한 휴식이다.
2010/09/30 15:09 2010/09/3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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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석영 (2010/09/30 18:43)
    이쁜 집도 장만했고, 푹 쉬삼. 11월에 샌디에고 오면 회 한사라 먹자구.
  2. commi (2010/10/01 07:41)
    마치 '권재락자서전'을 읽는 듯 했다는... 회에 소주, 맛있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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