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한국 근대사라는 게 읽다보면 우울해지기 쉬워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 읽기를 시작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간 한겨레21에서 간간히 그의 글을 접해온터라 큰 실망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으리라 안심하고 책 읽기를 시작했다.

일단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뭐하나 자주적으로 이뤄내기가 쉽지 않았던 대한민국사에서 '시민'이 자리잡기 어려웠다고 지적한 점은 그간 내가 간과해 왔던 것이라 흥미로왔다.
친일파를 분류하는 기준도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점 또한 한홍구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재미있다.
서구에서는 치열한 투쟁을 통해 얻어진 보통선거와 같은 민주적인 절차들이 우리에겐 갑작스레 주어졌는데, 어쩌면 오늘 우리가 시민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왕의 목을 침으로써 봉건적 군주제를 무너뜨린 것도 아니고, 시민 운동을 통해 민주적 권리들을 쟁취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성군이 나타나면 대평성대를 이룰 것이라는 그런 봉건시대의 환상말이다.
우리가 대통령에게 투영하는 이미지가 봉건시대의 성군에게 바라는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