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튼, 처형의 아들이 방학을 맞아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오는 짐에 처형이 보내준 책들이 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책 두 권. 하나는 "PD수첩, 진실의 목격자들"이란 책이고, 다른 하나는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란 제목의 김선주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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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9시뉴스 끝나고 스포츠뉴스도 끝난 시간에 방영했던 것 같은데 한국에 있을 때는 사실 잘 안봤다. 왜냐만 보고나면 늘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한 느낌 때문이기도 했는데, 먹고살기도 바쁘고,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남의 일로 내가 걱정을 사서 해야하나 하는 아주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봐봐야 한마디로 뭐 좋을 게 없다는 느낌이랄까. 오늘 그 책의 표지 뒤쪽에 적혀 있는 글을 보고, 아... 바로 이거였어.. 하는 느낌이다.
진실은 먼저 당신을 화나게 한 후에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
- 글로리아 스타이넘 -
정말이지 PD수첩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김선주.. 사실 이 책의 추천서를 써 준 정혜신의 글까지만 읽었는데, 정혜신이 하는 김선주에 대한 칭찬은... 난 조금 개인적으로 불편하다. 왜냐하면 내 기준으로보면 정혜신은 정말 글을 잘 쓰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혜신이 그리 칭송해마지 않는 김선주의 글보다도 나한테는 좋다. 추천서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란 하이데거의 정의로 시작한다. 정신과 전문의답다. 그런데 내게는 이 말이 새삼스럽다. 언어가 정신의 집이라면 난 정말 형편없는 집에서 살고 있는거다. 모국어인 한국어를 그닥 잘 구사하는 편도 아닌데다가 이국 생활이라 한국어 책들을 많이 보는 편도 아니고, 그나마 내 존재의 내보이려면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데 몇 번이나 정독하고 고쳐 써도 여전히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내기에는 어렵고, 읽기나 글 이해 속도는 한국어로 하는 속도에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이고, 글 쓰는 속도를 얘기하자면 속도를 이야기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정혜신의 추천글을 읽다가 김선주의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국에서 남의 나라 말로 밥벌이하는 내 존재의 집이 참.. 허하다는 느낌을 새삼스럽게 들었다.
읽을만한 책들을 얻으니 맛있는 곶감을 벽장 속에 숨겨놓고 가슴이 든든한 느낌이다. 언제라도 하나씩 빼먹을 수 있고, 그 생각만으로도 몇 시간씩은 기분이 좋아질 수 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