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전 처음 만져보는 물건이라, 조심스럽게 조립을 했다. 조립이랄 것도 없지만 아무튼... 사용 전에 엔진오일을 넣으라고는 되어 있는데, 엔진오일 뚜껑을 열어서 오일잔량을 검사해 보니 오일이 묻어나온다. 적정량이라고 표시된 부분에 분명하게 오일이 묻어나오니까, 이미 기본적으로 엔진오일은 들어있나보다 했다.
그런데, 잔디깎기를 30분도 쓰지 못하고 엔진이 서버렸다. 잔디깎다가 엔진이 자꾸 서길래 출력이 부족하나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엔진오일 뚜껑을 열어봤는데 여전히 오일이 묻어나왔기 때문에 엔진오일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몇 분 더 사용하고는 더 이상 시동이 걸리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9시도 넘은 밤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잔디깎기를 다시 차에 싣고 홈디포로 갔다.
"야.. 이거 한 30분도 안썼는데, 시동이 안 걸린다. 새 걸로 바꿔주라."
홈디포는 물건값이 싸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물건교환이나 반납이 무척 편하다. 별 말없이 새 걸로 바꿔준다. 아무튼, 이 때까지도 나는 내가 산 잔디깎기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새로 교체해서 가져온 잔디깎기를 꺼냈다. 박스에 커다랗게 이렇게 써 있는거다.
"사용 전 오일을 넣어주세요."
이런 이런... 오일 뚜껑을 열어 잔량을 확인해봤다. 이번에도 여전히 기름이 묻어나온다. 그래도 이번에는 엔진오일을 더 넣어보기로 했다. 조금씩 조심스럽게 넣었는데, 이런 이런, 한 통이 다 들어간다.
결국, 어제 샀던 잔디깎기는 내가 엔진오일을 넣지 않아서 엔진을 말아먹은 것 같다. 이런...
아무튼 어제 하나 새 걸 말아먹은 덕분에 오늘은 엔진 오일 넣는 것부터, 개솔린 넣는 일까지 일사천리로 잘 진행되고, 문제없이 처음으로 우리집 앞 뜰과 뒤 뜰의 잔디를 깎았다. 처.음.으.로.
주말 아침, 우리 집 잔디를 깎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비로소 진정으로 집 주인이 된 것 같다. 잔디가 꼭 어설픈 이발사가 깎아놓은 머리같지만, 깎아놓은 잔디를 보니 오래동안 마음 속에 걸려있던 무엇인가가 시원하게 내려간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