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김선생님이란 분을 만났다. 드물게도 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가까운 주택단지에 살고 계신 한국분이다. 자식들은 이미 장성했고 남편은 이 마을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계신다고 했다. 몇몇 아줌마들과 더불어 그분이 대접해 주셨던 냉면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건, 선택에 관한 것이다. 미국에 온 건, 나의 선택이었으므로 그 누구를 원망 할 일이 아니라는. 그건 김선생님의 말이었다. 많이 생각해왔던 거긴 했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는 '선택'이란 말은 다시 새로웠다. 그건 사실, 남에게 말하기 쉽지 않은 말이다. 내 앞의 누군가에게, '그 모든 걸 선택한 건 그 누구도 아닌 너였어. 누구를 원망할 생각은 말아.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선택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도, 바로 너야'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정말 보통 사이가 아니거나, 아님, 그렇게 말한 다음 날 관계를 끊어야 하는 사이일 것이다. 어쨌든, 그 순간 나는, 선택의 책임 소재를 인정하는건 이상하리만치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반발하고 캐들어 가 보았자 굴복하기만 할 뻔히 질 싸움이란 걸 이미 알지만, 그 모든 것이 나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하면.... 어쩐지 그건 더 괴롭고 힘들 것 같다는....
그걸 다 받아들이고 인정해도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건 증발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기화하지 않은 슬픔과 외로움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선택이었어'란 말을 되새길 때마다 이렇게 쉽지 않은 건.
그걸 다 받아들이고 인정해도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건 증발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기화하지 않은 슬픔과 외로움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선택이었어'란 말을 되새길 때마다 이렇게 쉽지 않은 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