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건에 온지 얼마 안되어 우연히 알게 된 문선생님댁. 꼼지와 같은 과 무어 교수가 저녁 초대를 했을 때 그의 독일인 부인이 자기 아이들의 피아노 선생님이 이웃에 사는 한국분이셨다며 나에게 꼭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만나게 된 문선생님은 젊었을 때 미국에서 피아노를 공부하시고 Piano Pedagogy 로 대학원을 마치신 분이다. 플린트 미시건 대학 (University Michigan at Flint) 의 교수셨던 남편분이 일년 전에 돌아 가시고 장성해서 각자 직장에 다니는 두 아들 쌍둥이를 두셨다. 알고 보니, 꼼지가 잘 아는 분의 숙모되는 분이시기도 해서, 우리 모두가 이 좁은 세상과 인연들에 대해 새삼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 분의 집에 종종 간다. 문선생님이 연결해 주신 인도 새댁을 선생님 댁에서 가르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이 구석 구석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집이 한편으론 너무나 슬프고 쓸쓸해 보여서 그 공간에 나 혼자 있을 때는 오만가지 쓸쓸한 기억과 몽상들이 다 일기도 한다. 선생님 혼자 지내시고 계시는 그 집이 미시건의 추운 가을 속에 너무 외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오랜동안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북적였을 그 집이 세월이 흐른 후 적막함으로 찬 공간이 되었다는 게 무슨 슬픈 소설의 시작이나 끝장면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선생님은 아직도 이웃의 미국친구들과 아침마다 테니스 클럽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듯, 절대 외로워 보이시거나 쓸쓸해 보이시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선생님을 뵙는 일은 늘 반갑다.

우리집에서 20분 가량 떨어진 플린트 시에 있는 그 집은 현재 팔기 위해 내놓아진 상태다. 경제 상황이 안좋은 플린트에서 이 집에 언제 팔려나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집을 처분하게 되면 문선생님은 앤 아버 (An Arbor) 에 있는 작은 콘도미니움으로 이사하실 계획이시란다. 선생님이 한국을 방문하고 계신 이번 주, 고맙게도 집 열쇠를 내게 맡기셨다. 그 집에서 인도 새댁 스웨타 (Shweta) 를 기다리는 동안, 또는 보낸 후에 나혼자 남아 그랜드 피아노에서 피아노를 치다 오곤 한다.

피아노는 Schimmel 이다. 건반은 약간 무거운 편이지만 반동감이 좋고 소리도 너무 밝지 않고 부드럽고 깊이가 있어 칠 수록 느낌이 좋다. 군데 군데 고르지 않은 건반감이나 음색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랜드 피아노의 섬세하고 묵직한 건반감이 학생 시절 그랜드 피아노에서 연습을 하던 그 기억들을 불러온다.

고등학교 땐가 선화에 입학하고 난지 얼마 안되 나의 부모님이 아버지 친구분께 돈을 얻어 사주신 삼익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 돈을 두고 두고 조금씩 갚아 그 피아노 비용을 대셨을 거다. 그게 얼마나 고맙고 큰 일인지 난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와 대학내내 결혼 하지 전까지 한 방을 다 차지한 큰 피아노 아래서 잠을 자면서, 난 그 피아노를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했던거다. 결혼을 하고, 좁은 집을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면서 결국 첫애를 낳은 그 해에 '내 맘대로' 그 피아노를 팔았다. 그때 나의 부모님들께서는, '네 것이니 니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라고 말씀 하신게 전부셨다. 세월이 흘러 갈 수록, 그 말이 내 가슴을 깊이 깊이 찌른다. 내 부모님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도, 내가 가졌던 그 피아노와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존중감도 없었던 그때의 나에 대해 참..... 마음이 시리다. 내가 생각했던 건, 좁은 집에서 실용성에 비해 터무니없이 호사스러워 보이는 피아노에 대한 부담감 뿐이었다. 모든 게 돈으로 관련되던 그 시절. 반복되는 이사 속에서 돈덩어리일 뿐인 그 피아노를 내가 짊어지고 다닌다는게 눈치가 보이고 죄스러웠을까. 나는 내 부모의 맘을 이해 못했지만, 부모님은 그런 내 처지와 마음을 아셨기에 두말 없이, 그저 '나의 선택'에 맡기셨던 거라는 걸 지금은 분명히 안다. 그 마음이 분명하게 깨달아질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시려온다.

문선생님댁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 순간이 너무 너무 좋다.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른채로 한 시간이 넘도록 열정적으로 쳐대도 손은 계속 딱딱하고 땀방울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집안의 공기가 싸늘하고 차가워도 말이다. 내게 음악을 남겨 주신 나의 어머니, 아버지. 이런 기억을 내 아이들에게도 남겨 줄 수 있기를 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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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immel 그랜드 피아노. 5feet 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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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새댁을 가르치는 또 다른방에 있는 Baldwin upright 피아노. 스튜디오 같은 이 방의 느낌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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뵙지는 못했지만 왠지 정이 가는 문선생님 가족. 지금은 모두 훌륭한 성인들로 장성해서 일하고 있는 선생님의 두 쌍둥이 아들들.



남의 집과 가족의 사진을 올리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집 사진들이 이미 매매 시장에 공개 되어 있고 선생님의 가족을 까깝게 느끼고 싶은 마음에 올려 본다. 쌍둥이 중 앤디 (Andy) 는 워싱턴 D.C. 에서 일하고 있어 간혹 온다고 한다. 한번쯤 우리 호빵 번개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 이 두 쌍둥이 아들들이 바이올린과 테니스를 보통 수준을 훨씬 뛰어 넘게 했다고 한다. 플린트 음악 학교 (Flint Institute of Music) 오케스트라와 실내악단에서도 활동을 했었고 말이다.

사람과 맺는 인연이라는 게 이런 거 같다.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거미줄 같은.

2009/10/15 13:51 2009/10/15 13:51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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