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니는 산울림의 광팬이었다. 언니는 일찌기 피아노를 배웠고 대학시절엔 기타 렛슨까지 받으러 나녔지만 오늘날 그 어느 악기도 즐겨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니는 분명 노래와 음악을 좋아하고 나름의 음악적 취향이 있는 사람이다. 한편, 난 특별히 어느 가수의 광팬인 적은 없었다.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음악을 일삼아 듣는 일도 없었다. 그저 라디오 듣는 일을 그럭저럭 즐겼을 뿐이다. 대학때 꽤 많이 좋아하고 들었던 음악은 동물원과 봄여름가을겨울이다. 그리고 클래식과 대중음악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듯한, 이병우의 음반들 정도를 자주 들었다. 언니가 좋아 했던, 한국대중음악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산울림 음악들을 어깨너머로 섭렵한 때문인지, 다른 어느 대중음악보다 자작곡 밴드들의 음악이 귀에 익숙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과 가사에 풍부한 시도와 사색을 담는 이들의 음악에 관심이 갔다.
이후로 인디밴드들의 작업에도 관심을 갖고 들어보려 했지만 산울림, 동물원,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에 견줄만큼 마음에 드는 음악이나 그룹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늘 새로운 음악을 찾아보려는 시도는 하는 편이어서 1994년말 한국을 떠나올 때 (1995년 1월이었나...?) 다른 것들과 함께 보도 듣도 못한 그룹의 첫음반을 사오기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재주소년의 음반이었다. 음반에 있는 곡들이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몇몇 잘된 곡들이 있었다.
재미있는 건, 이 그룹에 대해서 난 언니에게 입한번 벙긋 한 적이 없는데, 몇년전 조카들편에 언니가 보낸 음반들 중에 재주소년의 <Piece> 가 있었다는 거다. 조카들은 이미 재주소년 1집의 노래를 잘 알고 있었는데, '엄마가 좋아해서 많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재주소년의 두 음반에 담긴 노래가 눈쌓인 동네 풍경과 내 마음의 평온함을 잘 감싸주는 것 같아 요즘 차에서 내내 듣고 다닌다.
"눈오던 날" (재주소년 1집)이렇게 계절은 바뀌었지만아직도 난 잊을 수가 없는걸그러던 어느날 다짐한거야여전히 용기없는 나를 도와줄하늘에서 하얀눈이 내리는날조그만 테잎을 내밀며...오래전부터 너를 좋아하고 있었어이런 내 맘을 너에게 고백하고 싶었어정지해버린 시간 침묵을 뒤로하고눈이 수북히 쌓인 길 숨차도록한없이 달리네
"언덕" (재주소년 1집)바람이 차갑게 불던 오후난 그 언덕에 올라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를혼자 바라보았네그 위를 내달리던 아이들모두 어디갔는지두 어깨 활짝펴고 달리던난 그 억덕에 올라움추린 내 뒤모습 너머로수평선은 하늘과 닿았네가리워진 시간 사이로모두가 변했네바람이 차갑게 불던 오후난 그 언덕에 올라두 어깨 활짝피고 달리던나 그 언덕에 올라
때론 이들이 감수성이 너무 어려서(?) 이나이에 내가 받아들이기엔 좀 그렇지만, 몇몇의 가사를 무시하고 듣는다면 선율과 가사의 어우러짐이나 기타반주가 듣기에 꽤 괜찮은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