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이번 겨울 정성을 들여 보내 주신 물건 중에 쥐포가 있었다. 말도 못하게 비싼 쥐포. 미국에 와서 한번도 내 돈 내고 사먹어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대놓고 먹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받은 짐꾸러미에서 쥐포가 나온 그 날로 네 식구가 그 중 반을 먹어 치웠다. 쥐포 맛은 정말 '끝장'이었다. 나중에 통화 하면서 아버지께 쥐포가 너무 맛있더라고 했더니 허허허 웃으시면서 '그 쥐포가 엄청나게 비싼거다...'하시더라.
많이 좋아해 드리지 못한 아버지다. 아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란 원망하고 대들었던 것들 뿐이다. 못마땅하다고 여기면 (내가 뭐 그리 잘난x이라고) 아버지고 뭐고 없이 다 대들고 싸웠더랬으니까.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호인이자 지성인으로 인기가 좋으셨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난 어쩜 그리도 없었는지. 어머니와 오빠에 대한 측은지심의 화살이 아버지에게 돌아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안계신 지금, 엄마의 몫까지 다하시는 중이다. 나는 딸이라고 아버지를 돌봐 드리기는 커녕, 이렇게 맛있는 쥐포 조차 제 손으로 사먹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아버지 손으로 이 멀리까지 부쳐 주셔야 먹는다.
여전히 무뚝뚝한 딸로 변한 건 별로 없고 마음만 한 해가 다르게 무거워진다. 이름 붙은 날이나 새해에 꼼지나 내 얼굴에 그늘이 지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부모님들 때문이지 싶다. 해가 갈 수록 더할 게 분명하다.
오늘 낮에는 꼼지가 구워 내놓은 쥐포를 점심 삼아 먹었다. 맥주 한병이랑 같이. 배꼽 빠지게 우스운 Saturday Night Show 특집편을 네 식구가 다같이 보는 중이었다. 새해의 몇째 날이자 겨울 방학의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 네 식구 모두 건강하게 텔레비전 화면과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편한 웃음을 날리는 중이었다. 어쩌면 오늘은 우리 네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코메디는 너무 우습고 쥐포는 무지 맛있는 가운데 그리운 사람들이 우리 주변으로 함께 뭉텅 뭉텅 모여들고 있었다. 이렇게, 먹는 일은 다시 사람들, 특히 떠나온 사람들과 한국에 대한 생각을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