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도 인터넷이 말썽을 부리더니 오늘 새벽에도 인터넷이 작동 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 호빵이랑 인터넷 선을 빼고 끼우고 별짓을 다해봐도 TV, 컴퓨터, 내 아이폰까지도 여전히 먹통이었다. 아무래도 우리집 선이 문제인게 아니라 호빵의 진단처럼 AT & T 의 문제인 것 같아 포기하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포기는 했지만 혹시나 해서 TV 는 켜두었는데 갑자기 나갔던 전기가 퍼득 들어 오듯 TV 가 왕왕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TV 나 라디오는 안되도 참겠는데, 이젠 인터넷이 안되면 정말 깜깜한 밤에 정전되어 암흑속에 빠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한국 드라마도 공짜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본다. 호빵, 번개 그리고 내가 최근 열심히 봐온 드라마가 <궁, 2006> 이다. 이 드라마를 아이들과 함께 봐야지 생각했던 건 오스틴 살때부터다. 그러니까 한 삼년 됐나. 가상 왕족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라 해서 애들에게 보여줘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이 드라마를 함께 보기까지 삼년 걸렸다. 호빵과 번개 모두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젊은 애들의사랑앓이를 남의 얘기처럼만 느끼지는 않을 것 같고, 또 마침 아빠가 한국에 가있으니 한국에 대한 간접 경험도 될 것 같았다.
예상대로 호빵과 번개는 이 드라마에 푹푹 빠졌다. 할일을 일찍 끝낸 밤이면, "엄마, 우리랑 같이 <궁> 하나 보고 잘래요?ㅎㅎ" 하고 묻는다. 질질 늘어지는 중반의 줄다리기에는 아이들도 지겨워 했지만, 주인공들의 감정선뿐 아니라 한국 예술고 학생들의 일상적인 모습과 대화도 무척 재미있어 했다. 급기야는 막판의 반전이 이어지던 어제밤엔 처음으로 연이어 세편을 보아 제꼈다 (금요일 밤이라 봐줬다 ㅋ).
이 드라마에 푹 빠진 사람은 물론 애들 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랬다. 아니 좀 더 솔직하자면, 아이들을 핑계로 내가 더 열심히 봤다. "야! 안보고 딴짓 할거면, 나가!!! 엄마 혼자 볼래..." 를 연신 외치면서 말이다. 19살짜리들의 사랑놀이가 뭐 그리 재미있다고 이 사십대 아줌마는 세 주인공 (난 세 주인공이라 해야겠다) 신채경, 신, 그리고 율과 더불어 속을 폭폭 끓이는가.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하기 그지 없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라 모든 세상과 사물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고 느낀다. 우리의 대부분이 남의 이목을 신경쓰고, 부끄러워 하고, 상처받고, 괴로워 한다. 나만 그런 것 같지만, 이 세상을 '사람'으로 살고 있는 생물이라면 이점에선 모두 똑같다. 이런 게 모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언젠가 꼼지와 나눈 대화 속에서 우리가 내린 결론이다. 세상이나 사물이 그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줘도 우리는 이미 그것을 나의 모습으로 나의 문제로 받아들을 준비가 늘 되어 있는 거라고. 그러니 어떤 드라마를 봐도 그건 어떤식으로든 나와 밀착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채경은 신을 좋아하고, 율은 채경을 좋아 한다. 고귀한 신분의 왕자, 신은, 채경을 '사랑'하게 될까? 이 드라마의 질문은 이거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채영은 끊임없이 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하고 그 욕망 때문에 끊임없는 오해의 미궁에 빠져든다. 그 오해의 미궁 속에서 건져 올리는 것은 물론 고통과 상처 괴로움 이런 것 뿐이다. 빠져 나올 길은 포기 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기를 한결같이 아껴주고 보듬어 주고 끝끝내 사랑해 주는 사람 (율) 에게는 왜 가지 못할까? 그건 사랑의 바람 때문이라고 드라마는 말했다. 사랑의 바람이 그쪽으로 불지 않기 때문이라고 (크~).
드라마를 보면서 한없이 자기 중심적인 나는 결국 '나'일 수 밖에 없었는데, 신과 채경이 서로의 의도와 진심을 끊임없이 오해하는 그 모습에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공감해야만 했다. 사람과 사람이 특별한 인연을 만들기까지는 서로를 확인 하려는, 서로를 의심하는, 그런 과정이 존재 한다. 내 마음은 이런데,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나는 이런걸 기대하며 이런 말을 했는데 상대는 엉뚱한 반응을 보였다면 확인은 되지 않고 의심만 남게 된다. 그러니까 '저 사람 마음은 내 마음과 같지 않을게야... ' 그러는 거다. 이런 과정이 더욱 힘든 경우는 내가 어떤 사람과 특별한 인연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무지 무지하게 강할 때다. 그래서 맘속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런 확인과 의심의 과정은 보통일이 아니게 된다. 신이와 채경 그리고 율이 괴로운 이유도 그거다.
내가 괴로웠던 이유는... 그러니까, 그애들만큼의 고통은 아니었겠다. 나야 이제 그만큼의 고통을 불러일으킬만큼 확인과 의심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할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나는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 괴로움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그런 관계의 끈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리라. 그것이 과거의 일이었던 아님 현재진행형이든, 깊은 오해이든, 얕은 오해이든, 지울 수 없는 상처이든, 따끔 하지만 내버려둘만한 상처이든, 순간 순간 내 마음에는 (우리의 마음에는) 사람 관계에 대한 확인과 의심이 늘 계속 되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으로서 목숨이 붙어있는 한.
마지막 회를 앞두고 극적으로 화해한 채경과 신. 모든 오해를 풀고 '이 사람은 언제까지나 어디서나 내사람이야. 내 마음과 꼭 같은....' 이라는 확신에 이르는 것은 또 왜이리 쉬워 보이는가. 그거 자기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면 그만인 것을. 긴건 기라고, 아닌건 아니라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 그대로를 보여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하지만 한편으로 그리 쉬워 보이는 그 일이, 또한 왜 이리 어려운가. 내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일, 상대방의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보는 일. 그 일은 왜 이리 어려운가. 이 하찮은 드라마가 내 마음을 무척 아프게, 그러면서도 감동스럽게 한, 구석이 있었다면, 그건 드라마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때문인거다. 그런 것을 생각하는 나 자신. 사람 관계의 단맛과 쓴맛을, 어찌할 수 있는 것과 죽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사람관계에선 있다는 것을 인정해버린 내 마음 때문인거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나의 '자기 중심성' 때문인거다.
내 마음의 바람이 불어도 상대방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으면 그 관계는 특별한 인연이 될 수 없다. 반대로, 상대방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어도 사랑의 바람이 그쪽으로 불지 않으면 그 관계 또한 끝끝내 특별한 인연이 될 수는 없다. 드라마 <궁>에 빗댄다면, 내가 (우리가) 맺은 관계들, 그리고 잃어버린 관계들의 공식은 바로 이러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