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nard Bernstein: The Political Life of an American Musician
Barry Seldes
2009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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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without music is unthinkable. Music without life is academic.

That is why my contact with music is a total embrace.”

"음악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으며, 삶이 없는 음악은 학문에 불과하다.

이것이, 왜 나와 음악의 만남이 완전한 포옹같은 것인가를 말해 주는 이유다."

Leonard Bernstein (1918-1990)


1.

우리는 음악가를 종종 '순수'라는 이름으로, 현실과는 동떨어져 고립된 또는 고립되어야 하는 부류의 사람들로 취급하곤 한다. 하지만, 음악가 역시, 음악가라는 특정한 이름으로 불리기에 앞서, 우리 모두와 다름없이, 이 세상에 발딛고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과 음악은 그들이 속한 사회와 정치적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윤이상의 삶을 그 한 예로 들 수 있다. 독일을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생애 말년에 독일로 귀하 하였음에도, 윤이상의 삶과 음악은 한국 사회와 역사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또한 그 자신, 그것을 외면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는 한국 태생이라는 자신의 존재론적 처지와 상황을 있는 힘껏 받아 안으면서 생애 마지막까지 자신의 음악과 삶을 일치 시켰다. 우리는 그를 훌륭한 작곡가이자 위대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우리의 마음 속에 그를 담았다. 이러한 그의 삶을 긍정적인 의미로서 '대단히 정치적이었던 음악가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음악가의 인간적인 측면으로서, 그들의 사회적 참여나 정치적 개입에 대해 무관심으로 외면하거나, 아니면 통렬히 비판하곤 한다. 우리의 삶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음악가의 삶도 사회적이고 정치적이어야 하며, 사회와 정치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태도가 인간 윤리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하듯이 음악가의 생각과 실천도 똑같은 관점에서 비평되고 조명 되어야 함에도 말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가 음악과 정치의 무관련성이 통념이 되는 사회는 아니라면, 그보다는 음악과 정치가 밀접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뚜렷이 인식하는 사회라고 한다면, 음악가를 바라보는 일도, 그들의 삶의 토대인 음악과 정치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바탕 위에서 한 음악가의 세계관을 조명하고, 그 음악가가 견지한 정치적 사회적 입장과 태도가 어떻게 그의 음악 활동과 창작물에 반영되고 형상화 하는지를 활발히 연구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음악가와 그의 음악을 충분히 입체적으로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우리가 음악과 인간의 삶이 하나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 들이는 사회에 살게 된다면, 음악가와 음악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와 기록도 의심할 바없이 보편적인 인간 윤리의 테두리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2.

배리 셀데스의 저서, <레너드 번스타인: 한 미국음악가의 정치적 삶> ,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이라는 음악가의 삶을 통해, 바로 음악가와 정치가 왜, 어떻게 하나 인가를 보여준다. 셀데스는 그토록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작곡가이자 지휘자 번스타인의 삶과 음악도 미국이라는 사회의 관습과 통제를 벗어 날 수 없었으며, 음악인으로서 번스타인의 삶은 또한 그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대면해야 했던 역사적 시대적 소명과 한계로 똘똘 뭉쳐 있었다는 사실을 상세히 서술한다.

이 책이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하여 번스타인의 정치적 행적과 관련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들을 수집하여 꼼꼼히 살피고 분석하였다는 점이다. 정치학 교수로써 정치와 문화에 관련된 연구와 저술을 해온 저자, 배리 셀데스는, 위대한 음악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인물이었던 레너드 번스타인의 삶에서 빈칸으로 남겨져 있던 부분들, 특히 그의 정치적 사상과 실천과 관련된 궤적을 메우고 그 맥락을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사건들을과 연결시켜 낸다.

셀데스가 기록한 레너드 번스타인의 삶과 음악은, 그가 속했던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의 한계 속에서 음악적, 정치적 윤리를 일관되게 추구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로, 사회와 정치에 막 눈을 떠가던 청년 음악가 번스타인이 고민 했던 것은 미국 민족주의 음악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 민족주의 음악의 바탕은 귀족 문화를 대변했던 서양의 고전음악 보다는, 미국을 건설했던 주인공, , 노예로 팔려왔던 흑인들을 포함한 이민자 대중들의 음악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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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칸을 포함한 다양한 이민자들의 음악 자산을 토대로 미국 민족주의 음악을 형상화하려 했던 그의 시각과 태도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던 그의 삶에서 사람의 일인 음악과 윤리는 결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중대한 쟁점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가 번스타인이 작곡한 유명한 작품들을 기억할 때,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밝히는 번스타인이라는 음악가의 사회적 정치적 삶과 태도를 알게 되면, 우리는 클래식 음악가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번스타인이 왜 대중 장르로서 미국 뮤지컬을, 그것도 밑바닥 젊은이들의 좌절된 삶과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 했는가를, 쉽게 수긍하고 더 잘 이해하게 된다.


“I believe in people. I feel, love, need and respect people above all else,

including natural scenery, organized piety and nationalistic superstructures.

One human figure on the slope of a mountain can make the mountain disappear for me,

one person fighting for truth can disqualify for me the entire system which had dispensed it.”

"나는 사람(인민)을 믿는다.

자연의 풍광, 깊은 신앙심, 또는 국가적 상부구조들 같은 그 어떤 것보다도,

나는 사람(인민)을 느끼고, 사랑하고, 필요로 하며, 존경한다.

가파른 산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의 형상이 나로 하여금 그 산을 잊게 만들며,

진실을 위해 싸우는 한 사람이 나로 하여금 진실이라는 걸 적당히 분배 해 온 전체 시스템을 회의하게 한다."

Leonard Bernstein (1918-1990)


번스타인은 미국적 음악과 양식을 추구하는 미국 민족음악가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민족주의적 태도가 편협한 민족주의적 시각에 머물러 버리거나 극단적 애국주의로 변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 속을 통해 볼 때, 번스타인의 사상은 궁극적으로 보편적인 인간 윤리의 추구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품었던 민족주의적 시각과 태도는 시대와 역사의 격동과 속에서 한결 같을 뿐 아니라 보편적 인류애를 향한 다양한 이념들과 더불어 그 폭과 깊이를 넓혀 간다.

우리가 이 책 속에서 만나는 레너드 번스타인은 무대 위에서 음악을 지휘하고, 청소년들에게 작곡가와 작품과 악기 이름과 같은 지식을 재미있고 친절하게 전해주는 음악가로서만이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쟁점에 때론 음악적 활동과 작품으로, 때론 직간접적인 정치적 실천과 발언으로 현실에 개입하는 대단히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인간을 또한 만나게 된다. 이른바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그가 보여 준 실천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분개, 흑인 인권운동의 참여, 베트남 전쟁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대, 냉전주의에 대한 고발,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인륜적 대처에 대한 반대 의사 표명, 동성애와 관련된 부당한 대우와 관념에 대한 저항 같은 것들은, 그의 음악관이 근본적으로 인권과 자유와 평화에 대한 깊은 신념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3.

아직도 많은 경우, 우리 사회에서 음악가와 정치, 또는 음악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논하거나 비평하는 것이 유기되거나 거부되는 것을 본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많은 음악가들이 그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듯 살아 가는 것을 본다. 그래도 희망을 걸어 보는 것은, 세상과 사람을 올바로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지식과 시각이 아니라 종합적인 측면에서 관찰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우리 모두가 대체로 합의 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합의를 시작으로 사회와, 정치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고, 우리 삶에서 사회적 정치적, 윤리라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중대한 문제인가를 인식 할 때, 위대한 음악가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들의 음악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가 언제가 되든, 우리 사회에서 위대한 음악가와 그들의 음악적 족적들이 정치와 무관 하다는, 또는 무관해야 한다는 통념이 사라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모든 음악가와 음악이 의도적으로 정치적 요소와 주장을 보여주기를 바란다는 말이 아니다. 음악가가 사람인 이상, 근본적으로 모든 음악가와 음악의 근저에는 반드시 그들이 처한 예술적, 사회적, 정치적 제한이나 억압, 그리고 그들이 극복하고 뛰어 넘으려 한 낡은 통념과 관습들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뜻이다. 배리 셀데스가 그의 책 <레너드 번스타인: 한 미국음악가의 정치적 삶> 에서 보여 주려 한 것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바로 그 사실들의 면면이다.






2009/09/13 22:38 2009/09/13 22:38
Posted by 꼼지
김현, 폭력의 구조/시칠리아의 암소
(김현 문학전집 10), 문학과 지성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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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명박 정권이 그 또아리를 풀기 전, 우리는 이제 적당한 욕망의 표출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우리의 욕망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을 언어와 표현으로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는 그렇게 살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사는 게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무언의 압력조차 느껴졌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대충 오만하거나 상당히 편안하거나 아님 급작스럽게 허무주의적인 태도로 삶의 전선을 바꾸는 게 보였다. 그런데도 난 민족음악을 가슴에 담았던 지난 시대에서 별로 나아간 것이 없는 것만 같았다. 현재의 정치권력이 그 또아리를 풀고 오만 데로 헤쳐 다니고 모여 다니기 시작했을 때 답답한 가슴 한켠은 그 범위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맥없이 잡았던 이 책은 그런 나의 마음을 덮혀 주었다. 김현은 '글 머리에'서 르네 지라르의 폭력이론에 천착하게 된 때를 밝힌다. 욕망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깨달았을 때였다고 말한다. 난 곧이어 김현이 사회와 역사의 테두리 안에 갇힌 인간의 욕망을 역설하면서 그 욕망에 대해 다시금 비판적 칼을 들이대길 원하였던 거라고 느낀다.

김현이 본 욕망은 이렇다.

"그것이 외적 중개에 의한 것이든 내적 중개에 의한 것이든, 모든 욕망은 중개된 욕망이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욕망은 자발적이며,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라고 믿는 것은 낭만적 환상, 낭만적 거짓이다.... 그 매개된 욕망은 한이 없는 욕망이다. 한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육체적으로 죽거나 정신적으로 죽는 수밖에 없다." (김현, 1992: 32)

그는 위와 같은 성찰 속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욕망은 폭력을 낳고, 폭력은 종교를 낳는다!" (김현, 1992: 18)

이 말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전에 읽었을 때도 불처럼 뜨겁게 느껴졌지만, 서거 후에는 이 말이 전하는 열기가 새삼 우리 모두를 잡아 먹을 것만큼 강하여 두렵기까지 하다. 김현은 1980년 초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폭력의 의미를 묻는다고 했다. 나는 그로부터 이십 여년을 훌쩍 넘어 2009년에 다시 그의 책을 읽으며 여전히 폭력의 구조와 의미를 묻고 있다.


2.
김현의 르네 제라르의 이론 분석은 흥미롭다. 김현은 제라르가 모방이론에 관한 첫 저술 후에 일반 소설과 사회심리학과 종교인류학의 기로에서 세번째, 종교적 체험에 관한 연구분석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르네 제라르의 [폭력과 성]은 그가 종교인류학으로 향했던 첫번째 시도라고 한다.

르네 제라르의 종교적 분석은 제의적 희생 (le sacrifice rituel) 이다. 김현의 말을 빌자면, 제의적 희생은 모든 종교적, 문화적 활동의 원형이자 단일한 희생물로 모든 가능한 희생물을 대치시키면서 동물로 인간을 대치시키는 경제적 기능뿐만 아니라, 좋은 폭력으로 나쁜 폭력을 막는 종교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한다 (김현, 1992). 즉, 제의적 희생은 카타르시스적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노무현의 죽음은 우리에게 그 많은 눈물을 뽑아 냄으로써 영혼의 정화작용을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복수의 길이 막힌 희생물에게 모든 격렬한 반응을 다 보임으로써 재난의 폭력을 정화하는 방도이다. 희생물은 그러므로 상상적인 신에게 봉헌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폭력에 봉헌되는 것이다” (김현, 1992: 46).

사회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오래 속이는 방법을 쓰는 것, 폭력을 속이는 폭력이 제의적 희생에 나타나는 폭력이라는 것이 르네 제라르의 이론이자 김현의 해석이다.

"문화는 불순과 순수의 구별 위에 세워져 있다. 순수한 피가 불순한 피와 섞이지 않을 때 문화는 유지되나, 그것이 섞일 때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의 구별은 불가능해지고 희생체계는 흐트러진다.... 그 예는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다. 순수와 비순수의 구별이 없어지면, 개인을 개인답게 만드는 차이들이 없어져,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사이의 구별 역시 없어져버리고, 문화의 위기가 생겨난다. 순수와 비순수의 구별 뒤에 숨어 있던 폭력의 무차별적 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무차별의 현상 (l’indifferentiation) 비극의 인물들은 차이를 잃고 아버지와 아들이, 왕과 신하가 같은 부류가 되어 서로를 멸망시킨다..... 있는 것은 거의 만장일치의 똑같은 욕망, 똑같은 증오, 똑같은 전략, 서로 다르다는 똑같은 환상뿐이다. 왜냐하면 폭력은 모방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을 획일화하고 모두 짝패로 만든다. 위기의 절정에서는 어떤 차이도 없어진다. 위기의 절정에서 ‘우연히 불꽃’이 튀어 상호적 폭력, 혹은 폭력적 상호성을 지우고 평화를 세운다. 우연의 불꽃에 의해 희생물이 되는 것이 속죄양이다. 속죄양은 공동체를 화해시킨다. 희생양은 혼란에서 질서로 이행하는 것의 상징이 아니라, 이행 그 자체이다. 이것은 희생적 위기에 일어난다." (김현, 1992: 47부터)

김현에 따르면 르네 지라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욕망을 해방시키고, 금기를 없애면 욕망의 유토피아가 온다고 믿는 것은 헛된 믿음이다. 사람들이 욕망의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해방의 이데올로기를 택하면 택할수록, 사실 그들은 경쟁 사회의 완성을 독촉하는 셈이다” (김현, 1992; 61)

3.
우리의 욕망을 제어하는 길은 우리의 욕망에 대해 깨닫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김현이 그러했듯이. 죽음으로 밖에는 벗어 날 수 없는 욕망의 손아귀에서 서로를 폭력으로 잡아 뜯고 물어 죽이지 않고도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은 끝없이 우리의 윤리성을 되묻는 일이 아닐까 싶다. 참으로 나약한 주장이거니와, 이런 넘치는 욕망과 분노에 찬 폭력의 나날에 겨우 윤리라니. 그래도 찾을 말은 그것 뿐이다. 더 나은 게 있다면 나에게도 알려 주시압.

2009/06/06 00:19 2009/06/06 00:19
Posted by 꼼지

Power, Politics,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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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9 12:21
Power, Politics, and Culture: Interviews with Edward W. Said
Edited by Gauri Viswanathan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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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발간되던 당시만 해도 실존했던 새드는 2003년 지병으로 사망하여 역사 속에 잠들었다. 1978년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 이후로, 전 세계 석학들을 사로잡고 광범위한 학문적 영역에서 새로운 사고를 향한 길잡이가 되었던 그는, 나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타고난 삶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거부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자신의 삶 속에서 그 몫을 충실히 끝까지 추구 했던 사람이다. 새드는 문학의 역사와 사료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하여 제국주의, 문화적 편견, 그리고 그가 특별히 사랑했던 음악에 대해, 그 모든 역사와 관계의 불균등성과 모순성에 대해 파헤쳤을뿐만 아니라', 지식과 신념 그리고 실천을 죽은 지식인이 아닌 '산 지식인'으로서 일체화 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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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의 이론을 처음 접한 건, 둘째를 낳고 수현언니를 비롯한 몇몇과 다시 사적인 공부 모임를 시작했을 때이니까... 언제쯤이었나 기억이 안난다. 기억하는 사람 있으면 알려 주길! 어쨌든, 그 때 모임 사람들과 함께 발제를 해가면서 한국어판 <오리엔탈리즘> 을 읽었다. 그 때는 우리가 이미 한창 제국주의의 문화침략과 식민사회에서 문화왜곡에 대한 논의를 했던 때라 (물론, 우리가 그럴 수 있었던 것도 이미 새드의 영향력이 세계로 전파된 이후였기 때문일 것이다), 새드의 논의가 새롭고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그 광범위한 증거와 분석과 비평에 놀라고 그것을 소화하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그 책을 우리가 끝까지 다 읽었던가?...


그 이후 미국에 와 오스틴 텍사스 대학 (UT at Austin) 종족음악학과 (Ethnomusicology) 에서 '음악과 다름성' 을 수강할 때 원문판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읽고 토론했다. 그의 오리엔탈리즘은 수십 개의 논문을 읽어 내야 했던 그 과목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이론이었다. 이 수업 가운데서 그의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읽으며, 새드의 오리엔탈리즘 이전과 이후로 종족음악학 또는 음악인류학의 역사를 바꾸어 써야 하지 않을까 할만큼, 그의 이론이 음악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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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의 이론 전까지 음악 분석과 음악사학은 그저 음표와 음관계에 대한 해석, 이전 작품과 대상 작품과의 관계 등, 음악가의 공적, 사적 이력을 탐구하는 것에 만족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많은 음악학자들이 새드의 이론과 시각을 이해하고 적용하지 않고는 그 간단한 악장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분석이 온전해지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의 한 악장 <터어키 행진곡> 을 해석하는데 새드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프리즘이 필요하다. "왜 이 유명한 악장의 제목이 Alla Turca 일까, 왜 모차르트는 '터어키식 음악'을 쓰게 되었을까, '터어키식' 음악적 요소는 어디서 기원 하는가, 당시 비엔나인들에게 터어키는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와 같은 질문을 할 때 말이다. 이런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음악이 단지 음표와 화음을 넘어서 간과할 수 없는 다양한 문화적 편견과 사고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새드식으로 풀면, 모차르트가 차용한 '터어키식' 음악 요소들은 '진짜 터어키'가 아닌 터어키에 대한 당시 비엔나인들과 그 비엔나인들을 대상으로 음악을 만들었던 작곡가들이 새롭게 만들어낸 '자신들에 대한 반영으로서 터어키'라는 것이다 (Mattew 2000).

말했듯이, 음악역사와 작품 속에서 이와 같은 측면을 밝히는 일이 새드의 오리엔탈리즘이 발표되기 전에는 생각 밖의, 논의 밖의 일이었다. 이제 음악학자들은 그들의 주제에 다양한 관점의 문화이론들을 적용하면서 음악학적 사고의 범위를 확장해가고 있다. 새드의 이론 - 제국주의가 축적하고 추구해온, 이국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또는 낯선 집단) 에 대한 왜곡된 표상에 대한 - 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문화 (음악을 포함하여) 적 결과가 단지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하거나 평가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든든히 뒷받침 하는 이론적 토대다. 음악 작품 논리와 분석에 치중하는 음악이론과, 음악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밝히는 음악역사학 (보통 음악학이라고 칭하는 분야), 그리고 서로 다른 음악문화들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탐구하는 종족음악학이 이제 서로 경계가 흐릿해져 가면서 통합음악학 (인류학적 음악학 또는 음악인류학) 으로 전개해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라고 나는 믿는다. 종족음악학이 그저 문화간의 단순한 비교관찰을 넘어 새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선두로 하여 다양한 역사이론, 사회이론, 문화이론들을 적극적으로 포용면서 좀 더 인간의 역사와 밀접히 관련된 새로운 인류학적 음악학을 향한 깃발을 올리고 있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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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돌아와, 새드에 대한 나의 학문적, 개인적 관심에서 이 책 <권력, 정치, 그리고 문화 (Power, Politics, and Culture)> 를 샀다. 새드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 책의 제목에서 보듯, 늘 권력과 정치와 문화를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시각에 나는 철저히 동의한다. 사람 = 정치, 사람 = 문화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래서 새드의 이론들과 저작들과 주장들과 실천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의 저작이 아니다. 중대한 논의를 이끌어온 학자로서보다 한 실천적 인간으로 새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다양한 매체들과 나눈 인터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인터뷰의 주도자들은 세계 언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는 '제국주의' 언론도 '동방' 언론도 있다. 말했듯이 다양한 인터뷰 매체들은 그를 다양한 측면에서 파헤친다. 그의 저작들, 그의 실천적 행위들, 그의 삶과 역사 등등을 말이다.

이 책에 담긴 그의 고백을 따르면 그가 삶의 좌표를 분명히 인식한 것은 꽤 늦은 때인  발견한 것은 학위를 따고 문학학자로서 탄탄한 경력을 밟아나가던 30대다. 그의 아버지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이지만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시민이 되었고 그의 아들을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늘 이방인처럼 키웠다. 즉, 팔레스탄인이지만 항상 유럽학교에 다녔던 (우리식으로 하면 한국앤데 외국인 학교만 다닌) 새드는, 오히려 팔레스타인 또는 아랍인으로서의 태생적 자아와 서양식 교육 (언어 뿐만 아니라 아랍의 역사가 아닌 서양역사를 배우며 자란) 을 통한 현실적 자아 사이의 모순 사이에서 밝지만은 않은 어린시절과 청년기를 보낸다. 이 책 속에 담긴 새드의 목소리는 그의 학문적 성취와 실천적 삶 모두가 철저히 그의 실존적 태생적, 즉, 역사적이고 배경적 경험과 자각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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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 사이를 이어준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How did you find a way to bridge these interests - literature and politics?) 라는 질문에 대한 새드의 답이다.
"The fact is that all of us live in the world. I suppose it was just a matter of time and the right event. In my case it was during the 1967 war. I'd been this well-behaved academic; I'd done all the right things - gone to college, gone to graduate school, got a Ph.D., got a job, had fellowships, written books - and then in 1967 the world I knew completely fell apart (강조는 편집자). More of Palestien, or the rest of Palestine, was taken by the Israelis - the West Bank and Gaza - and I suddenly found myself drawn back to the area. I've never taught the literature of the Middle East - I've taught some Arabic books in translation, but basically all my work has been in Western Literature. So I started to accommodate myself to the somewhat repressed or suppressed part of my history which was Arab. I did several things: I started to go back to the Middle East more often; I got married in the Middle East to a Middle Eastern woman; and then in 1972-73 I took a sabbatical year in Beirut, and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undertook a systematic study of Arabic philology and the classics of the Arabic tradition. By that time the Palestinian movement had been involved in a catastrophic clash with the Jordanians. Because a lot of my family lived in Jordan, I had been in Amman visiting relatives in 1970. When I was there I saw some friends of mine from college, Palestinians, who had gone back and joined the movement. It was quite a shock to see them there and realize that they, too, had gotten involved. Gradually, after the movement moved to Beirut - my family lived in Beirut by that time, in the seventies - I got more and more involved in the politics of the Palestinian struggle. That naurally honed my interest in issued of dispossession, exile, the political struggle for human rights, the struggle to express what is inexpressible, and a whole set of things that since that time have molded my work. My book Orientalism really came out of that experience (Viswanathan, 2002: 237)."

이 책에는 미국, 유럽, 아랍 등을 포함한, 다양한 지식인들에 대한 그의 견해와 비판도 담겨있다. 속되게 말하자면, 최근의 경향은 가방끈이 길수록 비겁하고 사악하고 포악하며 독단적이고 비대하다. 지식인에 대한 성찰이란 것도 결국은 그런 지식인들을 길러내는 사회적 토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사회 전체가 '지식인'에 대한 개념은 없고 '독재자'와 '사기꾼'의 개념만 있다면 그에 대한 성찰이란 게 있을 일이 무엇이겠는가.

요즘 이스라엘이 서쪽 벽 (the West Bank) 을 넘어 가자지구를 폭력적으로 공격하는 역사적으로 명백한 반 인권적 행위를 본다. 이 옳지 못한 전쟁 (이것을 음악에서의 한 '작품' 또는 '소품' 이라고 생각해 보자) 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와 권력의 힘으로 교묘히 조작하고 재해석 하는 것을 본다. 새드가 펼쳤던 논의와 주장들이, 또는 새드와 같은 지식인이 새삼 더 그리워지지 않을 수 없다.



참고문헌

Viswanathan, Gauri. eds. 2001. Power, Politics, and Culture: Interviews with Edward W. Said. New York: Vintage Books.
Head, Mattew. 2000. Orientalism, Masquerade and Mozart's Turkish. London: Royal Musical Association.
Said, Edward W. 1978. Orientalism, New York: Vintage Books.
2009/01/09 12:21 2009/01/0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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