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나를 묻는다이영유가을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풍성하고 화려했던 언어들은 먼 바다를찾아가는 시냇물에게 주고,부서져 흙으로 돌아갈 나뭇잎들에게는못다 한 사랑을 이름으로 주고,산기슭 훑는 바람이 사나워질 때쯤,녹색을 꿈꾸는 나무들에게소리의 아름다움과소리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거친 대지를 뚫고 새싹들이온 누리에 푸르름의 이름으로 덮힐 때쯤한곳에 숨죽이고 웅크려나는 나를 묻는다봄이 언 땅을 녹이며 땅으로부터올라온다

나는 나를 묻는다이영유가을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풍성하고 화려했던 언어들은 먼 바다를찾아가는 시냇물에게 주고,부서져 흙으로 돌아갈 나뭇잎들에게는못다 한 사랑을 이름으로 주고,산기슭 훑는 바람이 사나워질 때쯤,녹색을 꿈꾸는 나무들에게소리의 아름다움과소리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거친 대지를 뚫고 새싹들이온 누리에 푸르름의 이름으로 덮힐 때쯤한곳에 숨죽이고 웅크려나는 나를 묻는다봄이 언 땅을 녹이며 땅으로부터올라온다
병원의 아침은 서두르게 다가와서 눈을 뜨자 마자 물한잔을 후딱 마시고 밥오기를 기다렸다. 생각만큼 입안에 차지 않는 아침밥을 대충 먹고 책을 보다 안경을 쓴 채로 잠시 자리에 누웠는데 발끝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뜬 참이었다.
선아가 왔더랬다. 이정록의 <의자>라는 시집을 들고 왔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예전처럼 다소곳하고 들릴 듯 말듯한 말투로. 20대 초반에 외과의사의 부인이 되었던 그애는 이 삼십대를 밥하느라 다 보냈다고 했다. 엄마는 희귀한 근육 또는 피부 암으로 4년전부터 투병 중이고 그 이 삼년 후 동생의 뇌종양이 발병해 현재까지도 살림과 아픈 가족들 사이에서 심적 여유없이 사는 듯했다.
빨간색 가디건에 빨간 점박이 무늬 원피스를 입은 그애는 눈에 띌만큼 숱이 적은 머리카락만 아니라면 대학교 초년생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 모습이었다. 외과의사와 결혼해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사는 아이가 들고 온 시집이라는게 낯설고도 반가웠다. 읽은 책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이서를 부탁해서 서명을 받았다. 이제는 '사랑하는 현수, 항상 건강하고'라고 단정히 적힌 시집이 되었다. 그애가 돌아간 후에는,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특별히 만난적도 그리워한적도 없었던 친구가 시집을 들고 병원으로 찾아와 주었다는 생각이 되감겨, 시집 표지만 보고 있어도 자꾸 감동이 된다.

이정록의 “꽃물 고치”를 읽었다.
아파트 일층으로 이사 와서
생애 처음으로 화단 하나 만들었는데
간밤에 봉숭아 이파리와 꽃을 죄다 훑어갔다
이건 벌레나 새가 듣어먹은 게 아니다
인간이다 분명 꽃피고 물오르기 기다린 노처녀다
봉숭아 꼬투리처럼 눈꺼풀 치켜뜨고
지나는 여자들의 손끝을 훔쳐보는데
할머니 한 분 반갑게 인사한다
총각 덕분에 삼십 년 만에 꽃물 들였네
두 손을 활짝 흔들어 보인다
손끝마다 눈부신 고치들
나도 따라 환하게 웃으며 막 부화한
팔순의 나비에게 수컷으로 다가가는데
손가락 끝부터 수의를 짜기 시작한 백발이
봉숭아 꽃 으깨어 목 축이고 있다
아직은 풀어지지도 더 짜지도 마라
광목 실이 매듭으로 묶여 있다
(이정록 시집 <의자> 중에서)
시가 어찌나 우스운지 속으로 막 웃었다. 내가 늙으면 저 시 속의 할머니 같이 되는게 아닐까, 내가 팔순이 되었을때 나같은 나비에게도 다가올 수컷이 있을라나...키키 거리며 말이다. 허 그 시 참, '손가락 끝부터 수의를 짜기 시작한 백발'이라든가 '봉숭아 꽃 으깨어 목 축이고 있다'라든가. 나이 먹은 사람의 마음 바라보는데 남다른 관록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무릎이라도 칠 판이다.
오후엔 혜정과 선미 들이 올꺼라하고 저녁 시간엔 출판사를 운영하는 석씨도 보자고 온다고 했다. 손사래를 치며 사람들에게 오지 말라 했는데 여적 볼 사람들은 많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