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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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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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셋에 여자 하나 있던 집에 지금은 여자 셋만 있으니 하루 종일 집안이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게 느껴질 정도다. 단지 여자들이어서 조용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 세 여자들 모두가 상당히 독립적(?)인 성격에다, '강요된 함께하기'를 추구 하는 편도 아니어서 더욱 그렇지 싶다. 각자 '조용히' 책읽고, 영화보고, 그림 그리고, 악기 연습하며 하루를 보낸다.

함께 있는 여자 셋이  다 같이 모여 짧은 수다를 나누는 시간은 식사 때와 간간히 장을 보러 갈때,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는 가수다>를 시청할 때 정도 일까.

특히나 내이름거꾸로언니와 나는 이 시간을 우리에게 주어진 황금 같은 시간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북적거리던 남자 셋이 몹시 그리우면서도 이렇듯 조용하고 굴곡없는 하루 하루도 참으로 빠르게 흘러가는구나 싶어 아쉽기도 한 것은 그때문인지도 모르겠다. 9월이 되고 언니는 한국으로, 나는 남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으로 돌아가면, 우린 다시 즐겁지만 바쁜 나날의 바퀴를 따라 정신없이 굴러가게 되겠지.

이렇게 조용한 삶, 앞으로 몇년 뒤 아이들이 제 삶을 찾아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날엔 원하지 않아도 다시 맞이하게 될테다. 살면서 외로움을 견디며 잘 살 수 있을까 두려워 한 적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 연습을 제법 잘 해내고 있는 듯하다.

조용히 조용히 하루 하루가 간다. 곧 가을이 내려 앉을 듯한 한 낮이다.


나는 나를 묻는다

이영유


가을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풍성하고 화려했던 언어들은 먼 바다를
찾아가는 시냇물에게 주고,
부서져 흙으로 돌아갈 나뭇잎들에게는
못다 한 사랑을 이름으로 주고,
산기슭 훑는 바람이 사나워질 때쯤,
녹색을 꿈꾸는 나무들에게
소리의 아름다움과
소리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거친 대지를 뚫고 새싹들이
온 누리에 푸르름의 이름으로 덮힐 때쯤
한곳에 숨죽이고 웅크려
나는 나를 묻는다
봄이 언 땅을 녹이며 땅으로부터
올라온다
2011/08/08 13:53 2011/08/08 13:53
Posted by 꼼미

다시 병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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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00:38
다시 병상일기

나이 사십 먹어
자궁을 들어 낸답시고
병원에 앉아 있으니
또 별별생각이 다난다
내가 나 같지 않고
내가 남같다
남들 얘기라면 하나도 별날 것 없이
듣고 지났을 일
오히려 내가 나 같은 건
자궁을 포기하고
앉은 이 상황에도
히히거리며 허허거리며
한가롭게
신문이나 책 따위를 들추며
미래에는 더 철없어질
자신에 대해서
상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찾아 오는 사람들을
반겨 맞는 일도 귀찮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일도 귀찮은데
막상 사람 앞에서는
열심히도 똑같은 대사를 읊어 대는
나는 또 뭔가
온다는 사람은 한사코 오지 말라고
온 사람에겐 배가 아프도록 함께 지껄이고
가는 사람은
당신 가도 하나 아쉬울 것 없단듯이
부랴부랴 쫒아 낸다
그리곤
다시 돌아 온다
혼자 남은 병실에서
사라져 버린 자궁에 대해
몸에 대해
몸을 부리는 사람이란 기이한 것에 대해
생각하는
편안한 나의 자리로


2011/05/07 00:38 2011/05/07 00:38
Posted by 꼼미

이정록 - 꽃물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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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23:20

병원의 아침은 서두르게 다가와서 눈을 뜨자 마자 물한잔을 후딱 마시고 밥오기를 기다렸다. 생각만큼 입안에 차지 않는 아침밥을 대충 먹고 책을 보다 안경을 쓴 채로 잠시 자리에 누웠는데 발끝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뜬 참이었다.

선아가 왔더랬다. 이정록의 <의자>라는 시집을 들고 왔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예전처럼 다소곳하고 들릴 듯 말듯한 말투로. 20대 초반에 외과의사의 부인이 되었던 그애는 이 삼십대를 밥하느라 다 보냈다고 했다. 엄마는 희귀한 근육 또는 피부 암으로 4년전부터 투병 중이고 그 이 삼년 후 동생의 뇌종양이 발병해 현재까지도 살림과 아픈 가족들 사이에서 심적 여유없이 사는 듯했다.

빨간색 가디건에 빨간 점박이 무늬 원피스를 입은 그애는 눈에 띌만큼 숱이 적은 머리카락만 아니라면 대학교 초년생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 모습이었다. 외과의사와 결혼해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사는 아이가 들고 온 시집이라는게 낯설고도 반가웠다. 읽은 책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이서를 부탁해서 서명을 받았다. 이제는 '사랑하는 현수, 항상 건강하고'라고 단정히 적힌 시집이 되었다. 그애가 돌아간 후에는,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특별히 만난적도 그리워한적도 없었던 친구가 시집을 들고 병원으로 찾아와 주었다는 생각이 되감겨, 시집 표지만 보고 있어도 자꾸 감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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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의 “꽃물 고치”를 읽었다.


아파트 일층으로 이사 와서

생애 처음으로 화단 하나 만들었는데

간밤에 봉숭아 이파리와 꽃을 죄다 훑어갔다

이건 벌레나 새가 듣어먹은 게 아니다

인간이다 분명 꽃피고 물오르기 기다린 노처녀다

봉숭아 꼬투리처럼 눈꺼풀 치켜뜨고

지나는 여자들의 손끝을 훔쳐보는데

할머니 한 분 반갑게 인사한다

총각 덕분에 삼십 년 만에 꽃물 들였네

두 손을 활짝 흔들어 보인다

손끝마다 눈부신 고치들

나도 따라 환하게 웃으며 막 부화한

팔순의 나비에게 수컷으로 다가가는데

손가락 끝부터 수의를 짜기 시작한 백발이

봉숭아 꽃 으깨어 목 축이고 있다

아직은 풀어지지도 더 짜지도 마라

광목 실이 매듭으로 묶여 있다

(이정록 시집 <의자> 중에서)


시가 어찌나 우스운지 속으로 막 웃었다. 내가 늙으면 저 시 속의 할머니 같이 되는게 아닐까, 내가 팔순이 되었을때 나같은 나비에게도 다가올 수컷이 있을라나...키키 거리며 말이다. 허 그 시 참, '손가락 끝부터 수의를 짜기 시작한 백발'이라든가 '봉숭아 꽃 으깨어 목 축이고 있다'라든가. 나이 먹은 사람의 마음 바라보는데 남다른 관록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무릎이라도 칠 판이다.


오후엔 혜정과 선미 들이 올꺼라하고 저녁 시간엔 출판사를 운영하는 석씨도 보자고 온다고 했다. 손사래를 치며 사람들에게 오지 말라 했는데 여적 볼 사람들은 많기도 하다.

2011/05/04 23:20 2011/05/04 23:20
Posted by 꼼미

기별 -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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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2 17:11
기별



장석남


노래를 좋아해 나는 어느날
전기 기타를 사다가는
무슨 곡조를 알아서라기보다는
그저 이런저런 길고 짧은,
높고 낮은 음들을 만지면서
더듬으면서
앉아 있기도 한다네
그러면 기타가 봄이 온다는
소리도 낸다네 지금은 한겨울이니까 그 소리는
금이 간 채 피어오르는 목련꽃 아래께에
가서나 들어보게
소리가 거기까지에서 들리거든
내게 기별을 해주도록
그 기별은 전화로보다는
봄날이라도 아주 가끔씩만 볼 수 있는
는개 같은 게 뜨는 것으로다
해주게나
그게 좋아 자네나 나나 좀
기별에서도 얼만큼은
가려져 있는 게 좋아
거기서도 여기서도
는개 같은 눈을 뜨고 서로
한데를 바라보아도 좋아
그 기별중에
봄은 가도 좋아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 것을 시는 전해 준다. 시가 좋은 이유.
내 마음의 말들도 시처럼 전해지면 좋으련만, 내 입을 지나 나오는 말들은 영 못났다.
내 마음의 못난 것들만 입을 통해 세상으로 나오는 듯. 가끔 뱉어낸 모든 말들이 후회스런 이유.
사십 넘어 나이 먹어 가는게 무엇인지 하루 하루 보이는 날들.

2011/02/22 17:11 2011/02/22 17:11
Posted by 꼼미

김수영 -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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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6 00:25
강가에서


김수영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사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두번 새벽에 한번
그러니 아직도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샤쓰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훨씬 늙었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사이에
자꾸자꾸 소심해져만 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소인이 돼간다
속돼 간다 속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Thanksgiving 밤. 문선생님댁에 초대 받아 아이들과 함께 미국식 터어키로 저녁을 먹고 왔다. 우리 아이들과 문선생님의 아들, 그리고 조카, 조카의 친구들 외에 두 분의 여자분이 더 초대 되었다. 문선생님을 포함한 세 분이 다 혼자 사는 분들이다. 문선생님과 한국분은 남편을 각기 일년 전, 오년 전 상처 하셨고, 나머지 한분 드물게 얌전하고 단아해 보이는 미국분은 잠깐 결혼을 하신적이 있다지만 오랫동안 혼자 살아 오신 분이라고 했다. 그분은 특히 오는 12월 초 암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문선생님이 나에게 귀뜸 했던 분이다. 어쨌든, 젊은 청년들과 나이든 아주머니들 사이에 혼자 낀 나는 일부러 노력할 필요도 없이 말수를 줄일 수 있었다. 그저 영어와 한국말이 섞여 오가는 대화 속에서 60을 넘은 세 여성의 이야기가 귀를 거치지 않고 마음으로 쑥쑥 들어 왔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앤틱샵에서 산 물병이 얼마나 예쁜지, 자신이 넣어 둔 주식가가 어떤지, 요즘 타이거 우즈의 경기 실적은 어떤지, 등등의 이야기들 사이로, 가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내었던가, 자신은 이 세상을 어떻게 떠날 것인가,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어떻게 죽는가인 것 같다는 그런 것들이었다. 돌아 오는 길에는 거칠던 빗줄기가 눈으로 바뀌었다. 이 동네에 내리는 올해 첫 눈이다. 그렇게 말 수를 줄이고 싶었는데도, 조심 조심 눈인지 비인지를 뚫고 돌아 오는 내내, 오늘도 역시나 마음 속엔 후회와 반성 투성이었다. 내게서 쏟아져 나오는 그 모든 것들이 행동이든 말이든 모두 얇팍하고 속없어 보이기만 한다. 누가 뭐라 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그토록 모자라 보인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사십대의 사람은 이런 내가 아니었다. 내가 먹은 나이를 인정하기에 내 자신이 너무 모자르단 생각 뿐이다. 그런 생각이 계속 떠나질 않는다.
2010/11/26 00:25 2010/11/26 00:25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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