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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시내에 발딛었을 때 처음 눈에 들어 온 것이, 장벽을 이룬 건물, 사람과 차로 가득찬 거리, 무표정한 사람들, 그리고 머리를 들면 닿을 듯이 오가는 도시 순환열차(loop) 였다. 도시. 아무리 못되고 지긋지긋한 것이라도, 그리워지면 사랑스러운 법이다. 맘 같아선, 시카고 건물들을 하나 하나 알아가고 싶었다. 건축가와 그 역사까지. 마치 사람을 알아가듯 말이다. 물론, 맘 뿐이었지만.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저 열차 밑에서 '시끄럽고 복잡하고 차가운 표정의 도시' 그런 단어들이 머릿속에 잔뜩 밀려 왔다. 그런데도 왜 이리 사랑스럽기만 한거지 되묻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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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새끼들, 밥 (아니 빵?) 많이 먹어라!"
꼼지는 컨퍼런스 보내고 우리끼리 아침일찍 호텔을 나서서 하루종일 걸을 테니 든든히(?) 먹으라고 맥도널드 아침을 사주었다. 지네들을 엄청 끌고 다닐꺼면서도 기껏해야 맥도널드를 먹이는 엄마를 원망하기는 커녕 '와! 맥도널드다' 하며 특별한 아침으로 생각하고 먹는 호빵과 번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싸구려 음식 먹고 살어. 아니, 이런 싸구려 음식도 못먹고도 사는 사람들도 많다. 복 받은 줄 알아라...."
말같지도 않은 엄마의 설교 아닌 설교를 들으면서.
아이들 뒤로 벽에 걸린 사진들이 보기 좋았다. 시카고는 왠지 맥도널드도 시카고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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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나서 걷기 시작... 저 좁은 길에 늘어선 차들 하고... 비까번쩍해 보이는 차들 위로 비친 호텔의 네온 불빛도 '시카고스럽'단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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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시내 관광 버스. 날씨도 좋았고, 타려고만 했으면 탈 수도 있었을텐데, 그 짧은 일정 속에도 뭔 심보였는지 한사코 아이들과 걸을 수 있을만큼 걷자고 했다. 미시건 애버뉴였을 것이다. 매표창구에 쓰인 'Chicago' 란 단어를 눈앞에서 보는데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 <Chicago, 2002> 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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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맥도널드 간판, 시카고스럽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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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건 애버뉴 남쪽에 있는 박물관들 쪽으로 방향을 잡다보니 약간 북쪽으로 위치해 있는 밀레니엄 공원도 제대로 보질 못했다. 그쪽에는 좀 더 굉장한(?) 또는 다양한 조각품들이 있었을 테지만 멀리 skyscraper 를 배경으로 설치해 놓은 이 조형물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꽤 인상적이고 마음에 들었던 풍경. 뒤의 건물들은 기풍도 당당하게 세련된 신사들처럼 서있는데, 그 앞의 머리없는 사람닮은 군상들은 버려진 쓰레기처럼 방향없이 걸어가는, 아니 그저 뜻없이 움직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런 걸 돈 내지 않고 아무나 볼 수 있는 세상, 난 그런 세상이 좋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이 풍경 앞에 멈춰서서 꽤 오랜 시간 바라봤던 것 같다. 공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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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 대한 설명은 굳이 뭐 필요할까. 그냥 보면 된다. 그런데 난 저런 보트들 보면 예쁘기는 하지만 좀 짜증난다. 무엇보다 저런 거 타려면 돈 많이 들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런데 대체로 저런 것들은 돈 많이 내고 타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거 아니고 돈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자기네 걸로 가지고 있는 거 아닐까...^^; 나? 밸이 꼬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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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젊은이들. 나도 저리 청춘일 때 세계를 돌아다니며 맘껏 살았다면 참 좋았겠다 싶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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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이른 아침이었는데 시카고 미술박물과 Art Institute of Chicago 에 붙어 있는 미술 박물관에 긴 줄이 생겨나고 있었다. 입장료가 상당히 비싼편이라 아이들을 둘이나 데리고 저길 가기엔 이번엔 아니다 싶어 결국 못갔다. 혼자였다면, 아쿠아리움이나 자연사 박물관이 아니라 저길 먼저 갔겠지. 그러니까 난 나이기도 하지만 두 남자 아이들의 엄마이기도 하다. 가끔 아닌 듯 살기도 하지만, 늘상 그럴 수는 없다. 저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근데 미술 박물관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좀 신경질이 난 것도 있다. 미술 박물관, 악기 박물관, 역사 박물관 같은 것은 공짜이거나 아님 좀 싼 입장료면 안되는가. 여기 플린트는 그래도 미술 박물관 공짜인데.. 특별전은 돈을 받긴 하지만 말이다. 한번 가고 마는 곳도 아니고... 저런데는 턱없이 싸거나 공짜인 나라 좋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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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걷고 또 걷고... 얘들아 오늘의 여행,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겠지? 이렇게 많이 걸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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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었던 호텔은 꼼지가 컨퍼런스 참석 차 잡아 놓은 거다. 우리 셋은 거기에 빌붙었다. 호텔 안에서도 발가는 대로 돌아 다녔다. 구석 구석... 구경하고 앉아보고 만져보고 (?). 그 호텔 아래층에 있던 특이하면서도 단순하고, 단순하면서도 우아해보이는, 거기다 편하기까지 했던 의자(소파라고 해야할까, 미국에선 love seat 이라고 할듯). 워낙 가구들을 좋아하는 터라 공짜기만 하면 막 앉아 본다. 앉으라고 둔 것일 테니. 물론, 앉아본 사람들 중 만명 중 하나라도 사면 남는 장사다 하고 놓아 둔 것이겠지만, 난 그 만명 중에 한 사람이 될리는 결코 없을 테니 그저 신나게 앉아 보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이쪽에도 앉아 보고, 저쪽에도 앉아 보고... 개인적으로 난 실용적인 예술품이 좋다. 사람들 가까이에 있는 예술품. 돈 많은 사람들만 (게다가 평생 쓰이지도 않고) 쳐다볼 수 있는 비싼 예술품보다는 말이지.

얘들아 너희들도 앉아봐. 디게 편해...^^
아이들이 앉아 있는 이 의자 사진을 보니, 웬지 의자가 웃음을 짓고 있는 느낌이 난다.
"나도 오늘은 의자 구실 제대로 하는 군... 뿌듯한걸..."
하고 말하고 있는 듯한. 순전히 내 회개망칙한 상상이긴 하지만.

여행은 추억이 되었지만 그 느낌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런 저럭 기억을 많이 담아 온 때문이리라. 사랑이라는 봉지 안에 담아온 기억 부스러기들....
2010/12/18 13:08 2010/12/18 13:08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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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일정으로 매키너 섬에 다녀 왔다. 주말 여행 전체가 특별했지만 가는 길 오는 길 또한 너무 좋았다. 가을볕이 어찌나 따가우면서도 상큼한지 미시건에 쌀농사를 지어도 되겠다 싶었다. 미국은 경제가 망해도 저 너른 땅에 쌀농사 지어 먹고 살면 되겠다 그런 생각. 오 가는 길은 북쪽으로 거의 일직선이다. 차도 별로 없는 그 길을 규정 속도에 차를 맞추어 놓고 계속 달리는 거다. 멍하게 계속 내달려 오는 길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게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길이란게 때론 한산하나 떄론 복잡하고 사진의 매키너 가는 길처럼 쭉쭉 뻗어 있을 수도 있지만 한계령처럼 구불 구불 내달릴 수도 있다. 이번 길에선 느긋하게 가도 네시간 안에 갈 길을 안내 표지판 하나 없이 그저 차 한대로 덜렁 막아 놓은 경찰들로 인해 30분 이상 돌다 보니 예정시간을 훌쩍 넘어 도착하게 되었다. 이런 예기치 못한 detour 도 인생 같기만 하다.

매키너 섬 (Mackinac Island) 은 우리집에서 네 시간 정도 북쪽으로 가면 나온다. 미시건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섬이다. 유명해서 오히려 기대가 없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지니. 기대가 없었으니 모든 여행이 환호로 이어졌다. 너무 잘 알고 가면 오히려 마음이 다칠 수도 있다. 모르고 가면 손해를 보기도 하고 불상사를 당할지는 몰라도 그것이 여행의 또다른 기억이 될 수도 있다고 친다. 난 여행에 대한 이런 개똥철학이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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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키너는 오른손 손바닥처럼 생긴 미시건의 검지 너머쯤 있는 섬이다. 차가 다니지 않는 섬. 말과 자전거가 사람보다 더 주인 같은 섬. 큰 배를 타고 20분쯤 들어가야 하는 섬. 돈이 많으면 들어가 살고 싶은 섬. MK 는 몇년 전에 산토리니를 다녀 와서, '늙어서 정말 살고 싶은 곳이예요.' 했다. 난 매키너 섬을 돌 때, 죽어서 여기 묻히면 (또는 뿌리면... 미국에선 뼈뿌리는 게 불법이라긴 하지만... 어쨌든...)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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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도 너무 아름다울 것 같은 섬이라 겨울에도 가보면 좋겠다 했는데 호수가 얼어 겨울엔 배가 다니지 않는단다. 10월까지 배가 다니면 적어도 내년 3월까지 배가 없단다. 대신 작은 비행기가 뜨문 뜨문 다닌다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 쉽게 가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뿌듯. 좋은 사람 놀러 오면 함께 바람쐬러 가도 좋을 만한 곳이니까. 바다같은 호수 바람 맞으러 말이다.

2010/10/19 08:07 2010/10/19 08:07
Posted by 꼼미
사진을 찍다 보면 가족 사진은 잘 안찍게 된다. 쑥쑥 커가는 호빵과 번개를 생각하면 그게 꽤 아쉬울 때가 있다. 이번 뉴욕 여행에선 맘에 드는 가족 사진이 몇 개 남았다. 빨강 덕분이다. 확실하고 화끈한 그애는 우리 가족 여행에 '검인' 도장이라도 꽉꽉 찍어 주듯이 심심치 않게 "어디, 사진기 줘봐"를 외쳤다.

멀리까지 차를 타고 여행 한 건 우리 식구에게 처음 있던 일이라서 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사진을 보다 보면 호빵과 번개에도 그랬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한국에서 리오를 타고 몇일 동안 목적지도 없이 바퀴 굴러 가는 곳을 따라 가을 휴가를 떠난 일은 있지만, 하루에 12시간을 넘게 차를 타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땐 아이들이 어렸던 만큼 이번 만큼 여행이 즐거웠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가족 사진을 보니 즐겁다. 그리고 빨강에게 고맙다. 나도 다음에 안내자가 되면 가족 사진을 많이 찍어 줘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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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al Park 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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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al Park 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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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s Square


맨하튼 사람의 물결 속에 묻혀 프리즐도 사먹고 땅콩도 사먹었다. 꼼지와 아이들의 걸어 가는 뒷모습이나 순간의 표정 같은 걸 잡는 건 내 사진 취향이다. 난 사람이 없는 사진보다는 사람이 풍경처럼 담긴 사진이 더 좋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풍경으로 담긴 사진들은 더욱 특별한 여운을 남길 때가 많다. 두고 두고 볼수록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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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뉴욕 여행은 원채 우리의 여행 경향이 그렇듯이, 특별히 계획되고 준비된 게 아니었다. 여행가기 일주일 전쯤인가 식탁에서 습관처럼 내가 말을 꺼냈고, 꼼지의 "그러지 뭐..."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빨강이네 전화를 건게 다였다. 그래서 꼼지에게 고맙다. 하루 건너 밤을 새던 이번 학기 막바지에, 오고 가는 이틀을 운전으로 바쳐야 하는 여행을 그러자고 했으니 말이다. 미시건으로 이사 온 직후부터 심심찮게 '뉴욕 뉴욕' 노래를 불렀던 내 압박을 못이겨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뭐였든, 여행 내내 꼼지가 예쁘고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사십을 넘어서서 그런건가... 꼼지와 여행 동안 싸우기는 커녕 서로 '이쁘다' 하며 다녔으니 길게 살아볼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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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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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ire State Building lobby


2010/09/14 10:08 2010/09/14 10:08
Posted by 꼼미
난 대학 때 제주도로 가는 수학여행도 안갔던 사람이다. 내가 대학 때는 우리 집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맘만 먹으면 여행을 다닐 수 있었을 나이에, 난 피아노 레슨으로 용돈을 벌고 학교에서 탈 수 있는 장학금을 타려고 음대 신문 기자도 하고 학점도 열심히 따려고 했다. 음대 외에 민족음악연구회도 들락거리던 시절이었고 당시 사회상황도 대학생이라고 한가롭게 국내외 여행을 다닐 분위기가 아니기도 했다. 여행이라고는 10박 11일의 농활 (이걸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마는)을 포함에 기껏해야 지방 출신의 친구나 동아리 후배들에게 신세 지면서 그들의 고향에 따라 내려가보는 정도였다. 수학여행을 안간 건, 이런 당시 주변 여건 외에도 피아노 전공의 과친구들보다는 운좋게도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도서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있었겠다. 말 그대로 '가난'했던 꼼지 역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 형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꼼지와 나는 신혼여행으로도 남들 다 가던(아니, 그렇게 보이던) 제주도를 가는 대신 설악산을 택했다. 가난한 주제로 결혼을 한 우리들에겐 신혼여행비를 아껴서 살림에 보태 쓰는 게 더 합당해 보였다. 신혼여행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것 같던' 제주도 여행은 그후로로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다. 엄마가 아프시고 어쩌면 엄마의 생애 마지막 선물이 될꺼라며 언니가 제안하고 계획 했을 때에야 그 흔한 이름, 제주도엘 갈 수 있었다. 호빵과 번개가 다 자란 아이들이었던 그 때가 꼼지와 나에게는 생애 첫 '제주도' 여행이었던 거다. 다른 여행들도 그렇겠지만, 그 제주도 여행은 내가 죽을 때까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생의 귀한 기억이 되었다.

꼼지와 내가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한 것은 유럽 호텔팩 여행이다. 꼼지가 직장을 옮기면서 생활에 묶이지 않은 '돈과 시간'이 생겼더랬다. '이 귀한 돈과 시간을 여행에 써버려 말어....' 역시나 적지않은 번민이 따랐다. 파리와 로마에서 짧게 머무르고 돌아오는 여행이었는데, '아니 제주도도 안간 주제에 유럽을 가다니, 우리 주제에 이래도 돼는 건가?!'라며 둘이서 하루에도 몇번씩 '가, 말어'를 반복 했다. 언니와 엄마의 적극 설득과 후원이 없었으면 저지르지 못했을 일이었다. 결국은 어린 호빵과 번개를 엄마에게 떠맡기고 단둘이서 확 떠났더랬다. 이 여행으로 내가 배운 건, 시간에 쫒기고 사는 게 빠듯해도 어디든 갈 수 있으면 가는 게 좋은 거다라는 것. 여행 예찬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생겼을 땐 뒤돌아 보지 말고 어디로든 떠나라'란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덕분이다.

어느 곳인가 여행 비숫한 걸 가려고 하면 이처럼 대학 때 가지 않은 수학여행과 '제주도' 생각이 꼭 떠오른다. 여행은 꼼지와 나에게 뭔가 굉장히 '분수에 넘치는 행위'였던 것 같다. 여행 자체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 여행에 대한 관념이 그랬던 것 같다는 말이다. '뭔가 좀 더 급박하고 필요한 곳에 돈을 쓸 수 있는데, 빠듯한 시간과 생활비를 축내면서 여행을 가나?" 뭐 이런 생각 같은 거 말이다. 이런 생각은 멀지 않은 곳으로 하루나 이틀의 짧은 여행을 계획할 때도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든다. '나가면 돈인데... 난 또 나가면 더 많이 먹잖아.... 이런 거 절약하면 빚도 더 빨리 갚고, 더 안정되게 살 수 있지 않나..." 하는 잡생각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 늘 벌어도, 늘 빠듯했다. 늘 뭔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았고 새로운 비용을 더하려 하면 부담이 되었다. 결혼 하면서는 항상 빚이란 게 따라다녔다. 언제나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생활. 그 빚은 마음에 자리잡은 돌덩이와 다름 없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다.

아직도 우리 부부에겐 버는 것보다 써야 할 게 많고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나의 욕망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갚아야 하는 빚도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정도로 많다. 꼼지는 학기 막바지로 여전히 바쁘고 아이들은 다음 주면 개학이다.

....

이 와중에,

뉴욕 여행을 계획 중이다. 신세를 지기로 한 댁은 빨강이네다.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준비 할 건 아무 것도 없다. 꼼지 말대로, "돈만 있으면 돼...^^"다. 시카고를 처음 갔을 때가 떠오른다. 꼼지 컨퍼런스 덕에 큰 돈 들이지 않고 묵을 수 있었던 호텔 주변을 아이들과 함께 낮선 동네를 낮선 사람들을 쳐다보며 걸어 다녔던 그 시간들. 이번 뉴욕 여행도 시카고 여행만큼만 되어 준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이곳 저곳 발길 가는 곳으로 낮선 곳을 걸어 다닐 때마다 우리의 건조해진 심장에선 새 피와 새 기운이 일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2010/08/30 13:00 2010/08/30 13:00
Posted by 꼼미
시카고에서 다시 맞은 아침, 가공된 분말이 아닌 신선한 날재료들로 주황이 직접 만든 정말 맛난 컵케익을 아침으로 먹었다. 부엌쪽 큰 창으로 쏟아져 들어 오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뚝딱 뚝딱 부엌일을 하는 그애 뒷모습을 보니 자꾸만 현실 같지가 않았다. 중학교 시절, 공부와 웃기는 거 외에 뭘 잘할까 싶었던 그애가, 정성스레 머핀을 굽는 변호사가 되었다니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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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핀 먹다 말고 느닷없이 사진을 찍다.


지난번 방문에서 놓쳐버린 그애의 첼로 연주도 제대로 가져 왔다. 우리가 몇십년 만에 처음 만났던 작년 여름 이후, 주황이는 '악기를 시작해 보라'는 내 부추김에 그야말로 그애답게 첼로를 시작했다. 이번 만남에선 호빵과 더불어 몇곡을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그애의 놀라운 발전을 목격할 수 있었다. "50세에 첼로 리사이틀을 해 보련다~^^" 하며 연주하는 그애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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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서 '요요마마'란 호칭을 받은 주황과 잠옷 차림으로 연주에 동참한 호빵


그애 집에서 맞은 이른 아침에는 맘먹고 산책을 나섰다. 이틀간의 과음으로 늘어진 꼼지를 어르고 윽박질러 깨워 옆에 끼고서. 시카고 시내에서 4-50분 가량 떨어져 있는 주황의 집 주변은 이번에 산책할 때 보니 마치 자연 공원 속에 들어선 작은 마을 같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막 피어나는 꽃들이며 즐거이 날아 다니는 다채로운 새들이며 거위들이며.... 호수를 가로지르는 아침 바람이며.... 내가 그리워 하는 사람들을 줄줄이 달고 함께 산책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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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말할 수 없이 편안했던 2010년 봄방학의 짧은 휴가.
2010/04/06 21:58 2010/04/06 21:58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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