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 하루
2009/09/27 21:55
가장 큰 이유는 나의 바이오리듬이 하강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거다. 이것도 변명이랄 수도 있지만 그냥 이렇다고 우길테다. 분명하다. 내 몸속의 호르몬 작용 때문이다. 아주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아직 작은 것에도 가슴 속 가득 눈물과 서러움이 차오른 것을 보면 확실하다. 너그러움이나 여유로움은 언제 있었냐 싶게 흔적조차 없다.

그런데 세월은 찬바람이 불고 한국이 추석이란 소식이 들린 거다. 꽤 오랜동안 냉전없이 지냈던 꼼지와 사이에 최근들어 가장 심각한 (! -> 하긴, 이걸 심각하다고 하면 지금까지 심각했던 나날들이 죄다 들고 일어서 단체 데모를 시작하거나 가소롭다고 코웃음을 칠테지만, 어쨋든) 한랭전선이 발생했다. 둘 다 마음 속 깊숙히 감추고 있는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이 고개를 쳐들면서 결국은 꼼지는 내가 밉고, 나는 나를 미워하는 꼼지가 미웠던 거라고 추측한다. 서로에 대한 화를 저울질 해 본다면, 똑같지는 않을 테고 꼼지의 나에 대한 미움이 조금이라도 더 컸을 게다. 나의 잘못은 명백했으니.

결혼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때는 이런 때다. 내가 내가 될 수 없는 때. 정말 싫은데 해야 할 때. 정말 싫어서 안하면 가장 가까이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과 미워하게 될 때. 그래서 온갖 것들이 다 슬프게 보일 때. 그래도 아무 곳도 도망갈 데가 없을 때. 이런 마음을 털어 놓을 곳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때. 그럴 때, 나도 남편도 참 불쌍하고 처량하다. 내 잘못이 더 컸고 명백했다고 인정함에도 억울하고 분하고 남편이 미웠던 건, 그와 나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난 그저 그에게서 그런 기대를 버렸던 그런 기억이다. 포기했던 기억이다.

어쨌든, 호르몬이든 뭐든, 분명한 건, 이런 땐 난 더도 덜도 아니고 그냥 말그대로 이기적인 나쁜 여자라는 거다. 그런데 너 나쁜 건, 이런 순간 오히려 내가 가장하는 '착한 척' '좋은 척'하는 면들이 더더욱 혐오스러워지면서, 난 그냥 나쁜 부인, 나쁜 여자가 되고 싶다는 거다. 나의 청개구리적 악마근성이 전면부활하는 순간. 나에게 따뜻함과 동정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 사실은 그런 사람 아니라고 막 소리쳐 주고 싶은 순간. 난 분명 나쁜 구석이 있다. 인정한다.

그런데 또 문제는, '그래, 참, 너 나쁜년이었지' 하고 새삼 되새기며 그러면서도 나와 함께 살아 갈 남편의 속이 불쌍하고 안스럽다는 거다. 안다. 이것도 내문제라는 걸.
2009/09/27 21:55 2009/09/27 21:55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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