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살 때 무척 친했고 그 아들에게 피아노도 가르쳤던, 친구 같던 한 엄마에게 편지가 왔다. 그 중, 피아노 교육과 관련된 부분이 나에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관련 내용만 옮겨보면 이렇다.


언니!

오랫만에 불러보네요.
잘 계시죠?

......(중략)

현수 언니가 가신 이후로 울 0찬 피아노 교육이 전혀 되고 있지 않네요.

.... (중략)

무엇보다 언니가 넘 잘 가르쳐 줘서
부모로써 기대 수준이 너무 높아진 것 같아요.
도처히 다른 선생님께 맡길 수가 없다는..... 슬픈 현실이.....

@@ 엄마도 피아노교욱의 방향을 잃어버렸다고 전화왔던데....

암튼 언니의 빈자리가 큽니다.

그 곳은 벌써부터 찬기운이 느껴질 때이지요.
몇번이나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바뀐 전화번호는 찾기가 힘드네요.

울 0찬 0찬이 한번씩 하늘이 바다 형이 보고 싶다고...
놀러가자고 하네요...
올 겨울엔 하얀 눈을 많이 볼 수 있겠네요.
꼭 감기예방주사 맞으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텍사스 어스틴에서 00 드림.



편지를 받고 나에 대해 좋게 생각해 주는 점은 고맙고 고마웠지만, 편지를 다 읽은 후의 내 마음은 좀 착찹했다. 특히, 피아노 교육의 방향을 잃어 버린 것 같다는 그 말에서. 말의 꼬투리를 잡거나 말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얘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아이들의 음악교육이란 것이 나 혼자만 열심히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새삼 곱씹게 되었기 때문이다.

음악교육 공부 시절, 듀크 교수를 비롯한 모든 교수들이 수없이 강조 했던 건, '선생님을 떠난 후, 혼자서 학생들이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게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선생님과 함께 있을 동안보다는 오히려 '선생님이 없는 상황, 선생님이 떠난 상황, 더이상 배우지 않는 상황, 학교를 졸업한 상황에서 오롯이 남은 지식과 기술이야말로 진정으로 배운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바뀌더라도, 이같은 목표 (또 이 새로운 선생님을 떠난 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아래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교육을 공부하게 된 이후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는, 그 목표를 풀어지지 않도록 내 머릿속에 꽉꽉 조이고, 지식이 아닌 습관으로 그것들을 전해 주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열심히 고민한고 노력했다). 선생님 없이 집에서 이 아이가 혼자서 '제대로 연습' 해 올 수 있도록,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난 후, 혼자 남은 동안, 또는 새 선생님을 만나 새로운 것을 배우더라도, 내가 강조했던 점들을 몸 속에, 세포 속에 기억할 수 있도록. 나를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나의 마음과 실천을 변화시키셨듯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그애들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변화시키는 게 내 피아노 교육의 목표가 되었다.

이제 정말 나는 떠났고, 학생들은 혼자 남았다. 그 아이들이 나 없이 어떻게 얼만큼 피아노를 치고 있는지 늘 궁금하다. 내가 어느 정도 가르쳤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아이들 하나 하나가 나를 믿고 따르며 내가 가르치는대로 열심히 임해 주었던 그 소중한 시간 시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부모님들의 귀한 돈을 혹여 내가 하릴없이 낭비한 것은 아니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이다. 아이들이 더 이상 피아노 앞에 앉지도 않거나 혼자 즐겨 칠 수 있는 곡들을 잊어 버려서 치고 싶어도 칠 수가 없는 상태라면, 그건 내 잘 가르치치 못한 탓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다행히 나에게 배운 것은 잘 기억하고 아이가 혼자서는 잘 치고 있는데, 나와 음악교육관과 목표가 비슷한 새 선생님을 찾자니 그게 힘들어서 피아노 교육을 계속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나에게 또 다른 고민이 되었다. 교육이 연계가 되지 않으면 교육의 최대 효과를 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그래서 '좋은' 선생님이 '훌륭한' 선생님, '잘 맞는' 선생님이란 말들을 하는 것이다. 내가 '좋은' 선생님이라거나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관과 교육 목표가 맞다면, 그것을 공감하고 실천하는 선생님들이 많다면 - 비록 똑같지는 않더라도 -,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음악교육을 받게 되고, 좀 더 장기적이고 풍부하고 다양한 음악적 미래를 만들어 나가리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와 마음이 가라 앉고 생각이 많아진다. 인터넷으로 답장을 보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가운 전화가 왔다. X찬 엄마다. 텍사스 오스틴 음대에 있는 피아노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면서 들은 소식은, 다행히 X찬이가 선생님이 아직 없는 가운데 혼자 매일 매일 피아노를 쳐왔고 혼자 연주 할 수 있는 곡들도 네 다섯 곡이 된다는 얘기였다. 무엇보다 내가 떠난 후에도 피아노에서 멀어지지 않고, 혼자서도 쳐오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환호성이 다 나왔다. 이젠 선생님을 찾는 게 문제다.

나의 미천한 지식이라도 나누는 게 내가 할 일일까? 이런 질문 속에서 내 지식과 능력이 남에게 보여줄 만한게 될까하는 의심만 마음 가득이다.
2009/09/11 13:50 2009/09/11 13:50
Posted by 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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