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왜 한국음악은 평균율을 채택하지 않았을까
언니의 질문은, 서양의 평균률 음악이 마치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 같은 현재의 음악상황에 있는 우리가 학문적 호기심을 가질 때, 왜 크게 보아 서양의 음악과 동양의 음악은 다른 길을 가게 되었는가 하는게 아닐까 해. 피타고라스 음계와 삼분손익법이라는 동일한 개념에서 출발했는데도 말이야. 서양은 순정율과 평균율을 선택하면서 화성음악과 다양한 전조의 형식들을 창출했고 동양은, 또는 한국은 선적인 음악으로 미세하고 다양한 음조와 장단을 발전시키게 되었으니.
그러니까, 어제 나눈 얘기를 더듬어 정리해 보자면, 언니가 질문을 하게 된 동기는, 피타고라스 음계와 삼분손익법처럼 음계를 만들어내는 기본적 개념이 같았고, 서양의 순정율처럼 음과 음 사이의 오차들을 줄이고 '합리적'으로 음과 음 사이를 동일한 거리로 (음정) 12개든 또는 다른 다양한 갯수로든 나누어 보려고 한 시도는 서양과 동양 (율려신서 - 이건 중국문헌이었던가 아님 한국문헌이었던가, 미안 ^^ - 에서라고 했던가?) 의 문헌들에서 동시에 나타나는데도 한쪽은 결국 평균율로, 다른쪽은 평균율이 아닌 쪽으로 - 이건 분명 중국의 경우 보다는 한국의 경우가 되겠지만 - 가게 됐기 때문이잖아.
그렇게 다른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있었겠지. 그 이유와 과정을 궁금해 하는 거 (또는 밝히고 싶은 게) 아닐까 싶고. 우리가 조금 얘기하다 만 것 같기도 한데, '인간의 음악'이라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일단 기본적인 가정을 하면서 질문의 촛점을 모아보면 어떨까 해.
1. 진화의 관점으로 생각해 본다면, 약육강식 (순정율이나 평균율 음악으로 된 음악들이 채택되었는가 버려졌는가) 의 법칙이라든가,
2. 인간 역사의 법칙으로 보았을 때는, 진화의 법칙을 거부한 역사 발전 (순정율과 평균율이 도태되지 않도록 인위적으로 노력한 인간들 - 말하자면, 바흐같은) 의 논리 같은 걸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
3. 수요가 공급을 만든다는 경제학적 이론을 적용해 볼 수도 있겠지. 관계된 원전 자료들을 읽다 보니 떠오른 건데, 서양음악에서 교회 (또는 종교) 의 역할이 컸던 만큼, 공동체 안에서 대중 (또는 회중) 을 대상으로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음악 연주나 수행이 그들에게 동일한 음 (또는 공유할 수 있는 동일한 음 관념) 을 소리내야하는 요구가 그렇지 않았던 동양, 그러니까 중국이나 한국에 비해 훨씬 많지 않았을까 하는 거지. 유교나 불교에선 다수가 만들어 내는 음악적 연행보다는 개인적 소리 (개별적 다수, 다성음악과 비슷한 개념으로서) 들이 더 많았던 것 아닌가 하는 가정 말이야. 이건 순전히 나의 가정이라는 걸 부언해 둘께.
4. 물론, 음악미학의 차이도 있었겠지. 문화적 관점에서 말이야. 서양사람들이 살던 사회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동양의 나라들의 사회와 문화가 무척 달랐을테니.
언니의 질문은 음악학자로서 훌륭한 질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음악역사의 빈곳을 찾아내고, 그 빈곳을 메우는 게 음악학자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그 결과를 토대로 현재 음악계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새로운 전망까지 제시해 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 분명 연결 되어 있다고 생각해. 언니의 질문도 결국은, 서로 다른 전통음악들이 세계음악이라는 새로운 범주에 뛰어 들면서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들 중 대다수가 평균율 음악과 합쳐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하니까.
어쨌든, 언니의 질문에 자극 받아, 몇가지 자료들을 찾아 보았어.
1. 김춘미. "음악학의 시원" 음악춘추사, 1995 - '음악' 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위한 거라고 했던 언니의 말에 좀 더 힘을 싣는다면, 김춘미의 "음악학의 시원"이 도움이 될지도 몰라. 피타고라스 음계에 대해 김춘미 선생님이 그야말로 생생한 스스로의 이해와 언어로 풀어 놓았으니, 언니가 '로그 함수' 어쩌고 하는 자료를 도대체 이해 못하겠다고 했던 것을 도와줄지도 몰라. 피타고리안 콤마 (오차) 에 대해서도 물론 설명이 나와있고.
2. Don Randel. "The New HArvard Dictionary of Music" Belknap Harvard, 1986 - 순정율과 평균율로 진행하는 간단한 역사적 단계를 Don Randel. "The New HArvard Dictionary of Music" 의 Temperament 편에서 읽을 수 있었어. 자세히는 보지 않았지만, 뭔가 실마리가 되 줄 것 같기도 했으니까 참고 해 보길. 여기서 보면, 1946년 이탈리아에서 평균율의 첫 증거가 발견된다고 하는데 (실제적 증거라는 얘기지 이런 논의가 처음으로 이루어진 해라는 말은 아니야) 제대로 환영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야. 평균율이 채택되기까지는 그 이후로 바하의 시대까지 근 300년 동안 지난한 역사가 존재한다는 뜻이겠지? 그 말은, 서양에서도 평균율이 버려질 수 있는 상황이 얼마든지 있었다는 얘기가 될테고. 물론, 이 자료에서도 도대체 "왜", "어떻게" 평균율이 서양음악을 지배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똑떨어지는 답은 없어. 그저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지. 해석은 결국, 역시, 그에 대한 질문을 질기게 하는 다른 음악학자의 몫이겠지.
3. 올리버 스트렁크, 민은기 외 역, "서양음악사 원전" 서양음악연구소, 2002 - 또 하나의 자료는, 음악의 실제 논의와 생각을 옅볼 수 있는 음악가들이 남긴 저술의 원전자료들이지. 내가 공짜로 얻은, 그 훌륭한 자료(!) 올리버 스트렁크, "서양음악사 원전" 기억해? 여기서 내가 생각하기에 언니의 질문과 관련해 사회사적 도움이 될 것 같은 자료들은, 82번(아르투시, 혹은 현대 음악의 불완전함에 관하여); 84번 (우리시대의 음악에 대하여); 85번 장식적 음악에 대한 비평); 정량기보된 음악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한 음악의 여명) 같은 것들. 혹시라도 어떤 착상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 이건, 위의 2번에서 말한 그 300년의 공백에 대한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바로크 시대 초기 그러니까 1600년에서 1700년경 (참으로 광범위하지만) 의 음악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글이라는 거지.
이런 자료들을 보며 든 생각은, 언니가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한 동양 또는 한국음악의 시원과 관련된 문제를 김춘미 선생님처럼 책으로 풀어 내는 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을꺼라는 거야. 선생님을 봐. 누구나 다 피타고라스를 알고, 누구나 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얘기하는 것 같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말로, 자신이 궁금해한 촛점에 맞춰, 자신의 이해를 풀어 냈잖아. 음악학의 시원은 나도 두 번 이상은 읽은 책이고, 이렇게 늘 자료로서 보고 또 봐도 (계속 잊어버리니까 ^^) 또 보게 되는 책이 됐잖아. 난 이책의 가치를 높게 생각해.
논문이든, 책이든, 언니의 고민이 어떤 소중한 열매로 꽃피기를 바라면서, 언니와 정말 오랜만에 나눈 음악 얘기에 대한 보답으로 내 생각을 정리해 봤어. 혹시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고, 사실은, 나 자신에게도 공부할 거리를 남겨 주자는 의미에서 번역시간을 쪼개 이 글을 써.
그럼, 다음 모임에서 또 '통'해 보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