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주부 일

 | 하루
2010/09/09 10:03
아이들이 새학기 맞아 학교 간지 삼일 째다. 개학 첫 날이자 뉴욕 다녀 온 바로 다음날이었던 화요일 아침에는 아이들이 얼떨결에 정신없이 학교를 갔다. 어제는 아침부터 헬렐레 하더니 학교 다녀 와서도 헬렐레 하다가 일찍들 잤다. 삼일 째인 오늘에서야 아이들은 제정신을 차린듯 하다. 차려준 밥도 뚝딱 다 먹고 아침 식탁에서 웃으며 얘기하다 조금은 느긋한 걸음으로 학교 버스를 타러 나갔다.

전업 주부인 나는, 아이들이 학교간 첫날, 바구니를 넘쳐 흐르는 빨래를 했다. 세탁기를 한번에 세번이나 돌리고 평소에는 잘 이용하지 않는 건조기도 썼다. 빨래가 너무 많아 한꺼번에 널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전 내내 빨래를 하고 여행에서 쓴 물건들을 정리하고 이번주에 먹을 음식들을 좀 챙기고 나니 시간이 다 갔다.

어제는 청소의 날. 이젠 '자기 방은 자기가 치우자'를 늘 강조해온 그동안의 방식을 접고 아이들 방도 힘이 되는 한 대충이나마 정리와 청소를 해주기로 했다. 중학생이 된 두 아이들이 느긋했던 방학에 비하면 조금은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될테고,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단 걸 아이들에게 일깨우는 건 십년이 넘은 그동안의 잔소리로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 방을 청소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모든 걸 다 기억할 아이들에게 좀 더 '다양한' 기억을 남겨 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름에 읽었던 김선주의 <이별에도 예의가 있다>의 영향이기도 하다. 그 책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방의 담뱃재를 치워 주셨다고 했다. 그 시절에 담배를 피는 딸년을 '죽일년 살릴년' 하는 대신 평생 담배라곤 손에 잡지도 않았던 그 손으로 딸아이의 담배연기로 찌든 방안의 창문을 열고 재떨이를 깨끗이 닦아 놓았다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 옷장을 정리하고 책상의 먼지를 닦았다. 널부러진 이부자리를 예쁘게 펴놓고 쓰러져 있는 머리맡 인형들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기분 좋게 반기도록 바로 앉혀 놓았다. 우리방 욕실을 비롯해 미시건으로 이사와서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아이들 욕실까지 청소를 하고는, 꼼지 바지의 떨어진 단추도 제대로 달아 놓고, 마루의 깔개에 떨어진 단추들도 손보았다.

꼼지는 내가 전형적인 전업 주부의 일을 기특하게(?) 잘 해내고 있다며 전화 너머에서 끼끽 거렸다. 좋아 죽는 눈치다. 부인이 집에서 음식하고 빨래하고 청소 잘 하고 있다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꿈속의 일인양 좋은가 보다. 나 역시 왠일로 지금의 이 생활이 싫지가 않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어선가. 좋으면 하면 되고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 멋대로식 마음가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리책도 힐끔 거리고 바느질 책도 힐끔 거리면서 전업 주부의 다양한 영역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뭘 제대로 할꺼라고는 절대 생각지 않지만서도).

오늘 아침엔 아이들 밥을 차려 주며 다시 좀 자야겠단 생각이 굴뚝 같았다. 뉴욕에 다녀온 사진들을 컴퓨터에 옮겨 놓으면서 지나간 여름과 즐거웠던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어영 부영 잠이 달아 났다.

찬바람이 서늘한 아침 시간에 잠시 걷고 올 생각이다. 힘내고 잘 살고, 실컷 책보고, 실컷 영화보고, 그리고 실컷 음악하기.
 
2010/09/09 10:03 2010/09/09 10:03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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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range
    2010/09/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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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t do too much work. You need to take a vacation after vacation. I spoke to Red. She gave me good advice about my back spasm. You have to take care of yourself. Cleaning can wait. Take it easy.
    My kids are begging me to go to Michigan. Told them to practice their music. HaHa!
    Chilly wind is blowing. Time to take out jackets for the family.
    • commi
      2010/09/10 16:25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렇잖아도 찬바람 부니 네가 보고파서 전화라도 할까하다 말았다. 봐야지 , 전화로는 성에 차지도 않을테니... 허리관리 잘하고. 왠만하면 Facebook을 좀 허시지. 아이폰에선 무지 편한데. 일없어도 조만간 와라. 올때 고구마 좀 사와. 고구마 구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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