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우습다
최승자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늘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투병 중인 최승자의 신작인 이 시의 나이에 대한 생각이 기가 막혔다. 어찌나 이렇게 일반성과 전형성의 합치를 잘 이루어 내고 있는지. 난 내가 아직도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한다고 생각해 왔다. 나이 사십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나이는 이십이거나 많아야 삼십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으로 마음의 나이를 인정하는 건 죄악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난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치졸한 사춘기적 감정을 잔뜩 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런 감정조차 말끔히 정리하지 못한 내가 어찌 우아한 사십일 수 있어, 또는 오십다운 오십이 육심다운 육십이 될 수 있겠어'라는 마음인거다.
최승자 시인도 그랬을까. 나처럼 구차한 삶의 찌꺼기, 감정의 잔여물이 너무 많아서 그냥 철없는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살고 싶은 걸까. 알 수 없다. 그저 그녀가 무작정 젊음을 욕망하는 마음에서 이런 시를 토해 놓았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어찌 했거나, 나처럼 사십 먹은 그 누구 중에도 자기가 먹은 나이만큼 삶이 만만하고 확신뿐인 사람은 없지 않을까. 사십의 생도 철없고 오십의 생도, 또 육십의, 칠십의 생도 우린 늘 불안하고 불확실하니까. 사람이니까 말이다.
먼길 가야 할 사람이 있다면, 딛어야 할 그 걸음 걸음을 그냥 사랑해 주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 걸음이 없이는 사는 것이 아닐테니까.
덧글: 최승자와 나의 나이에 관한 이런 생각은 이창래의 <Aloft> 에서도 합쳐져서 관련글을 꼼미의 서재에 따로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