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팝

 | 음악
2009/01/0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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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0년대 캄보디아에서 유행했던 미국팝송에 영향받은 대중가요들이 있다고 한다. 동시대 미국 록을 흉내 내었던 캄보디아 록음악이다. '킬링필드'의 역사 속에서 당시 이런 류의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 거의 죽고 당시의 음반들만 존재 해 왔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캄보디아에 놀러갔던 두 미국인, 잭과 이든 형제 (Zac and Ethan Holzman) 가 우연히 그 음원 테잎들을 사서 듣고는 '뻑' 가서 미국으로 돌아와 그 음악을 모방하여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캄보디아 여가수를 구해 함께 연주하며 '캄보디아 팝송'을 재현해 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음악문화의 충돌과 순환이란 주제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시각과 현상을 보여준다.

첫번째는, 20세기까지 음악문화는 주로 힘의 논리를 따라 이동해 왔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유럽 고전 음악의 힘에 오랫동안 눌려 왔듯이, 1900년대 후반 미국 대중음악은 미국이 가졌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과 한치도 다름 없이 세계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이나 캄보디아나 그 영향권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 쉽게 수긍이 가는 건 그 때문이다. 힘의 문화는 힘없는 자들에게 무의식적 경도 대상이 된다. 문화적 약자들은 가열찬 모방을 통해 힘의 문화에 한발짝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어하며, 역설적이게도 힘의 문화는 그러한 약자들의 노력(?)을 통해 그 힘을 더욱 키워 나간다. 한편, 모방의 결과는 그 원류와 대단히 유사하며 모방의 층위는 언듯 보아 창조의 싹이 자라날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만큼 얄팍해 보인다. 즉, 21세기를 살고 있는 두 미국 형제가 들었던 캄보디아 팝은, 마치 비틀즈의 진한 향기 담은 듯이,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1900년대 후반의 미국 록이다. 동시에 한국 록과도 대단히 유사하다. 꼭 한국 록음악 - 이를테면 산울림, 또는 다양한 펑크 록들 - 이나 뽕짝 같기도 하고 중국 노래 같기도 하다는 거다. 동시대 미국 록, 캄보디아 록, 그리고 한국 록음악들은 이렇듯 연관되어 있고 서로 소통하는 같은 유형의 음악이다. 새로운 가사, 새로운 선율을 담았다고 하더라도 조성적 취향, 화음이 연결되는 논리와 구조, 반복되는 리듬의 형태, 그리고 악기의 결합과 그 연주방식을 공통 분모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한눈에 봐도 6-70년대 미국 록의 피를 받은 게 분명한 이 캄보디아 팝이 21세기 두 미국 형제들을 사로잡아 이들로 하여금 다시 그 음악을 모방, 재현하여 자기들의 음악을 만들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재탄생토록 했다는 사실이다. 포스트 모던의 사고의 청각적 재현이라는 생각이 절실히 드는 순간이다. 무엇이든 해체하고 다시 결합하며 미립자적 새로운 것에도 열광하고 촉수를 곤두세우는 밀레니엄 세기의 경향 말이다. 이것이 두번째 흥미로운 점이다. 이제 문화는 힘의 논리만을 따라 이동하진 않는다. 문화제국자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 소수자의 문화든, 약자의 문화든, 미개자의 문화든, 미문명지의 문화든, 그 어떠한 문화라도 힘의 논리에 앞서 낯섬과 차이의 신선함과 명백함에 따라 서로에게 발견되고 채택될 수 있다. 어디로? 문화의 시장으로 말이다. 힘의 논리에서 돈의 논리로, 제국의 논리에서 자본의 논리로, 문화의 이동 경로는 달라졌다. 이건 마치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운명에서 벗어나, 이젠 기회만 잡으면, 그러니까 좀 한 번 튀었다 하면, 유명인사에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과 마찬가지 얘기다. 대체로 힘과 돈은 같은 사람 또는 같은 집단에게 함께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잘 생각해보아야 할 또 한가지. 21세기 미국 팝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 두 미국 형제가 만든 노래들은 과연 미국 팝일까, 캄보디아 팝일까? 여기서 세 번째 흥미로운 점. 문화는 원초적 다름을 시작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지만 그 다름이 계속 똑같이 보존되거나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관심의 시작 지점이었던 캄보디아 팝의 '다른 느낌'이 이동 과정을 통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그 전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탈바꿈 한다는 사실이다. 캄보디아 팝이 재현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이 두 형제가 반했던 원초적 '캄보디아 팝'이 될 수 없다. 물론, 본래의 '캄보디아 팝'이 되야할 필요도 이유도 없겠지만, 그들의 음악은 그저 그냥 새로운 21세기의 미국에서 생겨난 캄보디아 팝이란 이름의 음악일 뿐이다. 이것은 문화가 힘의 논리를 따라 이동했을 때나 자본의 논리를 통해 이동하는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앞에서 같은 유형의 음악으로 말했던 힘의 논리로 전개되었던 시기의 미국 록과 캄보디아 록과 한국 록도 각각 특수성을 가지고 다르게 분류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다. 즉,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미국 록과 캄보디아 록과 한국 록은 같은 음악들이자 다른 음악들이다.

어떤 관점에서, 어떤 측면에서, 이떤 유형으로, 음악을 보고 분류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음악들이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미국 록과 캄보디아 록과 한국 록이 같은 음악이냐 다른 음악이냐, 또는 무엇이 진짜고 가짜이냐 논쟁하는 것은 위와 같은 논리로 볼 때, 바보같은 짓, 의미 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인류학적 음악학에서 '진짜'와 '가짜'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논의가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중요하게 따지고 밝혀야 할 것은 '진짜'와 '가짜'를 논의 하려는 또는 논의 하는 그 <역사> 와 <배경> 과 <의도> 와 <편견> 들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머물러 있지 않듯이, 음악은 어떤 한 시간이나 장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물처럼 음악은 끊임없이 흐른다. 끊임없이 흐르는 음악의 강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것은 그것의 주체자인 사람의 역사와 편견이다.


인터뷰 원문 소개: 좀 길긴 하지만, NPR music 이 나눈 이 인터뷰는 좋은 음악인류학적 소재다.

Inspired by Sinn Sisamouth and other Cambodian stars of the '60s and '70s, brothers Zac and Ethan Holzman created a fusion cover band ― complete with a former Cambodian pop star who had recently moved to Los Angeles.

http://www.npr.org/templates/story/story.php?storyId=19339460
2009/01/03 15:39 2009/01/03 15:39
Posted by 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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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dsunok
    2010/03/18 15: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캄보디아 가라오케(노래방)기기 있습니다.
    약 8,000여곡이며 모두 원곡입니다.
    midsun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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