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더 퓨처 (Back to the Future): 케이티 턴스털, 좀 더 영민하게 1997년의 사운드를 찾아가다
롭 쉬필드 (By Rob Sheffield)


그러니 자 이제, 릴리스(Lilith: 황야에 살면서 어린이를 덮치는 여성인 밤의 귀신, 또는 아담의 이브 전에 만났던 이른바 아담의 전부인) 페어 주차장(Lilith Fair parking lot)을 지나,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자. 누가 2007년에도 여전히 유명할까, 앨래니스(Alanis Nadine Morissette: 캐네디언 어메리칸 자작곡 가수)? 아님, 그웬(Gwen Renee Stefani: 어메리칸 자작곡 가수, 패션 디자이너, 배우)? 믿어 보시라. 모든 사람이 같은 대답을 할꺼다. 앨래니스와 그웬이 99대 1정도일 것이라고. 모든 사람이 이렇게 알고 있다. 앨래니스는 패출리(동인도산 차조깃과의 식물) 향을 뿜으며 릴리스에게 후원 받는 미래의 여자 포크 록커들의 대빵이라고 말이다. 그웬을 추종하는 소녀, 아마 그런 소녀는 단지 팝 팬들 속의 빛 한줄기 정도나 있을까. 과연 앨래니스는 장수할까? 이건 마치 그린 데이(Green Day: 어메리칸 록 밴드, 1988 데뷰)가 펄잼(Pearl Jam: 어메리칸 록 밴드, 1990 시애틀 결성)보다 훨 오래 유명세를 누릴꺼라고 예견하는 것과 같다. 차라리 벽에 대고 얘길 하지!
이제 그들로부터 10년 후, 케이티 턴스탈은 어떤 면에선 그런 대접을 받아 온 앨래니스이자 또 상당한 팝적 교활함을 빌어 왔다는 점에서 한편으론 그웬이다. 그의 두번째 음반, <드래스틱, 판타스틱>은 봉합점조차 없을만큼 꼭 그렇게 1997년적이어서, 너무나 쉽게, 릴리스 시대의 라디오에서 늘상 울려 퍼지던 파올라 콜(Paula Cole: 어메리칸 자작곡 가수, 1997년 빌보드 차드 10위 안에 “Where Have All the Cowboys Gone”을 올림), 피오나 애플(Fiona Apple), 메레디스 브룩스(Meredith Brooks) 히트곡들 사이의 “Hopeless”나 “Saving My Face” 떠오르게 한다. 이건 마치 한 때 수많은 턴스탈들이 바로 거기 있었던 것만 같다. 하지만 턴스탈은 영특한 팝 전문가들과 함께 그녀의 포크적 양식을 특질화하면서 이미 모든 것을 다 한꺼번에 해내고 있다(she's the one who's getting it done).
이 서른 두 살의 스코틀랜드 출신의 자작곡 가수는 디도(Dido Armstrong: 영국 자작곡 가수, 1971년생)와 비견되는 것에 신경을 곤두 세운다. 하지만 이 둘의 사운드는 정말로 유사하다. 이건 이 둘이 모두 상당히 새라 맥래클랜(Sarah McLachlan) 같은 사운들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특징적인 보컬, 즉, 감성적인 도약을 상징화 하기 위해 중간 모음의 가성 사이를 오르내리는, 그리고 이것들을 온전히 내뱉기도 전에 느끼게 하는 그 점에서 말이다. 만일 턴스털이 디도와 비교되는 것을 싫어 한다면, 그건 아마도 음향적인 측면과는 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디도가 과거형이나 턴스털은 현재형이라는 데 비한다면. 이건 어떤 음악을 전시할 장식벽에 관한 이야기이자, 턴스털은 영민하게 멋진 전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놀라운 히트 데뷰, 즉, 매끈하게 광을 낸, 내용면에서 그렇지 않다면 양식 면에서 자기 고백적인 포크 팝이자, 세심하고도 지성적으로 빚어진, "Eye of the Telescope"처럼 말이다.
"Eye of the Telescope"는 어떤 점에서 서서히 타오른 히트곡이다. 이건 더이상 특별한 인기 같은 건 얻지 못할 것 같았다. 그저 발매와 함께 무시되는 것 같더니, 팬들에 의해 천천히 들어 올려지면서 그 지점, 보통 화끈한 인기를 누리는 팝 모델이 이제 그만 무대에서 내려 오라고 요청 받는, 그리로 내달음 쳤다. 어떤 팬들은 그 앨범이 너무 과잉 생산됐다고, 턴스털이 콘서트에서 보여주는 그 거친 경계 위에 덧칠이 번들번들 되어 있다고 불평했다. 여전히 ‘텔레스코프’의 야시꾸리한 사운드는 왜 그 노래가 하루 종일 우리 머리속에 맴도는가와 대단히 관계가 있으며, <드래스틱 판타스틱> 역시 동일한 원칙들로 만들어 졌다. 이 두 음반은 흥미를 자극하고 그저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없는 곡들을 앞에 두었다. 하지만 그 노래들은 음반의 반쯤 지나가면서 편안해지고 즐길만해지게 된다. “Hopeless”, “Someday Soon”, “I Don’t Want You Now”는, 콜드플래이(Coldplay: 영국 록 밴드, 1996년 런던 결성)나 코르스(The Corrs: 아일랜드 계 록 밴드, 1990년대 후반 알려짐)의 어법처럼, 등장해서 몰아치는 유로 팝 발라드로 확장해 간다.
턴스털의 프로듀서가 하피 먼데이스(Hapy Mondays)와 뉴 오더(New Order)와 함께 성장하며 디스코를 통과해 온 스티브 오스본(Steve Osborne)이라는 건 누구에게도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 훌륭한 댄스 트랙에서 보듯이, 이들의 음조는 페이스와 스케일 감각으로 구축되 있다. 이 모든 노래들은 날렵한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결코 길게 질질 늘이거나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는 법이 없다.이들은 모두 뚜렷하고도 매혹적인 음악적 고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Hold on”의 손뼉 장단이나 “Paper Aeroplane”의 건반의 플룻적 장식음 같은 것들이 그렇다는 거다. 모든 사운드는 다 ‘크다. 그러면서도 모든 트랙은 각기 특정한 감정을 품고 있다. 심지어 “Beauty of Uncertainty”(불확실성의 미학)이라고 이름지은 것조차 어렴풋 하지 않다.
턴스털은 현명하게도 “Black Horse and the Cherry Tree”(1집의 인기곡)와 같은 또다른 그녀의 히트를 겨냥한 뻔뻔스러운 속편을 만들어 내는 것을 피해갔다. 첫번 째 싱글 “Hold On”은 라틴풍의 소곡으로 확실하게 뭔가 보여주진 않으나, “I Don’t Want You Now”는 그녀가 지금껏 써온 곡 중에서 가장 사로잡힐 만한다. 다중 녹음으로 어우러진 울림 속에서 어쿠스틱 기타가 상쾌하고 가볍게 튕겨진다. 이건 마치 턴스탈이 그녀를 묶어 두고 꼼짝 못하게 하려는 남자 친구에게 독을 묻힌 키스를 보내는 것처럼 들린다. 보통의 릴리스 시대 자작곡 가수들과는 다르게, 턴스탈은 결코 저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체 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의 매력 중 하나다.
턴스털의 사운드는 분명히 1997년의 그것을 비춘다. 대량의 어쿠스틱 기타, 감정을 넣어 주의깊게 통제되는 발성, 부드럽게 넘어가는 비트. 그러나 그녀가 노래를 내어 놓는 방식은 그가 닳아 있는 다른 이들의 것과 현저히 다르다. 사실, 다음과 같은 새라 맥래클랜이나 주얼(Jewel Kilcher: 자작곡 가수, 시인, 배우, 화가…)을 상상하는 건 힘들다. 즉, 3분 안에 “Hopeless”(희망없음)를 불러 재끼고, 아주 아주 작은 마을의 권태감, - “나는 어느 것에도 희망없는 일개 졸개일 뿐이야 / 땅속 이 구멍에서 어디로든 나를 데려가줘” – 그것도 간단/명료/주도적인 코드들로 버무려진, 그 침체감을 가로질러 상쾌함에 이르는 그런 것 말이다. 턴스탈은 지금이 1997년이 아니라 2007년이란 것을 안다. 또한 그녀는 지금 당장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듯이 노래한다.
Rolling Stone, September 20, 2007
원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http://www.rollingstone.com/reviews/album/16272301/review/16293623/drastic_fantasti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