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주황이네 가면 그애집 화장실에서 보통 두툼한 한국 여성잡지를 읽는다. 여성잡지에 대한 기억은 늘 미용실과 연관되는데, 그건 평소에 보지 않는 여성잡지를 미용실에서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주로 뒤편의 글로 꽉꽉찬 사람들 이야기를 꼼꼼히 읽었다. 때로는 연예인에 대한, 때로는 우여곡절 인생살이를 했다는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들. 사실인지 거짓인지 절대 확인할 수 없지만 사람살이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미용실에서 그 지루한 두 세시간 동안, 그러니까 두꺼운 여성잡지의 가장 지겨워 보이는 기사들을 독파했던 셈이다. 미용실에 갈때마다 시간, 돈, 그리고 헤어 디자이너란 이름의 분들에게 당하는 수모와 구박(?)이 지긋 지긋해 이나이가 되도록 퍼머를 하러 미용실에 간 일은 넉넉 잡아도 스무번이 못될꺼다. 그 정도라도 갔던 건, 어쩌면 여성 잡지를 퍼질러지게 볼 수 있는 기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 시카고에서 집으로 돌아 오면서 그 여성잡지 하나를 들고 왔다. 거기엔 왠 알아야 할 상식들과 나는 범접도 못할 대단한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여전히 입을 헤 벌리고, 난 절대 기억 못할, 화학세제없이 '집안 구석 구석 청소하는 법'에서부터 '상 잘 차리는 법,' '맛나고도 멋나는 요리,' '가볼만한 여행지와 안보면 안될 것 같은 풍경들', '독서광에 수재 자식 키우는 엄마들'과 '77세에 세번 이상의 엄청 다른 삶을 성공적으로 살았다는 여성'의 이야기를, 심지어는 미술전공 유학파에 요리와 상차림을 수준급으로 해서 (5개국 이상의 요리를 한다는데...) 연애인 남편이 식사 후 부인에게 팁주며 엉덩이를 두드려 준다는 얘기까지 읽어 대며 혀를 내둘렀다.

역시 여기서도 주인공 그레이는 비극의 히로인이다. 그 어떤 비극도 이 여자를 비껴나가진 않아서, 오히려 이 여자가 행복한 장면이 나오면 이상하다. 그레이의 삶은 결코 비극적이지 않은 겉모양과는 딴판으로 (전설적인 의사 엄마를 두었고, 본인이 의사이며, 잘나가는 그것도 엄청 잘생긴데다가 잘나가기까지 하는'뇌암제거 전문' 의사를 남편으로 두지 않았나. 게다가 언제 어디서라도 자기 편이 되어주는 똑똑한 의사 친구까지 늘 곁에 끼고 살잖아...) 노상 최악의 상황들로 가득 차 있다. 끼리 끼리 모인다고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그레이의 남편이 'sister'라고 표현하는 정도) 크리스티나의 일상도 만만친 않다.
매사 모든 것에 불만이고 기막혀 하며 비관적인 두 사람에게 병원 안 총질 사건이 터졌으니 이걸 극복하기 쉬울리가 없다. 총질 사건 후, 병원안 모든 의사들이 특별히 배정된 정신과 의사에게 검진을 받는 상황에서 그레이는 지독하게 'Everything is fine, great!'을 반복하고 크리스티나는 결혼 관련 잡지를 들추면서 검진 시간을 보내는 거다. 도대체 잡지에 나온 모든 여자들은 왜이렇게 행복하고 완벽해 보이는 거야. 학교 때 이런 여자애들 많이 봤지. 출중한 남자를 만나는 게 인생의 전부였던 애들. 그애들을 경멸했는데 말야... 정말 얘네들, 부러울만큼 행복하고 완벽해 보이네.... 세상엔 얘네처럼 이렇게 단순하고도 행복하도록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야. 근데 나는...... 그냥.. '나'로 태어 났나봐...
그냥 '나'로 태어 났나봐라는 크리스틴의 말이, 내겐 '우울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란 말로 들렸다. 그러니까 내게 그레이나 크리스틴은 '우울한 영혼으로 태어난 부류'의 사람들도 느껴진다는 말이다. 사실 Grey's Anatomy를 보면 배우와 드라마가 보이는 게 아니라, 그걸 쓴 작가들이 궁금해진다. '저 작가들도..... 그냥 '나'로 태어난 사람들일게 분명해...(영혼이 무지 우울한 사람들일꺼야)'라는 믿음을 굳건히 하면서 말이다.
시카고 여성잡지 이야기와 미용실 이야기를 거쳐 미국 드라마 이야기까지. 분명 내 머릿속은 '나만의 것'인 것만은 분명한 듯. 그러니까 크리스틴을 보면서 잡지를 보고, 잡지를 보면서 여성잡지를 생각하고 잡지를 보다 보니 미용실이 생각나고, 늘 똑같은 미용실 원장이라는 사람들의 잔소리가 귀에 쟁쟁해 오고, 대학 입학과 더불어 귀뚫어 준다고 날 처음 미용실로 이끌었던 그날부터 살아계신 내내 미용실에 함께 다녔던 엄마가 떠오르고, 그리고 다시 크리스틴이 하는 대사가 우리 인생에서 뭘 의미하는지를 공감하고, 그레이가 왜 자신의 비극을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 놓지 못하는 가를 충분히 이해 하는 거다 (비록, '저런 저 답답한 X 같으니라고...' 할머니처럼 중얼거리면서도 말이다).

Grey's Anatomy 이번 시작과 더불어서 여지없이 울었는데, 그 장면은, 살아 남기 위해 자신이 외과의사가 아니라 간호사일 뿐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죽어가는 동료를 살리지 못한 채 그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나치 의사 때문이었다. '나치'라고 불리는 베일리는 절대 '우울한 영혼' 부류가 아니다. 그녀는 영혼의 또다른 구분, 말하자면 '씩씩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나의 무조건적이고 개인적인 판단이다). 이 '씩씩'한 여자가 그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했던 (골프치고 있었기 때문이지...) 남편에게 '당신 멋지고 잘생기고 훌륭하고 완벽한 남자야.... 근데, 난 지금 내 상처에 풀 붙이고 더덕 더덕 기우느라 바빠. 내 상처에 풀 칠해서 그거 붙여대기에도 벅차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레이와 크리스틴과는 완전히 다르게 씩씩한, 나치의사 (베일리). 그 여자의 고통이 내가 경험했던 어떤 기억을 떠올려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와 함께 엄마 장례를 지키지 못했던 남편에 대해 가졌던 원망스러운 마음이 베일리 만큼이었던가.... 그 원망을 극복하느라 나는 장장 얼마가 걸렸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