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꼼지

 | 하루
2011/01/12 22:43
2010년 연말에 한 달이 넘는 여행에서 돌아온 꼼지는 무척 피곤해 했다. 시차에 적응하느라 낮 밤으로 자면서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 듯 했는데, 그 이유로는, 돌아오자마자 한국 방송 (MBC)을 신청해서 틀어 놓고는 돌아 온 날부터 (현재까지) 내내, 죽, 멍한 눈으로 텔레비전 앞에 매달려 있었던 탓도 있다. 눈에서는 촛점이 사라지고, 말을 걸어도 별 대답도 없고, 아무래도 한국병이 심히 들어 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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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아이들이 개학하고 자신도 새학기 준비로 학교에 출근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겨우 정신을 차린 듯하다. 먹고 살려니 할 수 없었겠지. 한국에 있는 동안 만난 사람들도 많고 들린 곳도 많았던 만큼 들려 줄 이야기가 많을 법 한데, 어땠냐고 물어 봐도 신통하게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 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말이 아니어도, 한국에서 보낸 한달이 미국에서 지난 칠년 가까운 세월 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익숙했으리라는 걸 짐작 할 수 있다.

한국병이 깊이 든 꼼지를 옆에 두고 나또한 병이 도질 것만 같았다. 더불어 한국방송을 몇일 보다보니 미국방송은 쳐다보기도 싫어지고 이게 정말 미국에 살고 있는 건지, 한국에 살고 있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죽도 밥도 안되지 싶어, 도망 다니듯, 한국방송에서 멀어지려 한다.

남의 나라에서 한국사람 모임에 끼지 않고 내식대로 살아 가기가 쉽지는 않다.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고 사는 삶, 그 가운데서 흔들리고 쓰러지지 않으려면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살아남으려니 할 수 없다. 그리움도 외로움도 밑천삼아 하루 하루 몸을 일으켜 사는 수밖에.
2011/01/12 22:43 2011/01/12 22:43
Posted by 꼼미
12월 보다 더 가슴 시린 11월이다. 세월이 이렇게 가나 하는 아쉬움 뿐이다.

엄마 6주기 기일에 오랫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독일 베를린에서 날아 오신 막내 고모, 나와는 13살 차이. 울 엄마가 시집 왔을 때 (고모는) 초등학생이었고, 나의 초등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내 아버지가 나의 초등학교 선배이신 것처럼. 울 엄마는 종갓집 맏며느리 되어 시동생, 시누이 다섯을 키우다시피 했다. 그도 적을새라 사촌 고모, 먼 친척까지 종로3가 기와집은 지방에서 온 친척들과 서울로 유학 온 학생들로 정류장 구실을 하고, 연일 식구가 두 자릿 수 였으니, 가마솥 걸어 놓은 어두운 부엌은 하루 종일 밥상 차리고 또 차리고 상 들고 높은 턱 넘어 방으로 방으로 옮기고... 방이 열 한 개가 넘게 많았다. 부엌 쪽 틈새로 동굴 같은 곳으로 쭉 들어가면 그야 말로 골방 같은 곳도 있었다. 이제 환갑이 가까워진 막내 고모는 눈시울을 붉혔다. 울 엄마는 여기 없으니...

엄마는 오빠가 둘이고 막내였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께서 키워주셨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의 사촌이 있다. 형제인데, 석우삼촌과 시우삼촌. 서울에 올라와서 엄마가 많이 도와 줬고 우리 가까이 기대 살았다. 아버지가 취직도 시켜 주었고. 그 석우 삼촌이 사정이 생겨 거의 10년 넘게 연락이 끊겼는데, 최근에 연락이 닿아 전남여수에서 새벽 한시에 출발 하시어 손자와 부인과 함께 오셨다. 엄마 돌아 가셨을 때도 연락 안되어 모르고 계셨더랬다. 옛일이 엊그제 일인 듯 떠오른다.

나의 동생인 한진이도 같이 오고, 정숙고모도 오셨다. 우리 애들도 수능일이라 휴업일이어서 함께 올 수 있었다. 엄마가 좋아라 했겠지. 솜씨 좋고 현명한 울 엄마는 내가 차린 제삿상이 맘에 들었을까? 지금도 엄마 목소리 들리는 듯하다.

"이 나물은 이 그릇에 딱 적당히 예쁘게 담아 놓아야 해."

한가지도 소홀하지 않고, 늘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엄마.
꽃꽃이, 뜨게질, 바느질, 인테리어, 옷맵시, 음식 솜씨 모두 뛰어나서 뭐하나 못하는 일이 없던 엄마.
지금 같은 세상이면 의상디자이너 하고도 남았을 그 실력과 꿈을 펼치지 못하고 우리에게 모든 걸 주었던 엄마.

그리워요.

2010년 11월 23일 목요일 (음력 10월 13일)

진이 씀


어제는 이유 없이 기력이 떨어져 번개랑 드라마 <궁> 하나 보고 11시도 안되 잠을 잤다. 낮에도 좀 누웠던터라 책이라도 좀 읽다 잘꺼나 했는데 누워 책을 들 기력도 없었다. 그냥 의욕도 기력도 나질 않았다. 아침에 일어 나니 편지함에 편지가 가득이다. 언니 편지를 포함해서. 내게가 아닌 엄마에게 보낸 편지. 엄마에게 보낸 언니 편지를 읽자마자 결국은 아침부터 눈물바람 콧물바람..... 육년이란 세월이 지났어도 이렇게 새롭게 새롭게 통곡하고 싶을만큼 슬프다니..... 새롭게 살아가는 만큼 슬픔도 새록 새록 더해지는 법인가. 엄마에 대한 못다한 얘기가 너무 많아서, 내가 기억해 주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죄스럽고 미안하다. 이러고도 엄마를, 누군가를, 사랑 했다고 사랑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10/11/18 09:54 2010/11/18 09:54
Posted by 꼼미

 | 하루
2009/01/15 09:13
이럴 때가 있다. 마음이 산만하고 그리움이 많아지면 이런 종류의 꿈을 꾸는 것 같다.
누굴 막 찾아다니는 꿈.
기억이 나는 부분은 누굴 찾아 어떤 집이라고 갔는데 그 집에 까만 호루겔 (옛날 영창 피아노) 피아노가 있었다. 뚜껑부분이 무척 넓고 평평한데 여는 부분이 몇 겹으로 되어 있어서 그걸 여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집 아이가 피아노를 친다더니 이 피아노가 있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까만 피아노를 보고 아무도 없을 때 빨리 나와야 겠다고 나와 현관에서 신고 간 하얀 신발을 찾아야지 생각했는데 현관 가득 다양한 종류의 하얀 여자 신발들이 있는거다. 슬리퍼부터 구두까지. 정말 흰 신발들을 좋아하나보다 하면서 내 신발을 찾는데 찾을 수가 없다. 마음은 빨리 그 집을 떠나야겠는데 내 신발을 찾을 수가 없는 거다.

까만 피아노와 하얀 신발들. 왜 그 물체들과 선명했던 색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깨어난 후 마음이 슬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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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본 피아노는 이만큼 낡은 피아노는 아니었다. 그저 중고 피아노지만 건반은 눈에 띄는 곳 없이 평범하게 관리된 그런 피아노. 그런데, 꿈에서 본 것을 현실에서 찾아 비교하는 게 얼마나 덧없는 일인가. 이짓을 왜 했지.....


2009/01/15 09:13 2009/01/15 09:13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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