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7/27 김명인 - 바다 및 일기

김명인 - 바다 및 일기

 |
2009/07/27 13:56
인터넷이 끊어지기 전에 시 한편.

미시건으로 이사 오면서 박스에 넣어 두었던 시집들을 다시 꺼내 놓았다.
화초와 더불어 친구같은 시집들. 그것들을 풀어 놓는 순간부터 집어 들고, 한 편 올려 놓자 싶었다.




바다 및 일기

김명인


시시각각 달라지는 속의 바다를 다스리며
아저씨는
풍풍 뚫어진 그물을 깁고 계셨다.
그의 꿈속의 삶이 허물어지고 바라보는
바다가 하늘을 밀어
한 차례씩 덧문들이 울고 물결들이
은빛 비늘을 갈기며 쏜살같이
먼 수평의 발치로 가라앉을 때에도

작은 어군들은 흘러 보내면서 기다림도 없이
바람 부는 날 양지에 앉아
손바닥의 구덕살도 떼내며 말없이
한 올 귀빠진 그물코를 이루고 계셨다.

안개 속에 아침 해 솟아 느닷없이
멸치 떼들이 그무실을 뒤짚어
모랫벌을 건너 뛰며 단숨에
아저씨는
굳게 묶인 배들을 띄워 내고 있었다.

손 닿는 곳 수면 위엔 소낙비 같은
멸치 떼들이 퐁퐁거리고 둘러친
그물 사이로
은빛 빛살이 가득 담겨 와
아저씨의 고함 소리가 흥겹게 뱃전을 두드렸을 때

문득 바람이 일고 일시에
파도가 바다를 가로질러 곤두박질 쳐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우뢰 같은 주먹이 철썩
뱃전을 갈기고 황홀한 물보라가 갈라서

아저씨의 노가 순간 허공을 치고 푸르디뻗센 힘줄이
우지끈 꺾여지는 것이 보였다.
가슴에 섬뜩 와 닿는 까집힌 배의 밑창이
또 한 번 솟구치면서 여반상으로 뒤집혀 가고
아우성치면서 보지 않으려고 마을 사람들은
듣지 않으려고
눈두덩도 쥐어뜯었지만
바다가
순식간에 절벽을 세워 제 아귀를 맞추는 것을
아마도 차마 참혹해서 바로 보지 못하였다.

(김명인 시집, 동두천, 문학과 지성사, 1979)




우리의 인생. 어부로 살았다면 묵묵히 그물을 꿰매었을 테고 바다로 나가는 일이 일상이었을테다. 그러다 바다가 삼키면 운명처럼 죽었을테다. 그걸 다 알고도 그물을 꿰메며 웃는 날이 많았을 게고 바다로 나가며 목청 껏 노래를 불렀을 게다. 그게 우리의 하루 하루의 일기였을 게다...


"95년 2월 어느날 영주가 현수에게..." 라고 내가 적어 놓은 시집.
2009/07/27 13:56 2009/07/27 13:56
Posted by 꼼미

BLOG main image
by 꼼미

공지사항

카테고리

전체
일상
영화 드라마
논제
책읽기
음악
공연
취미
하루
자료
정치 사회
번역
먹는 일
여행, 구경
영화
번역
음악교육

최근에 받은 트랙백

달력

«   2012/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Total : 52096
Today : 29 Yesterday :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