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의 박사들

 | 하루
2011/03/10 00:35
내 주변엔 참 박사들이 많다. 남편이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은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다. 근데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엔 유난히 여자 박사들이 또한 많다. 역시나 내 남편이 박사학위자고 교수이니 아는 사람들도 비슷하게 그렇겠고, 그 사람들의 부인들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긴 하다. 아니나 다를까 꼼지 학교에 꼼지 외에 두 명의 한국 교수들이 있는데 두 사람의 부인들이 모두 박사다. 그 외에도 꼼지가 공부하는 과정에서 알게된 사람들 중 안밖으로 교수인 경우가 꽤 있었다. 하지만 이런 끼리끼리 모여 알게된 박사들 말고, 내가 말하고 싶은 박사들, 또는 현재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여자들이다. 대학때부터 알았던, 그러니까 앞으로 뭐가 될지 몰랐던 시절 만났던 사람들이고. 특히 음악사나 음악이론 관련해서 함께 모여 공부하고 토론했던 사람들은 한 두명 빼고 다 박사가 되었거나 현재 박사과정 중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시작했냐고 스스로에게 물어 봤더니 아무래도 한켠에는 그들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한다.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며 피아노에서 음악학으로 전공을 바꾸기로 결심하면서 꿈을 꾸었던 건, 나중에 모교의 교수가 되어 음대신문사의 지도교수가 되어 주고 싶다는 거였다 (왜 하필 음대신문사의 지도교수냐를 얘기하자면 또 쓸데없이 말이 길어질테니 생략). 뭐 그리 특별할 것도 없고 이루어질 가망성도 별로 없는 그야말로 '꿈'이다 (한국 모교에서 교수되기가 쉽나...). 사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던 마음은 반드시 그 꿈 때문만도 아니었다. 박사학위를 꼭 갖겠다거나 교수가 꼭 되겠다거나 그런 것 보다, 무엇보다 힘든 가운데도 뭔가를 계속 배우는게 즐겁고 행복했다. 새로운 것을 알아 가고 깨우쳐 가는 기쁨이 있었다. 그런 즐거움이 사고 전까지, 또 사고 후에도 대학원 과정을 마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대학원의 남은 학기를 마무리 하면서 다음단계로 진학하자는 마음을 접었다. 그러니까 그리 재미있었던 공부를 계속 더 해보자는 마음을 접은 것은........

....... 좀 논리적인 이유를 대 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 보아도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없다. 논리를 포기하고 말해보자면, 이유는 없고 선택만이 있었을 뿐이다. 두 시간 거리의 다른 도시에 떨어져 살며 주말부부를 하는 것, 남편과 아이들이 시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 한집의 두 살림 속에서 나도 남편도 제대로 건강을 지키지 못하는 것... 사고 후, 새삼 그런 것들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고 보듬고 싶어졌다. 공부하는 즐거움을 맛보면서 수년간의 세월을 하루 하루 버티기로 살것인가, 아님 공부하는 즐거움과 그 도전에 따르는 보상들을 뒤로 하고 하루 하루를 느슨하게 살것인가.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선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반은 만족스럽고 반은 불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나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선 여자들이 지금도 많을지 모르겠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다른 뭔가 즐거운 꿈을 가진 여자들. 뭐 꼭 여자들이 아니어도 좋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늘 선택의 기로 속에 사니까. 내 선택은 어쨌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러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핑계도 원망도 둘 곳이 없다. 부러움이나 서운함이 있지만 인생 자체가 서운함과 아쉬움의 연속이다. 잘못된 선택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 났으니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사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선택은 언제나 열려 있다. 진정으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여긴다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진정으로 원한다면 말이다.

한국에 갈 날이 몇주 남지 않았다. 한국에 가서 오래된 동료들 (박사이거나 박사학위 중에 있는 자들...ㅎㅎ)을 만나게 되면 분명 한 번 이상은 "공부를 왜 계속 안했어..."란 질문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이런 글을 쓰게된거지 싶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어쩌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아무도 내 삶에 대해서, 내가 어떤 삶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관심 없을텐데 말이지^^;

2011/03/10 00:35 2011/03/10 00:35
Posted by 꼼미

일로 얻는 기쁨

 | 하루
2010/12/10 00:27
일이 밀린다. 나한텐 좋은 징조다. 바쁘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보내는 거, 나한테 좋은 일이라고 믿는다. 일하기 싫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이던 홍이가 이번 유럽 공연을 마치고 오더니 나에게 계속 일감을 안겨 주고 있다. 내가 아직도 (?) 그애를 도울 일이 있다는게 오히려 신기하고 기쁘기도 (?) 하다.

홍이와 관련된 일은 대체로 번역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결국 기본적으로는 내가 과거에 잠시 몸담았던 글을 쓰거나, 글을 교정 보는 일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홍이와 뜨문뜨문 일을 할 때마다, 예전에 그애와 함께 모임 회보를 밤새 작업하던 날들의 기억이 차오른다. 사람들에게 앙칼지고 단호한 목소리로 원고를 요청 (? 강요 또는 협박이라고 하는 편이 나으려나...^^:) 한건 언제나 홍이였고, 묵묵히 컴퓨터 앞에서 편집작업을 하던 건 송이였으며, 프린터된 원고들을 비틀고 주무르는 건 나였다. 그걸 즐기면서 일했던 그 시절, 마감 와중에도 단합을 핑계로 함께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그랬다. 서로 먼 곳에서 6년이란 세월을 보지 못하고 지내었어도 그 세월의 주름을 한치도 느끼지 못할만큼 우리의 대화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 없다. 홍이와 일을 하는 기쁨은 아마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멀리 사라져 버렸다고 믿었던 과거가 그애와 더불어 고스란히 재현되는 느낌 말이다.

그러니까 홍이가 맡기는 일들 속에서, 영어를 한글로, 한글을 영어로, 단어와 문장을 생각하고, 고치고, 다듬다 보면, 아이들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이건 정말 좀 잘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만서도), 비정규적 음악선생이자 연주자 (?) 로 살고 있는 내가, 문득 다시 주제 파악도 못하고 설쳐댔던 과거의 나로 돌아 가는 것 같아 몰래 몰래 기분이 좋아진다 (이건 좀 비밀인데.. ^^:). 아직도 글을 쓰고 고치는 일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는 게 나에겐 그러니까... 말하자면.... 영광스러운 (이건 너무 과장인가...) 게다. 그래서 일을 주는 홍이에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한다. 나의 부족함을 아니까 말이다.

여직도 욕심이 많아서 이렇게 이 일, 저 일, 손대며 산다. 1월에 있을 번개의 리사이틀 피아노 반주도 맡아 놓고,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를 하면서, 어른 현악 앙상블의 리더 아닌 리더를 차고 앉았으면서, 모자른 영어 실력 우리말 실력으로 번역까지 한다고 욕심을 낸다. 아주 우스울 정도의 글재주로 남의 글을 고친다고 다듬겠다고 덤빈다. 무엇하나 정말 제대로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 무엇도 놓지 못하고 산다. 이런 일들을 하며 살 때, 내 안의 생명줄이 살아 꿈틀거리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그 맛을 놓지 못하기 때문인 거다.

어쨌든, 이렇게 바쁜척 해도, 놀 시간도 없을만큼 바쁜 건 아니다. 밥은 하루 한끼만 해도, 노는 일은 하루 세번 이상씩은 있어야 하지 않나.^^ 노는 일은 나에겐 (나에게 좋은 게 아이들에게도 좋은거고 말이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심지어 페이스북에 올라 오는 새 소식들까지도 다 챙겨 보면서, 간간히 짬짬히 드라마도, 영화도, 한국책도, 영어책도 보고 읽으면서 그렇게 바쁘다.
2010/12/10 00:27 2010/12/10 00:27
Posted by 꼼미

아침 서재

 | 하루
2010/10/20 08:59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릴때도 대학때도 널찍한 내 방을 갖는 게 꿈이었다. 보통 사람에게 널찍한 방 갖는 꿈이 어디 쉬운건가. 꿈을 수정 했다. 그럴듯한 책상을 갖는 걸로. 늘 언니 책상이 부러웠고 그랜드 피아노가 주인인 방에서 내 책상은 없이 언니와 함께 낑겨 지내는게 불만이었다. 그래서 언니와도 많이 싸웠다. 언니가 결혼을 하자 언니 책상은 내 것이 되었고 난 그랜드 피아노와 단 둘이 한방에 남았다. 하지만 언니가 떠난 집은 왠지 예전같지 않았다. 우리는 몽땅 커버렸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고 우리집의 형편도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무얼 얻게 되면 한편으론 꼭 그만큼의 무얼 잃게 된다는 사실을 그떄부터 마음에 담기 시작했나.

결혼을 하고도 늘 제일 먼저 챙기는 건 어디에 책상과 책꽂이를 놓을까였다. 지금도 책상이 좋아서 우리집엔 이젠 다 셀 수 없을 만큼의 책상이 있다. 물론 책상 대용 식탁과 앉은뱅이 책상겸용 탁자까지 합하자면 말이다. 모두들 중고 아니면 쓰레기장에서 업어와 닦고 조인 것들이다. 난 그 책상들이 다 좋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 이 책상 저 책상을 오가며 어질러 놓고 잠깐씩 앉아 내 건망증에 요긴한 메모를 하거나 챙겨야 할 서류들을 보곤 한다.

오월에 들어 온 지금의 집을 고른 가장 큰 이유도 책상과 책꽂이가 넉넉히 들어갈 안성맞춤한 방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은 1층 서재가 되었다. 우린 서재라는 말보다는 공부방 / library 라고 불렀는데 이 방을 지난 5개월 동안 꼼지가 썼더랬다. 아이들이 2층에서 악기 연습을 할 때 방해 받지 않고 공부 하라고 내가 선심을 썼다. 오개월이 지난 후에 꼼지는 2층의 손님방을 공부방으로 택했다. 취향의 문제인데, 창문이 넉넉하고 밖이 훤히 내다 보이는 1층 공부방보다는 벽에 둘러싸인 (마치 고시원 같은) 약간은 답답해 보이는 2층 방이 집중하기에 더 좋다는 거였다. 여기선 man's cave 라고 하는데 남자들은 정말 지하실 같은 음침하고 꽉막힌 공간이 좋은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쩄든 좋았다. 대신 1층의 공부방이 내게 돌아 왔으니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놀래서 들어 온 꼼지 (설정). '아니 이런 이른 아침에?!!!'

커다란 창에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 온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로 떠나고 얼마 후 초등생들이 학교버스를 타기 위해 우리집 창문 앞을 지난다. 걸어 가는 작은 아이들의 재잘거림 위로 '하루의 평화'가 울려 퍼진다. 그 창을 마주하고 놓은 책상에 앉아 친구가 주고 간 뽕잎 차 한 잔 마신다. 등뒤로는 나만의 책들을 꽂았다. 꼼지가 자신의 책은 다 2층으로 모시고 올라간 덕이다. 시집들도 낭만음악들도 소설들도 음악관련 책들도. 언제라도 앉아 공상에 망상에 무엇을 해도 방해 받지 않을 나만의 책상을 갖게 되었으니 다시 꿈을 이룬 셈. 이번에도 한국에 두고 온 또다른 꿈에서는 이토록 멀어졌을 망정.
2010/10/20 08:59 2010/10/20 08:59
Posted by 꼼미

마무리

 | 하루
2010/02/10 16:54
전통음악관련 한영번역일을 마무리 지을 때마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비록 잘하기 때문에 하는게 아니라 계속 하다보면 잘하게 될꺼라는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긴 하더라도. 그 믿음이 없었다면 시작도 못했을 테고 지금까지 이렇게 뜨문 뜨문 계속 해오지도 못했을 테다.

한국을 떠나 올 때, 한 친구가 뜬금없이, "네 꿈을 꼭 이루기 바래" 라고 카드에 적어 주었던게 마음에 남아 있다. 별로 친한 애도 아니고 한번도 그애와 서로의 꿈 같은 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기억조차 없는데 그애는 송별모임에서 나에게 그 말을 남겨 주었다. 그때는 그 말에 '과연 내가?'란 생각은 마음에 담았어도 '무슨 꿈?'이란 질문을 갖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젠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정말 잊은 듯하다. 나에게 꿈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어제밤 반쯤 미친 기묘와 같이 반쯤 미쳐가며 긴통화를 이어 가면서, '살기 위해 산다고' 말했다. 죽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사는 거라고. 요즘의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나는 바보라고 여기다가도 이렇게라도 살고 있으니 웃어보자 하는 나를 본다. 여기 저기 넋두리를 해대면서, 헤매이면서, 서성이면서. 혼자 그렇게 어슬렁거리면서.

어쨋든, 오늘은 분량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질질 끌고 있던 번역원고를 마감시켰다. 그런 날이었다.

오늘 얘기 끝.
2010/02/10 16:54 2010/02/10 16:54
Posted by 꼼미

꿈을 꿨다.

 | 하루
2009/08/26 10:27
마음에 묻어 두고 있는 사람들은 꼭 꿈속에 나온다.
아무때고 앉아 이메일 하나 휙 날려 보내거나 몇달에 한 번 이라도 전화 한통 찌르릉 걸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꿈에 안나온다. 그러니 이렇게 꿈을 꾸고 나면 거꾸로 내가 마음속에 누굴 묻어 두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거다.

이선생님이 꿈속에서 돌아 가셨다는데, 난 꿈속에서 그 선생님과 나누었던 추억의 장면들을 되돌아 보고 있었다. 마치 소설의 절정에서 숨겨진 진실을 확인하듯, 모르고 지나쳤던 상대의 암시들을 속속들이 알게되면서 감동과 서글픔, 충격과 아쉬움의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꿈속에서 남다른 사랑을 담아 나에게 창문 너머의 꽃무더기 정원을 보여주던 그 장면에서 꽃들은 내가 쳐다 보자 풍선처럼 더욱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들이 내품던 색깔이 어찌나 선명하고 화려하던지 꿈속에서조차 너무 아름다워 이게 선생님이 나에게 주었던 사랑이구나 확신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주는 사랑이 형상화한 모습이랄까.

또 한 사람, 멀어진연인의 이야기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그의 꿈은 잠깐 잠깐 종종 꾸는 것 같지만, 늘 이렇듯 깨어나면 선명하게 떠오르질 않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무데나 두고 잡지처럼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 <몰락의 에티카>를 쳐다보며 든 생각은 나는 몰락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그 몰락은 언제나 나의 환상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
2009/08/26 10:27 2009/08/26 10:27
Posted by 꼼미

BLOG main image
by 꼼미

공지사항

카테고리

전체
일상
영화 드라마
논제
책읽기
음악
공연
취미
하루
자료
정치 사회
번역
먹는 일
여행, 구경
영화
번역
음악교육

최근에 받은 트랙백

달력

«   2012/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Total : 51938
Today : 45 Yesterday :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