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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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6 00:25
강가에서


김수영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사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두번 새벽에 한번
그러니 아직도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샤쓰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훨씬 늙었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사이에
자꾸자꾸 소심해져만 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소인이 돼간다
속돼 간다 속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Thanksgiving 밤. 문선생님댁에 초대 받아 아이들과 함께 미국식 터어키로 저녁을 먹고 왔다. 우리 아이들과 문선생님의 아들, 그리고 조카, 조카의 친구들 외에 두 분의 여자분이 더 초대 되었다. 문선생님을 포함한 세 분이 다 혼자 사는 분들이다. 문선생님과 한국분은 남편을 각기 일년 전, 오년 전 상처 하셨고, 나머지 한분 드물게 얌전하고 단아해 보이는 미국분은 잠깐 결혼을 하신적이 있다지만 오랫동안 혼자 살아 오신 분이라고 했다. 그분은 특히 오는 12월 초 암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문선생님이 나에게 귀뜸 했던 분이다. 어쨌든, 젊은 청년들과 나이든 아주머니들 사이에 혼자 낀 나는 일부러 노력할 필요도 없이 말수를 줄일 수 있었다. 그저 영어와 한국말이 섞여 오가는 대화 속에서 60을 넘은 세 여성의 이야기가 귀를 거치지 않고 마음으로 쑥쑥 들어 왔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앤틱샵에서 산 물병이 얼마나 예쁜지, 자신이 넣어 둔 주식가가 어떤지, 요즘 타이거 우즈의 경기 실적은 어떤지, 등등의 이야기들 사이로, 가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내었던가, 자신은 이 세상을 어떻게 떠날 것인가,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어떻게 죽는가인 것 같다는 그런 것들이었다. 돌아 오는 길에는 거칠던 빗줄기가 눈으로 바뀌었다. 이 동네에 내리는 올해 첫 눈이다. 그렇게 말 수를 줄이고 싶었는데도, 조심 조심 눈인지 비인지를 뚫고 돌아 오는 내내, 오늘도 역시나 마음 속엔 후회와 반성 투성이었다. 내게서 쏟아져 나오는 그 모든 것들이 행동이든 말이든 모두 얇팍하고 속없어 보이기만 한다. 누가 뭐라 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그토록 모자라 보인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사십대의 사람은 이런 내가 아니었다. 내가 먹은 나이를 인정하기에 내 자신이 너무 모자르단 생각 뿐이다. 그런 생각이 계속 떠나질 않는다.
2010/11/26 00:25 2010/11/26 00:25
Posted by 꼼미

최승자 - 참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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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5 11:38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 우습다


최승자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늘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투병 중인 최승자의 신작인 이 시의 나이에 대한 생각이 기가 막혔다. 어찌나 이렇게 일반성과 전형성의 합치를 잘 이루어 내고 있는지. 난 내가 아직도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한다고 생각해 왔다. 나이 사십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나이는 이십이거나 많아야 삼십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으로 마음의 나이를 인정하는 건 죄악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난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치졸한 사춘기적 감정을 잔뜩 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런 감정조차 말끔히 정리하지 못한 내가 어찌 우아한 사십일 수 있어, 또는 오십다운 오십이 육심다운 육십이 될 수 있겠어'라는 마음인거다.

최승자 시인도 그랬을까. 나처럼 구차한 삶의 찌꺼기, 감정의 잔여물이 너무 많아서 그냥 철없는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살고 싶은 걸까. 알 수 없다. 그저 그녀가 무작정 젊음을 욕망하는 마음에서 이런 시를 토해 놓았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어찌 했거나, 나처럼 사십 먹은 그 누구 중에도 자기가 먹은 나이만큼 삶이 만만하고 확신뿐인 사람은 없지 않을까. 사십의 생도 철없고 오십의 생도, 또 육십의, 칠십의 생도 우린 늘 불안하고 불확실하니까. 사람이니까 말이다.

먼길 가야 할 사람이 있다면, 딛어야 할 그 걸음 걸음을 그냥 사랑해 주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 걸음이 없이는 사는 것이 아닐테니까.


덧글: 최승자와 나의 나이에 관한 이런 생각은 이창래의 <Aloft> 에서도 합쳐져서 관련글을 꼼미의 서재에 따로 올렸다.
2010/04/15 11:38 2010/04/15 11:38
Posted by 꼼미

늙어가는 눈

 | 하루
2009/10/29 13:32
나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다 눈이 밝다. 엄마만 난시 때문에 외출 때나 필요 할 때 안경을 쓰셨을 뿐, 나머지 식구들 중에는 안경 쓴 사람이 없다. 칠십이 넘으신 (이런!) 아버지를 비롯해 지금까지. 나 역시 공부도 피아노도 놀멘 놀멘 해서 그런가 피아노를 전공한 친구들 사이에는 드물게 렌즈도 안경도 끼지 않고도 양쪽 눈이 1.0 근방을 왔다 갔다 했다.

얼마전부터 왼쪽 눈이 찜찜하게 뭐가 있는 듯하다. 눈이 침침해서 책을 보기 힘들었던 증상이 나타났던 건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던 때부터긴 하다. 그런 때는 어차피 책을 볼 수 없으니 숙제고 뭐고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새벽에 다시 숙제를 하곤 했다. 졸업하고 노는지가 아직 일년이 채 안되긴 했지만, 얼마전 홍이가 청탁한 번역 원고에 딱 일주일 정도 매달린 이후로 왼쪽눈이 아프고 뭘 읽기가 힘든 증상이 생겼다.

그 이후로 침대 위의 책읽기도, 개인적인 번역 작업도 중단했다. 눈이 불편하니 하기가 싫어졌다. 그리고 찬장 구석을 뒤져 남아 있던 결명자차를 끓여 먹고 있다. 효과가 있던 없던 그냥 아무것도 안하자니 그러니까.

책과 컴퓨터를 멀리하고 시카고 가서 놀고 시카고 다녀 와서도 놀다보니 병원을 가야하나 생각했던 증상이 꽤 많이 좋아졌다. 아무래도 만으로 나이 사십. 늙어가는 일이다. 마음의 나이가 딱 서른에 멈추어도 몸의 시계는 가는 법이니. 눈이 아프면 책을 볼 수가 없어 괴롭다. 꼼지가 놀렸다.

"니가 뭐 노무현이냐? '책을 읽을 수도 없다'고 하게..."

겨우 몇일 전부터 다시 컴퓨터 앞에 앉고 머리맡 책도 다시 집어 들었다. 몸과 마음의 건강 둘다 겸손하게 지켜야 할 때가 정말로 온 듯하다.
2009/10/29 13:32 2009/10/29 13:32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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