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김수영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사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두번 새벽에 한번
그러니 아직도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샤쓰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훨씬 늙었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사이에
자꾸자꾸 소심해져만 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소인이 돼간다
속돼 간다 속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Thanksgiving 밤. 문선생님댁에 초대 받아 아이들과 함께 미국식 터어키로 저녁을 먹고 왔다. 우리 아이들과 문선생님의 아들, 그리고 조카, 조카의 친구들 외에 두 분의 여자분이 더 초대 되었다. 문선생님을 포함한 세 분이 다 혼자 사는 분들이다. 문선생님과 한국분은 남편을 각기 일년 전, 오년 전 상처 하셨고, 나머지 한분 드물게 얌전하고 단아해 보이는 미국분은 잠깐 결혼을 하신적이 있다지만 오랫동안 혼자 살아 오신 분이라고 했다. 그분은 특히 오는 12월 초 암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문선생님이 나에게 귀뜸 했던 분이다. 어쨌든, 젊은 청년들과 나이든 아주머니들 사이에 혼자 낀 나는 일부러 노력할 필요도 없이 말수를 줄일 수 있었다. 그저 영어와 한국말이 섞여 오가는 대화 속에서 60을 넘은 세 여성의 이야기가 귀를 거치지 않고 마음으로 쑥쑥 들어 왔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앤틱샵에서 산 물병이 얼마나 예쁜지, 자신이 넣어 둔 주식가가 어떤지, 요즘 타이거 우즈의 경기 실적은 어떤지, 등등의 이야기들 사이로, 가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내었던가, 자신은 이 세상을 어떻게 떠날 것인가,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어떻게 죽는가인 것 같다는 그런 것들이었다. 돌아 오는 길에는 거칠던 빗줄기가 눈으로 바뀌었다. 이 동네에 내리는 올해 첫 눈이다. 그렇게 말 수를 줄이고 싶었는데도, 조심 조심 눈인지 비인지를 뚫고 돌아 오는 내내, 오늘도 역시나 마음 속엔 후회와 반성 투성이었다. 내게서 쏟아져 나오는 그 모든 것들이 행동이든 말이든 모두 얇팍하고 속없어 보이기만 한다. 누가 뭐라 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그토록 모자라 보인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사십대의 사람은 이런 내가 아니었다. 내가 먹은 나이를 인정하기에 내 자신이 너무 모자르단 생각 뿐이다. 그런 생각이 계속 떠나질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