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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지를 공항에 데려다 주고 왔다. 토요일이다. 그러니까 꼼지 부재의 시작은 주말이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기억과, 꼼지가 7년만에 한국 땅을 밟을 때 느낄 회한과, 한달 넘어 계속 될 꼼지없는 날들에 대한, 여러 앞선 생각들 때문일까, 자꾸 울컥거리는 감정을 닫아 두려 애쓰니, 마치 멀미가 계속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달을 족히 넘는 꼼지의 이번 미국 밖 여행은 2004년 미국에 발을 딛은 이후 처음이다. 미국 안에서 몇 도시를 거쳐 한국에 갈 예정이다. 그 일정 속에서 일본에 있는 학회도 잠시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미국에 유학 와 이 고생 저 고생 하는 동안 꼼지는 알게 모르게 향수병을 많이 겪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편안한 마음으로 한국을 다녀 오게 되었으니 우리에 대한 걱정 보다는 여행 동안 좋은 일, 좋은 기억, 그리고 좋은 만남 많이 만들고 왔으면 좋겠다.
2010/11/13 13:10 2010/11/13 13:10
Posted by 꼼미
복이 많은 탓인지 지지리 복이 없는 탓인지, 어쨌든 난 세 명의 남자와 함께 산다. 꼼지와 호빵과 번개. 머리에 피가 막 마르던 시절(?)부터 봐온 꼼지는 이제 중년이란 이름을 붙이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점에 접어 들었고, 이제 십대 소년들이 된 두 아들 호빵과 번개는 저것들이 어릴 때가 있었나 싶게 4차원 세계로 빨려가듯 후다닥 청년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가 남자가 주인공인 두권의 소설책이 남얘기 같지만은 않았다.

책들을 겹쳐 읽다 보니 우연히 중년을 넘어선 두 남자의 이야기를 동시에 읽고 거의 같은 시기에 끝내게 되었다. 한국태생 미국인 소설가인 이창래의 <Aloft> 와 중국의 젊은 작가 (조만간 '젊은'이란 말을 떨어져나갈 듯)로 불리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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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ft> 는 꼼지가 산 책이다. 기억컨데, 꼼지는 책의 내용보다는 작가에 호기심을 가졌고 당시 세일에 세일을 거쳐 바닥을 치고 있던 그 가격이 그의 호주머니를 열게 했다. 하지만 내가 읽어 주기 전까지 책꽂이에 고이 모셔져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창래의 소설은 이 책이 처음이라 다른 책에선 그가 어떤 문체나 경향을 가졌는지 잘 모른다. 적어도 이 책에선 작가의 '한국적' 경향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적' 허무맹랑 충격 소재나 경향도 볼 수 없다. 오히려 '이 작가 진짜 별 것 아닌 수다를 잘도 늘어 놓는 군' 싶을 만큼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에 꼬리를 달고 달아 늘고 늘이고 채워가는 수법으로 소설 전체를 엮고 있다. 주인공인 제롬의 목소리로 채워진 이 소설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적이지 않은 분명한 미국 소설, 그러니까 완전한 미국인의 눈으로 본 삶의 건조하고 보잘 것 없는 면면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 겠다. 미국시장에서도 한국시장에서도 인기가 없었을 꺼라는 걸 장담해 볼 수 있을 만큼 이렇다할 기승전결도 없는 소설이다. 읽다 치워버리고 싶은 소설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지루하고 별 재미도 없지만 이상하게 읽다 치워버릴 수는 없는 그런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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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젊은 작가라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앤아버친구 책이다. 앞장에 그 친구 동생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책도 들쳐본 건 꼼지가 먼저였다. 그가 책장을 훌떡 훌떡 넘기며 "흠, 치과의사란 직업을 버리고 소설가가 되었다네... 피 팔아 살아가는 중국남자 이야기네..." 말하기도 했지만 워낙 "소설은 왜읽지:"라며 '정치'와 '역사'를 전공아닌 전공처럼 삼고 사는 그라 그랬는지 역시나 완독하진 않았다. 짜투리 시간에 한국책을 짬짬이 읽는 나는 두껍지도 않은 소설이니 한 번 읽어보자 심정으로 번개 축구하러 따라가는 길에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생각 이상으로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게 읽는 사람을 웃기는지, 그러면서도 마치 침으로 아픈 혈자리 짚어내듯 사람 마음을 뜨끔하게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기대 이상의 재미를 보았더랬다.  

이창래 소설의 주인공은 미국남자 제롬 배틀 (Jerome Battle) 이고 위화 소설의 주인공은 허삼관이다. 한 때는 소년이었을 이 두 남자는 미국의 현대와 중국의 근대라는 시공간의 차이를 넘어선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둘 모두 청춘을 거쳐 부인을 맞아 그들만의 둥지를 틀었고, 그저 하늘이 주는 대로 자식 낳고 살다 이게 내 삶인지 가족이란 이름의 딸린 식구들의 삶인지 구분하지 못할 지경에도 이른다. 달린 아이들은 먹을 것이든 사랑에든 조금만 방심해도 주려 치명타를 입기 쉽상이고 동반자라고 이름하는 부인은 가족 생계와 본인의 외로움으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남편보다는 돈을, 남편이 처한 입장 보다는 자신의 갈망을 바라본다.

제롬 (일명 제리 Jerry) 은 복지관에 맡겨진 아버지와 더불어 이제는 독립한 딸과 아들을 두었다. 제롬의 아버지는 전화 저쪽에서 경로원에서 꺼내달라거나 가족 모임에서 똥을 퍼질러 싸서 그를 당황스럽게 하거나 끝내는 경로원을 몰래 도망치며 그의 일상을 괴롭힌다. 부모만 그런가. 제롬의 할아버지대부터 내려온 가업인 조경사업을 자기에게서 물려받은 아들은 회사가 기울어 가는 것을 숨기고, 잘난척 만땅으로 똑똑한 교수지망생 딸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인기없는 소설을 쓰는 남자와 결혼해 임신과 더불어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가져다 준다.

허삼관은 피를 판 돈으로 꼬셔 얻은 부인 아래 부인이 결혼 직전 내통한 남자의 아들인 일락과 자신의 피를 받은 이락, 삼락의 세 아들을 두었다. 자신이 가장 예뻐하며 11년을 키운 아들이 남의 아들이라는 걸 알고는 부인을 욕하고 그 아이들을 차별하며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기도 하지만, 문화혁명 과정에서 간통녀로 비판 받는 아내에게 몰래 밥과 반찬을 날라주는 역사의 물결 속에서 살기 위해 헤엄쳐 가는 보통 남자다. 키운 정과 나은 정 모두를 위해 목숨같은 피를 팔고 와서도 자식의 상관을 접대하며 술잔을 거절하지 못하는 특별히 똑똑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아니 되려 사람들에게 '자기 자식도 아닌 아들을 키우는 덜떨어진 놈'으로 손가락질 받는 멍청하고 답답해 보이는보통 아버지다.

제롬은 사업에선 이미 은퇴하고 아버지와 자식들 사이에 끼어 죽은 아내의 빈자리 대신 오랫동안 애인으로 지내온 여자 하나 어쩌지 못하고 경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허삼관은 할아버지에 이어 자신을 자식처럼 보살펴 주던 삼춘까지 잃고 그저 한 사람의 남편이자 세 아이들의 아버지로 삶을 헤쳐 나간다. 피같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피를 팔아 돈을 만드는 가운데 친구를 만나고 친구를 잃는다. 피팔다 죽어가는 친구를 보고도 간경화에 걸린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피를 팔러 길을 나선다.

제롬도 허삼관도, 역사의 어느 페이지에서라도 절대 인용될 것 같지 않은 역사라는 강물 아래에 잠겨 시대를 따라 흘러가는 남자들일 뿐이다. 그들은 특별히 마초도 아니요 특별한 군자도 아니다. 태어 났으니 살아 가고, 살아 가고 있으니 지친 걸음이라도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요새말로 시대의 찌질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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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만도 세 명의 남자가 있으니, 이 세 남자들도 시대의 찌질이로서 각자 부여받은 한 시대를 살아 가겠지. 세 남자에게 약간 연민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크게 불쌍하다고 생각진 말자. 찌질이가 한 둘인가. 남의 집 남자들도 자세히 뜯어 보면 모두 별 다를 것 없는 찌질들일게 분명하다(고 우기지 뭐). 비록 찌질하게 살아 가더라도, 혼자 비행기를 타며 환상에 젖든 피를 팔아 황주를 마시든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우며 삶을 여정을 이어 가주기만 한다면 곁에서 보는 재미와 뿌듯함이 이 두 소설을 너끈히 넘어서지 않을까...


2010/04/06 16:58 2010/04/06 16:58
Posted by 꼼미

행복해 보여?

 | 하루
2009/05/1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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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이 선물한 장미 화분



사진을 찍을 때 웃으려고 노력한다. 중학교 때였던가, 세계사 시간에 선생님의 지명에 교과서를 읽고 있는 내게 가까이 오시더니 "얘, 니 피부 진짜 백옥 같다~ 얘" 하시면 내 볼살을 만지고 잡아 당겼던 생각이 난다. 키가 짤막하셔서 그랬는지, 늘 치마를 가슴 밑에까지 올려 입던 세계사 선생님은 아이들을 좋아 한다거나 친절하다거나 배려가 많다거나 그런 사람도 아니었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는 편에다 세계사 시험이 끝나면 틀린 갯수만큼 손바닥을 때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말하고 싶은 건, 그 선생님의 뚱딴지 같은 내 피부 얘기가 아니라 그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또다른 언급에 관해서다. 언젠가 그 선생님이 그랬다. 피부는 곱고 수업 시간에 항상 눈은 반짝 반짝 하는 애가 표정에 웃음이 없고 너무 어둡다는 것이었다. 즉, 핵심은 어두울만한 구석이 없을 것 같은 애가 굉장히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남들이 잘모르는 우리 집안의 오빠로 인한 어두운 그늘 때문이었는지, 나의 버르장머리 없던 사춘기 때문이었는지, 아님, 스스로 웃는 내 모습이 낯설고 이상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전 웃으면 얼굴이 이상해요..."라고 말하며 절대 웃으려 하지 않던 드라마 '연애시대'에 나오는 그 꼬마처럼, 나도 그 시절 그런 생각이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언제부터인가, 분명 세계사 선생님에게서 그 말을 들은 이후라고 생각되는데, 아침 저녁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면서 웃는 얼굴을 연습해 보곤 했던게 기억난다. 영 웃는 얼굴이 잘 안되서 입 모양을 쫙쫙 벌리는 연습도 하고 여러가지 모양의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았다. 남들은 웃으면 자연스럽게 웃니가 다 드러나면서 시원하게 웃던데 난 왜 웃을 때 이가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웃니들이 홀딱 드러나도록 입주위의 근육을 훈련시키듯이 종종 그렇게 거울 앞에서 우스운 짓을 했댔던 거다.

그 연습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웃을 때 이가 드러나는 걸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생긴 게 다 그렇지. 뭐, 내 얼굴 보고 밥 못먹을 정도는 아니지 않나'는 생각과 오빠에 대해서도, '그래, 내가 특별한 오빠를 가진게, 나나 오빠나, 우리 식구 누구의 탓도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부터였을까, 사진에 찍히는 낯설고 괴상한 절대 평소 내 맘속에 그리고 다니는 내모습과는 무척 다른 그 모습이 바로 내 진짜 모습들이려니 하고 포기 아닌 포기를 하게 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름다워 보이는 과거의 시간들에 대한 증거로 사진 찍히는 일을 즐기게 된 것 같다.

이런 구구절절한 얘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말이지.....

그저, 저 위의 사진들을 보면, 우리 가족 모두가 세상에 둘도 없이 행복한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나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걸 아닐꺼라고 믿는다. 가끔 그렇지 않은가. 속속들이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춰내지 않고 어떤 사람들의 한 장면, 한 표정만 보았을 때는 진짜 부럽다 싶게 그들이 행복하고 멋지고 굉장해 보이곤 하지 않는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포장된 연애인들의 삶을 동경하는 것처럼. 그건 사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다. 위에 첨부한 사진들 속의 우리도 굉장히 행복한 순간에 있기도 하지만 또한 지지고 볶는 생활 속에서 서로가 맘 상하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아침 일찍 호빵맨과 번개를 데리고 현악기 렛슨을 다녀 오면서 아이들의 버릇없고 섭섭하고 맘에 안드는 행동으로 집에 돌아 오는 내내, 엄마는 제 성질에 겨워 소리 벅벅 질러가며 아이들을 윽박질러 댔다. 아이들은 마치 큰 죄를 지은 사람들 마냥 풀이 죽고, 엄마가 요구하는 '벌'을 받으며 울상이 되었다. 렛슨에서 돌아온 세 사람 사이에 얼음짱같은 한파가 느껴지니 집에서 아이들을 맞던 아빠는 영문을 모르고 함께 살얼음이었다. 이런 한바탕의 괴기스런 광풍이 지나간 후, 아이들은 그야말로 아이들처럼 다시 쌕쌕 즐거운 숨을 고르며 친구집에 수영하러 놀러 갔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집에서 미국식 엄마의 날이라고 번개가 학교에서 써온 엄마를 위한 시와 호빵맨이 엄마를 위해 사준 장미꽃을 보면서 엄마는 성질낸지 한시간도 못돼 '도대체 나란 인간은 왜이럴까'라는 한탄에 빠져 자살 직전의 분위기에 빠져들며 눈물을 글썽이는 거다. 십년 가까이 이런 미치기 바로 직전의 여자같은 부인을 보아온 꼼지는 저녁에 맛있는 걸 먹자며 아이들과 함께 아내를 데리고 나갔고, 엄마와 아이들은 맛있는 저녁 식사 후, 우리집에 미친여자의 발작에 가까운 광풍은 절대 없다는 분위기로 저렇게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의 나는 이젠 길들만큼 길든 웃는 얼굴을 맘껏 내짓고 있다. '네롱~ 우리 행복해 보이지롱~' 라고 사기치는 듯이.

이런, 우리가족의 모습이 사기든 뭐든 무척 행복해 보여 부럽다고? 그렇담, 구십 칠점 구구구 퍼센트 장담하건데 당신의 삶은 내 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많은 행복한 부분을 가지고 있을게다.
2009/05/11 12:43 2009/05/11 12:43
Posted by 꼼미

내 오래된 친구 하나

 | 하루
2009/04/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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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던 꼼지가 시카고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전화를 했다. 그는 시카고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미시건으로 향할 것이다. 미시건 외곽에 있다는 대학에 교수임용 면접을 보러.

주말 내내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던 꼼지는 혀가 아프다며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혀가 여기 저기 여름날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다. 주말 아침이면 일어나지도 못하고 낮까지 잠을 자야 정신을 차리던 사람이 이번 주말은 보통처럼 자고 일어나며 공부를 하더니 힘들어 하는게 눈에 보였다.

뻣뻣한 상하관계와 조기 퇴출과 최대 노동이 일상적인 한국직장이 싫다고 꼼지가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겠답시고 모두가 반신반의하며 말리던 유학길에 오른게 오년전이다. 말 절대 잘 안듣는 아내와 두 아들까지 부둥켜 안고 모든 것이 설은 땅에서 공부하고 산답시고 고군분투한건 가족 있는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일이었다고 해도 큰 교통사고와 이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다시 직업찾기에 나서야 했던 건 또 다른 역경이라면 역경이 아니었을까.

세상 쉽게 사는 사람 누가 있으리오만, 열 아홉 나이에 만나 지금까지 곁에서 봐온 꼼지가 살아온 인생도 파란만장하다고 할만하다. 그 울긋 불긋한 삶을 나와 친구 사이였을 때에나 내가 그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는 지금이나 나 외엔 속내 털어 놓는 단짝친구 하나 변변히 없이 살아 온 사람. 내가 늘 일상에서 탈출할 일만 꿈꾸는 단군의 호랑이 같은 사람이라면 꼼지는 언제나 일상에 발을 잠그고 십년이든 백년이든 굴 안에서 마늘만 먹고도 살 곰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곰같은 사람이 굴 밖으로 나와 야생으로 나와 한국어로도 잘 못하는 대화와 가르치는 일을 영어로 하겠답시고 면접을 보러 갔으니 그 일이 어찌 쉬울까. 그런 용기가 자신의 마지막 꿈에서 빚어진 것이든 그의 철없고 미래 없는 아내와 두 아들을 위한 것이든, 지금의 꼼지가 보여주는 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근 이십년을 두고 보아 왔던 그의 모습 가운데 가장 멋지고 자랑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다. 결코 쉽지 않았던 우리의 사랑과 우정 속에서 내가 요즘 느끼는 행복감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은, 주변의 조건과 환경에 앞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게 어떤 건가를 그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결과에 관계 없이 꼼지와 나, 그리고 우리의 두 개구장이 아이들은 이 과정이 모두 다 끝났을 때 기쁨에 환호성을 지르며 큰 박수를 보내리라. 이번 주말이면 우리의 유학생활에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내 오래된 친구와 다시 한 번 술잔을 기울이며 축하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2009/04/13 13:35 2009/04/13 13:35
Posted by 꼼미

주름살

 | 하루
2009/01/0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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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도 자고 일어나 부시시한 모습으로 거울을 보면 저녁엔 없던 주름이 굵게 져 있는 걸 보는데 그건 남편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내 얼굴이야 거울 안볼 때는 모르지만 아침밥을 먹으며 남편 얼굴을 보니 그야말로 이른바 내 천 (/||) 자 주름이 하루 하루 짙어지는 게 보인다.

남편을 처음 만난게 1988년이니 이젠 정말 알고 지낸지 20년이다.
이 세월을 어떻게 간단히 지워버릴 수 있겠나. 좋은 세월도 있었고 안좋은 세월도 있었지만, 철없을 때부터 보던 얼굴인데 지 좋아서 하는 짓이던 남 시켜서 하는 짓이던, 아직도 고생하며 하루 하루 변해가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절로 든다. 더욱이 사고 이후에는 남모르게 더 몸고생 맘고생 해서 그런지 갑자기 더 팍 늙은 것 같아 여러가지로 미안하다. 새해에는 남편이 좀 더 건강하고 힘내기를 바래본다.
2009/01/05 20:49 2009/01/05 20:49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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