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빵이 선물한 장미 화분
사진을 찍을 때 웃으려고 노력한다. 중학교 때였던가, 세계사 시간에 선생님의 지명에 교과서를 읽고 있는 내게 가까이 오시더니 "얘, 니 피부 진짜 백옥 같다~ 얘" 하시면 내 볼살을 만지고 잡아 당겼던 생각이 난다. 키가 짤막하셔서 그랬는지, 늘 치마를 가슴 밑에까지 올려 입던 세계사 선생님은 아이들을 좋아 한다거나 친절하다거나 배려가 많다거나 그런 사람도 아니었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는 편에다 세계사 시험이 끝나면 틀린 갯수만큼 손바닥을 때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말하고 싶은 건, 그 선생님의 뚱딴지 같은 내 피부 얘기가 아니라 그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또다른 언급에 관해서다. 언젠가 그 선생님이 그랬다. 피부는 곱고 수업 시간에 항상 눈은 반짝 반짝 하는 애가 표정에 웃음이 없고 너무 어둡다는 것이었다. 즉, 핵심은 어두울만한 구석이 없을 것 같은 애가 굉장히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남들이 잘모르는 우리 집안의 오빠로 인한 어두운 그늘 때문이었는지, 나의 버르장머리 없던 사춘기 때문이었는지, 아님, 스스로 웃는 내 모습이 낯설고 이상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전 웃으면 얼굴이 이상해요..."라고 말하며 절대 웃으려 하지 않던 드라마 '연애시대'에 나오는 그 꼬마처럼, 나도 그 시절 그런 생각이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언제부터인가, 분명 세계사 선생님에게서 그 말을 들은 이후라고 생각되는데, 아침 저녁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면서 웃는 얼굴을 연습해 보곤 했던게 기억난다. 영 웃는 얼굴이 잘 안되서 입 모양을 쫙쫙 벌리는 연습도 하고 여러가지 모양의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았다. 남들은 웃으면 자연스럽게 웃니가 다 드러나면서 시원하게 웃던데 난 왜 웃을 때 이가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웃니들이 홀딱 드러나도록 입주위의 근육을 훈련시키듯이 종종 그렇게 거울 앞에서 우스운 짓을 했댔던 거다.
그 연습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웃을 때 이가 드러나는 걸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생긴 게 다 그렇지. 뭐, 내 얼굴 보고 밥 못먹을 정도는 아니지 않나'는 생각과 오빠에 대해서도, '그래, 내가 특별한 오빠를 가진게, 나나 오빠나, 우리 식구 누구의 탓도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부터였을까, 사진에 찍히는 낯설고 괴상한 절대 평소 내 맘속에 그리고 다니는 내모습과는 무척 다른 그 모습이 바로 내 진짜 모습들이려니 하고 포기 아닌 포기를 하게 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름다워 보이는 과거의 시간들에 대한 증거로 사진 찍히는 일을 즐기게 된 것 같다.
이런 구구절절한 얘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말이지.....
그저, 저 위의 사진들을 보면, 우리 가족 모두가 세상에 둘도 없이 행복한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나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걸 아닐꺼라고 믿는다. 가끔 그렇지 않은가. 속속들이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춰내지 않고 어떤 사람들의 한 장면, 한 표정만 보았을 때는 진짜 부럽다 싶게 그들이 행복하고 멋지고 굉장해 보이곤 하지 않는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포장된 연애인들의 삶을 동경하는 것처럼. 그건 사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다. 위에 첨부한 사진들 속의 우리도 굉장히 행복한 순간에 있기도 하지만 또한 지지고 볶는 생활 속에서 서로가 맘 상하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아침 일찍 호빵맨과 번개를 데리고 현악기 렛슨을 다녀 오면서 아이들의 버릇없고 섭섭하고 맘에 안드는 행동으로 집에 돌아 오는 내내, 엄마는 제 성질에 겨워 소리 벅벅 질러가며 아이들을 윽박질러 댔다. 아이들은 마치 큰 죄를 지은 사람들 마냥 풀이 죽고, 엄마가 요구하는 '벌'을 받으며 울상이 되었다. 렛슨에서 돌아온 세 사람 사이에 얼음짱같은 한파가 느껴지니 집에서 아이들을 맞던 아빠는 영문을 모르고 함께 살얼음이었다. 이런 한바탕의 괴기스런 광풍이 지나간 후, 아이들은 그야말로 아이들처럼 다시 쌕쌕 즐거운 숨을 고르며 친구집에 수영하러 놀러 갔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집에서 미국식 엄마의 날이라고 번개가 학교에서 써온 엄마를 위한 시와 호빵맨이 엄마를 위해 사준 장미꽃을 보면서 엄마는 성질낸지 한시간도 못돼 '도대체 나란 인간은 왜이럴까'라는 한탄에 빠져 자살 직전의 분위기에 빠져들며 눈물을 글썽이는 거다. 십년 가까이 이런 미치기 바로 직전의 여자같은 부인을 보아온 꼼지는 저녁에 맛있는 걸 먹자며 아이들과 함께 아내를 데리고 나갔고, 엄마와 아이들은 맛있는 저녁 식사 후, 우리집에 미친여자의 발작에 가까운 광풍은 절대 없다는 분위기로 저렇게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의 나는 이젠 길들만큼 길든 웃는 얼굴을 맘껏 내짓고 있다. '네롱~ 우리 행복해 보이지롱~' 라고 사기치는 듯이.
이런, 우리가족의 모습이 사기든 뭐든 무척 행복해 보여 부럽다고? 그렇담, 구십 칠점 구구구 퍼센트 장담하건데 당신의 삶은 내 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많은 행복한 부분을 가지고 있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