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은 내가 하니까 남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못하는데 남이 하는 일은 다 어렵고 대단해 보인다.
최근 몇일 바이올린, 피아노 공개 렛슨을 구경 다니고 음악회를 자주 다녀 오면서 UT 음대에서 악기를 전공하는 한국 사람들을 만날일도 종종 생긴다. 이날 바이올린 공개 렛슨을 받았던, 5월 초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협연을 앞둔 한국 대학원생과 그 동료들 사이에 잠깐 함께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하루가 멀게 연주를 해야 하는 생활임에도, 빵빵한 교수들과 동료 학생들을 코앞에 두고 공개 렛슨을 받는 일이 꽤 긴장되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누구라 할 것 없이 이런 얘기가 오갔다.
"연주하는 일이 해도 해도 참 쉽지가 않죠? 다들 대단해 보여요."
"음악교육학은 공부하는 게 너무 어렵잖아요."
"성악 전공자들은, 그 다양한 언어로 가사를 어찌 다 외워요. 오페라 같은 거... 너무 어렵지 않나요?"
"뭐, 어떤 건 안그런가요. 다 어렵죠..."
물론 음악하는 사람들만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피아노 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우리 번개도 치잖어. 호빵도 치고...) 꼼지는 늘 '경외감'을 표시한다. '열 손가락을 동시에 다르게 움직이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하며.
대신 난 직장을 잡으려고 고군 분투하는 꼼지가 하는 모든 일도 어려워 보이고, 책을 읽으면 그 책을 쓴 작가들도 너무 대단해 보인다. 반면에 내가 하는 일들은 대체로 별 의미도 없고 누구라도 다 할만큼 쉬운 일 같이 느껴진다.
내가 하는 일을 하찮다 여기지 않고 진정과 열을 다하면 정말 하잖은 일이었더라도 의미있는 무엇가가, 이 세상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무엇인가가 되지 않을까. 남과 나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일은 우리의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정당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삶의 양태가 다 각각인데 어찌 내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똑같이 비교할 수 있는가.
그래도 이렇게 자꾸 되새겨 주지 않으면, 그 좋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일로 마음과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때가 있다. 나의 길을, 나의 삶을 살자는 다짐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최근 몇일 바이올린, 피아노 공개 렛슨을 구경 다니고 음악회를 자주 다녀 오면서 UT 음대에서 악기를 전공하는 한국 사람들을 만날일도 종종 생긴다. 이날 바이올린 공개 렛슨을 받았던, 5월 초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협연을 앞둔 한국 대학원생과 그 동료들 사이에 잠깐 함께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하루가 멀게 연주를 해야 하는 생활임에도, 빵빵한 교수들과 동료 학생들을 코앞에 두고 공개 렛슨을 받는 일이 꽤 긴장되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누구라 할 것 없이 이런 얘기가 오갔다.
"연주하는 일이 해도 해도 참 쉽지가 않죠? 다들 대단해 보여요."
"음악교육학은 공부하는 게 너무 어렵잖아요."
"성악 전공자들은, 그 다양한 언어로 가사를 어찌 다 외워요. 오페라 같은 거... 너무 어렵지 않나요?"
"뭐, 어떤 건 안그런가요. 다 어렵죠..."
물론 음악하는 사람들만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피아노 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우리 번개도 치잖어. 호빵도 치고...) 꼼지는 늘 '경외감'을 표시한다. '열 손가락을 동시에 다르게 움직이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하며.
대신 난 직장을 잡으려고 고군 분투하는 꼼지가 하는 모든 일도 어려워 보이고, 책을 읽으면 그 책을 쓴 작가들도 너무 대단해 보인다. 반면에 내가 하는 일들은 대체로 별 의미도 없고 누구라도 다 할만큼 쉬운 일 같이 느껴진다.
내가 하는 일을 하찮다 여기지 않고 진정과 열을 다하면 정말 하잖은 일이었더라도 의미있는 무엇가가, 이 세상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무엇인가가 되지 않을까. 남과 나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일은 우리의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정당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삶의 양태가 다 각각인데 어찌 내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똑같이 비교할 수 있는가.
그래도 이렇게 자꾸 되새겨 주지 않으면, 그 좋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일로 마음과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때가 있다. 나의 길을, 나의 삶을 살자는 다짐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