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인간화와 음악의 윤리성
:
다시 생각하는 민족음악, 민족음악론


김현수, 2007


목차

     글을 쓰며

  1. 민족음악론의 핵심, 그 지향과 방법

  2. 민족음악의 논의 이후 뒤따른 음악 현실의 변화

  3. 오늘 우리에게 민족음악과 민족음악론의 의미

    3-1 다양성을 담보하는 '음악의 인간화'

    3-2 반성적 성찰을 담보하는 '음악의 윤리성'

      글을 맺으며



글을 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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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노동은과 이건용은 <민족음악론> (한길사)을 출간하였다. 하지만 이건용이 그의 음악 비평집 <민족음악의 지평>을 발간했던 것은 1986년이며, 노동은과 이건용이 자리했던 민족음악연구회 준비위원회 주최 학술모임에서 이건용이 “민족음악은 왜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발표했던 것은 1988년의 일이다.1 이 글 속에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민족음악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가 간결하고 명료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제 민족음악론은 20년에 가까운 시간적 축적을 해온 셈이다.

내가 대학을 입학했던 1988년 그 해부터 사십을 바라 보는 지금까지에 해당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민족음악과 관련된 생각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진 적은 있어도 온전히 떠나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이 글의 초고를 4년 전 쯤 썼다. 그때의 나는, 음악에 관한 새지식을 쌓는 것이 일차적인 음악학도도 아니었고, 특정한 음악 양식에 매몰된 음악 편식자도 아니었다. 내 귀는 그저 휘몰아쳐 오는 온갖 다양한 음악에 전보다 한층 느슨하게 열려가고 있었고, 나의 이성은 그 다양한 음악들을 이해하기 위한 분류와 체계를 필요로 했을 뿐이었다. 단지 직관으로서 음악을 받아들이고 개인적 차원에서 좋고 나쁨을 얘기하는 것을 넘어서 근거와 이유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 같은 것 말이다. 그 잣대로서 이미 내 안에 있던 민족음악론을 자연스럽게 되새김질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당시, 그런 나 자신에 대한 깨달음 - ‘사람과 음악을 이해하는데 현재 나에게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필요한가, 민족음악론은 이런 나의 질문에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는 - 특정한 목적도 없이 민족음악론과 관련된 이 글의 초고를 기록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초고 후, 또 몇 해의 세월이 흘렀으나, 초고에 담겼던 내 생각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이 글을 마무리지으면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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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생각의 편린들도 함께 나누다 보면 의미 있는 가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발판삼아 긴 글을 시작한다. 무엇보다, 나에게 주어진 숙제란 자각에서 비롯한 이 글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 대해 다룰 것이다. 첫째, 노동은과 이건용이 표방했던 민족음악론이 담고 있는 궁극적 지향이 무엇이었는가를 현재의 맥락에서 나의 언어로 요약할 것이다. 둘째, 그들이 펼쳤던 민족음악의 논의와 실천이 이후 음악계에 또는 우리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를 간단하나마 명료하게 언급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합의했던 ‘민족음악’이라는 용어와 그 개념이 지금 우리 - 더 구체적으로는 나 - 에게 여전히 되새길만한가를 물을 것이. 나의 글에서 인용되는 민족음악론은 주로 앞에서 거론했던 이건용의 글, <민족음악은 왜 어떻게 하는 것인가> 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2

            어떤 하나의 철학적 담론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것은 개개의 사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안목에서도 참이어야 한다. , 구체성과 일반성을 모두 충족 시켜야 한다. 단지 어떤 특정한 양식으로 된 음악, 예를 들면 한국 전통음악 양식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 뿐만 아니라,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 더 아나가, 공간적으로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느 지역, 어떤 민족, 어느 나라의 음악을 포함한, 전세계적 음악 현상에 대해서도 참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간적으로는 20년이란 세월이 아니라 적어도 몇백년 쯤의 세월 동안은 굳건히 참이어야 역사적 담론으로 논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20세기 말 한국에서 벌어지고 하나의 음악철학론으로서 정리된 민족음악론은 그러한가?

우리가 헤엄치고 노니고 버둥거리는 음악의 강은 차고도 넘친다. 차고 넘치는 강들 사이로, 어느 때, 어느 곳은, 홍수가 난 것처럼 여기 저기서 물난리가 났다고 아우성이고, 또 다른 곳에선 음악의 강이 메말라 최악의 가뭄이 되었다고, 이제 끝장 난 거라고 하소연들이다. 음악의 홍수 속에서든 가뭄 속에서든, 사람들이 그 무수한 강 속에서 건강히 먹고 살 양식을 찾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아비규환 속에서도 눈을 뜨고 살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듯이, 눈 앞에 펼쳐진 음악의 물줄기 속에서 어떤 줄기가 우리의 생명을 키울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음악 사상과 양식이 되어 줄 것인가를 찾아 헤메이는 사람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를 호도하고 휩쓸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인간답게' 살찌울 음악에 대해, 그런 음악이 삶이라는 강 속에 그득 그득 할 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는 사람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바로 그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나는 그들의 방황에 합류하여 앞으로도 오랫동안, 더불어, 함께, 지치지 않고, 민족음악론이 던졌던 질문과 희망을 이어갈 길동무가 되고 싶다. 이 글을 통해 민족음악론이 현재에도 사람과 음악의 정당한 관계를 세우는 인식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결국 민족음악론의 펄떡거리는 생명력을 증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민족음악론의 생명력은 음악의 인간화와 음악의 윤리성에 있으며, 그 두가지는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사람들의 삶과 음악 속에 있으리라는 나의 믿음이다.


1. 민족음악론의 핵심, 그 지향과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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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이 그의 글 <민족음악 왜 어떻게 하는 것인가> 에서 말하는 민족음악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음악의 인간화로서, ‘사람 (민족) 과 음악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려는 운동을 통해서 얻는 음악’이.3 둘째는, 음악의 윤리성으로서, ‘오늘의 (정지된 시점이 아니라 역동적인 현재로서) 음악과 음악현상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 얻는 음악이다. 이 둘 가운데서도 음악의 인간화는 민족음악론의 핵심 개념이다. , 민족음악이 절대음악 또는 순수음악, 또는 다른 그 어떤 다른 음악적 논의와 구분될 수 있는 것은, 민족음악론이 음악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음악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이 목적이 되는 관계를 정립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자유로운 상태 (해방된 상태) 로 창조하는 음악을 지향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4

음악의 인간화 개념 위에서 음악의 윤리성은 민족음악의 지향점이자 동시에 방법론이다. 윤리성은 ‘사람을 위하는 삶’의 관점에서 쉼없이 자신이 발딛은 토대에 대해 - 그것이 형이상학적인 것이든 형이하학적인 것이든 – 반성적,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음악의 윤리성이 민족음악의 지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윤리의 촛점 또는 궁극적 목적이, 사람이 사는 땅 위에 “참다운 음악을 건설”하고 “사람의 살림살이의 올바른 완성”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5 이는 윤리성을 담보해야만 만들 수 있는 음악세상이다. 윤리성을 담보하더라도 과연 우리가 그런 세상을 보겠는가 하는 의심은 있을 수 있어도, 윤리성을 담보하지 않은 채로는 절대 이런 세상이 올 수 없을 것만은 분명하다. 음악에서 윤리성은 오늘의 음악 - 물론 양식적 문제를 포함하여 - 과 음악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을 뜻한다. , 음악의 윤리성을 전제 또는 지향하고, 또한 윤리성을 담보하는 방식 (방법) 을 통해서만 민족음악이라는 지향점 -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람을 살게 만드는 음악’ - 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음악의 윤리성이 민족음악의 지향점이자 방법론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제, 민족음악에 대한 나의 이 간략한 요약이 설득력이 있는지 재확인 해 보기로 한다. <민족음악 왜 어떻게 하는 것인가> 라는 글에서 이건용은 민족음악의 방향과 전망과 관련해 세 가지를 이야기 하였다.6 첫째는 민족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서양예술음악과 그 음악관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양식은 스스로 목적이 되어 추구되는 방식이 아니라 민족의 삶에 옳게 기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이어야 한다. 둘째로, 당대 상업주의 대중음악에 대한 반성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의 고유한 음악적 창조력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셋째는, 민족음악이 한국의 분단상황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분단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한민족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를 나의 두 가지 요약에 근거해 재 정리해 보자. 논의의 핵심을 그러잡기 위해 민족음악에 대한 나의 요약을 더욱 간단히 말하면, 그것은 ‘사람을 위한 음악 (음악의 인간화)’이자 ‘윤리성을 견지하는 음악 (음악의 윤리성)’이다. , 나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민족음악이 형상화할 수 있으며, 이 두 가지 관점이 민족음악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다시 1990년대 민족음악론으로 돌아가면, 이건용이 말한 민족음악을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우리 민족의 삶에 기여하는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서양예술음악과 그 음악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과제의 핵심은 있는 곳은, ‘우리 민족의 삶에 기여하는 예술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것이 민족음악의 첫 번째 지향점이라는 것이다.7 이러한 관점에서 민족음악의 첫 번째 과제가 나의 요약 중 음악의 인간화 문제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서양예술음악과 그 음악관을 극복해야할 첫 번째 과제라고 한 말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민족음악을 위해 변혁해야 할 최종적이자 불변의 대상이 아니라, 당시 가장 크게 우리 민족의 음악적 삶을, 나아가 우리의 일상적 삶을 왜곡하는,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구체적인 한 대상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이건용이 말한 첫 번째 과제의 중심은 ‘우리 민족의 삶에 기여하는 예술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것을 목적으로 삼을 때 ‘서양예술음악과 그 음악관’을 비롯한 다른 여타의 민족음악 건설의 궁극적 목적에 반하는 모든 음악, 음악관, 음악 현상이 극복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두 번째 과제로서 상업주의 대중음악에 대한 반성과 세 번째로 말한 한국의 분단상황을 극복하는 문제는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 관련한 문제다. 나는 이것들이 음악의 윤리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윤리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을 위해’ ‘지켜야 할 도리’다. 이건용은 노래를 통해 노래의 의미와 윤리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8 그는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유로운 노래 행위가 아닌 노예적 노래 행위를 하지 않으려면 “내 부름 (내가 노래를 부르는 일이) 이 사회적인 의사표명의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에의 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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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은 반성의 전제 조건이다. 여기서 인식은 특별히 그의 표현대로 ‘반성적 성찰’이라고 말 할 수 있다.10 실제적 행위 (창작 또는 실천) 에 앞서 그 행위와 관련된 기존의 현상과 사실에 다가가고 (깨달음 또는 인식) 깨달은 현상과 사실을 토대로 그 무엇을 극복할 계기를 만들고 그 계기를 통해 비로서 실제적 행위 (창작 또는 실천) 를 구체화 (형상화) 하는 것을 말한다. 그가 말한 사회적 인식과 윤리적 책임은 음악의 윤리성이란 말 속에 이처럼 하나의 고리로 존재한다. 사회적 정치적 인식 없이 윤리적 책임을 얘기 할 수 없으며, 윤리적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사회적 정치적 인식에 기반한 창작이란 오히려 비현실적인 이야기일 뿐이다.11 음악에서 윤리성의 문제가 통용되는 것을 넘어서 강력한 척도로서 구실하는 것, 오로지 미학적 쟁점, 오로지 정치적 쟁점으로, 또는 오로지 자본의 쟁점음악으로 음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의 쟁점으로 음악을 보고, 음악이 처한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인식하는 것), 그것이 민족음악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따른다면, 적어도 그가 1988년 “민족음악은 왜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서 노동은과 함께 발표한 민족음악의 내용은 이 글의 앞에서 제시한 민족음악의 두 가지 전제이자 핵심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계속)


각주:

1 노동은, 이건용 <민족음악론>, 한길사, 1991.

2 이건용, “민족음악 왜 어떻게 하는 것인가,” 위의 책.

3 이건용, 위의 글, 위의 책, 15.

4 음악의 인간화와 음악에서 자유화와 관련된 논의는 이미 이건용의 <한국음악의 논리와 윤리> (한길사, 1987) 의 서문과 “해방된 음악관의 형성을 위하여”에서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의 논리에 동의한다.

5 이건용, <한국음악의 논리와 윤리>, 한길사, 1987, 서문 참조.

6 이건용, 위의 글, 위의 책, 15-6쪽 참조.

7 여기서 말하는 말하는 ‘우리 민족’에 대해 나는 이것이 결코 국수주적 태도로서 오로지 ‘우리 민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람, 전인류를 염두에 두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와 같은 관점은 이건용의 여러 글에서 강조 된다. 그 한 예로, 그는 위의 글 (위의 책, 11-3) 에서 그가 사용하는 민족주의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김수현, “민족음악운동을 위한 제언” ( <민족음악> 1, 민족음악연구회, 1990) , 특히 116-8쪽도 같은 맥락에서 참고하기 바란다.

8 이건용, “노래의 의미와 윤리,” <한국음악의 논리와 윤리>, 한길사, 198?.

9 위의 글, 위의 책, 206-7.

10 이건용, 서문, 위의 책.

11 이경분의 <망명 음악, 나치 음악> (책세상, 2004) 참고. 이 책은 음악에서 음악가의 사회적 정치적 인식과 윤리적 태도, 그리고 그들의 음악적 삶(또한 음악 자체)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나치의 반인류적 지배에 따른 역사적 사실들에 근거해 보여준다. 이경분은 이 책에서 단순히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가에게 사회적 정치적 인식이 왜 중요한가를, 사회적 정치적 삶 속에서 음악가들의 삶이 어떻게 규정 받을 수 있는가를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 놓았다.


2009/06/25 13:18 2009/06/25 13:18
Posted by 꼼지

한국 지인들 생각

 | 음악
2009/06/24 11:49
이래 저래, 한국 상황이 어수선 할 때면 더욱, 한국에 있는 음악 지인들 생각이 많이 난다.
이름을 다 올릴 수야 없지만, 민족음악연구회 지인들... 물론, 이젠 그도 다 과거가 된 듯하지만...
그 안에서도, 늘 마음 한켠으로 여전히 의지하고, 묻고, 찾고 싶은 사람이 이건용, 노동은 선생님이다.

이건용 선생님은, 나와의 마지막 서신에서, 이젠 '스미는 음악'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계신다고 했었지만, 선생님이 불질렀던 음악과 인간과 그리고 반성의 화두는 적어도 내속에선 여전히 살아 있다. 사람은 변해도, 그 사람이 남겼던 글과 사상은 남는 법이다.
간혹, 두 선생님들의 예전 책들을 뒤적여 보곤 한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도, 얼굴 두껍게 제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사는 것 같은 나 임에도, 선뜻 그 선생님들에게 편지 한 장을 보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무슨 면목으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싶다...

다시 손대었다가 미뤄둔, 민족음악에 대한 글이나 빨리 마무리해서 음악과 편견에라도 올려 놓아야 두서없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정리가 될 듯싶다.
2009/06/24 11:49 2009/06/24 11:49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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