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다 보면 가족 사진은 잘 안찍게 된다. 쑥쑥 커가는 호빵과 번개를 생각하면 그게 꽤 아쉬울 때가 있다. 이번 뉴욕 여행에선 맘에 드는 가족 사진이 몇 개 남았다. 빨강 덕분이다. 확실하고 화끈한 그애는 우리 가족 여행에 '검인' 도장이라도 꽉꽉 찍어 주듯이 심심치 않게 "어디, 사진기 줘봐"를 외쳤다.

멀리까지 차를 타고 여행 한 건 우리 식구에게 처음 있던 일이라서 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사진을 보다 보면 호빵과 번개에도 그랬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한국에서 리오를 타고 몇일 동안 목적지도 없이 바퀴 굴러 가는 곳을 따라 가을 휴가를 떠난 일은 있지만, 하루에 12시간을 넘게 차를 타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땐 아이들이 어렸던 만큼 이번 만큼 여행이 즐거웠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가족 사진을 보니 즐겁다. 그리고 빨강에게 고맙다. 나도 다음에 안내자가 되면 가족 사진을 많이 찍어 줘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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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al Park 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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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al Park 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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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s Square


맨하튼 사람의 물결 속에 묻혀 프리즐도 사먹고 땅콩도 사먹었다. 꼼지와 아이들의 걸어 가는 뒷모습이나 순간의 표정 같은 걸 잡는 건 내 사진 취향이다. 난 사람이 없는 사진보다는 사람이 풍경처럼 담긴 사진이 더 좋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풍경으로 담긴 사진들은 더욱 특별한 여운을 남길 때가 많다. 두고 두고 볼수록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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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뉴욕 여행은 원채 우리의 여행 경향이 그렇듯이, 특별히 계획되고 준비된 게 아니었다. 여행가기 일주일 전쯤인가 식탁에서 습관처럼 내가 말을 꺼냈고, 꼼지의 "그러지 뭐..."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빨강이네 전화를 건게 다였다. 그래서 꼼지에게 고맙다. 하루 건너 밤을 새던 이번 학기 막바지에, 오고 가는 이틀을 운전으로 바쳐야 하는 여행을 그러자고 했으니 말이다. 미시건으로 이사 온 직후부터 심심찮게 '뉴욕 뉴욕' 노래를 불렀던 내 압박을 못이겨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뭐였든, 여행 내내 꼼지가 예쁘고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사십을 넘어서서 그런건가... 꼼지와 여행 동안 싸우기는 커녕 서로 '이쁘다' 하며 다녔으니 길게 살아볼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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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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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ire State Building lobby


2010/09/14 10:08 2010/09/14 10:08
Posted by 꼼미
사진기와 아이폰에 각기 남겨진 뉴욕 여행의 사진 잔해들을 컴에 담아 다시 곱씹어 보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그래 보았자 어디가서 자랑도 못할 만큼의 짧은, 이틀의 일정이었는데 그 이틀 사이에 내 맘에 품어진건 너무 많았다. 사는 거에 대한 기대가 이젠 별로 없듯이 여행에 대한 기대란 것도 기상천외 한 것 따윈 더이상 없으니까, 그저 이렇게 살아서 보고 듣고 만나는 그 모든게 새롭고 애틋하기만 한건지도 모르겠다.

그 뉴욕 사진들을 보는데 지난 여름 방학 시작 즈음에 '애완 동물'이랍시고 큰 맘 먹고 산 물고기 사진이 눈에 들어 왔다. 숫컷 구피 두 마리를 샀는데 뉴욕 다녀 오는 4일 동안 얘들이 굶어 죽지 않고 살아 있을까 가장 먼저 걱정이 됐다. 다행히 아직은 두놈 다 잘 살아 있어서 부엌에서 일하는 동안 심심치 않게 쳐다보며 씨잘데 없는 얘기도 나누고 한다.

그 물고기 사진을 보며 흠, 잘 살아 있어... 흠흠, 하는데, 12시간 동안 차를 몰아야 했던 뉴욕 가는 길에 아이폰에서 들은 윤상의 <소심한 물고기> 생각이 또 났다. 트위터에서 운좋게 알게된 아가씨 (분명 아가씨일터) 가 윤상의 '새 노래들' 몇개를 내게 열심히 보내 주었더랬다. 그걸 이번 여행 동안 알차게 들었다. 생각 난 김에 그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 봤는데 없네.

소가 뒷걸음치다 뭐 잡은 격이라고, 윤상의 소심한 물고기를 검색어에 넣었더니, '<처음으로> 뉴욕 물고기'라는 노래가 나왔다. 뉴욕과 물고기라...

비디오 시작의 피아노 도입이 인상적이라 내친김에 노래까지 들었다. 노래하는 아저씨가 내가 아는 그 누구와 너무 닮아서, 처음엔 그 선배가 홀딱 미쳐 작곡 스타일을 완존 바꿨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니어서 안심 반, 실망(?) 반. 어쨌든, 결론은 이 예상치 않은 노래를 끝까지 들으면서 꽤 대단한 발견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는 거다. 이 사람 음반도 냈나? 좀 더 찾아 봐야겠다.

근데 왜 이름이 하필, 뉴욕 물고길까? 시덥잖은 궁금증이 인다.

<처음으로> 뉴욕 물고기


<Like A French Movie/왜 자꾸 눈물이> 뉴욕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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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0 17:23 2010/09/10 17:23
Posted by 꼼미
난 대학 때 제주도로 가는 수학여행도 안갔던 사람이다. 내가 대학 때는 우리 집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맘만 먹으면 여행을 다닐 수 있었을 나이에, 난 피아노 레슨으로 용돈을 벌고 학교에서 탈 수 있는 장학금을 타려고 음대 신문 기자도 하고 학점도 열심히 따려고 했다. 음대 외에 민족음악연구회도 들락거리던 시절이었고 당시 사회상황도 대학생이라고 한가롭게 국내외 여행을 다닐 분위기가 아니기도 했다. 여행이라고는 10박 11일의 농활 (이걸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마는)을 포함에 기껏해야 지방 출신의 친구나 동아리 후배들에게 신세 지면서 그들의 고향에 따라 내려가보는 정도였다. 수학여행을 안간 건, 이런 당시 주변 여건 외에도 피아노 전공의 과친구들보다는 운좋게도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도서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있었겠다. 말 그대로 '가난'했던 꼼지 역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 형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꼼지와 나는 신혼여행으로도 남들 다 가던(아니, 그렇게 보이던) 제주도를 가는 대신 설악산을 택했다. 가난한 주제로 결혼을 한 우리들에겐 신혼여행비를 아껴서 살림에 보태 쓰는 게 더 합당해 보였다. 신혼여행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것 같던' 제주도 여행은 그후로로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다. 엄마가 아프시고 어쩌면 엄마의 생애 마지막 선물이 될꺼라며 언니가 제안하고 계획 했을 때에야 그 흔한 이름, 제주도엘 갈 수 있었다. 호빵과 번개가 다 자란 아이들이었던 그 때가 꼼지와 나에게는 생애 첫 '제주도' 여행이었던 거다. 다른 여행들도 그렇겠지만, 그 제주도 여행은 내가 죽을 때까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생의 귀한 기억이 되었다.

꼼지와 내가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한 것은 유럽 호텔팩 여행이다. 꼼지가 직장을 옮기면서 생활에 묶이지 않은 '돈과 시간'이 생겼더랬다. '이 귀한 돈과 시간을 여행에 써버려 말어....' 역시나 적지않은 번민이 따랐다. 파리와 로마에서 짧게 머무르고 돌아오는 여행이었는데, '아니 제주도도 안간 주제에 유럽을 가다니, 우리 주제에 이래도 돼는 건가?!'라며 둘이서 하루에도 몇번씩 '가, 말어'를 반복 했다. 언니와 엄마의 적극 설득과 후원이 없었으면 저지르지 못했을 일이었다. 결국은 어린 호빵과 번개를 엄마에게 떠맡기고 단둘이서 확 떠났더랬다. 이 여행으로 내가 배운 건, 시간에 쫒기고 사는 게 빠듯해도 어디든 갈 수 있으면 가는 게 좋은 거다라는 것. 여행 예찬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생겼을 땐 뒤돌아 보지 말고 어디로든 떠나라'란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덕분이다.

어느 곳인가 여행 비숫한 걸 가려고 하면 이처럼 대학 때 가지 않은 수학여행과 '제주도' 생각이 꼭 떠오른다. 여행은 꼼지와 나에게 뭔가 굉장히 '분수에 넘치는 행위'였던 것 같다. 여행 자체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 여행에 대한 관념이 그랬던 것 같다는 말이다. '뭔가 좀 더 급박하고 필요한 곳에 돈을 쓸 수 있는데, 빠듯한 시간과 생활비를 축내면서 여행을 가나?" 뭐 이런 생각 같은 거 말이다. 이런 생각은 멀지 않은 곳으로 하루나 이틀의 짧은 여행을 계획할 때도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든다. '나가면 돈인데... 난 또 나가면 더 많이 먹잖아.... 이런 거 절약하면 빚도 더 빨리 갚고, 더 안정되게 살 수 있지 않나..." 하는 잡생각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 늘 벌어도, 늘 빠듯했다. 늘 뭔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았고 새로운 비용을 더하려 하면 부담이 되었다. 결혼 하면서는 항상 빚이란 게 따라다녔다. 언제나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생활. 그 빚은 마음에 자리잡은 돌덩이와 다름 없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다.

아직도 우리 부부에겐 버는 것보다 써야 할 게 많고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나의 욕망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갚아야 하는 빚도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정도로 많다. 꼼지는 학기 막바지로 여전히 바쁘고 아이들은 다음 주면 개학이다.

....

이 와중에,

뉴욕 여행을 계획 중이다. 신세를 지기로 한 댁은 빨강이네다.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준비 할 건 아무 것도 없다. 꼼지 말대로, "돈만 있으면 돼...^^"다. 시카고를 처음 갔을 때가 떠오른다. 꼼지 컨퍼런스 덕에 큰 돈 들이지 않고 묵을 수 있었던 호텔 주변을 아이들과 함께 낮선 동네를 낮선 사람들을 쳐다보며 걸어 다녔던 그 시간들. 이번 뉴욕 여행도 시카고 여행만큼만 되어 준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이곳 저곳 발길 가는 곳으로 낮선 곳을 걸어 다닐 때마다 우리의 건조해진 심장에선 새 피와 새 기운이 일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2010/08/30 13:00 2010/08/30 13:00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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