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왕창 굽기 30분
피아노 2시간
바이올린 2시간 반
육개장 만들기 1시간 반
깍두기 담그기 1시간

생각해 보니 점심을 걸렀고 밤은 금새 왔다.
저녁 먹고 바이올린 쪼금 더 하고 설겆이 하고 부엌을 정리하니 11시가 넘었다.
원래는 책을 좀 읽을 생각이었는데, 오늘도 침대 위에서 한 쪽도 채 못 넘기고 자겠다 싶다.
그동안 읽어 오던 무신론 책이 반쯤 넘어 읽어도 너무 재미가 없어서 어젯밤 완전히 던져 버렸다. 그리고선 얼마전 충동 구매 해두었던 밀란 쿤데라의 수필집 The Curtain 을 시작했다.

밀란 쿤데라의 아버지, 음악적 귀가 남달랐던듯. 음악에 대한 이해도 보통 수준을 훨씬 웃돌았던 듯. 이 책은 시작부터 쿤데라의 문학을 넘어선 전체 예술에 대한 일갈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샀고 그래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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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each of Picasso's paintings for itself, but I also love the whole course of his work understood as a long journey whose succession of stages I know by heart. In art, the classic metaphysical questions - Where do we come from? Where are we going? - have a clear, concrete meaning, and are not at all unanswerable."

겨우 4쪽에 펼져진 내용이다. The Consciousness of Continuity 란 제목 아래 베토벤과 자기의 아버지 이야기로 시작한 짧은 이야기는 피카소와 예술의 본질로 마무리 된다.

한 사람의 그림이나, 한 사람의 음악이나, 모두, 한 사람의 생애와 같다. 출생부터 죽음을 포괄하는. 그리고 그건 바로 한 사람이 살아가는 찰라이기도 하다. 이 생각이 내가 저 글에 사로 잡혔던 이유다. 쿠키와 육개장과 깍두기들 사이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끼어 드는 나의 일상은 결국 나의 전 생애 중 한 찰라일테니, 거꾸로 따라간다면 그건 나의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하는 걸까..... 뭐 이런 희한한 생각들.

어쨌든, 다음에 따르는 제목은 History and Value 다.

2010/10/15 23:37 2010/10/15 23:37
Posted by 꼼미

아직은 8월

 | 하루
2010/08/23 09:26
8월이 가려면 한 주 하고 이틀이나 남았는데 아침 저녁으로 춥다. 일상의 공기가 변하면 사람의 호흡도 따라서 변하는 법, 찬바람이 느껴져서 그런가 뭔가를 다시 새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한다. 이런 느낌은 나뿐만이 아닌 듯, 오늘 아침, 호빵이 다 자란놈처럼 아빠의 '기상' 소리에 두말 않고 번개를 데리고 아침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한편, 나에게 살아 갈수록 즐겁고 낙이 되는 일은, 뜻없이 책을 읽는 일이다. 누구와 함께 있지 않아도 외롭지 않아서인가. 아침 한시간 소리내어 책을 읽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초등학교 오륙학년 쯤 되었을 때였나, 책상 위에 책을 양손으로 받쳐 세워 놓고 소리내어 국어책을 읽어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참을 한 후에는, 국어 시간에 지목되어 일어나 소리내어 책을 읽는 일조차도 즐거웠다.

몸도 건강히, 정신도 건강히, 여전한 바램이다.
2010/08/23 09:26 2010/08/23 09:26
Posted by 꼼미

하루가 너무 짧아

 | 하루
2009/12/16 13:08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어느 겨울방학을 맘잡고 책만 본 적이 있다. 그때 '대지'와 '아들들'을 비롯해 양이 만만치 않아 미뤄어 뒀던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미 얘기한 적이 있던가? 아침 먹고 소파에 비스듬이 누워 '아들들'을 너무 재미있게 읽던 그 순간이 또렷이 떠오른다. 그렇게 내내 책을 읽다가 엄마와 점심을 먹고 그러고 또 오후 내내 책을 봤다. 그 방학은 내 생애의 그 어떤 방학보다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재밌고 멋지게 보낸 방학으로.

요즘의 내 나날들도 내 인생을 통털어 그런 순간으로 남아 줄까?

최근, 재미있는 책들을 한꺼번에 읽느라 즐거운 가운데 너무 바쁘다. 보통은 한 네 다섯권의 책을 두고 돌려 읽는 편인데 (나의 산만한 성격 탓이기도 하다), 최근엔 그 수가 아무래도 열권은 훨 넘어 가는 듯하다. 게다가 꼼지가 읽고 있는 책들에 대한 얘기로 식탁을 달구다 보면 그 수는 스무권까지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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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학교갈 때 같이 아침 먹고 책읽다 보면 악기가 조금 하고 싶어져 악기 연습 좀 한다. 화장실 다녀 오다 책이 보이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고 그러면 지금처럼 어느새 점심이다. 점심 먹으며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된다. 아이들이 오면 간식거리를 챙기고 함께 얘기를 좀 하다가 간단한 저녁거리를 만들어 놓고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또 만진다. 그리고 저녁 먹고 치우고 씻고 다시 침대 위에서 책읽다 눈이 아퍼 깩깩거리다 잔다.

참, 내 인생에 이런 꿈같은 날도 오다니....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집안에 틀어 박혀 혼자 노는 내 생활에 그 어떤 방해자도 없고 비판자도 없으니 말이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밖에 나가지도 않는다 (장보러도 거의 안가고). 그저 집에 혼자 틀어 박혀 밥먹는 마루와 책읽는 방과 배설하는 화장실만 들락 거리는데도, 직장에서 하루종일 종종거리는 사람이라도 되는 마냥, 심심할 새가 없이 바쁘기만 하다. 게다가, 꼼지도 나도 간만에 새로운 책의 향연에 빠지다 보니 눈뜨자마자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서로 읽고 있는 책얘기 세상얘기로 수다가 한아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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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덕분에 하루에 꾸준히 조금씩 하던 번역도 한 이틀째 손을 놓았으니, 오늘부턴 다시 시간에 대한 감을 회복해야 겠다. 점심먹고 오늘은 의무적으로 번역을 하기.
2009/12/16 13:08 2009/12/16 13:08
Posted by 꼼미

모방과 질투

2009/11/08 11:48
사람은 모방과 질투의 동물이라는 말을 늘 절감한다.
그는 또다른 그를 모방하고 또다른 그는 다른 그를 질투한다.
다시 또다른 그는 그를 모방하고 그는 다시 또다른 그를 질투한다.
매일 매일 이 원초적 본능을 확인하면서
그래도 동물이기보다는 사람으로 살게 하는 건,
모방 속에서 나의 길을 찾고, 질투의 마음 속에서도 포용하려는, 노력 그 자체일꺼라는 생각.

바바라 스트라이젠드와 몇개의 바르톡 음반을 포함해 싼값에 할인하는 음반들을 꽤 많이 사들이고, 그것들을 들으면서 최근에 산 <The New Atheism> 과 <This is Your Brain on Music> 을 재미나게 읽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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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된 무신론자가 되보자는 마음과 음악에 관한 다양한 관심에 불을 지펴 보려 함이다. 더불어 틈틈히 <20세기 작곡가 연구> 를 관심있는 작곡가들 위주로 정독하고 있다. 번역이 아닌 한국어본 서양작곡가 연구서로 무척 감사할만한 문헌이라는 생각이 읽을 수록 든다. 특히, 바르톡을 읽으면서는 이 연구가 참고한 번역에서 그대로 가져온듯한 많은 부분이 조금 거슬리기도 했지만 바르톡에 관한 이정도의 집중된 연구라도 어디인가 싶어 저자와 편집자에게 고마운 마음 가득이었다.

이런 최근의 독서들이 재미나고 흥미롭고 잘 읽히며, 또한 나의 생각과 마음을 자극한다. 좋은 일이다. 감사하다.
2009/11/08 11:48 2009/11/08 11:48
Posted by 꼼미

보이지 않는 스승

 | 하루
2009/09/01 12:36
초등학교 시절 나의 스승은 엄마가 사주셨던 50권의 세계명작 전집과 세계 위인 전집, 그리고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신나게 뛰어 놀았던 친구들이었다고 해야겠다. 아버지는 회사일로 바쁘셨고 어머니는 다정했지만 종종 우울하셨으며, 언니는 이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가는 나이였고, 오빠는 내가 싫어도 돌보아줘야 하는 상대였다. 중학교 시절 나의 스승은 단연 마당문고가 아니었을까.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기만 했던, 그래도 충격적이었던 니체와 가브리엘 마르께스는 가끔은 포기하고 가끔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동문서답을 해대 '내가 이것들을 계속 믿고 따라야 하나'하는 회의를 주는 세속과는 거리가 먼 도인들 같기만 했다. 그리고 친구들. 내게 그런 책을 읽게 했던. 더불어 언니의 일기와 언니가 보러다니던 연극들, 그리고 시집들. 그것들이 지속된 건 질리도록 외롭다고 느꼈던 예고시절이다. 그때의 스승은 단연 헤르만 헤세라고 해야겠다. 그 단조롭고 무의미하고 외로웠던 시절,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만 붙어있으면 뭐라도 읽어 댔다. 중학교 시절 언니가 "이런 건 좀 한번 읽어라..."며 던져 주어 손에 잡았던 이후, 족히 세 네번은 줄까지 벅벅 그어가며 읽었지 싶은 데미안과 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 헤세 에세이, 수레바퀴 밑에서 등등등. 그리고 시집들. 내가 특히 빠졌던 시인들은 김정환, 황지우, 양성우, 김남주,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모두 언니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것들이었다. 대학때 스승이라면, 아무래도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와 철학 서적들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용과 노동은, 그리고 민족음악연구회 사람들. 그리고 내가 마주했던 음악과 세상.

내 인생의 스승이라는 게 결국은 내 곁에 머물러 지식을 가르치고 교정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보이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나를 자극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끝없이 묻게 하고 끝없이 답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주는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이 나의 스승이 아니었나.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나의 스승은 내가 목적없이 주기적으로 들리곤 하는 몇 개의 블로그들이다. 그것도 모두 우연한 경로로 찾아들게 된. 오늘은 그 블로그들이, 도덕과 윤리학의 차이를, 쾌활함과 쾌감에 대한 사회적 정의를, 모순적이게도 슬픔이나 아픔, 통증 같은 것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과 가능성을, 세상은 계속 움직이고 사람들은 소리없이도 계속 계속 싸워가고 있다는 것을, 내게 말해 주었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는 보이지 않는 스승들이다.

오늘 오전은 이렇게 스승들과의 대화(?)로 보냈으니, 이제서야 씻고 하루라는 밥그릇 채우러 일어나야 한다.
2009/09/01 12:36 2009/09/01 12:36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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