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너머로 오늘 분량만큼의 눈이 나리고 저쪽 버려진 공터로는 개와 더불어 눈밭을 산책하는 사람이 보인다.

2009년의 마지막 날. 시계를 7시에 해놓았지만 몸을 일으킨 건 10시가 넘어서였다. 여전히 생활에 게으른 내가 죽도록 미워지는 순간이다. 어떻게 나이 사십이 되어도 건강하고 성실하게 사는 법을 이토록이나 터득하지 못하는 걸까.

아이들과 남편에게 알아서들 아침 뱃속을 채우라는 말을 남기고 <번역의 탄생>을 펴고 혼자 오트밀로 아침을 때웠을 땐 11가 다 되어 있었다 (시어머니가 혹여 날 미워하신다해도 사실 난 아무런 변명거리가 없다). 호빵과 번개는 식탁 앞을 차지하고 앉은 엄마 옆을 지나 제각기 알아서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조용히 스크램블을 해먹고 맛있게 일어났다. 그걸 보며 '난 정말 한심하고도 이기적인 엄마'란 생각이 차올랐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목석 마냥 다시 묵묵히 책으로 눈을 들이 밀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희재는 <번역의 탄생>의 서문과 1장 '직역과 의역의 딜레마'에서 남의 말을 왜 나의 말에 걸맞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힌다. 이희재가 밝히고 주장하는 내용은 늘어질만큼 늘어지고도 핵심은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와 대비된다. 고종석의 주장은 대체로 말이란 원래 '감염'되듯 뒤섞이는 것이니 우리 말의 전통과 관습을 의식적으로 지키려는 건 억지 (민족적 보수주의 또는 수구주의)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희재의 관점은 모나지 않으면서도 타당하고 분명하다. 그리고 고종석의 결론과는 다르다. 그는 균형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모자른 다른 한쪽을 보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직역보다 의역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런 거시적 배경을 제 나름대로 의식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직역주의 자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사실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제가 존중하는 직역주의는 어떤 절실함이 바탕에 깔린 마음입니다. 가령 중국의 루쉰 같은 작가가 보였던 모습입니다. 루쉰은 중국이 열강에 먹힌 것은 봉건 전통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전통과 결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루한 습속에 물든 중국어도 뜯어 고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직역이라는 어려운 길을 골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루쉰도 번지르르한 새 어휘를 나열하면서 허세를 부리는 당대 지식인들은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저는 한국의 직역주의에서는 루쉰의 절실함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직역주의는 자기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보다는 그저 원문을 무작적 우러러보는 종살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의 탄생>, 33-4쪽)"

이희재는 프랑스, 영국, 미국이 자국어의 중심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보수적이고 수구적'이었는지를 말한다. 그 나라들이 지녀온 모국어 중심주의 전통이 어떤 역사적 배경과 맥락과 인식을 통해 정립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프랑스, 영국, 미국 출판물의 번역 비중은 10퍼센트를 훨씬 밑돌며, 번역된 글은 '마치 본래 영어 (또는 불어)로 쓴 글처럼 가능한한 모국어식으로 번역(사실은 재서술) 하는 전통이 뿌리 박혀 있다는 설명이다. 그 정도는, '가능한한 토박이'말을 주장하여 우리에게 종종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북한의 언어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즉, 이희재가 설명하는 프랑스와 영국과 미국의 너무 심할 정도의 '자국어화'를 보면 북한과 도낀 개낀 아냐 하는 생각이 자연 든다는 거다.

"사실 제가 보기에도 영미권 출판사들이 원문을 지나치게 길들이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가령 프라하를 무대로 한 체코 작가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거리 이름도, 다리 이름도, 사람 이름도 전부 영어식으로 바꾸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번역의 탄생> 21쪽)"

한편, 이희재가 풀어 놓는 각기 다른 번역전통에 대한 이야기, 특히 영어권의 번역 전통에 대한 소개는, 풍류음악를 설명한 한국어 해설을 영어로 번역하고자 끙끙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큰 응원이 된다.

처음, 내가 국악음반 해설을 영어로 옮기는 일을 시작할 때 친구 데니엘이 보여줬던 그 황당한 표정과 조언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애의 평가는 '일단 이건 영어가 아니므로 이해불가'라는 것이었다. 낯선 한국음악에 한국음악용어는 문장 곳곳에 출연하는데도 그걸 한국어 원문의 느낌과 표현방식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원문의 단어 끼어 맞추기식의 번역을 한 것이었으니 '번역체'의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않는 미국인의 한사람으로서 그애가 느꼈을 당황스러움이란게 어떤 것이었을지 두고 두고 생각이 나는 거다. 데니엘이 계속 강조한 것은 이런 거였다.

"원어 (한국어) 를 읽고 나서 네가 이해한 바를 영어로 다시 써봐. 가능하면 문장을 길게 늘이지 말고 짧은 문장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쓰는 게 좋겠다. 원문에는 없더라도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내용이 있다면 편안하고 쉬운 설명을 덧붙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는, 다 된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봐. '영어로' 들리는지..."

어쨋든 '철저한 영어화'의 전통에서 글을 읽어 온 데니엘이 내 '번역투' 영어를 읽었으니 그걸 영어라고 생각했을리 없다 (그런데, 한국어 영어번역에는 정말 이런 번역이 많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번역체'가 있으니 영어에도 '번역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채 번역하는 거다. 나 또한 그걸 요구 받았고 스스로도 헛갈려 했다. 그래야 하는겨, 말아야 하는겨?).

반면 한국의 외국어 '자국어화'는 이런 국가들과 정반대 극단에 서 있다는 게 이희재의 생각이고 나 또한 크게 공감하는 바다.

"한국이 서양어를 본격적으로 직접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부터입니다. 거의가 영어책이었지요. 그런데 영어에 대한 경외감이 너무 심해서인지 의역보다는 직역을 중시했습니다. 그런 풍토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괄호를 쳐서 그 안에 원어를 집어넣는 관행입니다. 예를 들어 그냥 '자유주의'라고 번역하면 될 것을 굳이 '자유주의 (liberalism)'라고 번역하는 풍토입니다. 학술서일수록 그런 경향이 심하지만 일반인이 읽는 신문에서도 그런 식으로 번역을 하고 심지어 논설도 그렇게 쓰는 지식인이 아직도 많습니다. '현실 정치'라고 하면 될것을 굳이 '현실 정치(real politics)'라고 씁니다. 직역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원어까지 밝혀주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원문을 옮기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게 됩니다.(<번역의 탄생>, 29쪽)"

얼마전에 읽은 씨네21에 내놓라 하는 기자의 대화기사에도 이런 말로 질문을 하고 있어 황당했던 적이 있다.

"김혜리: <무한도전>은 팬덤이 활성화된 대표적 프로그램입니다. 얼마나 피드백을 하시나요?"
난 아직도 저 위의 질문 위에 있는 '팬덤'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나 피드백을 하시나요'란 말을 하면 알아듣고 그에 대한 제대로된 대답을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고 만약에 그게 가능한 현실이라면 그 현실이 황당하게 느껴진다. 씨네21은 말그대로 대중지다. 대중들이 읽고 즐기는 잡지. 지금의 대중들은 저런 말을 스스럼 없이 쓰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아님 대중들을 향해 저런말이 '대중적'인 말이라는 인식을 퍼뜨리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어느쪽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예를 들어, feedback 은 피드팩, tip 은 팁, diaspora 는 디아스포라, 심지어는 valet parking 은 발렛 파킹이라고 쓰는게 일상화한 듯하다. valet parking이란 말을 나는 미국에 와서 그것도 교통사고로 병원을 오가며 처음 들었다. 하지만 미국에 온지 1년이 조금 지난 분이 나는 한국에서 전혀 써본 적이 없는 다양한 영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어로 쓰는 걸 보면서 대화의 주제와는 상관없는 전혀 딴 방향에서 혼자 입속이 씁쓸했다. 이희재 역시 지적했듯 이젠 소설가들 조차도 현대 소설을 쓰면서 영어식 표현이나 단어를 그대로 쓰지 않으면 촌스럽고 격에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될 정도가 된 거다.

한국음악 해설을 영어로 옮기는 일을 계속 하게 되면서 데니엘의 충고를 매번 되새기는 나를 본다. 기억하건데, '내 번역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면서 나 또한 청탁자인 홍이에게 몇번씩이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던 것 같다.

"한국원문이 그대로 영어로 옮겨질꺼라는 기대를 버려 주라. 노력은 하겠지만, 내가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은, 읽는 영어권 언어민이 이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거다. 필요하면 문장의 순서도 바꾸고 문단의 순서도 바꿀테다. 없는 설명을 첨가해서 넣을 수도 있고 아귀가 맞지 않는 원문의 설명은 내 스스로 고치거나 빼고 다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원문이 요구하는 내용을 담도록 노력하겠다."

처음에는 그런 내 뜻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게 쉽지 않았고 데니엘이 감수했던 내 첫 번역에 홍이가 낯설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건 영어권 이들을 위해 새로 쓴 글에 가까웠다. 하지만 홍이와 나 사이에서 이제 그런 단계는 생략된 듯하다. 홍이는 별다른 말 없이 아직도 나에게 띄엄 띄엄 번역거리를 넘겨 주고 나는 아무런 전제없이 기꺼이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언어와 언어 사이의 내식대로 투쟁을 계속하면서 말이다.

지금 나는 풍류음악에 대한 우리말 해설을 영어로 옮기고 있는 중이다. 초벌 번역을 대충 끝내고 인쇄를 해서 원문은 제쳐두고 영어로 옮겨진 것만을 가지고 새로움 싸움인양 덤벼든다. 초벌 번역에서 고민을 한다고 했는데도 다시 읽으면 꼬이고 비틀어지고 전체 의미와는 맞지 않게 단어대 단어로만 끼워진 부분이 자꾸 나타난다. 다시 원문을 보고 다시 그 뜻을 내 머리로 옮긴 후, 그걸 영어로 표현하는 그 세 단계를 모두 새롭게 고민해야 하는 일도 계속된다. 이제 얼추 번역이 끝났다는 홀가분한 기분은 온데 간데 없고 오늘 내일 내로 이걸 마감시킬 수 있을지 회의가 밀려 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이 고종석에게 받았던 실망감을 치유해 주고 날 위한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주어 한결 힘이 난다. 나에게 우리말글에 대한 지식인의 정당하고 상식적인 관점을 보여 주는 점에서 이희재의 책은 이제 내 서고에서 이오덕의 <우리말글 바로쓰기> 연작이나 리영희의 여러 저작들의 계보를 이어 오랫동안 스승이자 동지가 되어 줄 듯하다.

그나저나 31 마감은 지키지 못할듯. 2009년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간다. 홍이와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2009/12/31 16:53 2009/12/31 16:53
Posted by 꼼미

BLOG main image
by 꼼미

공지사항

카테고리

전체
일상
영화 드라마
논제
책읽기
음악
공연
취미
하루
자료
정치 사회
번역
먹는 일
여행, 구경
영화
번역
음악교육

최근에 받은 트랙백

달력

«   2012/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Total : 52160
Today : 14 Yesterday :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