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앤아버 (Ann Arbor) 에 있는 현악기 상점, 샤뮤직 (Shar Music) 에 갈 기회가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번개의 바이올린도 내 바이올린도 줄이 튕겨 나가는 등 손볼일이 생겨서다. 그곳에 간 김에 벼르던 바하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악보집도 큰맘먹고 사왔다. 누가 돌보기라도 하듯, 바로 그 때 호빵의 옛 첼로가 팔렸고 그래서 좀 여유가 생겼다. 30불 (4만원이 넘는...)이나 했으니 정말 큰 맘 먹은거다.
길 샤함이 앙콜로 연주하는 파르티타 3번 (마장조, s.1006) 중 '가보트와 론도 (Govotte en Rondeau)' 를 우연히 접했을 때, 이 악보집을 구하리라 마음 먹었다. 스즈키 5권까지 곡들을 어느정도 마친 상태라, 내가 바이올린 전문 연주자가 될은 아니니,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집 하나만 있어도 평생의 바이올린 공부는 차고 넘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최상의 동반자가 되어 주리라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맙고 고맙게도 언니가 보내준 책들 목록에 있던 진회숙의 <클래식 오디세이>에도 바하의 이 작품집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녀가 언급한 건 길 샤함이 연주한 그 곡은 아니다. 같은 작품집에 있는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 (Ciaccona)' 다. 그녀는 이 바흐의 무반주 샤콘느를 앙드레 오데의 <무지칸트>의 일부와 파리라는 도시, 그리고 프랑스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를 오가며 이야기 한다. 나도 이 영화음반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는데, 그녀의 말처럼, 실제 연주자는 '귀신같은 바이올린 주자' 기돈 크레머 (Gidon Kremer)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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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의 바하 무반주 곡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악보집을 평생 공부해보자는 생각에 더욱 힘을 얻는다. 그리고 애초에 의도 했던 것처럼 '가보트와 론도'부터 당장에 연습을 시작했다. 겸손하게 악보를 한 음 한 음 읽어 내며 한 줄이라도 제대로 소리내기는 것부터 시작한다. 듣기에는 간단해도 소리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단 한 악절이라도 좋은 소리로 연주하면 (주제 부분) 그건 바로 '음악'이 된다. 그만큼 곡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바로 외워가려고 노력한다. 다행이 외우는 것에 젬병이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긍정적일 수 있는 것은, 외워야할 것이 피아노곡보다는 훨씬 쉬운(!) 선율선 하나라는 거다.^^ 그러면서 가끔 '샤콘느'도 힐끔 거려 본다.
선생없이 독학하는 바이올린 공부에 유튜브의 공짜 비디오는 정말 공산(!)적이다. 길 샤함의 연주를 기본 교재로 선택하기로 했다.
파르티타 3번의 '가보트와 론도'는 마장조 (E major) 로된 가볍고 깔끔하면서도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론도의 주제는 후렴처럼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에 금방 실증이 느껴지면 끝이다. 그런데 이 주제는 들을 수록 귀엽고, 맛갈스럽고, 정겹고, 아름답고, 풍부하고, 끊없이 새로운 영감을 준다. 이 주제는 각기 다른 부분들과 만난다. 주제 사이 사이에 끼어드는 새 부분은 모두 다르다. 그러니까 딱 한번씩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음악의 내용은 주제와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때론 아주 다르기도 하다.
말하자면, 회전목마 같다. 내 사랑하는 아이가 타고 돌고 있는 회전목마의 제일 돋보이는 말 (그 어떤 말을 타고 있어도 내 아이가 타고 있으면 돋보이겠지만서도), 그러니까 그 말이 주제가 된다고 하자. 그 말은 회전목마가 돌고 도는 가운데 보이고 또 보인다. 그때마다 나는 내 아이와 그 말에게 손을 흔드는 거다. '엄마 여깄다~~~~' 하면서. 이게 전형적인 론도 형식이다. 우리 아이가 탄 회전목마가 지나가면 각기 다른 말이 온다. 때론 어두운 색을 띠고 있기도 하고, 때론 좀 더 화려한 색채로 꾸며져 있기도 한 말들다. 내 아이가 탄 주인공 말, 그러니까 이 곡의 주제이자 첫 악절은 언제나 그리고 동시에 회전의 시작이기도 하고 끝이기도 하다. 이 곡에서 처음 첫 주제부분은 두 번 반복된다. 반복하는 동안 더 익숙해지라는 뜻이다. 우리 아이를 좀 더 오랫동안 보고 싶은 마음처럼.
내가 이 곡을 배우는 동안 교과서로 삼기로 한, 길 샤함의 이 앙콜 연주는 굉장히 편한하게 연주됐다. 진회숙이 언급한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의 주인공 아르몽이 지하도에서 연주하는 것의 현실판 같다. 아무런 가식도 포장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어떤 새로운 장식음도 더하지 않았다. 마치, 어느 술집에 간 뛰어나 바이올린 연주자가 객들과 더불어 얼큰하고 기분좋게 취한 자리에서 요청받아 연주하는 것 같다. 그런 점이 나의 호감을 샀다. 그러므로, 그의 정식 연주에서 간혹 느끼는 표현의 과다함이나 악구가 불필요하게 끊어지는 일도 없다. 곡은 그야말로 허름한 공원의 회전목마와 더불어 풍겨 나오는 소박한 음악처럼 돌고 돌며 흘러간다. 사실 이 곡 자체가 과도한 표현이나 심각한 과장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곡을 연주하는 길 샤함의 담담함과 편안함이 오히려 곡과 연주 모두의 가치를 높이는 것 같다.
위의 것은, 이 곡의 비디오를 찾는 동안 유튜브에서 찾은, 같은 곡을 연주하는 다른 연주자의 비디오다. 에스더 김 (Esther Kim) 이라는 젊은 (이 비디오에서는 꽤 어린) 바이올린 주자의 연주다.독주회의 목록의 하나로 넣은 듯 하다. 분명, 기본적인 연주 수준이 보통을 넘어선다. 나는 잘 몰랐지만 꽤 촉망받는 연주자가 아닐까 싶다. 이 곡을 너무나 깔끔하고 정성을 다해 연주하는 그의 표현법과 태도도 예사롭지 않다. 첫 주제가 두번째로 반복될 때 에스더는 새로운 장식음들을 붙였다. 기교적이고 화려한 효과를 내고 있다. 그의 연주회에 잘 어울려 보인다. 전체적인 빠르기도 조금 느리게 잡았지만 주제와 새부분 사이에 충분한 여백을 두어 젊은 혈기에서 느껴지곤 하는 서두름을 없앴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곡 전체가 말했듯이, 무척 깔끔하고 정돈되어 보인다.
좋은 두 교재로 공부하게 되었으니 기쁘고, 같은 곡을 다른 두 사람 (연륜도 나이도) 이 한 사람은 앙콜로, 다른 한 사람은 본연주로 연주 한 이 자료들을 찾아 또한 기쁘다. 비교해 들어보는 재미가 꽤 컸다. 물론, 그래도 난 길 샤함의 투박하기까지 한 앙콜 연주를 내 주교재로 삼을 마음은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난 술집 분위기 연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