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 도착해 어제는 Chicago Symphony Orchestra Hall 에 연주회를 보러 갔다. 말만한 남자놈들 셋을 몰고 갔는데 호빵은 파고든 발톱을 수술한 까닭에 발이 아프다고 난리였고 나머지 두 놈들은 배가고프다고 징징댔다. 주황과 나는 그 와중에도 낄낄대는 놈들을 애써 무시하며 우리의 시간을 즐겼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우리 뱃속으로 내놓은 사내놈들을 데리고 다시 공연장에 와 앉다니. 그것만으로 우리 둘은 감격해서 그 무엇도 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듯하다. 주황과 함께 있으면 늘 과거와 현재가 한데 뒤섞여 남다른 감회에 젖게 된다.

연주회는 잘 봤는데 피곤함이 가시질 않고 계속 어지러웠다. 의사가 권한대로 철분제를 먹어야 할 모양 같아 결국은 철분제와 비티민 C를 사다 오늘 처음으로 하루 한번 복용을 했는데 그 길로 소화가 안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래층 위층 밖을 오가면 뛰고 난리인데, 그 와중에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누워 있다가 결국은 속이 부대껴 쪽잠도 이루지 못한채 산책을 나섰다.

한국을 갈 생각에 흥분을 해서인건지 철분제를 먹어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기운이 쭉쭉 빠지고 다리는 갑자기 아프고 속은 꽉 막힌다. 속이 내려갈때까지 걷자 생각하고 주황네집을 멀리 돌아 나서는데 바람이 여전히 차다. 이젠 정말 봄이어야 하고 지는 해도 다정해 보이기만 하는데도 막상 주위를 둘러싼 공기는 여지없이 차갑다. 주황의 두툼한 겨울 코트를 입고 그 코트 속으로 손을 감추었는데도 파고 드는 공기를 떨쳐내기 어려웠다. 그래도 큰 숨을 들이키며 조용한 시카고 외곽 동네를 한참 돌고 오니 한결 나아졌다.

집으로 돌아와 찬바람에 치를 떠는 주황을 몰아 세우며 창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집안으로 들어온 찬바람이 갇혀 있던 공기들을 밀어내고 가라앉았던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 같았다. 혼자 걷는 동안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졌던 것 같다. 내가 소녀 일때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밤새 집을 몇 채나 짓고 부수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그만큼 앞선 생각이 많아서 잠조차 이루기가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생각은 생각을 쌓아 나간다. 그렇게 생각이 앞서 나가다 보면 결국 그걸 감당할 수 있을 힘을 상상속에서조차 잃게 되어 지레 겁먹고 포기하고 주저 앉게 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정신적 부담을 받아 병이 나기도 한다. 그 때의 엄마 나이가 된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도 그런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일어 나지도 않은 일에 두려움을 갖고 아프고 싶지 않다. 아니, 아프고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며 살고 싶다. 그러고 싶다.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4월에도 차갑기만한 시카고의 찬바람에 맞서 혼자 이십여분의 산책을 하며 들었던 생각일 뿐이다.

2011/04/01 00:48 2011/04/01 00:48
Posted by 꼼미

빨강부부의 건강비결

 | 하루
2010/04/28 14:51
결혼 전, 무지개 친구들이 미국에서 만난적이 있었다. 빨강과 주황이 미국에 살고 있을 때고, 기묘와 초록이 그들을 만나러 미국으로 갔다. 난 그때 그애들과 동행하지 못했다. 왜그랬을까. 바쁜 일상을 자르고 가기엔 내가 붙잡혀 있던 매일의 삶이 꽤 치열하기까지 했을 뿐아니라, 동맹이라기 보단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그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갈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나에게 그만한 큰 돈이 없었다는 것도 큰 이유 중의 하나였고. 그러면서도 친구들과 더불어 목적없는 일정 속에서 목적없는 수다를 떨지 못했다는 것이 살면서 두고 두고 서운했다. 특히, 기묘가 남겨온 사진들을 함께 보면서 가졌던 외톨박이의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있다.

그 서운함을 다 씻어 버리자는 기대감이 너무 컸던 걸까. 2004년 미국에 온 후 몇년 간 같은 미국 하늘 아래서도 전화 상으로 밖에는 안부를 주고 받을 수 없었던 빨강과 주황 가족이 우리집에 머문 일박 이일의 일정은 너무 짧았다. 게다가 난 급기야 체하기까지 했다. 결국 그애들이 떠나는 길조차 제대로 배웅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던 거다. 이런 불상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생은 아쉬움의 연속인건가.

뉴욕에서 세 아들을 끼고 이틀에 걸쳐 차를 타고 온 빨강은 도착한 날 밤, 나와 새벽 세시까지도 다하지 못한 수다를 나눴다. 돌이 채 안된 막내를 업고 새벽에 다시 일어나야 했던 그애는 한 세시간 남짓 잠을 잤을까. 난 병이 나고 말았는데 그애는 펄펄한 기운으로 아이들을 끼고 다시 이틀 간의 일정으로 떠났다. 중학교 때도 언제나 씩씩하고 활기찼던 그애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삶에 속기' 보단 '삶을 지휘하며' 살고 있는 듯했다.

한의학과 침술을 공부하고 있는 그애의 남편에게 우리가 물었던 씩씩한 두 부부의 건강비결에 대한 답은 이런거였다.

빨강남편: "부부가 손을 꼭잡고 20분간 하는 산책이지요. 매일 하면 더 좋겠지만 일주일에 사일만 해도 효과가 크지요."
주황남편: (특히 아침에는 기를 못쓰시는 분) "근데 부부가 왜 손은 잡아야 하나요?"
빨강남편: "그래야 부부의 기가 서로 통해서, 더 좋거든요."
모두: "아하!!"
빨강: "그래서 우린 유모차 끌고 애들 다 데리고 아침이나 저녁에 자주 산책하지."
나: "으흠! 내가 산책하면서 다리가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것 같았던 건 진짜였군!"


'부부 또는 가족이 함께 20분간의 산책을 자주 하는 것이 최대의 건강 비결'이라는게 우리가 그날 다시 배운 중요한 삶의 지혜였다. 잦은 산책은 부부와 온 가족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동시에 지켜내는 보약이라는 것.

우리의 다음 만남이 정말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부지런히 산책해서 소중하고 즐거운 만남을 깽판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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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말: 아이들 사진은 호빵과번개 블로그에 더 있다.

2010/04/28 14:51 2010/04/28 14:51
Posted by 꼼미

8월 아침 산책

 | 하루
2009/08/04 14:01
혼자 걸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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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히 걷다 보니,
우리 살던 파주 그 동네 생각이 많이 났다.
아파트 주위로 논과 얕은 숲들이 둘러싸고 있던.
어린 하늘 바다와 즐겨 걷던 그 길들.

생각이 나 그 사진들을 예전 꼼지락에서 옮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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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이 아름다웠던 아파트 꼭대기 17층 노을 풍경.
이 풍경을 보며 애들 재우고 혼자 맥주 까마시고 그랬다....ㅋ
2009/08/04 14:01 2009/08/04 14:01
Posted by 꼼미
주황이 우리집에 온 다음날, 우리 모두는 앤아버에 사는 친구의 친구 부부 집으로 놀러 갔다. 이 부부가 사는 집은 미시건 대학 (University of Michigan) 안에 있는 학교 아파트다. 이 부부가 우리 가족과 맺은 인연은 좀 특이하다. 친구의 친구 남자는 주황의 대학 동기동창이었고, 친구의 친구 여자는 기묘의 대학 동기동창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와는 평생 인연이 없었을지도 모를 부부다. 하지만, 내가 미시건에 오게된 이상, 이 부부를 만나게 된 것 운명일 수도 있다. 필연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을. 주황과 기묘가 나의 둘도 없는 친구들이고, 이 부부가 그 친구들과 현재까지 연락을 이어가면서 소식을 전하고, 또 종종 만나는 사이였으니 말이다.

이 부부의 안내로 학교 버스를 타고 교정 남쪽과 북쪽을 돌아 보았다. 앤아버의 미시건 대학은 텍사스의 A&M 이나, UT at Austin 보다 더 미국 대학 (?) 같은 모습이었다. 교정의 잔듸는 텍사스 것보다 훨씬 보드랍고 걷고 뒹굴기 좋았다. 건물은 훨씬 고풍스러웠다. 학교 아파트가 교정 안에 있다는 것도 학생들을 더욱 배려한 마음이 아닌가 싶었다. 사계절이 있는 날씨 덕택에 사람이 편하게 거닐 수 있는 인도들도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친구의 친구 여자의 말에 따르면 도서관 안도 편안하고 고풍스럽다고 했다. 자료도 잘 갖추어져 있어서 일본에서 일문학 박사과정을 한 그녀가 이 대학 일문학과생들을 위해 갖추어 놓은 문헌들 덕택에 원하는 일문학 자료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동갑내기 사람들과 이렇게 대학 교정을 때론 묵묵히 때론 즐거운 대화로 걷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쇼핑센터도 아니요,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다. 애들에게 학구열을 고취 시키기 위한 관광도 아니다. 그냥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나이 먹은 우리들은 우리들 대로 머릿속을 텅 비우고 공간과 시간을 어슬렁거리는 기분으로 보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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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운전을 해준 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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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5 16:07 2009/07/25 16:07
Posted by 꼼미

아기와 화초

 | 취미
2009/05/15 16:00
아침 산책을 시작한게 2주째 계속되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셈이다. 그동안 비오는 날도 없었으니 하늘도 나를 도운 셈이고. 이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와서 전처럼 잠 속에 다시 허우적 거리지 않는다. 뭐 억지로 아침잠을 포기하는 모양새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아침 산책을 하게 된다. 가끔은 귀에 i-pod 도 꽂지 않고 그냥 새소리를 듣거나 아침 바람을 맞으면서 조용한 아파트의 공기속을 산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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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2주 동안의 아침 산책에 힘이 된건 나의 화초들이다. 봄이 시작될 무렵 벼르고 벼르던 흙을 사다가 화초 분갈이를 했더랬다. 키우던 것들을 겨울 동안 많이 잃었고 남은 것이라야 그저 말그대로 꽃나무는 없이 화초 화분 몇개 뿐인데 그 중 기특하게도 잘 자라던 가장 큰 잎이 넙적한 화초를 세 개의 화분으로 분양했다. 더불어 지난 여름 휴스턴 아저씨네 갔을 때 얻어 온 것들도 제대로된 화분에 옮겨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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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흙갈이나 화분 갈이를 하고 나면, 이 놈들이 마치 부모 떨어져 딴세상에 나온 것들처럼 몸살을 하며 움직임을 멈춘다. 죽어가고 있는 건지 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 시간이 거의 어떤 놈은 거의 한 달 이상이 걸리는 것 같다. 기껏 좋은 곳으로 옮겨 주었더니 하는 내 마음이 안달이 나게, 그것들은 기를 못펴고 아픈 모양새로 새들 새들 하는 것이다. 아침보다 저녁에 더 죽어가나, 어제 보단 오늘이 더 죽어 가나, 조바심 나도록.....

그런데 고 놈들이 잘 견디고 살아 나기 시작하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모습으로 자라나기 시작한다. 마치 엄마 뱃속으로 나온 아기의 100일 동안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이 말이다. 소록 소록 돋아나는 새순과 포동 포동 물이 오르는 그 모습을 생각하면 아침에도 눈이 번쩍 떠진다. '오늘은 밤새 얼마나 자랐으려나, 간 밤에 물이 너무 적지나 않았을까, 간 밤에 너무 습기가 많았던 것은 아닐까....' 쓸데 없는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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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씨앗들을 0.99불에 사와서 쏟아 부었는데, 겨우 나오는 건 화분 하나에 싹 한 두개. 그래도 나온 놈이 있으니 이 어찌 아니 기쁠소냐...


그렇게 그 아기같은 놈들을 하나씩 찬찬히 살펴 보는 게 하루 아침의 일과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일과는 내 아침 산책과 건강을 돕고 있는 것 같다. 아기는 더이상 가질 수 없을 것 같으니 이렇게 할머니처럼 화초랑 정붙이며 살아 갈까 한다. 가끔 화초에게 말을 하는 내모습을 보는데, 물론 웃기지만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그 자연스러움에 더 놀라는거다...ㅋㅋ
2009/05/15 16:00 2009/05/15 16:00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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