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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08 네 편의 영화를 보다

Dancer in the Dark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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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와 관련해 개봉 당시 (한국에서였다) 기묘 (중학교때부터 현재까지 변치않는 친구관계를 맺고 있는 이에 대한 새로운 별칭) 랑 전화를 통해 간간히 나누던 의례의 그 세상에 대한 무기대와 무관심을 가장한 대화 와중에 끼어 들었던 짧은 대화를 뚜렷이 기억한다.

"나, 어둠 속의 댄서 너무 보고싶어."
"나도"
"그런데 보고 나면 너무 마음이 괴로울 것 같아서 말야..."
"나도"

아무리 뮤지컬이라지만 그 기괴하고 끔찍한 킹덤 (1997) 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만든거라면 편안한 영화일리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기묘와 나의 그 간단한 공감 후, 난 이 영화를 언제간 꼭 볼 테지만 언제 보게될지는 모르는 영화의 목록 위에 올려 놓고 있었다. 기묘는 이 영화를 보았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확인해보지 않아 모르겠다. 이번에 기회가 되면 물어봐야 겠다.

영화는 예상했던 것만큼(!) 비극적이고 가슴 아프고 슬펐다. 그 말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과 비슷했다는 말과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만큼 비극적이고 가슴 아프고 슬프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말했듯이, 뮤지컬이고 사운드 오브 뮤직을 비롯해 헐리웃 뮤지컬들의 화려한 영상을 틈틈히 재료로 쓰지만, 등장하는 인물들도, 카메라의 촬영 방식도, 뮤지컬 영화의 핵심인 음악도, 이야기의 전개와, 특히 그 결말은 헐리우드 뮤지컬과 다르다. 상상과 환상이 현실 사이를 오가면서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각성제가 되는 건 같지만 라스폰 트리에 감독의 이 영화는 많은 것을 집요하게 묻는다. 이민자에게 미국은 꿈의 나라인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친절한 이웃은 늘 천사인가, 장님이 되어가는 사람에게 삶은 무엇인가, 아이에게 더욱 필요한 건 엄마였을까 장애 없이 사는 세상이었을까, 고정된 사회와 그 속에서 적응된 사람들이 보고 생각하는 세상 그게 다일까 등등. 이런 질문공세에 내성이 생긴 사람들에게 감독은 영화와 음악이라는 도구로 같은 질문들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다시 자극하고 찔러대는 거다.

세상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인물로서 셀마는, 이민자, 장애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이자, 살인자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달콤 상큼하고 아름다우며 시적인 노래들과 달리 셀마가 환상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부르는 노래들은 우리의 편견에 반박하지만 어둡고 음울하며 제한되어 있다. 단단한 주류 사회의 껍질을 깨고 나아갈 수 없는 자신의 실존과 닮아 있다. 뮤지컬 주인공들은 행복해지지만 어둠속에서 춤을 추는 셀마는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잔인하고 혹독하게 처형될 뿐이다. 영화에서 윤리라는 건 영화에게 그 어떤 사회적 윤리적 공식에 의거해서 쌈박한 옳고 그름을 가리며 답을 제시하라는 주문을 하는 게 아니다. 영화가 얼마나 현실을 잘 관찰하고 포착했는가, 그리하여 관찰하고 포착된 것들을 전체 맥락 속에서 흐트러지지 않게 끈질기게 보여주고 (또는 묻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표현이던, 추상이던, 초현실이던, 기교와 기법에 관계없이, 관찰 대상을 집요하고 거짓없게 반영하고 그것을 얼마만큼 창의적으로 예술적인 형상화를 이루었는가에 관한 문제다.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춤 (내식대로의 번역) 은 영화의 윤리를 반영한 예술 영화다.

까뜨린드 드뇌브 (Catherine Deneuve) 와 데이빗 모오스 (David Morse) 가 아주 적절한 (더도 덜도 없는) 조역으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부언할 바 없이, 이 영화에서 쎌마의 역을 맡은 브조크(Bjork) 에 대해 갖게되는 관심은 영화 출연 후 그가 받았던 찬사가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질 만큼이다. 부조크는 주인공이었을 뿐 아니라 영화에 담긴 노래들의 작곡자다. 이 영화가 출연한 첫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라는데 그의 연기나 음악은 감독의 명성만큼이나 눈에 띌만큼 '대단'하다. 이 뮤지컬에서 브조크가 만드는 음악은, 아이버슨 (Iverson, 2006, 아래 참고문헌) 이 잘 분석했듯, 장님이 된 셀마가 타인에 의해 그려지는 상투적 대상으로서 장애인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독자적인 존재성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 점에서도 이 뮤지컬은 그야말로 'music'컬이고, 그러한 음악극으로서 이 영화가 이룬 업적은 반드시 기억할만 하다.

고백하듯 말하자면, 영화가 사회에게 또 나에게 위와 같은 질문이 던질때 나는 당혹스럽다. 그게 자연스러운거라고 스스로를 보호해보려 해보지만 그런 질문들에 무심하고 아무렇지도 않을만큼 뻔뻔해지지도 못한다. 그것이 이 영화를 보고싶되 피하고 피하고 싶은 이유였을 것이다. 마치 이런 질문이 내게 던져지고 그에 대한 답을 강요 받는 자리에 서야할 것 같아서. 그런데 영화가 나를 그런 곤혹스러운 자리에 세울 때 난 그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느낀다. 셀마를 통해 감독은 셀마가 처형되기 전 부르는 노래 후, 다음과 같은 자막을 올린다.

사람들은 이게 마지막 노래라고 말하죠
사람들은 당신이 보고 있는 우리를 몰라요
이건 마지막 노래가 아니예요
우리가 마지막 노래라고 할 때
그 때 마지막 노래가 되는 거죠.
(They say it is the last song, They don't know us you see, It is only the last song, If we let it be)

참고문헌: Iverson, Jannifer. Dancing out of the dark: how music refutes disability stereotypes in Dance in the Dark. Ed. Learner, N and Straus, N. J. Sounding Off: Theorizing Disability in Music. 2006. NY: Routledge. 이 영화의 음악과 관련된 좋은 논문이다. 혼자 읽고 말기엔 아까운 논문. 번역을 할까 생각 중인... 다 읽고 나서 저자를 보니 UT 음악이론 박사수료생이다. 지금쯤 열에 십 졸업을 했겠지만. 그럴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운좋게 만날 기회가 있으면 네 논문이 참 좋았다고, 재미있게 읽었다고, 잘썼더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La Vie En Rose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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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사랑의 찬가 (Hymne A L'amour) 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에디트 삐아프의 일생을 그린 프랑스 영화다. 내가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배경에는 이 처절한 사랑 노래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어쨌든, 이 영화가 그 포스터처럼 그저 아름답고 슬픈 여가수의 일생을 흥미롭고 재미나게 그리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오산이다. 라밤바 (1987) 보다도 재밌지 않고 조니 캐쉬 (Johnny Cashy) 에 대한 영화 Walk the Line (2005) 만큼 흥미롭지도 않다. 그럼에도 라밤바보다, Walk the Line 보다 인상에 남는 영화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가지 수다스럽고 부산스럽고 어지러우며 많이 추하고 상당히 예술적이다. 미국영화가 아니라 프랑스 영화란 게 이해가 간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에디뜨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의 눈썹은 희안하고, 그녀의 자태는 어디 뒷골목 여깡패에게서나 볼 만한 것들이며, 늙어 가는 그녀는 병들고 추하고 짜증나기까지 한다.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아홉 살 소녀의 그 장면을 빼고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는 건 그나마 제대로 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 잠시다.

오히려 그녀보다 아름다운 것은 그녀가 노래로 밥벌어 먹기 위해 동료와 함께 숨이 턱에 차도록 오르는 몽마르뜨 언덕과 그 거리다. 길거리에서 술로 목을 축여가며 아무렇게나 부르는 그 노래에 귀 기울이고 돈을 던져주는 그 사람들이다. 술집에서 화가난 채로 채념한 채로 반항하듯 사람들에 섞여 잡가를 부르는 에티트의 노래를 듣고, "이렇게 듣기엔 너무 아까운 노래였어"하는 그 말이다.

듬성 듬성 숱빠진 탈색한 머리를 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채로 사람들에게 객기를 부리며 여전히 까탈스러운 에티트는 고집스런 할머니 이하도 이상도 아닌 그런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모두 좋았다. 모두 제대로 아귀가 맞는다는 생각이었다. 길다랗게 말로 부연하지 않고도 왜 에티트의 노래에 프랑스 샹송의 신파적이면서 동시에 시적인 가사와, 소박하고도 동시에 예술적인 음율들의 깊은 울림이 담겨 있는가를, 왜 그녀의 노래와 삶이 사랑이라는 말로 대변될 수 있는가를 지나친 채색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누더기 같던 삶에서 받았던 지극히 짧고도 누더기 같기만 했던 사랑들 - 함께 살던 창녀, 아버지, 후원자,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친구, 애인 - 속에서도 마지막 그녀가 부른 노래는 '지나간 삶을 후회하지 않으리라'이고 죽음의 문턱에서도 떠올리는 건, 아버지가 건넸던 작은 여자인형이다.

마이 파더 (My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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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에 기반한 영화다. 이 영화와 관련해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은 대니엘 헤니와 김영철의 연기다. 그리고 미군부대 안에서 펼쳐지는 한국군들과 미국 지원병들의 갈등의 파편들이다. 조연들과 조역들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지금 다시 영화를 되새기는데도 눈물이 난다.

김영철의 그 광기와 따스함이 공존하는 눈빛들이, 감독에 의해서 과장없이 하지만 무척 세심하게 배려된 배경들과 함께 잘 어우러지는 주인공, 대니엘 헤니의 내면적 갈등이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영화를 보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큰 화면에서 저들을 보아야 했을 것을...

영화는 잠깐 잠깐 아주 조금 진부하고 미국의 환경과 한국의 현실이 극대비되는 것 같은 (사실, 영화가 왜곡한 것은 없었다고 생각하지만서도) 분위기 때문에 마음이 껄끄럽긴 하지만 아무것도 부자연스러운 것은 없을 뿐아니라 재미와 감동을 오랫동안 간직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그래도, 영화 끝자락에 담긴 실화의 주인공 애런 베이츠의 사색이된 얼굴이 더 마음 아팠던 것은 사실이다. 현실은 이렇게 영화보다 쓰리고 아리다.

아내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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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원작 소설도 '작품' 또는 진지한 '예술'로서 이 주제를 쓰진 않았을꺼야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소설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세속의 평가를 믿어 두기로 한다. 하지만 영화는, 맞어, 언제라도, 그 어떤 문제도 그저 '장삿속'으로 부드럽게 포장해서 가볍게 넘겨버릴 수 있는, 그런 매체였지 하는 것을 다시 확인해 주는 것이 이 영화다.

왜냐하면, 영화를 다 본 후 남은 것은 분명 찝찝함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예쁘고 섹시하고 완벽한 손예진과 평범한 듯하면서도 충분히 매력있는 김주혁의 그 알콩달콩 울긋불긋한 장면들을 질리도록 보았는데도, 뭔가 느끼한 것만 잔뜩 먹여놓고 비싼 값을 치루게한 식당을 속은 기분으로 나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도대체 뭐에 속았던 걸까, 이 영화는 나에게 무얼 속였을까 하는 마음에 내내 찝찜했다. 그런데도 내가 속은 것들을 낱낱히 분석해볼 만큼의 오기조차도 이 영화는 주지 않았다.

그저 그런 마음으로 우연히 영화평론가 황진미의 영화평을 읽은 후 막힌 마음이 뻥 뚫렸다. 황진미의 '꼴보수 마초이즘'이란 평은 내 감상에 따르면 이 영화에 대한 아주 적절한 평이다. 가장 적절한 분석이자 해석이자 평가다. 그 중에서도 아주 맘에 드는 분석은 두 가지. 이 영화는 결혼이 갖는 불평등성이나 여성의 욕망에 대한 질문으로 위장하고 사실은 남자에게 '이런 여자 참아 줄래 말래'를 묻고 있는 거라는 그 지적에 아주 동감했다. 즉, 이 영화에서 여자는 남자들이 꿈꾸는 또다른 수퍼우먼의 환타지였을뿐 진정한 자신의 욕망은 아무데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만일 남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여자의 욕망일수도 있잖아요 하고 말한다면 할말 없음이다).

주인공 여자는 자신의 본류의 욕망과 의지를 잃고, 또는 스스로 포기, 또는 포기 당하고 (역시 결혼과 더불어) 그저 남자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에 책임과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는 거다. 또 한가지는 이 영화가 결혼은 미친 짓이다 (2002) 보다 그래도 세 가지 점에서 진보적이었다는 평가다. 그것은 한 걸음 더 현실적 문제들을 영화로 끌여들였다는 점인데, 그게 영화의 주제가 아니라 영화의 판매에 아주 꼭 필요한 만큼뿐이었다는 것은 읽어보지 않아도 알테지만.

영화비평 전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4001&article_id=53962
2009/02/08 12:28 2009/02/08 12:28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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