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밀린다. 나한텐 좋은 징조다. 바쁘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보내는 거, 나한테 좋은 일이라고 믿는다. 일하기 싫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이던 홍이가 이번 유럽 공연을 마치고 오더니 나에게 계속 일감을 안겨 주고 있다. 내가 아직도 (?) 그애를 도울 일이 있다는게 오히려 신기하고 기쁘기도 (?) 하다.
홍이와 관련된 일은 대체로 번역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결국 기본적으로는 내가 과거에 잠시 몸담았던 글을 쓰거나, 글을 교정 보는 일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홍이와 뜨문뜨문 일을 할 때마다, 예전에 그애와 함께 모임 회보를 밤새 작업하던 날들의 기억이 차오른다. 사람들에게 앙칼지고 단호한 목소리로 원고를 요청 (? 강요 또는 협박이라고 하는 편이 나으려나...^^:) 한건 언제나 홍이였고, 묵묵히 컴퓨터 앞에서 편집작업을 하던 건 송이였으며, 프린터된 원고들을 비틀고 주무르는 건 나였다. 그걸 즐기면서 일했던 그 시절, 마감 와중에도 단합을 핑계로 함께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그랬다. 서로 먼 곳에서 6년이란 세월을 보지 못하고 지내었어도 그 세월의 주름을 한치도 느끼지 못할만큼 우리의 대화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 없다. 홍이와 일을 하는 기쁨은 아마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멀리 사라져 버렸다고 믿었던 과거가 그애와 더불어 고스란히 재현되는 느낌 말이다.
그러니까 홍이가 맡기는 일들 속에서, 영어를 한글로, 한글을 영어로, 단어와 문장을 생각하고, 고치고, 다듬다 보면, 아이들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이건 정말 좀 잘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만서도), 비정규적 음악선생이자 연주자 (?) 로 살고 있는 내가, 문득 다시 주제 파악도 못하고 설쳐댔던 과거의 나로 돌아 가는 것 같아 몰래 몰래 기분이 좋아진다 (이건 좀 비밀인데.. ^^:). 아직도 글을 쓰고 고치는 일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는 게 나에겐 그러니까... 말하자면.... 영광스러운 (이건 너무 과장인가...) 게다. 그래서 일을 주는 홍이에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한다. 나의 부족함을 아니까 말이다.
여직도 욕심이 많아서 이렇게 이 일, 저 일, 손대며 산다. 1월에 있을 번개의 리사이틀 피아노 반주도 맡아 놓고,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를 하면서, 어른 현악 앙상블의 리더 아닌 리더를 차고 앉았으면서, 모자른 영어 실력 우리말 실력으로 번역까지 한다고 욕심을 낸다. 아주 우스울 정도의 글재주로 남의 글을 고친다고 다듬겠다고 덤빈다. 무엇하나 정말 제대로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 무엇도 놓지 못하고 산다. 이런 일들을 하며 살 때, 내 안의 생명줄이 살아 꿈틀거리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그 맛을 놓지 못하기 때문인 거다.
어쨌든, 이렇게 바쁜척 해도, 놀 시간도 없을만큼 바쁜 건 아니다. 밥은 하루 한끼만 해도, 노는 일은 하루 세번 이상씩은 있어야 하지 않나.^^ 노는 일은 나에겐 (나에게 좋은 게 아이들에게도 좋은거고 말이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심지어 페이스북에 올라 오는 새 소식들까지도 다 챙겨 보면서, 간간히 짬짬히 드라마도, 영화도, 한국책도, 영어책도 보고 읽으면서 그렇게 바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