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얻는 기쁨

 | 하루
2010/12/10 00:27
일이 밀린다. 나한텐 좋은 징조다. 바쁘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보내는 거, 나한테 좋은 일이라고 믿는다. 일하기 싫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이던 홍이가 이번 유럽 공연을 마치고 오더니 나에게 계속 일감을 안겨 주고 있다. 내가 아직도 (?) 그애를 도울 일이 있다는게 오히려 신기하고 기쁘기도 (?) 하다.

홍이와 관련된 일은 대체로 번역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결국 기본적으로는 내가 과거에 잠시 몸담았던 글을 쓰거나, 글을 교정 보는 일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홍이와 뜨문뜨문 일을 할 때마다, 예전에 그애와 함께 모임 회보를 밤새 작업하던 날들의 기억이 차오른다. 사람들에게 앙칼지고 단호한 목소리로 원고를 요청 (? 강요 또는 협박이라고 하는 편이 나으려나...^^:) 한건 언제나 홍이였고, 묵묵히 컴퓨터 앞에서 편집작업을 하던 건 송이였으며, 프린터된 원고들을 비틀고 주무르는 건 나였다. 그걸 즐기면서 일했던 그 시절, 마감 와중에도 단합을 핑계로 함께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그랬다. 서로 먼 곳에서 6년이란 세월을 보지 못하고 지내었어도 그 세월의 주름을 한치도 느끼지 못할만큼 우리의 대화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 없다. 홍이와 일을 하는 기쁨은 아마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멀리 사라져 버렸다고 믿었던 과거가 그애와 더불어 고스란히 재현되는 느낌 말이다.

그러니까 홍이가 맡기는 일들 속에서, 영어를 한글로, 한글을 영어로, 단어와 문장을 생각하고, 고치고, 다듬다 보면, 아이들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이건 정말 좀 잘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만서도), 비정규적 음악선생이자 연주자 (?) 로 살고 있는 내가, 문득 다시 주제 파악도 못하고 설쳐댔던 과거의 나로 돌아 가는 것 같아 몰래 몰래 기분이 좋아진다 (이건 좀 비밀인데.. ^^:). 아직도 글을 쓰고 고치는 일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는 게 나에겐 그러니까... 말하자면.... 영광스러운 (이건 너무 과장인가...) 게다. 그래서 일을 주는 홍이에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한다. 나의 부족함을 아니까 말이다.

여직도 욕심이 많아서 이렇게 이 일, 저 일, 손대며 산다. 1월에 있을 번개의 리사이틀 피아노 반주도 맡아 놓고,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를 하면서, 어른 현악 앙상블의 리더 아닌 리더를 차고 앉았으면서, 모자른 영어 실력 우리말 실력으로 번역까지 한다고 욕심을 낸다. 아주 우스울 정도의 글재주로 남의 글을 고친다고 다듬겠다고 덤빈다. 무엇하나 정말 제대로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 무엇도 놓지 못하고 산다. 이런 일들을 하며 살 때, 내 안의 생명줄이 살아 꿈틀거리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그 맛을 놓지 못하기 때문인 거다.

어쨌든, 이렇게 바쁜척 해도, 놀 시간도 없을만큼 바쁜 건 아니다. 밥은 하루 한끼만 해도, 노는 일은 하루 세번 이상씩은 있어야 하지 않나.^^ 노는 일은 나에겐 (나에게 좋은 게 아이들에게도 좋은거고 말이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심지어 페이스북에 올라 오는 새 소식들까지도 다 챙겨 보면서, 간간히 짬짬히 드라마도, 영화도, 한국책도, 영어책도 보고 읽으면서 그렇게 바쁘다.
2010/12/10 00:27 2010/12/10 00:27
Posted by 꼼미

출퇴근

 | 하루
2010/11/09 11:06
올 5월에 이사 온 우리집은 2층집이다. 아래층엔 부엌과 거실, 간이 화장실 하나, 그리고 내 공부방이 있고 위층엔 방 4개와 화장실 2개가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집에 살고 있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매일 매일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에게 내가 사십되어 이렇게 좋은 집에서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 드려야 하는데 그게 원통하기도 하고 해서 그런거다.

층계를 되도록 오르락 내리락 거리지 않으려고 아침에 눈뜨면 어디 나갈 사람처럼 옷입고 전화기랑 가방 챙겨서 아래층으로 내려 온다. 아래층에 내려오면 위층에 올라 갈 일이 생겨도 미루고 쌓아 두다가 되도록이면 저녁에 올라 갈 때 다 처리하려고 한다. 물론 저녁에 올라 갈 땐 전화기랑 가방들을 다시 다 챙기고 아래층 불 다끄고 올라 간다. 일단 한 번 올라가 씻고 누우면 거의 내려 오지 않는다. 꼭 내려 올 일이 있으면 꼼지나 아이들을 목터지게 부른다 (아님, 애들이나 꼼지에게 전화해서 시키거나...^^) 어느날부터 이런 나의 행태를 꼼지와 나는 출퇴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꼼미 퇴근 안하시나?...." 이렇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의 출근. 아래층 내 '사무실'에 나왔다. 몇일 전 홍이가 몇백년 만에 영어번역 감수 일을 떨궈줘서 그걸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대부분은 악기 연습하고, 집안 서류들 정리하고, 할 일 정리하고 하지만, 그래도 일이 생겨서 오랜만에 책상 위가 잔뜩 어지러져 있으니 오히려 활기가 느껴진다. 역시 사람은 일이 있어야 해...ㅎㅎ 앞으로는 홍이가 다른 일도 좀 줄 모양인데 기대 만빵이다(!).
 

정면 큰 창으로 시간에 따라, 바람에 따라, 내게 색색가지 말을 건네는 나무가 내 사무실 동료다. 바로 곁에 틀어 놓은 NPR 라디오는 세상 소식 들려 주는 비서다. 밥도 책상 위에서 먹고 생각 나면 이 책 저 책도 틈틈히 열어 보면서 일한다. 퇴근 시간까지. 상사 없는 직장에서 말이다.
2010/11/09 11:06 2010/11/09 11:06
Posted by 꼼미

마무리

 | 하루
2010/02/10 16:54
전통음악관련 한영번역일을 마무리 지을 때마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비록 잘하기 때문에 하는게 아니라 계속 하다보면 잘하게 될꺼라는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긴 하더라도. 그 믿음이 없었다면 시작도 못했을 테고 지금까지 이렇게 뜨문 뜨문 계속 해오지도 못했을 테다.

한국을 떠나 올 때, 한 친구가 뜬금없이, "네 꿈을 꼭 이루기 바래" 라고 카드에 적어 주었던게 마음에 남아 있다. 별로 친한 애도 아니고 한번도 그애와 서로의 꿈 같은 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기억조차 없는데 그애는 송별모임에서 나에게 그 말을 남겨 주었다. 그때는 그 말에 '과연 내가?'란 생각은 마음에 담았어도 '무슨 꿈?'이란 질문을 갖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젠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정말 잊은 듯하다. 나에게 꿈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어제밤 반쯤 미친 기묘와 같이 반쯤 미쳐가며 긴통화를 이어 가면서, '살기 위해 산다고' 말했다. 죽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사는 거라고. 요즘의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나는 바보라고 여기다가도 이렇게라도 살고 있으니 웃어보자 하는 나를 본다. 여기 저기 넋두리를 해대면서, 헤매이면서, 서성이면서. 혼자 그렇게 어슬렁거리면서.

어쨋든, 오늘은 분량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질질 끌고 있던 번역원고를 마감시켰다. 그런 날이었다.

오늘 얘기 끝.
2010/02/10 16:54 2010/02/10 16:54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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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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