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 하루
2011/09/13 21:45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먹어서 체했나? 진짜 체했다는 말이 아니고, 이번 여름, 여행을 무더기로 하고서도 블로그에 단 한 줄도 그것들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여행을 단시간에 해 본 적이 있던가. 차차 하나씩 꺼내 올려 지리라 믿는다.

어쨋든, 다사다난 했던 여름도 가고, 어느새 9월도 중순이다. 아이들이 한국에서 돌아와 새학년으로 복귀하여 학교에 다닌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덕분에 나 혼자 하는 악기 연습 시간도 다시 돌아 왔다. 지난달부터 나에게 바이올린을 배우는 캐시가 한 낮에 오기 때문에 이제 화요일은 그 앞 뒤 시간에 즐겁게 내 개인 연습을 하곤 한다.

사십대 아줌마인 나에게 악기 연습은 진정한 명상의 시간이다. 중학교때 울며 겨자 먹기로 하던 억지 춘향의 지겨운 명상의 시간이 아니라, 내 스스로 복잡한 마음 모두를 잠시나마 우주 어딘가로 고요히 떠나 보낼 수 있게 하는 무념의 시간이랄까.

참 재미있는 건, 연습하는 동안 세상사를 잊고 오로지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내는 일과 연주하는 음악 속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이 결국은 소리를 다듬고 음악을 얽는 가운데 다시 삶의 결이란게 이런거지 하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는 거다. 인간의 삶이 이렇게 좋은 소리를 찾아 가는 일, 이렇게 힘을 빼고, 잘못된 손가락의 모양을 고치고, 자세를 고르면서, 악절을 연결하고, 때론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때론 우는 듯이, 때론 웃는 듯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지... 뭐 그런 생각 말이다.
 
어쨌든, 나에게 이런 시간이 있는 것이 감사 감사할 따름이고, 이런 시간을 맞이 할때마다 경건해 질만큼 삶의 가장 소중한 귀퉁이를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는 것. 오늘도 연습시간이 두 시간을 넘겼다. 바이올린 소리가 꽤 나아졌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졌다.
2011/09/13 21:45 2011/09/13 21:45
Posted by 꼼미
미국 뉴스에는 어느 방송이고 할 것 없이 믿기지 않는, 너무 잔인하고 충격적이서 그저 영화 같기만한, 총기난사 사건들이 하루에도 몇번씩 보도 된다. 바로 요 몇일 전엔 비버리 힐스 (Beverly Hills) 에서 차를 달리던 허리우드의 출판업자로 꽤 알려진듯한 로니 체이슨 (Ronni Chasen, 64) 이 다섯발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는 뉴스가 있었다. 오늘 아침엔, 조지아 (Georgia) 의 던우디 (Dunwoody) 라는 곳에서 36살의 아버지가 2살난 아들을 유아원에 내려 준 직후 몇발의 총을 맞고 이유도 없이 즉사 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지난 목요일 아침 9시라고 한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그 아무것도 아닌 일상과 영화의 단역처럼 총을 맞고 죽는 그 처참한 비극이 하루에도 몇번씩 한몸이 되는게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늘 이런 사건 사고 이야기다. 지난주 신문 첫기사는 할머니가 집에서 총에 맞아 죽임을 당했는데, 총을 쏜 두 범인은 14살 16살 청소년들이었다 (호빵은 지금 13살인데 말이다). 내 아들 또래의 아이들조차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게 낯설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거다. 이런 소식을 한두번 듣고 사는 것도 아닌데도 난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두려움에 치가 떨린다. 그래도 이런 충격에 아직도 잘 무뎌지지 않는 나의 감각에 차라리 감사를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사건들이 아무렇지 않게, 시시한 사건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나의 인간적 감성과 감각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아침, 학교 버스를 타러 나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나서도 몇번씩 되내다 보았다. 학교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옹기 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 그 짧은 순간 농담을 나누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 그들의 아무 것도 아닌 일상에 혹여라도 짙은 먹구름이 낄까 선듯 두려워졌다.
2010/11/23 10:13 2010/11/23 10:13
Posted by 꼼미

바쁘다 바뻐

 | 하루
2010/11/15 13:31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꼼지가 없는 사이 혼자 바둥거리다 뭐 중요한 일이라도 빵꾸낼까봐 노심초사다. 모니터, 달력, 기록장 등등에 쉴새없이 할일들을 적다보니 마치 영화 <메멘토, 2000, Christopher Nolan>의 단기기억상실증자라도 된 기분이다.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들 외에도, 꼼지나 애들이 챙기던 우편함도 틈틈히 가서 열어봐야 하고, 그에 따른 서류들도 되도록 꼼꼼히 살펴야 하고, 1월 초에 잡힌 번개의 바이올린 리사이틀 관련해서 해야 할 일도 많다. 이번주에는 애들 학교 상담이 잡혀 있고, 다음주에는 아이들이 다니는 오케스트라의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놀기로 했다. 11월 안에 번개 연주회 프로그램과 사진도 만들어 제출 해야 한다. 더 중요한 일은 번개 독주회에 내가 반주를 하기로 해서 피아노도 틈틈히 연습해야 할 뿐아니라, 호빵도 번개의 연주회에 포함시킨 피아노 삼중주 두 곡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셋이서 연습할 시간도 끼워 넣어야 한다는 거다. 꼼지가 부재 중인 12월 초에는 FYSO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플린트 청소년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있다. 생각해 보니, 이번 연주회에는 우리 연주 모습 찍어 줄 사람도 없겠네 그려...
오늘은 아침 일찍 어른 현악반 연습 끝나고 두 가지 일을 처리했다. 하나는 번개의 1월 리사이틀 장소와 시간을 확정하고 보안팀이 요구하는 서류를 작성하는 일이었고, 나머지는 근처 바이올린상에 들러 빌려 왔던 바이올린을 반납하는 일이었다. 두 가지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한번에 해결되지 않은 번거로운 일이었기 때문에 계속 신경이 쓰였던 터다. 처리하고 나니 홀가분 하다.
이젠 번역 감수 마무리해서 몇일 내로 보내고, 번개 리사이틀 프로그램 글 쓰는 일을 해야 한다. 프로그램 표지에 넣을 번개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꼼지에게 하나 뿐인 사진기를 들려 보냈으니... 아이폰으로 찍어 땜빵해야 하나 생각 중이다. 아, 아직 점심도 못먹었는데 오케스트라곡 연습도 해야 하고 FIM에 들고 갈 아이들 저녁도 만들어야 하고, 번역일도 마저 해야 하고... 할 일 많다~
2010/11/15 13:31 2010/11/15 13:31
Posted by 꼼미

전업 주부 일

 | 하루
2010/09/09 10:03
아이들이 새학기 맞아 학교 간지 삼일 째다. 개학 첫 날이자 뉴욕 다녀 온 바로 다음날이었던 화요일 아침에는 아이들이 얼떨결에 정신없이 학교를 갔다. 어제는 아침부터 헬렐레 하더니 학교 다녀 와서도 헬렐레 하다가 일찍들 잤다. 삼일 째인 오늘에서야 아이들은 제정신을 차린듯 하다. 차려준 밥도 뚝딱 다 먹고 아침 식탁에서 웃으며 얘기하다 조금은 느긋한 걸음으로 학교 버스를 타러 나갔다.

전업 주부인 나는, 아이들이 학교간 첫날, 바구니를 넘쳐 흐르는 빨래를 했다. 세탁기를 한번에 세번이나 돌리고 평소에는 잘 이용하지 않는 건조기도 썼다. 빨래가 너무 많아 한꺼번에 널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전 내내 빨래를 하고 여행에서 쓴 물건들을 정리하고 이번주에 먹을 음식들을 좀 챙기고 나니 시간이 다 갔다.

어제는 청소의 날. 이젠 '자기 방은 자기가 치우자'를 늘 강조해온 그동안의 방식을 접고 아이들 방도 힘이 되는 한 대충이나마 정리와 청소를 해주기로 했다. 중학생이 된 두 아이들이 느긋했던 방학에 비하면 조금은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될테고,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단 걸 아이들에게 일깨우는 건 십년이 넘은 그동안의 잔소리로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 방을 청소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모든 걸 다 기억할 아이들에게 좀 더 '다양한' 기억을 남겨 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름에 읽었던 김선주의 <이별에도 예의가 있다>의 영향이기도 하다. 그 책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방의 담뱃재를 치워 주셨다고 했다. 그 시절에 담배를 피는 딸년을 '죽일년 살릴년' 하는 대신 평생 담배라곤 손에 잡지도 않았던 그 손으로 딸아이의 담배연기로 찌든 방안의 창문을 열고 재떨이를 깨끗이 닦아 놓았다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 옷장을 정리하고 책상의 먼지를 닦았다. 널부러진 이부자리를 예쁘게 펴놓고 쓰러져 있는 머리맡 인형들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기분 좋게 반기도록 바로 앉혀 놓았다. 우리방 욕실을 비롯해 미시건으로 이사와서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아이들 욕실까지 청소를 하고는, 꼼지 바지의 떨어진 단추도 제대로 달아 놓고, 마루의 깔개에 떨어진 단추들도 손보았다.

꼼지는 내가 전형적인 전업 주부의 일을 기특하게(?) 잘 해내고 있다며 전화 너머에서 끼끽 거렸다. 좋아 죽는 눈치다. 부인이 집에서 음식하고 빨래하고 청소 잘 하고 있다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꿈속의 일인양 좋은가 보다. 나 역시 왠일로 지금의 이 생활이 싫지가 않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어선가. 좋으면 하면 되고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 멋대로식 마음가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리책도 힐끔 거리고 바느질 책도 힐끔 거리면서 전업 주부의 다양한 영역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뭘 제대로 할꺼라고는 절대 생각지 않지만서도).

오늘 아침엔 아이들 밥을 차려 주며 다시 좀 자야겠단 생각이 굴뚝 같았다. 뉴욕에 다녀온 사진들을 컴퓨터에 옮겨 놓으면서 지나간 여름과 즐거웠던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어영 부영 잠이 달아 났다.

찬바람이 서늘한 아침 시간에 잠시 걷고 올 생각이다. 힘내고 잘 살고, 실컷 책보고, 실컷 영화보고, 그리고 실컷 음악하기.
 
2010/09/09 10:03 2010/09/09 10:03
Posted by 꼼미
지난 주 이틀을 연이어 줄기차게 눈이 내리더니 금요일 애들 학교가 문을 닫았다. 2주의 겨울방학이 끝나자 마자 다시 금, 토, 일 연휴아닌 연휴였던 셈이다. 이번 주말은 마틴 루터 킹 생일 휴일과 이어진다. 그러니까 토, 일, 월 다시 삼일 간의 연휴를 맞는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날은 주중 4일뿐인거다. 4일 학교 가고 3일 놀고. 좋은 건가? 오늘도 시작은 세찬 바람과 눈이다. 이러다간 다시 휴교를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단순한 동물의 하나인 바 규칙적으로 움직이는게 좋다고 믿는 나는 아이들과 남편이 각자의 일과를 맞으러 나가는게 좋다. 나도 이른 아침을 시작하고 몸과 머리를 움직여보기 시작한다. 아직도 남아 있는 번역을 하고 새로운 번역을 시작하는 날로 정해 본다. 몇가지 책은 동시에 읽어도 몇가지 일은 동시에 못하기 때문에 한가지 일을 끝내지 못하면 새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 시간을 나누어 놓고 해봐야 겠다.
2010/01/11 09:51 2010/01/11 09:51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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