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학 때 제주도로 가는 수학여행도 안갔던 사람이다. 내가 대학 때는 우리 집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맘만 먹으면 여행을 다닐 수 있었을 나이에, 난 피아노 레슨으로 용돈을 벌고 학교에서 탈 수 있는 장학금을 타려고 음대 신문 기자도 하고 학점도 열심히 따려고 했다. 음대 외에 민족음악연구회도 들락거리던 시절이었고 당시 사회상황도 대학생이라고 한가롭게 국내외 여행을 다닐 분위기가 아니기도 했다. 여행이라고는 10박 11일의 농활 (이걸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마는)을 포함에 기껏해야 지방 출신의 친구나 동아리 후배들에게 신세 지면서 그들의 고향에 따라 내려가보는 정도였다. 수학여행을 안간 건, 이런 당시 주변 여건 외에도 피아노 전공의 과친구들보다는 운좋게도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도서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있었겠다. 말 그대로 '가난'했던 꼼지 역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 형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꼼지와 나는 신혼여행으로도 남들 다 가던(아니, 그렇게 보이던) 제주도를 가는 대신 설악산을 택했다. 가난한 주제로 결혼을 한 우리들에겐 신혼여행비를 아껴서 살림에 보태 쓰는 게 더 합당해 보였다. 신혼여행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것 같던' 제주도 여행은 그후로로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다. 엄마가 아프시고 어쩌면 엄마의 생애 마지막 선물이 될꺼라며 언니가 제안하고 계획 했을 때에야 그 흔한 이름, 제주도엘 갈 수 있었다. 호빵과 번개가 다 자란 아이들이었던 그 때가 꼼지와 나에게는 생애 첫 '제주도' 여행이었던 거다. 다른 여행들도 그렇겠지만, 그 제주도 여행은 내가 죽을 때까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생의 귀한 기억이 되었다.
꼼지와 내가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한 것은 유럽 호텔팩 여행이다. 꼼지가 직장을 옮기면서 생활에 묶이지 않은 '돈과 시간'이 생겼더랬다. '이 귀한 돈과 시간을 여행에 써버려 말어....' 역시나 적지않은 번민이 따랐다. 파리와 로마에서 짧게 머무르고 돌아오는 여행이었는데, '아니 제주도도 안간 주제에 유럽을 가다니, 우리 주제에 이래도 돼는 건가?!'라며 둘이서 하루에도 몇번씩 '가, 말어'를 반복 했다. 언니와 엄마의 적극 설득과 후원이 없었으면 저지르지 못했을 일이었다. 결국은 어린 호빵과 번개를 엄마에게 떠맡기고 단둘이서 확 떠났더랬다. 이 여행으로 내가 배운 건, 시간에 쫒기고 사는 게 빠듯해도 어디든 갈 수 있으면 가는 게 좋은 거다라는 것. 여행 예찬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생겼을 땐 뒤돌아 보지 말고 어디로든 떠나라'란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덕분이다.
어느 곳인가 여행 비숫한 걸 가려고 하면 이처럼 대학 때 가지 않은 수학여행과 '제주도' 생각이 꼭 떠오른다. 여행은 꼼지와 나에게 뭔가 굉장히 '분수에 넘치는 행위'였던 것 같다. 여행 자체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 여행에 대한 관념이 그랬던 것 같다는 말이다. '뭔가 좀 더 급박하고 필요한 곳에 돈을 쓸 수 있는데, 빠듯한 시간과 생활비를 축내면서 여행을 가나?" 뭐 이런 생각 같은 거 말이다. 이런 생각은 멀지 않은 곳으로 하루나 이틀의 짧은 여행을 계획할 때도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든다. '나가면 돈인데... 난 또 나가면 더 많이 먹잖아.... 이런 거 절약하면 빚도 더 빨리 갚고, 더 안정되게 살 수 있지 않나..." 하는 잡생각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 늘 벌어도, 늘 빠듯했다. 늘 뭔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았고 새로운 비용을 더하려 하면 부담이 되었다. 결혼 하면서는 항상 빚이란 게 따라다녔다. 언제나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생활. 그 빚은 마음에 자리잡은 돌덩이와 다름 없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다.
아직도 우리 부부에겐 버는 것보다 써야 할 게 많고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나의 욕망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갚아야 하는 빚도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정도로 많다. 꼼지는 학기 막바지로 여전히 바쁘고 아이들은 다음 주면 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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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뉴욕 여행을 계획 중이다. 신세를 지기로 한 댁은 빨강이네다.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준비 할 건 아무 것도 없다. 꼼지 말대로, "돈만 있으면 돼...^^"다. 시카고를 처음 갔을 때가 떠오른다. 꼼지 컨퍼런스 덕에 큰 돈 들이지 않고 묵을 수 있었던 호텔 주변을 아이들과 함께 낮선 동네를 낮선 사람들을 쳐다보며 걸어 다녔던 그 시간들. 이번 뉴욕 여행도 시카고 여행만큼만 되어 준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이곳 저곳 발길 가는 곳으로 낮선 곳을 걸어 다닐 때마다 우리의 건조해진 심장에선 새 피와 새 기운이 일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