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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0/04/28 꼼미 빨강부부의 건강비결
  2. 2010/04/01 꼼미 봄방학 첫 계획 - 친구들과 놀기
  3. 2010/04/01 꼼미 근황을 물어 주는 벗
  4. 2010/02/06 꼼미 시카고를 추억함
  5. 2009/09/18 꼼미 세 아들의 엄마가 될 빨강으로부터
  6. 2009/09/01 꼼미 보이지 않는 스승
  7. 2009/07/25 꼼미 앤 아버 (An Arbor), 미시건 대학 (University of Michigan) 산책
  8. 2009/07/24 꼼미 골뱅이 무침
  9. 2009/07/24 꼼미 주황 이야기 2
  10. 2009/07/24 꼼미 주황 이야기 1

빨강부부의 건강비결

하루 2010/04/28 13:51 꼼미
결혼 전, 무지개 친구들이 미국에서 만난적이 있었다. 빨강과 주황이 미국에 살고 있을 때고, 기묘와 초록이 그들을 만나러 미국으로 갔다. 난 그때 그애들과 동행하지 못했다. 왜그랬을까. 바쁜 일상을 자르고 가기엔 내가 붙잡혀 있던 매일의 삶이 꽤 치열하기까지 했을 뿐아니라, 동맹이라기 보단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그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갈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나에게 그만한 큰 돈이 없었다는 것도 큰 이유 중의 하나였고. 그러면서도 친구들과 더불어 목적없는 일정 속에서 목적없는 수다를 떨지 못했다는 것이 살면서 두고 두고 서운했다. 특히, 기묘가 남겨온 사진들을 함께 보면서 가졌던 외톨박이의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있다.

그 서운함을 다 씻어 버리자는 기대감이 너무 컸던 걸까. 2004년 미국에 온 후 몇년 간 같은 미국 하늘 아래서도 전화 상으로 밖에는 안부를 주고 받을 수 없었던 빨강과 주황 가족이 우리집에 머문 일박 이일의 일정은 너무 짧았다. 게다가 난 급기야 체하기까지 했다. 결국 그애들이 떠나는 길조차 제대로 배웅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던 거다. 이런 불상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생은 아쉬움의 연속인건가.

뉴욕에서 세 아들을 끼고 이틀에 걸쳐 차를 타고 온 빨강은 도착한 날 밤, 나와 새벽 세시까지도 다하지 못한 수다를 나눴다. 돌이 채 안된 막내를 업고 새벽에 다시 일어나야 했던 그애는 한 세시간 남짓 잠을 잤을까. 난 병이 나고 말았는데 그애는 펄펄한 기운으로 아이들을 끼고 다시 이틀 간의 일정으로 떠났다. 중학교 때도 언제나 씩씩하고 활기찼던 그애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삶에 속기' 보단 '삶을 지휘하며' 살고 있는 듯했다.

한의학과 침술을 공부하고 있는 그애의 남편에게 우리가 물었던 씩씩한 두 부부의 건강비결에 대한 답은 이런거였다.

빨강남편: "부부가 손을 꼭잡고 20분간 하는 산책이지요. 매일 하면 더 좋겠지만 일주일에 사일만 해도 효과가 크지요."
주황남편: (특히 아침에는 기를 못쓰시는 분) "근데 부부가 왜 손은 잡아야 하나요?"
빨강남편: "그래야 부부의 기가 서로 통해서, 더 좋거든요."
모두: "아하!!"
빨강: "그래서 우린 유모차 끌고 애들 다 데리고 아침이나 저녁에 자주 산책하지."
나: "으흠! 내가 산책하면서 다리가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것 같았던 건 진짜였군!"


'부부 또는 가족이 함께 20분간의 산책을 자주 하는 것이 최대의 건강 비결'이라는게 우리가 그날 다시 배운 중요한 삶의 지혜였다. 잦은 산책은 부부와 온 가족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동시에 지켜내는 보약이라는 것.

우리의 다음 만남이 정말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부지런히 산책해서 소중하고 즐거운 만남을 깽판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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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말: 아이들 사진은 호빵과번개 블로그에 더 있다.

2010/04/28 13:51 2010/04/28 13:51
아이들이 방학에 들어가는 이번 주말 시카고를 가기로 했다. 호빵과 번개가 그동안 내내 '시카고'랑 '콜린 (주황의 아들)' 노래를 불러 온 탓도 있지만 게으른 꼼지와 내가 그 외에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주황에게 우리가 가겠다고 전화하니, 냉큼 '대환영'이라며 반겨 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KC에게 "온데!"라고 우리 소식을 전해주는 그애 목소리를 들으며 행복해졌다.

안밖으로 바쁜 시카고 주황이네 부부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가는 길목에 봄기운을 맛볼 수 있을테니 좋고, 반가운 친구 얼굴도 다시 볼 수 있으니 그것도 좋을 거다. 아이들도 목적없이 얽키섥키 놀 수 있어 좋을 테고, 돌아 오는 길에 한국 분위기 물씬 나는 큰 한국장에도 들려 올 수 있으니 그것도 좋을 테다.

그간 주말에는 앤아버 친구의친구 부부네 (이젠 '앤아버 나무네 집'이라고 부른다) 에 종종 다녔다. 벌써 족히 한 세 네번은 오가지 않았을까. 갈 때마다 잘 먹고, 잘 놀고 왔다. 미국에 6년째 살면서 교회를 떠나 우리가 이만큼이나 편하게 기대고 비벼댈 친구를 만난 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친구의친구 부부니 오죽하랴. 나이도 우리 부부와 거의 동갑이고 발빠른 세상에 홀딱 젖지 못하고 '내멋대로 산다'하는 분위기도 비슷하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40이 되어 첫 아이를 낳은 부부가 100일에 다다른 아이를 돌보는 걸 보면 안스러우면서도 경의롭다. 갓난 아기 보기만도 벅찰 그 부부는 지난번 만났을 때도 우리 애들 봄방학에 자기집에 또 놀러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반일 수업만 마치고 돌아온 호빵과 번개는 2박 3일 일정이 너무 짧다고 벌써부터 아쉬움 만발이다. 나무네도 같이 가면 안되냐고 생각날 때마다 묻는다. 미시건으로 이사와서 맛볼 수 있는 아주 큰 기쁨 중의 하나는 하루 안에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앤아버와 시카고 두 곳에나 있다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미시건의 황금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기회가 생기는 대로 이 아름다운 나날을 친구들과 더불어 즐길 수 있다면 그건 특별한 행복이겠지.
2010/04/01 12:47 2010/04/01 12:47

근황을 물어 주는 벗

하루 2010/04/01 12:16 꼼미
알라딘 서재에서 알게된 친구(우린 서로를 친구로 부르기로 했다)가 블로그 상에서 근 한달 여를 부재 중인 나에게 소식을 물어 왔다. 컴퓨터에서 글쓰기를 즐길 때조차 '제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컴 앞에 앉아 글쓰는 일을 멀리한 후에도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순 없었다. 무엇에게선가 거리를 둘 때는 그 대상을 대치 할 다른 대상이 생겼을 때이거나 아님 두려움이 생겼을 때일 게다. 아무도 나의 부재나 두려움에 대해 물어 주지 않을 때, 요즘의 나는 그런 사실 자체를 머리와 마음에서 몰아내 버린다. 전 같으면 그와 같은 생각 더미에 깔려 떡실신 상태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젠 어느 정도는 익숙해 져서 그리 어렵지 않게 내 감정을 조절 하게 되었다. 가끔은 되려 내가 안부를 물어 주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을 한다. 마치 내가 가지고 싶은 물건을 남에게 선물해 주듯이.

나의 근황을 물어 준 그 낯모르는 친구의 예기치 않은 인사에 마음 저 깊이 묻어두었던 내 무의식을 꺼내 본다. 나는 뭘까.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같은 질문으로 가득찬. 전에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지만, 세상엔 우울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내가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라면, 그런 내 영혼을 버리기 위해 발버둥치기 보다는, 그런 내 영혼을 보듬고 거기에 웃음과 행복을 덧입혀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10/04/01 12:16 2010/04/01 12:16

시카고를 추억함

여행, 구경 2010/02/06 12:37 꼼미
주황이 댓글을 남긴 걸 보니 지난 해 시카고 갔던 일이 더 많이 생각났다. 이런때 두고 두고 꺼내 보려고 사진을 많이도 찍었더랬다. 다시 뭉쳐 함께 놀일을 기약하며 이 겨울 모두 더욱 힘내기를...

시카고시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마치 서울에 온듯한 느낌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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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날로 다 함께 이야기와 더불어 술을 펐다. KC가 이렇게 술과 대화(?)를 좋아 할 줄이야... 여긴 KC가 없네. 열심히 우리를 향해 운전해 오고 있던 중. 그러니까 우리끼리 먼저 술푸던 중.
그 순간도 금방 사라지겠지 생각하며 얼른 2층 방으로 올라가 사진기를 들고 나와 아래층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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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애들을 꼬셔 조촐한 음악회를 열었다. 이름하여 주황네집 음악회... 으흠, 피아노 사중주 하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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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간 Chicago Science & Industry Museum. 남자놈들만 넷. 그놈들 천방지축 뛰어 다니는 모습에 흐뭇했던 주황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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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네서 이틀하고 반나절을 머문 후 시카고 시내에 예약해둔 호텔로 와서 또 한 이틀 지냈나보다. 시내 중심에 자리 잡은 호텔 때문에 많이 걸어다니며 느린 눈으로 이것저것 볼 수 있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시카고시 중심의 머리 위를 도는 그 시끄러운 시내전차 룹(Loop)도 나에겐 즐거운 풍경으로 보였다. 사람 사는 동네 풍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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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아이들과 꼼지를 박물관에 보내고 혼자 시카고 중심가를 돌아 다녔다. 엄청 좋은 시카고 공립 도서관에도 혼자 들어 가보고, 지나가는 시카고 주민들도 구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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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내부



시카고 시내 밤풍경.
난 서울촌년이라 그런지 도시 밤풍경을 따뜻하게 느끼는 편이다. 역시나 서울 생각....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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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건 애버뉴였나...






2010/02/06 12:37 2010/02/06 12:37
벌써 한참 됐다. 미시건 와서 라면이랑 짜짜로니 맛있게 먹게 된게.
우리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한국장에서도 팔겠지만, 어쩐지 한꺼번에 많이 사다 놓기는 그래서, 라면과 짜짜로니를 그냥 한 두개씩 사다 먹고 있었다. 그러던 참, 뉴올리온즈에 살고 있는 빨강에게서 전화가 왔다.

빨강: 현수야, 주소 말해. 내가 이사 기념으로 라면이랑 짜짜로니 한박스씩 보내줄께
나: (먹는 거라니 그저 좋아하며...) 으왕! 진짜? 감동이다. 나 정말 덥썩 받는다.... 주소는...

그리고 진짜 두 박스의 상자가 왔다. 그걸 받고, 생각해 보니, 일곱 무지개 친구들 중 첫 색깔을 가져갔던 빨강이는 두 아들에 이어 세째 아들을 임신 중이다. 이런... 몸 무거운 친구에게 선물을 보내주지는 못할 망정, 이 무거운 걸 보내게 하다니. 또 바로 후회가 됐다.
하지만 후회는 잠시. 호빵과 번개의 환한 표정에 힘입어 그 즉시로 포장을 팍팍 뜯고 바로 맛있는 라면을 셋이서 세 개 끓여 먹고 밥까지 푹푹 말아 먹었다. 그 이후로도, 번개는 틈만 나면,

번개: 엄마, 라면 먹어도 되요?
엄마: 야, 무슨 저녁에 라면이냐?
번개: 엄마, 그럼 짜짜로니 먹어도 되요?
엄마:...........--; (그거나, 그거나...) 너 디게 먹고 싶구나? 언제 꼭 먹자. 내일? 밥 잘먹으면 끓여 줄께.

<근데... 찍어 두었던 라면먹는 사진이 어디갔지????>

그렇게 받아 놓은 라면과 짜짜로니를 맛있게 틈틈히 먹는 사이 고마운 마음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채로 날은 휙허니 갔다.

쨘~ 다시 어느 날,
나에게 편지 한 장이 날아 왔다. 아날로그 편지. 우표가 붙여지고 봉투 안에는 손으로 쓴 편지 한장과 컴퓨터에 붙이는 한글 자판 스티커가 두장 들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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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야!~ 진짜 멋지군. 번개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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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예~ 호빵꺼.



편지에는 어느새 내 달 초가 애날 날이라고 했다. 배가 많이 불렀다고.
편지와 스티커들을 받아 들고 마음이 짠해졌다. 기집애...
호빵과 번개가 한글 자판 때문에 끙끙거리는 걸 애들 블로그에서 보고, 예고도 없이 그걸 사서 부친거다. 그김에 전화를 했지만 통화를 못하고, 하루인지 이틀인지 지나서야 통화가 됐다. 친구가 막달인 줄도 모르고 나만 생각했는데, 자기 일에, 아들 둘에, 배도 남산만할 친구가 나와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고 그걸 보냈으니, 고맙단 말을 해도, 그저 부족할 뿐이다.

나: 몸은 괜찮니? 우리 애들이 그 스티커 받자 마자 바로 가서 지들이 다 붙였다. 좋다고....
빨강: 벌써 갔니? 같은 미국이라 빠르긴 빠르다. 사서 한참 들고 다니다 보니 자판 두 개가 missing 이더라. ㅋㅋ
니: 편지가 감동이었다. 나도 조만간 아날로그 편지 한 장 보내마.
빨강: 그래.. 애 낳고, 한번 다 뭉치자... 뉴욕이든, 너희집이든, 아님 시카고든...

중학생이 된 호빵에게 한 번 더 자랑.

엄마: 야, 이 이모, 엄마 중학교 때 친구야. 시카고 이모처럼. 그러니 너도 좋은 친구 많이 사구ㅕ"
호빵: 음, 그래요? 난, 5학년 때 친구, 제프리 있는데... "
엄마: 어쨌든, 친구는 참 좋은 거라구. 제프리하고도 오랫동안 계속 연락하고 잘 지내야 이 이모들 같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거니까."
호빵: 네... 우리 요즘도 계속 이메일하고 채팅하고 그래요..^^"
엄마: 야! 채팅은 너무 많이 하지 말고 --;

우리가 텍사스 살 때는, 같은 미국에 살아도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것 같기만 했는데, 미시건에 오니, 이제서야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빨강이도 나도 드나보다. 조만간, 빨강이네 사내 셋, 주황이네 아들 둘, 그리고 우리 아들 둘이 다 뭉쳐 뒤범벅이 될 날이 오겠지.

우리가 희끗 희끗 흰머리가 늘며 늙어 가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만나 떠들고 웃었던 그 날들에 성큼 성큼 더 가까와 질테지...

2009/09/18 10:16 2009/09/18 10:16

보이지 않는 스승

하루 2009/09/01 11:36 꼼미
초등학교 시절 나의 스승은 엄마가 사주셨던 50권의 세계명작 전집과 세계 위인 전집, 그리고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신나게 뛰어 놀았던 친구들이었다고 해야겠다. 아버지는 회사일로 바쁘셨고 어머니는 다정했지만 종종 우울하셨으며, 언니는 이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가는 나이였고, 오빠는 내가 싫어도 돌보아줘야 하는 상대였다. 중학교 시절 나의 스승은 단연 마당문고가 아니었을까.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기만 했던, 그래도 충격적이었던 니체와 가브리엘 마르께스는 가끔은 포기하고 가끔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동문서답을 해대 '내가 이것들을 계속 믿고 따라야 하나'하는 회의를 주는 세속과는 거리가 먼 도인들 같기만 했다. 그리고 친구들. 내게 그런 책을 읽게 했던. 더불어 언니의 일기와 언니가 보러다니던 연극들, 그리고 시집들. 그것들이 지속된 건 질리도록 외롭다고 느꼈던 예고시절이다. 그때의 스승은 단연 헤르만 헤세라고 해야겠다. 그 단조롭고 무의미하고 외로웠던 시절,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만 붙어있으면 뭐라도 읽어 댔다. 중학교 시절 언니가 "이런 건 좀 한번 읽어라..."며 던져 주어 손에 잡았던 이후, 족히 세 네번은 줄까지 벅벅 그어가며 읽었지 싶은 데미안과 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 헤세 에세이, 수레바퀴 밑에서 등등등. 그리고 시집들. 내가 특히 빠졌던 시인들은 김정환, 황지우, 양성우, 김남주,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모두 언니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것들이었다. 대학때 스승이라면, 아무래도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와 철학 서적들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용과 노동은, 그리고 민족음악연구회 사람들. 그리고 내가 마주했던 음악과 세상.

내 인생의 스승이라는 게 결국은 내 곁에 머물러 지식을 가르치고 교정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보이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나를 자극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끝없이 묻게 하고 끝없이 답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주는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이 나의 스승이 아니었나.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나의 스승은 내가 목적없이 주기적으로 들리곤 하는 몇 개의 블로그들이다. 그것도 모두 우연한 경로로 찾아들게 된. 오늘은 그 블로그들이, 도덕과 윤리학의 차이를, 쾌활함과 쾌감에 대한 사회적 정의를, 모순적이게도 슬픔이나 아픔, 통증 같은 것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과 가능성을, 세상은 계속 움직이고 사람들은 소리없이도 계속 계속 싸워가고 있다는 것을, 내게 말해 주었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는 보이지 않는 스승들이다.

오늘 오전은 이렇게 스승들과의 대화(?)로 보냈으니, 이제서야 씻고 하루라는 밥그릇 채우러 일어나야 한다.
2009/09/01 11:36 2009/09/01 11:36
주황이 우리집에 온 다음날, 우리 모두는 앤아버에 사는 친구의 친구 부부 집으로 놀러 갔다. 이 부부가 사는 집은 미시건 대학 (University of Michigan) 안에 있는 학교 아파트다. 이 부부가 우리 가족과 맺은 인연은 좀 특이하다. 친구의 친구 남자는 주황의 대학 동기동창이었고, 친구의 친구 여자는 기묘의 대학 동기동창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와는 평생 인연이 없었을지도 모를 부부다. 하지만, 내가 미시건에 오게된 이상, 이 부부를 만나게 된 것 운명일 수도 있다. 필연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을. 주황과 기묘가 나의 둘도 없는 친구들이고, 이 부부가 그 친구들과 현재까지 연락을 이어가면서 소식을 전하고, 또 종종 만나는 사이였으니 말이다.

이 부부의 안내로 학교 버스를 타고 교정 남쪽과 북쪽을 돌아 보았다. 앤아버의 미시건 대학은 텍사스의 A&M 이나, UT at Austin 보다 더 미국 대학 (?) 같은 모습이었다. 교정의 잔듸는 텍사스 것보다 훨씬 보드랍고 걷고 뒹굴기 좋았다. 건물은 훨씬 고풍스러웠다. 학교 아파트가 교정 안에 있다는 것도 학생들을 더욱 배려한 마음이 아닌가 싶었다. 사계절이 있는 날씨 덕택에 사람이 편하게 거닐 수 있는 인도들도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친구의 친구 여자의 말에 따르면 도서관 안도 편안하고 고풍스럽다고 했다. 자료도 잘 갖추어져 있어서 일본에서 일문학 박사과정을 한 그녀가 이 대학 일문학과생들을 위해 갖추어 놓은 문헌들 덕택에 원하는 일문학 자료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동갑내기 사람들과 이렇게 대학 교정을 때론 묵묵히 때론 즐거운 대화로 걷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쇼핑센터도 아니요,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다. 애들에게 학구열을 고취 시키기 위한 관광도 아니다. 그냥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나이 먹은 우리들은 우리들 대로 머릿속을 텅 비우고 공간과 시간을 어슬렁거리는 기분으로 보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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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운전을 해준 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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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5 15:07 2009/07/25 15:07

골뱅이 무침

먹는 일 2009/07/24 22:13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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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주황이 사온 건 귀한 김치 한통과 골뱅이 3캔. 주황은 그걸로 매일밤 골뱅이 무침을 해주었다. 술 좋아하는 남편을 만난 덕에 술안주 만드는 법이 많이 늘었다는 그애의 말이 실감 났다. 그애 덕에 오랜만에 먹은 골뱅이 무침이 어찌나 맛있던지... 호빵맨과 나는 지금도 입맛을 다신다.

야, 니가 이렇게 잘 먹을 줄 알았으면 더 사올 걸 그랬다...


십 몇년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골뱅이 세 캔을 사온 그애가 얼마나 고맙고 이런 게 친구다 싶었던지. 아니, 세 캔은 적냐? 더 사올 걸 그랬다니.... 소처럼 먹는 내가 정상이 아닌거지... ㅋㅋ
2009/07/24 22:13 2009/07/24 22:13

주황 이야기 2

하루 2009/07/24 15:34 꼼미
이 세상에 소설 같지 않은 인생은 없다. 2박 3일 동안 밥하며 설겆이 하며 아이들을 보며 길을 걸으며 술을 마시며, 부엌에서 거실에서 아이들을 풀어 놓은 잔디밭에서 둘 다 처음 거니는 낯선 거리에서 그리고 새벽의 식탁에서 주황과 내가 나눈 이야기들은 열 몇살의 우리가 사십이 되기까지 딸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 온 나날들의 파란만장함이었다.

우리의 주제는 미술과 음악, 박물관과 음악회장을 넘나 들고 책과 영화, 철학과 교육, 한국의 정치와 역사, 우리 부모들과 형제들의 인생, 우리가 공유했던 사춘기 시절의 기억들을 오갔다. 이야기 속에 시간의 제한이나 공간의 제약은 없었다. 우리는 다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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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아노를 치고 주황은 김광석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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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아노 앞에서 그들은 술잔을 앞에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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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아노를 치고 주황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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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친구 부부도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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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지도 웃고 주황의 남편 케이씨도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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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친구의 동생과 친구 남자도


2009/07/24 15:34 2009/07/24 15:34

주황 이야기 1

하루 2009/07/24 15:11 꼼미
내가 보낸 중학교 2학년이 내 학창시절의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절이다. 심각하면서도 활기찼고, 공부 하는 게 즐거웠으며, 문화생활의 기회를 만끽한 시절이었다. 사춘기의 그 시절은 그 이후 내 인생 전반의 탄탄한 디딤돌이 되었다. 어디로 튈지 몰랐던 그 시기가 넘쳐나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건 오로지 그 때의 친구들 때문이다.

학교 2학년 때 특별하게 친했던 여섯 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 일곱. 무슨 조직도 아니건만 'Seven Rainbow' 라고 스스로들을 칭하며 몰려 다녔다. 입에 면도칼 물고 다닌 그런 으시시한 파는 아니었고, 덕수궁으로, 창경궁으로, 마당세실극장으로.... 공원에 그림 도구들을 챙겨들고 가서 그림을 그리고, 박물관을 거닐며, 연극 할인표와 천원 한장씩 들고 버스를 타고 뻔질나게 연극을 보러 다니는 그런 '이상한' 여학생 무리였다고나 할까. 다들, 일기 쓰는 거, 책읽는 거, 구경 다니는 걸 좋아했다. 또래보다 성숙했지만 또래들만큼 유치하고 수다떠는 걸 좋아해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옹기 종기 모여 속깊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일곱명의 우리들 중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은 희한하게도 없었다. 온노황남권배김. 우리들 일곱명 각각의 성이었다. 그 흔한 김씨도 나 외엔 없었고 드문 온씨, 남씨, 노씨 등이 끼어 있는 게 그때의 우리에겐 큰 사건이라도 되는 듯 신기했다. 빨주노초파남보 각각 좋아하는 색깔도 달랐다. 색깔별로 겨울이면 목도리를 짜서 두르고 다녔다.

그 일곱 중에서도 당시에 내가 특별히 더 가까이 어울려 다녔던 친구들은 기묘와 주황이다. 보라색이었던 나는, 파랑색의 기묘와 현재 시카고에서 형사사건 담당 국선 변호사로 일하는 주황과 학교에서건 방과후에건 쉴새 없이 붙어 다녔다. 기묘는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났고 시를 잘써서 시인이 되리라 했고, 주황은 역사와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서 무덤에서 뼈파내는 고고학자가 되리라 꿈꿨다. 난 한동안 쉬었던 피아노를 다시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피아노와 관련된 음악선생님이나 음악인이 되리라고 여겼다.

서로가 생김새도, 성격도, 자라온 배경도 많이 달랐다. 그래도 우린 모두 나이만큼 가볍고 순수했을 뿐 아니라 나이를 넘어서는 성숙함과 깊이 또한 있었다고 기억한다. 우리의 사춘기적 고뇌와 갈등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상처, 해외 노동자인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외로움, 장애가 있는 오빠로 인한 어두운 일상 같은 것들이었을꺼다. 셋의 만남은 일상의 어두운 구석에 청량제고 달콤한 사탕이었다. 함께 있으면 어두운 모든 상처들 마저도 빛이 되고 삶의 낭만이 되고 싱그런 웃음이 되었더랬다. 만나면 언제나 신나게 웃어 제낄 일들이 만발했고, 맘껏 고민하며, 때론 함께 엉엉 울어버리는 나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고시절, 여고친구들을 얘기 하지만, 중학교 시절 이후의 내 학창시절은 그저 대학을 가면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 그 때의 정신적 충만함과 깊이 그리고 낭만을 다시 찾기 위한 우울하고 외로운 여정이었을 뿐이다. 우리 셋은, 기묘, 주황, 내가, 각각 정의여고, 무학여고, 선화예고로 갈라졌고, 어쩔 수 없이 잠시의 이별을 맞은 연인들처럼 많이 그리워하고 간간히 연락 했으며 아주 드물게 만날 수 있었다. 모두 외로운 여정에 오른 것 같았고 각각 혼자가 되어 견디고 극복해야 할 독방에 갇힌 수인처럼 힘들고 음울해 보였다.

우리의 인생은 달라졌고,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 우리들이 다시 잠깐 모였던 것은 19살에 미국에 가게 된 주황이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신랑과 첫 아들을 안고 서울 나들이를 했던 97년이었다. 주황과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해 이후, 12년이 지났다.

지금은 시카고에서 신랑과 두 아들과 살고 있는 주황이 내가 미시건으로 이사온지 두 주가 될 무렵 나를 찾아 왔다. 내 얼굴은 흥분에 자꾸 달아 올랐고, 마음은 자꾸 두근거렸다. 차에서 내려 나에게 달려오는 주황을 안으니 우리가 지나왔을 세월의 골목 골목이 한꺼번에 덮쳐 오는 듯했다. 여전히 나무젓가락 같은 그애의 형체를 확인하면서 울먹였다.

아, 주황을 다시 만났다. 기묘야, 네가 함께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을....


2009/07/24 15:11 2009/07/24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