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 꽃물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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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23:20

병원의 아침은 서두르게 다가와서 눈을 뜨자 마자 물한잔을 후딱 마시고 밥오기를 기다렸다. 생각만큼 입안에 차지 않는 아침밥을 대충 먹고 책을 보다 안경을 쓴 채로 잠시 자리에 누웠는데 발끝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뜬 참이었다.

선아가 왔더랬다. 이정록의 <의자>라는 시집을 들고 왔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예전처럼 다소곳하고 들릴 듯 말듯한 말투로. 20대 초반에 외과의사의 부인이 되었던 그애는 이 삼십대를 밥하느라 다 보냈다고 했다. 엄마는 희귀한 근육 또는 피부 암으로 4년전부터 투병 중이고 그 이 삼년 후 동생의 뇌종양이 발병해 현재까지도 살림과 아픈 가족들 사이에서 심적 여유없이 사는 듯했다.

빨간색 가디건에 빨간 점박이 무늬 원피스를 입은 그애는 눈에 띌만큼 숱이 적은 머리카락만 아니라면 대학교 초년생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 모습이었다. 외과의사와 결혼해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사는 아이가 들고 온 시집이라는게 낯설고도 반가웠다. 읽은 책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이서를 부탁해서 서명을 받았다. 이제는 '사랑하는 현수, 항상 건강하고'라고 단정히 적힌 시집이 되었다. 그애가 돌아간 후에는,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특별히 만난적도 그리워한적도 없었던 친구가 시집을 들고 병원으로 찾아와 주었다는 생각이 되감겨, 시집 표지만 보고 있어도 자꾸 감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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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의 “꽃물 고치”를 읽었다.


아파트 일층으로 이사 와서

생애 처음으로 화단 하나 만들었는데

간밤에 봉숭아 이파리와 꽃을 죄다 훑어갔다

이건 벌레나 새가 듣어먹은 게 아니다

인간이다 분명 꽃피고 물오르기 기다린 노처녀다

봉숭아 꼬투리처럼 눈꺼풀 치켜뜨고

지나는 여자들의 손끝을 훔쳐보는데

할머니 한 분 반갑게 인사한다

총각 덕분에 삼십 년 만에 꽃물 들였네

두 손을 활짝 흔들어 보인다

손끝마다 눈부신 고치들

나도 따라 환하게 웃으며 막 부화한

팔순의 나비에게 수컷으로 다가가는데

손가락 끝부터 수의를 짜기 시작한 백발이

봉숭아 꽃 으깨어 목 축이고 있다

아직은 풀어지지도 더 짜지도 마라

광목 실이 매듭으로 묶여 있다

(이정록 시집 <의자> 중에서)


시가 어찌나 우스운지 속으로 막 웃었다. 내가 늙으면 저 시 속의 할머니 같이 되는게 아닐까, 내가 팔순이 되었을때 나같은 나비에게도 다가올 수컷이 있을라나...키키 거리며 말이다. 허 그 시 참, '손가락 끝부터 수의를 짜기 시작한 백발'이라든가 '봉숭아 꽃 으깨어 목 축이고 있다'라든가. 나이 먹은 사람의 마음 바라보는데 남다른 관록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무릎이라도 칠 판이다.


오후엔 혜정과 선미 들이 올꺼라하고 저녁 시간엔 출판사를 운영하는 석씨도 보자고 온다고 했다. 손사래를 치며 사람들에게 오지 말라 했는데 여적 볼 사람들은 많기도 하다.

2011/05/04 23:20 2011/05/04 23:20
Posted by 꼼미

헌틀아리의 꿈

 | 음악
2011/02/17 13:50
작년 꼼지가 한국에 가서 헌들아리 친구들을 만났을 때 페이스북 에 잔뜩 모임 사진을 올렸 더랬다. 별 생각 없었는데 막상 그 사진들 속에 사람들이 하나같이 내게 낮익은 사람들이라는데 깜짝 놀랐다. 한 열댓명가량 모였던가, 어쨌든 모르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공대생이고 꼼지와 같은 과 사람들인데, 동기 몇 (한명 뿐이었던가) 빼놓고는 게다가 모두 후배들이다. 꼼지가 아니었으면 나와는 일생에 섞일 일이라곤 별로 없었을 "공돌이"들인거다. 그들이 오랜된 친구처럼 반갑고 정겹게 느껴진건, 특별히 그 모임이 꼼지 학번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기도 할테다.

컴퓨터를 좋아(거의 사랑한 수준)했으나 돈도 없고 배울데도 없었던 꼼지는 과친구들 몇명과 함께 컴퓨터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 모임이 이학년이 되고 후배들이 들어오자 몇몇 후배들이 더해지면서 과동아리가 되었다. 그래서 그 동아리 이름을 지었다. 꼼지랑 내가 (물론 서로가 자기가 지었다고 우기긴 하지만). 그 이름이 '한틀아리'인데 '한양대 컴퓨터(틀) 동아리(아리)'란 뜻이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은, 사람 사귀고 모임 운영하는데는 전혀 소질없는 꼼지의 그 모임이 두고 두고 오랫동안 계속 잘 굴러갔다는 거다.

해마다 전시회라는 것도 하고 선배들은 선배들대로 후배들은 후배들대로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정과 버무려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모임 사람들은 잘도 어울려 다녔다. 물론, 우리가 결혼해서 우리 신혼집에서 술도 많이 퍼마시면서 말이다. 그 세월이 그러니까 이십년정도 되어가는 거겠지. 건대 근처 우리 신혼집 멀지 않은 곳에서 자취를 하던 녀석들(이렇게 말하면 화내려나?ㅋ)도 이젠 다 멋진 자기일들 가지고 식구들 챙기며 잘 살고 있다. 저녁 산책에 자취방 들리면 남자 네다섯명이 컴컴헌데 웅크리고 컴퓨터랑 온갖 잡동사니랑 라면먹은 냄비들이랑 뒤섞여서 볼만했는데 말이다.

내가 꼼지와 헤어지지 않고 수십년을 지금까지 붙어 있으니 그들 얼굴을 이렇게 반가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거지 싶기도 하다. 사귀다 찢어졌거나 결혼했다 이혼 했으면 그들 얼굴을 더 볼 일도 없었겠고 마주쳐도 서로 속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에 오히려 마음이 아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진 속의 그들 모습이 반갑기만 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렸던 순간이 소중한 기억으로 느껴지는 것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따라온 선물 같은 거라고 여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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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 그들 얼굴을 보니 노래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났다. 어제 하루 죙일 가사 쓰고 노래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내 생애 처음으로 곡과 가사를 쓴 노래다.  꼼지는 여전히 자기가 반은 썼다고 우기고 있지만서도. 내 취향의 노래는 아니지만 다 해놓고 나니 맘에 든다. 무엇보다 이 노래를 불러 주었음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공돌이들 그리고 특히 헌틀아리들) 에게 맞도록 만들려고 해봤다. 당사자인 꼼지의 의견도 물론 십분 반영 했다. 가사에도 곡에도.

다 만들고 나서 함께 불러 녹음했다. 노래 부르며 우리끼리 신나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와서 노래부르며 웃음 참느라 힘들었다. 아직 반주는 못 넣었다. 멋진 편곡을 입히면 더 괜찮아질 것 같긴 한데, 내 수준은 그정도는 못되니까 도입부와 간주부 선율을 좀 만들어 보고 나서는 기냥 기본 코드들을 입혀 피아노나 신서사이저로 연주해 다시 녹음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제목이 좀 우습긴 하다. 하지만 뭐. 팔려고 만든 노래도 아니고 헌틀아리를 위해 만든 노래니 뭐 어떠랴.



헌틀아리의 꿈


헌것이 되버린 기계처럼 꿈도 녹슬었을까
낡아서 버려진 신발처럼 꿈도 버려진 걸까

틀을 깨려 했던 지난 날들 이제 가버린 걸까
세상은 언제나 변하는걸 이제 알고 있잖아

누구도 이제 묻지 않아도
나는 대답하고 싶어
그 꿈 다시 찾고 싶어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간 속에
너와 나의 꿈은 한낱 추억으로 남겨졌어도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시간 속에
너와 나의 꿈은 이제 살아가는 힘이 될꺼야.



앞절 가사가 한 두 소절쯤 새로 필요하고 연결구의 2절 가사도 있었음 하는데 언제 나머지 작업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흠...



2011/02/17 13:50 2011/02/17 13:50
Posted by 꼼미

특별한 연말 휴가

 | 하루
2011/01/12 23:57
2010년 크리스마스 연휴가 특별했다. 뉴욕의 빨강가족과 시카고 주황가족이 우리집에 다 모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친구들과 함께 지내니 그야말로 명절 잔치하는 기분이었다. 친구들은 혹여라도 내가 힘들까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준비를 해왔다. 빨강은 꼬리찜을 한 냄비 가득 해오고 주황은 만두 재료를 다 싸들고 왔다. 꼬마놈들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해 12월 25일 낮에는 음악회와 함께 선물 개봉이 이어졌다. 12월 휴가 두 달 전부터 들떠있던 우리 모두 3일간의 잔치가 얼마나 즐거웠던지. 수다도 맘껏, 맥주도 실컷, 음식은 배터지게 먹었다. 남편들도 아내들도 서로 도와 치우고 먹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큰 것들은 작은 것들을 돌보고, 작은 것들은 큰 것들을 쫓아 다니며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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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컬린과 호빵이 우리가 만났던 그 나이에 이르렀다. 컬린과 호빵도 우리처럼 30년지기 친구가 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2011/01/12 23:57 2011/01/12 23:57
Posted by 꼼미

덤으로 얻은 시간

 | 하루
2010/12/16 10:11
윌리암과 오늘 아침 연습을 하기로 했는데 취소 됐다. 아이폰이 망가진 탓에 노트북을 대신 끼고 다니고 잠잘때도 끼고 자는데, 아침에 눈뜨자 마자 컴뚜껑을 열었더니 윌리암에게 이메일이 와 있었다.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돌아가신 분이 있어 그 장례식 때문에 오늘 교회 부엌에서 일을 해야 한단다. 그래서 연습에 못나오겠다고. 지난번 눈 때문에 취소되었던 연습 대신 오늘 오전에 하겠다고 했는데 유일하게 올 수 있다고 했던 윌리엄이 못나온다고 하니 나도 쉬게 됐다. 윌리엄은 은퇴한 흑인 아저씨다. 연습을 위해 언제 시간이 되냐고 물으면, 늘 "난 은퇴해서 할일이 없는 사람이어요~" 란 일관된 대답을 해서 나를 웃긴다. 내가 시간이 되어 같이 연습 할 수 있다고 하면, 그때마다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연습에 나와 베이스를 연주한다.

이 은퇴한 아저씨는 구십 하고도 여섯살인가 먹은 노모를 보살피고 있다. 함께 사는 건 아니다. 이 노령의 엄마가 아직도 운전도 하신단다....! 가끔 "오늘 엄마가 전화해서 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하며 연습에 조금 늦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그들이 다니는 교회에 장례가 있을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는 백살 가까운 노모를 위로 하기 위해 이 육십줄의 아저씨는 아침을 함께 먹으러 이른 아침 노모의 집으로 간다. 한편, 오늘처럼, 이렇듯 교회 장례식이 있는 날은 사람들을 도와 부엌 일을 돕기도 하는구나 하는 사실을 새로 알았다.

그의 짧은 약속 취소 편지를 읽으면서, 이렇게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지구상에서 나와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을 윌리엄이라는 흑인 아저씨의 삶이 문득 살갑게 느껴졌다. 윌리엄은 Thanksgiving holiday 때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 오면서 우리 단원 모두에게 기념품 하나씩을 안겨 주었을 뿐 아니라, 내 두 아들들의 겨울 모자도 하나씩 사다 주었더랬다. 따뜻하고 정많은 흑인 아저씨. 이런 그를 우리집 호빵과 번개도 첫 만남부터 그를 좋아 하였다.

오후에 있던 번개 바이올린 렛슨도 내일로 옮겨진터라 보통은 움직여야 했을 오늘 아침이 한가롭다. 홍이가 부탁한 뉴욕 공연 인터뷰 영상 번역일을 해야 하긴 하지만, 어제 내차 세 개의 비디오를 대충 끝내 놓았으니 오늘도 오후쯤에 세 개 정도만 더 해놓으면 되리라 생각하며 잠시 밀어 둔채로, 이 덤으로 얻은 시간을 조금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중이다. 책과 관련해서 종종 찾는 블로그들도 둘러 보며 나와 아이들을 위한 책 정보도 적어 두면서 말이다.

이젠 꼼지가 돌아 올 날도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조금 더 느긋하게 있다가 텅텅빈 냉장고 메꾸러 장에 다녀올 생각이다. 친구가 많지는 않아도 마음 맞춰 음악을 할 수 있는 윌리엄 같은 사람도, 먼 여행에서 돌아 오길 손꼽아 기다려지는 꼼지같이 오래된 친구도, 블로그를 통해서 나마 영화와 책 이야기를 힐끔거릴 수 있는 낮모르는 친구들 (이렇게 불러도 되는가 모르겠지만) 도, 아직 나에게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애틋한 마음이 되어 생각하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건, 사람에게든 동물에게든 살아가는 힘이 될게다. 하루 하루를 다르게 느끼며 살아 갈 수 있게 하는 힘.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래 보면서...


2010/12/16 10:11 2010/12/16 10:11
Posted by 꼼미

일로 얻는 기쁨

 | 하루
2010/12/10 00:27
일이 밀린다. 나한텐 좋은 징조다. 바쁘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보내는 거, 나한테 좋은 일이라고 믿는다. 일하기 싫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이던 홍이가 이번 유럽 공연을 마치고 오더니 나에게 계속 일감을 안겨 주고 있다. 내가 아직도 (?) 그애를 도울 일이 있다는게 오히려 신기하고 기쁘기도 (?) 하다.

홍이와 관련된 일은 대체로 번역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결국 기본적으로는 내가 과거에 잠시 몸담았던 글을 쓰거나, 글을 교정 보는 일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홍이와 뜨문뜨문 일을 할 때마다, 예전에 그애와 함께 모임 회보를 밤새 작업하던 날들의 기억이 차오른다. 사람들에게 앙칼지고 단호한 목소리로 원고를 요청 (? 강요 또는 협박이라고 하는 편이 나으려나...^^:) 한건 언제나 홍이였고, 묵묵히 컴퓨터 앞에서 편집작업을 하던 건 송이였으며, 프린터된 원고들을 비틀고 주무르는 건 나였다. 그걸 즐기면서 일했던 그 시절, 마감 와중에도 단합을 핑계로 함께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그랬다. 서로 먼 곳에서 6년이란 세월을 보지 못하고 지내었어도 그 세월의 주름을 한치도 느끼지 못할만큼 우리의 대화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 없다. 홍이와 일을 하는 기쁨은 아마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멀리 사라져 버렸다고 믿었던 과거가 그애와 더불어 고스란히 재현되는 느낌 말이다.

그러니까 홍이가 맡기는 일들 속에서, 영어를 한글로, 한글을 영어로, 단어와 문장을 생각하고, 고치고, 다듬다 보면, 아이들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이건 정말 좀 잘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만서도), 비정규적 음악선생이자 연주자 (?) 로 살고 있는 내가, 문득 다시 주제 파악도 못하고 설쳐댔던 과거의 나로 돌아 가는 것 같아 몰래 몰래 기분이 좋아진다 (이건 좀 비밀인데.. ^^:). 아직도 글을 쓰고 고치는 일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는 게 나에겐 그러니까... 말하자면.... 영광스러운 (이건 너무 과장인가...) 게다. 그래서 일을 주는 홍이에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한다. 나의 부족함을 아니까 말이다.

여직도 욕심이 많아서 이렇게 이 일, 저 일, 손대며 산다. 1월에 있을 번개의 리사이틀 피아노 반주도 맡아 놓고,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를 하면서, 어른 현악 앙상블의 리더 아닌 리더를 차고 앉았으면서, 모자른 영어 실력 우리말 실력으로 번역까지 한다고 욕심을 낸다. 아주 우스울 정도의 글재주로 남의 글을 고친다고 다듬겠다고 덤빈다. 무엇하나 정말 제대로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 무엇도 놓지 못하고 산다. 이런 일들을 하며 살 때, 내 안의 생명줄이 살아 꿈틀거리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그 맛을 놓지 못하기 때문인 거다.

어쨌든, 이렇게 바쁜척 해도, 놀 시간도 없을만큼 바쁜 건 아니다. 밥은 하루 한끼만 해도, 노는 일은 하루 세번 이상씩은 있어야 하지 않나.^^ 노는 일은 나에겐 (나에게 좋은 게 아이들에게도 좋은거고 말이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심지어 페이스북에 올라 오는 새 소식들까지도 다 챙겨 보면서, 간간히 짬짬히 드라마도, 영화도, 한국책도, 영어책도 보고 읽으면서 그렇게 바쁘다.
2010/12/10 00:27 2010/12/10 00:27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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