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상 피아노 협주곡 5번, 바장조, 1악장
(Saint Seans, Piano Concerto, F major, No.5, 1st)

지휘: 앙드레 프레빈 (Andre Previn)
연주: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피아노: 장 필립 콜라드 (Jean-Philippe Coll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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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상 (Charles-Camille Saint Saens, 1835-1921) 의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친근한 것은 <동물의 사육제> (그 유명한 "백조 The Swan" 이 들어 있는) 와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일꺼다. 나 역시, 생상의 피아노 작품에 대해서도 변변히 알고 있는 것이 없고 이 피아노 협주곡의 존재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으로 4번을 발표한 이후 20년이나 지난 1896년에 쓴 것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이 작품은 그의 많은 여행들을 반영하는 이국적 특징들, 특히 중동과 자바, 스페인 등의 감성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저 차이코프스키 (Tchaikovsky, 1840-1893) 나 라흐마니노프 (Rachmaninoff, 1873-1943)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과 동종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사실, 생상 음악에 대해 '이국적'이란 설명은 어딘가 잘 맞지 않아 보인다. 아무리 그 스스로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도, '이국적' 요소를 말한다면 같은 프랑스의 동시대 작곡가 드뷔시 (Debussy, 1862-1968) 의 음악이 먼저 떠오를 뿐이다. 생상은 드뷔시의 음악이 무합리하고 난해하다고 저열하게 취급한 한편, 드뷔스는 생상 음악의 '지나친 감상성'이 역겹다는 식으로 대응 할만큼 서로 달랐다.

피아노 협주곡 5번엔 생상의 그 철철 넘치는 '감상성'이 있다. 첼로 소품으로 자주 연주되는 <백조>에서도 우린 그런 '감성'의 실마리를 공감하는 거 아닌가. 특히 이 작품의 1악장은 인간 내면에 간직된 슬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꺼내 놓은, 그러니까 마치 속옷부터 겉옷까지, 오래되어 낡아 빠진 것부터 너무 예뻐서 충동적으로 사버린 유명 상표의 것까지, 적나라하게 널린 빨랫줄 같다 (이렇게 말하면 이 음악이 간직한 '고상한' 느낌을 내가 마치 비하하는 듯이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런건 절대 아니다. 그저 그 '적나라함'을 표현하고 싶어서일 뿐이다). 이른바 고상하고 우아한 듯 포장되어 있던 슬픔의 심연을 본래의 모습대로 전시해 놓은 빨랫줄이랄까 (거 말해 놓고 보니 되게 우습군. 그렇지만 우리 삶의 모습이 이렇지 않은가).

이 곡에는 낭만주의 교향곡의 대명사격인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Pathetic> 교향곡이나 같은 선상에서 피아노 협주곡의 대명사격인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2번의 감정적 격동과 같으면서도 다른 감정의 심연이 있다.

악 장의 시작과 끝은 장조지만, 제2 주제의 단조성이 전체를 지배하는 듯이 강렬하다. 시작부분의 3도 진행의 맑고, 온화하고 순수한 느낌은 제 2주제를 급격하고 비통스런 슬픔이 아니라 천천히 차오르는 '아름다운 슬픔'으로 명명하게 한다. 슬픔의 연원을 찾아가는 듯한 중반부의 어두운 이야기 전개에 이어지는 후반부에서 오보, 플룻, 호른으로 제2 주제를 되씹으면, 마음 깊숙히 묻어두었던 슬픈 상처가 들어 올려지는 걸 느끼고, 어쩌면 쏟아지는 눈물을 이겨내지 못할른지도 모른다 (분명, 어떤 날은 말이다). 제 2주제에서 반복되는 음들 (A - 라, 또는 C - 도 같은) 이 마치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 없는 상처어린 기억마냥 비수가 되어 계속 계속 마음을 찌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1악장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또 한가지는, 그래도 악장의 끝에서 다시 한번 피아노로 마무리되는 그 감성적 주제는 삶의 비극과 절망이 아니라 처음의 온화함과 순수를 더해 희망의 향기를 피워 올린다는 점이다. 그건 피아노 화음의 짧고 동그란 울림과 현악기들의 피치카토 (현을 뜯어서 소리내는 주법) 로 물방울같은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 되는 간결하고 천진하기까지한 종지와도 통한다. 슬픔을 거세해 버린 과장되고 허황된 희망이 아니라 슬픔을 마음으로 받아들인자의 실낱 같지만 생명력 있는 희망 같이 말이다.





이 음반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것은, 그 후반부에 '아름다운 슬픔'의 주제를 다시 불러내는 오보에 부분에서 슬픔의 무게와 의미가 너무 가볍게 처리되고 만듯한 해석이다.


사변:
블로그에 음악을 올리려고 요 몇일을 내내 끙끙 거렸다. 특히 서양 관현악 음악은 음악 파일의 크기가 너무 커서 도대체 얼마나 실패를 했는지. 이 파일도 14MB 정도 되는 것을 그 반 크기인 7MB 로 줄였다. 음악 파일이 안올라간다고 몇일째 찡찡거리는 나때문에 꼼지가 고생 좀 하셨다. 컴에서 듣기엔 별 차이를 못느낄만한 압축이라고 하는데. 혹시 모르지... 일반적인 사람 능력을 벗어나는 주파수를 듣는 사람도 있다니... 그런 분들에겐 양해를 구함. 이어폰으로 들으니 음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걸 느낀다. 되도록이면 컴에서 들으시고, 아님, 음반을 구해서 들으시면 더 좋고.... 그런데, 누가 정말 여기 와서 내가 올려 놓은 음악을 이리 진지하게 들을꺼라고 계속해서 이런 말들을 지껄이고 있는 건지, 나 자신을 잘 이해할 수가 없군...끙... 하지만, 뭐, 단 한 사람도 있다면 말이지...


2009/12/05 10:00 2009/12/05 10:00
Posted by 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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