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태생의 유대 미국인이자, 나이 많은 할아버지 피아니스트 (83) 가 UT 에 와서 이번주 내내 공개 렛슨도 하고 독주회도 갖고 있다.

지난 평일 낮에 잡혀있던 그의 공개렛슨에 일삼아 구경 갔다. 1971년 RCA 에서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 그러니까 32개의 소나타 전곡을 출반한 경력처럼, 그의 주특기가 베토벤에 있는 만큼 그날 렛슨을 받는 학생들의 곡목은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였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 관계상 아쉽게도 두 명의 학생 렛슨밖에 볼 수 없었지만 몇가지 인상적인 것들을 찾아 낼 수 있었다.
먼저, 내가 본 두 명의 학생의 연주가 잘 준비되어 있어서 마치 렛슨이 아닌 연주회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들의 태도는 진지 했고, 한음 한음에 최선을 다했으며, 음악적 표현에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모차르트 협주곡, K. 595 를 연주한 Karolina Syrovatkova 의 다양한 톤과 흠없는 테크닉과 유려한 음악적 흐름은 맑고 영롱한 시냇물이 즐거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클로드 프랭크 역시 아름답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그 학생의 연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특별한 기술적 지적없이 Karolina 의 음악적 해석에 좀 더 확신을 갖도록 설명과 격려를 덧붙이는 편이었고, 오케스트라 부분을 담당했던 2nd 피아노 앞에 앉아 그녀를 반주해 주며 전체적 구상을 다듬도록 이끌었다. 당시로서도 별 손색이 없는 좋은 연주였지만, 내 의견으로는 그녀의 전반적으로 너무 부드럽기만한 소리보다는 좀 더 건반의 핵을 울리는 소리를 들려 주었으면 싶었다. 그녀의 렛슨을 지켜보면서, 클로드가 캐롤리나에게 모차르트의 장난끼와 비범함을 보여주는 구석마다 더욱 반향을 주는 소리를 만들어 낼 것을 주문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 하는 생각과 레가토를 좀 줄이고 포르타토 (portato) 를 조금 더 부각해서 가볍고 장난스럽지만 늘 그 속에 특별한 풍자와 도전이 있는 모차르트 소나타의 특징을 살렸으면 어떨까 싶었다. 모차르트에 대한 나의 개인적 취향일지도 모르겠지만.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공개 렛슨의 첫 순서로 베토벤의 소나타 op.57 1악장을 연주한 Gloria Kim 의 연주에 대한 지적이었다. 클로드 프랭크 할아버지의 주된 지적은 역시 톤(tone) 과 아고긱 (agogic - rhythm related expression, a slight rhythmic delay) 이었는데, 그는 그걸 'grown-up sound,' 'mature sound' 란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즉, 때때로,
라고 말하면서 연주자의 음악적 감수성을 끌어내려 하는 거였다. 나 또한 박사과정 연주자들의 독주회에 가면 기술적으로는 깔끔하고 괜찮은데도 뭔가 음악적으로 다가오는 울림과 공감이 없는 것을 종종 느끼는 터라 클로드 프랭크의 지적이 부척 타당하다고 여겨졌다. 대가적 피아니스트는 음악을 통해 대화를 하려 한다면, 기술자적 피아니스트는 음악을 통해 기술을 전시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한편, 내가 좋아하고 경외하는 베토벤의 후기 작품 (op.111)과 우리 번개가 좋아하는 작곡가인 모차트르의 곡 (K.333)을 연주한 클로드 프랭크의 무료 연주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는 공개렛슨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80대 때의 호로비츠보다 더 구부러진 것 같은 등이 안스럽게 보였지만, 오랜 세월 피아노와 함께 삶의 풍랑을 보여주는 것 같은 그의 손은 피아노 위에서 커다란 움직임의 변화 없이도 때론 섬세하고 때론 강력하고 때론 거침없는 소리를 이어 나갔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다양하고 복잡한 음악적 형상으로 가득한 작품이 대가의 손에선 간단한 노래가락처럼 바뀌는 것만 같다. 그가 만들어 내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소나타는 셀 수 없는 만큼의 손길을 통해 실크의 표면처럼 맨질맨질해진 대리석을 보는 것만 같았다. 흠이라면, 그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그려내는 감동스럽도록 명료하면서도 깊게 울리는 톤은 말할 필요 없이 훌륭했던 반면, 지나치게 익숙해진 탓일까, 중간 중간 우물거리며 넘어가는 빠른 코드 구절들과 간간히 나타나는 (그의 대가적 처리로 감지하기 무척 어려운 실수들이긴 하지만) 실수들이 자꾸 그의 연륜보다는 나이를 상기시켰다는 점이다. 특히 슈베르트의 2악장과 3악장은 그의 음악적 표현이 두드러져 감상하기 좋았지만, 1악장과 마지막 악장에선 그런 소소한 실수들과 더불어 슈베르트의 새로운 선율과 화성적 탐험 속에 얽혀가는 음악적 형상이 뚜렷히 전달되지 않아 나에겐 좀 모호한 음악이 되었다.
한 세기를 산 사람들을 보면, 사람같다기 보다는 그냥 나무나 바람같은 자연같다.
클로드 프랭크 역시도 1923년 독일에서 태어나, 파리로, 파리에서 독일군을 피해, 스페인으로, 다시 미국으로 오기까지 파란만장한 역사의 격랑들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스페에서 불법으로 머물던 중 브라질 대사관에 초청되어 피아노로 그 사람들을 감동시켜 미국행 비자를 받았다는 일화는 영화 "The Pianist" 와 나치 치하 유대 음악인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담은 책 "The Inextinguishable Symphony"를 떠오르게 한다.
80세의 피아니스트들이 많다고 해서 그 의미심장함이 간과될 수는 없다. 우리가 그의 연주 후에 보냈던 기립박수에는 아마 음악과 피아노에 바쳐온 그의 삶에 대한 경의가 상당 부분 담겨 있었을 것이다.

지난 평일 낮에 잡혀있던 그의 공개렛슨에 일삼아 구경 갔다. 1971년 RCA 에서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 그러니까 32개의 소나타 전곡을 출반한 경력처럼, 그의 주특기가 베토벤에 있는 만큼 그날 렛슨을 받는 학생들의 곡목은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였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 관계상 아쉽게도 두 명의 학생 렛슨밖에 볼 수 없었지만 몇가지 인상적인 것들을 찾아 낼 수 있었다.
먼저, 내가 본 두 명의 학생의 연주가 잘 준비되어 있어서 마치 렛슨이 아닌 연주회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들의 태도는 진지 했고, 한음 한음에 최선을 다했으며, 음악적 표현에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모차르트 협주곡, K. 595 를 연주한 Karolina Syrovatkova 의 다양한 톤과 흠없는 테크닉과 유려한 음악적 흐름은 맑고 영롱한 시냇물이 즐거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 | ![]() 공개렛슨 중인 클로드와 캐롤리나 |
클로드 프랭크 역시 아름답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그 학생의 연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특별한 기술적 지적없이 Karolina 의 음악적 해석에 좀 더 확신을 갖도록 설명과 격려를 덧붙이는 편이었고, 오케스트라 부분을 담당했던 2nd 피아노 앞에 앉아 그녀를 반주해 주며 전체적 구상을 다듬도록 이끌었다. 당시로서도 별 손색이 없는 좋은 연주였지만, 내 의견으로는 그녀의 전반적으로 너무 부드럽기만한 소리보다는 좀 더 건반의 핵을 울리는 소리를 들려 주었으면 싶었다. 그녀의 렛슨을 지켜보면서, 클로드가 캐롤리나에게 모차르트의 장난끼와 비범함을 보여주는 구석마다 더욱 반향을 주는 소리를 만들어 낼 것을 주문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 하는 생각과 레가토를 좀 줄이고 포르타토 (portato) 를 조금 더 부각해서 가볍고 장난스럽지만 늘 그 속에 특별한 풍자와 도전이 있는 모차르트 소나타의 특징을 살렸으면 어떨까 싶었다. 모차르트에 대한 나의 개인적 취향일지도 모르겠지만.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공개 렛슨의 첫 순서로 베토벤의 소나타 op.57 1악장을 연주한 Gloria Kim 의 연주에 대한 지적이었다. 클로드 프랭크 할아버지의 주된 지적은 역시 톤(tone) 과 아고긱 (agogic - rhythm related expression, a slight rhythmic delay) 이었는데, 그는 그걸 'grown-up sound,' 'mature sound' 란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즉, 때때로,
mature sound, even a little beyond that...
라고 말하면서 연주자의 음악적 감수성을 끌어내려 하는 거였다. 나 또한 박사과정 연주자들의 독주회에 가면 기술적으로는 깔끔하고 괜찮은데도 뭔가 음악적으로 다가오는 울림과 공감이 없는 것을 종종 느끼는 터라 클로드 프랭크의 지적이 부척 타당하다고 여겨졌다. 대가적 피아니스트는 음악을 통해 대화를 하려 한다면, 기술자적 피아니스트는 음악을 통해 기술을 전시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한편, 내가 좋아하고 경외하는 베토벤의 후기 작품 (op.111)과 우리 번개가 좋아하는 작곡가인 모차트르의 곡 (K.333)을 연주한 클로드 프랭크의 무료 연주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는 공개렛슨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80대 때의 호로비츠보다 더 구부러진 것 같은 등이 안스럽게 보였지만, 오랜 세월 피아노와 함께 삶의 풍랑을 보여주는 것 같은 그의 손은 피아노 위에서 커다란 움직임의 변화 없이도 때론 섬세하고 때론 강력하고 때론 거침없는 소리를 이어 나갔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다양하고 복잡한 음악적 형상으로 가득한 작품이 대가의 손에선 간단한 노래가락처럼 바뀌는 것만 같다. 그가 만들어 내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소나타는 셀 수 없는 만큼의 손길을 통해 실크의 표면처럼 맨질맨질해진 대리석을 보는 것만 같았다. 흠이라면, 그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그려내는 감동스럽도록 명료하면서도 깊게 울리는 톤은 말할 필요 없이 훌륭했던 반면, 지나치게 익숙해진 탓일까, 중간 중간 우물거리며 넘어가는 빠른 코드 구절들과 간간히 나타나는 (그의 대가적 처리로 감지하기 무척 어려운 실수들이긴 하지만) 실수들이 자꾸 그의 연륜보다는 나이를 상기시켰다는 점이다. 특히 슈베르트의 2악장과 3악장은 그의 음악적 표현이 두드러져 감상하기 좋았지만, 1악장과 마지막 악장에선 그런 소소한 실수들과 더불어 슈베르트의 새로운 선율과 화성적 탐험 속에 얽혀가는 음악적 형상이 뚜렷히 전달되지 않아 나에겐 좀 모호한 음악이 되었다.
한 세기를 산 사람들을 보면, 사람같다기 보다는 그냥 나무나 바람같은 자연같다.
클로드 프랭크 역시도 1923년 독일에서 태어나, 파리로, 파리에서 독일군을 피해, 스페인으로, 다시 미국으로 오기까지 파란만장한 역사의 격랑들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스페에서 불법으로 머물던 중 브라질 대사관에 초청되어 피아노로 그 사람들을 감동시켜 미국행 비자를 받았다는 일화는 영화 "The Pianist" 와 나치 치하 유대 음악인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담은 책 "The Inextinguishable Symphony"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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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의 피아니스트들이 많다고 해서 그 의미심장함이 간과될 수는 없다. 우리가 그의 연주 후에 보냈던 기립박수에는 아마 음악과 피아노에 바쳐온 그의 삶에 대한 경의가 상당 부분 담겨 있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