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꼼지가 우울해 하던 나를 북돋는답시고 내가 좋아하는 강호동의 코메디 프로에 내가 열렬히 좋아해온 문성근이 나온 프로를 보여준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문성근을 보며, 당시 내가 바로 그 문성근의 역사적인 첫 출연작, '한씨 연대기'를 비롯하여, '칠수와 만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등의 열혈 관객이었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그 당시에 어떻게 '그런' 연극들이 공연되었을까 ㅋㅋㅋ 하며 문성근이 풀어 놓는 그 무대 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기도 했다.
그런데
참, 허탈하게도 말이다.
황지우 한국예술학교 총장이 사퇴를 했다는 소식이다. 황지우는 대학 총장이기 앞서 내가 개인적으로 흠모해온 시인이다. 말했듯이, 그의 시들과 그의 시를 기반으로한 연우무대 문성근의 연극들은 나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을 휘둘러 잡았던 내 영혼의 바탕이다. 이건용 선생님의 뒤를 이어 그가 한국예술학교 총장이 되었다고 했을때, 내색은 안했지만 맘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아했다. 공적인 자리라는 게 무척이나 어렵겠지만, 그래도 뜻있는 변화와 전통을 만들어 주길 바라고 또 믿었다. 하지만, 그는 이명박 정권에서 임기를 다하지 못하고 사퇴했다. 아니, 짤린거다. 외압에. 그놈들이 뭔짓을 했을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그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제목은 푸르디 푸르기만 했던 내 청춘 속에서도 어찌나 슬프게 들렸던가. 또한 그의 시는 얼마나 자괴적이고도 풍자적이었던가. 그래서 더 슬프고도 더 힘이 났더랬다. 사회에 대한 예술적 풍자는 우리에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살려고 발버둥 치는 영혼들에게 질펀한 거름이 되어 주었다. 황지우의 시들을 바탕으로 하여 창작된 동일한 제목의 연극을 연우무대가 공연한 것을 보러 갔던 건 고등학교 때였던가 대학교 때였던가. 연우무대, 문성근. 그리고 그 연극들의 창작자들이었던, 주인석과 김석만은 시인 황지우와 더불어 이제 막 시작된 나의 청춘에 피를 돌게 장본인들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1980년말 그 시와 연극의 제목이 오늘도 똑같은 무게로 회자 되는 중인 듯 하다. 이명박 정권과 그 정권의 개들은 뜨겁게 살아있는 영혼들을 눈뜨고 보지 못한다. 그럴꺼라고 예상은 했지만, 새삼 새삼 역겹고 토악질이 난다. 그들은 뜨거운 것이 두렵겠고, 꺾이지 않는 것을 부러뜨리고 싶을게다.
예술의 본질에 근접한 이론적 실질적 교육을 목표로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세우느라고 이강숙 선생님이며, 이건용 선생님이며, 노동은 선생님이며, 80년대 90년에 정신이 살아있던 예술가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마음을 가졌었는지, 그들은 절대 알지도 이해하지도, 아니 알려고 들지도 않을테다. 그 토대 속에서 영화며 미술이며 음악이며 얼마나 성숙해 올 수 있었는지도 그들은 절대 모를테다. 오히려 그것을 다 마녀사냥과 더불어 태워버려야 할 쓰레기로 몰아치울테다.
참, 어찌 이렇게 가장 나쁜 예견을 현실화 해 주는 걸까. 기가 막혀 '헉'- 이 절로 나온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55707.html
그래도, 공인이 아닌 개인 (시인)으로 돌아가 오히려 더 힘차게 제기할 건 제기하겠다는 황지우의 말에 힘을 내본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영혼들이 힘을 내기를. 또 그런 살아 있는 영혼들에게 힘을 주고 거름이 될 시인들이 속속 전면전을 선포 하기를.

그런데
참, 허탈하게도 말이다.
황지우 한국예술학교 총장이 사퇴를 했다는 소식이다. 황지우는 대학 총장이기 앞서 내가 개인적으로 흠모해온 시인이다. 말했듯이, 그의 시들과 그의 시를 기반으로한 연우무대 문성근의 연극들은 나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을 휘둘러 잡았던 내 영혼의 바탕이다. 이건용 선생님의 뒤를 이어 그가 한국예술학교 총장이 되었다고 했을때, 내색은 안했지만 맘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아했다. 공적인 자리라는 게 무척이나 어렵겠지만, 그래도 뜻있는 변화와 전통을 만들어 주길 바라고 또 믿었다. 하지만, 그는 이명박 정권에서 임기를 다하지 못하고 사퇴했다. 아니, 짤린거다. 외압에. 그놈들이 뭔짓을 했을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그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제목은 푸르디 푸르기만 했던 내 청춘 속에서도 어찌나 슬프게 들렸던가. 또한 그의 시는 얼마나 자괴적이고도 풍자적이었던가. 그래서 더 슬프고도 더 힘이 났더랬다. 사회에 대한 예술적 풍자는 우리에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살려고 발버둥 치는 영혼들에게 질펀한 거름이 되어 주었다. 황지우의 시들을 바탕으로 하여 창작된 동일한 제목의 연극을 연우무대가 공연한 것을 보러 갔던 건 고등학교 때였던가 대학교 때였던가. 연우무대, 문성근. 그리고 그 연극들의 창작자들이었던, 주인석과 김석만은 시인 황지우와 더불어 이제 막 시작된 나의 청춘에 피를 돌게 장본인들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1980년말 그 시와 연극의 제목이 오늘도 똑같은 무게로 회자 되는 중인 듯 하다. 이명박 정권과 그 정권의 개들은 뜨겁게 살아있는 영혼들을 눈뜨고 보지 못한다. 그럴꺼라고 예상은 했지만, 새삼 새삼 역겹고 토악질이 난다. 그들은 뜨거운 것이 두렵겠고, 꺾이지 않는 것을 부러뜨리고 싶을게다.
예술의 본질에 근접한 이론적 실질적 교육을 목표로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세우느라고 이강숙 선생님이며, 이건용 선생님이며, 노동은 선생님이며, 80년대 90년에 정신이 살아있던 예술가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마음을 가졌었는지, 그들은 절대 알지도 이해하지도, 아니 알려고 들지도 않을테다. 그 토대 속에서 영화며 미술이며 음악이며 얼마나 성숙해 올 수 있었는지도 그들은 절대 모를테다. 오히려 그것을 다 마녀사냥과 더불어 태워버려야 할 쓰레기로 몰아치울테다.
참, 어찌 이렇게 가장 나쁜 예견을 현실화 해 주는 걸까. 기가 막혀 '헉'- 이 절로 나온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55707.html
그래도, 공인이 아닌 개인 (시인)으로 돌아가 오히려 더 힘차게 제기할 건 제기하겠다는 황지우의 말에 힘을 내본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영혼들이 힘을 내기를. 또 그런 살아 있는 영혼들에게 힘을 주고 거름이 될 시인들이 속속 전면전을 선포 하기를.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 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