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보다 못한 영화들이 있는가 하면 원작보다 나은 영화들도 있다. 댄 브라운의 원작을 영화화한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 전자라면 <Little Children> 과 <Atonement> 는 후자다.
<다빈치 코드> 와 <천사와 악마> 에서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개념과 논쟁들은 삭제되고 영화는 그저 폭력과 살인의 축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 그러니 우리가 맛보는 건 남은 알맹이는 사라진 껍데기 뿐이다. 하지만, 영화 <Little Children> 가 원작의 간혹 느슨하고 심지어는 불필요하게 다양한 감정선들을 화끈하게 정리해 낸 것처럼, <Atonement> 은 첫 장면부터 이것이 원작보다 나으리라는 예감을 가능케 한다.
영화 <Atonement> 의 시작은 소설의 시작보다도 훨씬 역동적이다. 첫 장면과 음악은 소설 앞부분

Briony in Atonement
영화의 진행은 빠르고 각 화면은 공들인 함축으로 가득차 있다. 대사는 압축적이고 그 압축을 통해 여러 사실을 명료하고 간단히 전달한다. 장면은 쓸데없이 연결되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대단한 속도로 잘려 나간다. 여기서 저기로, 휙휙... 그 속도를 부여잡는 건, 예술적 영상과 음악이다. 대범한 클로즈업과 대사 없이 이루어지는 인물들의 표정과 연기다. 장면마다 가득한 색채와 영상이다.
결말의 반전을 위해서 온 영화가 의미없이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예술적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각 장면의 풍부한 은유를 통해 부드러우나 강렬한 인상에 도달하는 것이 이 영화의 결말이다. 즉, 중요한 건, 사건과 줄거리 자체가 아니라, 그 줄기 속에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엇을 어떻게 담고 있는가에 있다. 그것이 영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하고 고유한 가치다. 영화 <다빈치 코드> 와 <천사와 악마> 에는 더이상 화도 안나는 이유, <Little Children> 과 <Atonement> 를 보고 또 보고 싶게되는 이유다.
이건 어디에서 올까. 표면만 호화롭고 거창한 헐리웃 영화와 연극적 전통을 영화에 입히는 영국적 영화의 차이?....
이 영화의 예술적 측면은 이만 논하기로 하고 좀 더 '인간적'인 측면을 얘기 하자면, 그건, 원작 소설이 추구했듯이, 우리 마음 속의 속죄에 대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라면 <The Reader> 와도 통한다. 우리 삶에는 육체의 수인이 있는가 하면, 마음의 수인이 있다. 영화 <Atonement> 에서 시실리아와 로비가 육체의 수인들이었다면 브리오니는 마음의 수인이었고, 영화 <The Reader> 에서는 우리가 잘 알듯이 감옥에서 반생을 보내야 했던 한나가 있었다면 반생을 넘어 남은 모든 생이 편치 않았던 마이클이 있었다. 우리는? 육체적 수인인가 아니면 마음의 수인인가. 인간의 고통은 그것이 육체를 통해서 오건 마음을 통해서 오건 같은 고통일 뿐이다.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가벼운 고통이 될 수 없는 법이니.

Brenda Blethyn in Secrets and Lies

<Atonement> 의 원저자 이안 맥이완 (Ian McEwan) 과 관련해서는 DVD 의 From novel to screen adapting a classic 편에서 그가 내가 상상했던 책 속의 브리오니의 이미지를 너무 닮은 인상이어서 놀랐다. 그는 브리오니처럼 13살도 아니오 소녀도 아니다. 쭈글쭈글 삐적 마른 중년을 넘어선 남자다. 글 속에 저자가 투영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이상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는 거다.
아직 안보셨다면? 보시라. 간단히 말해, 강력 추천이다. 영상과 음악의 상상력, 둘 다 기억해둘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