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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3 저녁밥을 굶다 by 꼼미

저녁밥을 굶다

아이들에게 가족이란 뭘까.

번개와 호빵이 두 살 네 살 때도 뻑하면 우리끼리 저녁을 먹어야 했던게 기억난다. 아빠는 회사일로 바빴기 때문이다. 그 후, 파주에 이사와 애들이 네 살 여 섯살이 될때도 아빠는 주중에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유학 준비 한다고 주중에는 고시원에 있는 나날이었으니까.

미국에 와선 아빠가 공부 하느라 바빠도 저녁은 다함께 먹을 수 있어 좋다 했더니, 그것도 딱 2년만에 끝이었다. 오스틴으로 이사해 3년 동안 우린 다시 이산가족 아닌 이산가족이어야 했으니까. 엄마 아빠 각기 공부한답시고 아이들은 주중에는 아빠없는 아이들이 되어 보내고 주말은 엄마 아빠 공부 방해없이 도서관 주변에서 자기네 끼리 알아서 노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주중에 아빠없이 밥을 먹을 때면, 우린 늘 아빠를 그리워 했다.

"아빠가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빠랑 이거 같이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빠가 없으니 집이 썰렁해요...."

등등.

그러니 미시건에 와서 온 식구가 다함께 지내며 매일 저녁을 함께 할 수 있게된 건 축복이다. 특히 아이들의 정신이 한창 크고 있는 지금, 엄마 아빠와 함께 이것 저것 하루를 정리하는 수다를 떨면서 (물론 잔소리를 듣거나 혼이 날때도 있지만)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정서적으로도 좋겠지만, 아이들이 커서도 가족이란 걸 따뜻하고 정다운 거라 여기고, 성인이 된 후에 자신들이 만들어갈 가족의 중요성도 저절로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더 많은 사랑을 베풀 수 있다고 가족의 따스함을 느껴본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더 따스하게 가꾸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빵과 번개는 여전히 '엄청 좋은' 아빠랑 함께 지낼 수 없었던 나날들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아빠가 혹여라도 주말에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없겠다고 하면 금방 실망하는 얼굴이 된다. 그런 그애들이 어젯밤 아예 저녁 먹기를 포기했다.

이유는, 엄마와 아빠가 냉전에 들어 갔기 때문이다. 불씨는 엄마가 화가 나서 아빠에게 더러운 욕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아빠는 엄마의 입에서 근 이십년 동안 한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욕이 쏟아져 나오자 뒤집어졌고, 그 이후로 온집안은 극도의 긴장에 휩싸였다. 다음날까지 계속된 그 냉전을 감지하고 그렇잖아도 호빵과 번개는 맘이 편치 않았는데, 아빠는 저녁 때가 되어도 오실 기미가 없었다. 호빵이 전화를 했지만 아빠는 금요일 저녁을 함께 못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호빵은 펑펑, 집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미역국을 끓여 놓고 반성하며 기다리던 엄마가 호빵과 번개에게 우리 먼저 저녁을 먹을까 물었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오실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선언했다.

번개가 다시 전화를 시도, 아빠가 밤 10시쯤 들어 온다는 대답을 겨우 받아냈다. 10시에 아빠가 오면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하고 배고픔을 달래는 강아지들처럼 모여앉아 영화를 보며 시간을 죽였다. 약속했던 10시가 되어도 아빠가 오지 않길래 너희라도 저녁을 먹을래 다시 물었지만 호빵과 번개는 여전히 먹지 않겠다고 했다. 기다리다 지쳐 호빵은 책을 보다 들어가 자고 번개는 엄마 침대에서 기운빠진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다 스르르 잠들었다.

엄마는 12시가 다 되어 들어 온 아빠와 미역국을 차려 먹으며, 엄마의 못난 행동에 돌이라도 씹을 듯이 돼지같이 먹어 대는 두 아들들을 쫄쫄 굶겼단 생각이 들어, 밥말은 미역국에 눈물도 같이 말아 먹어야 했다.

수많은 가족이 기러기다 뭐다 헤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그런 경험이 없지 않고, 지금도 간혹 간혹 '기러기 할 수도 있지 뭐'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물론 살다보면 피치 못하게 여러 방식의 삶을 선택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이란게 얼마나 소중한가는 잊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버리고 다시는 돌아 오지 않지만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만은 평생 남아 있을테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가 되새기며 그 시간을 맘껏 즐기고 맘껏 사랑하고 맘껏 행복해 했으면 좋겠다.

참, 엄마 아빠의 냉전은 온 가족이 다시 함께한 점심 식탁에서 호빵과 번개가 지켜 보는 가운데 엄마가 아빠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하는 걸로 화해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후문.

Posted by 꼼미

2010/02/13 17:48 2010/02/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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