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보니 가끔은 그 자리에서 버럭 화를 내고 혼내기 보다는 두고 보게 되는 일이 잦다. 이렇게 조금 기다려 보려는 엄마를 이해해 주고 스스로 속히 속히 깨달으면 좋으련만, 아이들이 어찌 그런가. 그냥 지멋대로일 때가 많지...
실내악 공개 교습 (master class) 이 있었다. 젊고 생기 넘치는 하렘 4중주단 (Harlem Quartet) 이 와서 플린트 음악학교의 실내악 장학생들을 가르치는 행사였다. 제일 어린 실내악반인 호빵네 4중주단이 첫 순서였다. 호빵은 무슨 일인지, 시작부터 뚱한 표정으로 비협조적이었다. '저 놈이 또 왜저러나' 싶었지만, 연주를 앞둔 애에게 화를 내고 혼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받아 주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호빵이 첼로를 늦게 꺼내고 준비를 너무 늦게 하는 바람에, 첫번째 순서로 연주하기 전, 다 같이 연습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여전히 뚱한 표정과 행동으로 연주와 매스터 클래스를 끝내고도, 호빵은, 자기 이제 연주회장 밖으로 나가면 안되냐는 둥, 다른 사람들 연주하고 렛슨 받는 거 보기 싫다는 둥 하면서, 얼굴을 푹 숙이고는 죽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란, 그저, '네 기분이 안좋은 거 같은 건 알겠는데, 밖에 나가선 안되고, 여기서 끝까지 남들 연주하고 렛슨 받는 거 봐야 한다'고 말하는 거였다.
호빵이 얼마나 답답해 보이고, 호빵에게 열을 받았는지, 통로를 두고 떨어져 앉았던 호빵의 현재 첼로 선생 토빈 박사 (Dr. Toben) 가 훌쩍 몸을 일으켜 손을 뻗어 호빵의 몸을 흔들면서, '저거 하는 거 잘 봐야 되는 거야 (Pay attention to it)' 하더군.
그렇게 모든 공개 교습 순서가 끝나고 사람들이 자리를 뜨면서, 토빈 박사와 마주쳤다. 호빵의 다음 렛슨에 대해서 얘기 하다가, 호빵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무엇보다, 호빵이 너무 느리다는 거다. 그리고 뭔가를 지적해서 고쳐주면, 다음 번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고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말이 되겠다. 그러면서, 번개는 또 정반대란다. 갠 아주 속도전이고, 급하고, 둘이 완전히 정 반대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내가 한 대답이란, 이런 것들 이었다.
'나도 안다. 걔 (호빵) 가 정말 느리다. (한술 더 떠서) 그리고 대체로 열정이 없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엄마로서 걔를 몰아 붙이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리고 난 정말 때때로 남자 애들을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다. 남자 아이들만 둘인데, 가끔 정말 걔네가 너무 이해가 안갈 때가 있다. 그래도 걔 (호빵) 가 너 좋아 하는 것 같고, 네 얘기 많이 하고, 네 말은 듣는 거 같다. 그러니까 네가 걔 좀 밀어 붙여줘라.'
그런데 위에서처럼 내가 한 말은, 정말 호빵을 '위한'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호빵의 단점만을 드러내면서 그애를 흉보고 비난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로서 '나도 어찌 할 수 없는 애다'라는 말 같은, 호빵을 진정으로 위한 말이 아니었고, 그저 나를 낮추고 선생에게 맞장구를 치는 걸로 끝난 말이었던 것만 같다. 엄마인 내가 자기 아이에 대해 이렇게 평가 하고 있다면, 선생님 (그 선생님이 월등히 뛰어난 교육자가 아니라면) 도 똑같은 편견으로 아이를 대하기 십상이다. '쟨 쟤 부모도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애. 그러니까 그 나쁜 버르장머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혼내든, 때리든??!!!) 고쳐 버려야 하는 애' 같은 생각을 하기 쉽다는 거다.
내가 해야 할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호빵은 느리다. 걔의 타고난 성격이다. 느리더라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잘 협조 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게 숙제다. 그리고 그애는 천천히 배우는 편이다. 하지만, 한 번 자기의 마음을 바꾸고 배우게 되면 잊지 않고 깊이 새기고 오랫동안 기억한다, 첼로도 아직 모르는 게 많고 잘 못하는 것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첼로 연주하는 걸 좋아하고 음악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전 선생님들도 그랬고 내 생각에도 그런데, 그애의 첼로 소리는 좋은 편이라, 네가 다른 기술들을 잘 가르쳐 주면 많이 발전꺼다. 네가 그애를 많이 격려해 주고 그애에게 음악적 영감을 많이 주리라고 믿는다. 그러면 그애가 훨씬 더 발전하지 않겠나. 나도 엄마로서 열심히 노력하겠다.'
뭐 이런것들...
부모로서든 선생으로서든, 우선적으로는 아이가 가진 장점을 먼저 보는 게 정말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뭘 잘못하거나 제대로 못하면, 정말 꼴보기 싫고, '저게 바보지 정상이야...'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다 보면, 아이를 바보로 놓고 모든 걸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가진 장점 열 개를 먼저 뽑아 보고 단점 하나를 꼭 집어 고치자고 해보면, 그건 정말 그 아이를 발전 시키는 일이 되지 않을까.
호빵은 느리고, 다른 사람들과 협동하는 것에 젬병이다.
하지만, 그앤, 정말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고, 자동차에 대해서 많이 알고, 요요마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을 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며, 첼로와 피아노로 자기만의 즉흥적인 음악을 만들 줄 알고, 자기가 배운 첼로 곡들을 복습하는 걸 좋아하고, 대한민국 태생이란 것에 긍지를 가지고 있고, 한국말을 잊지 않고 계속 잘하려고 노력하고, 엄마의 일도 잘 도와주고, 동생을 많이 많이 사랑해 준다.
나는 호빵이 늘 아스퍼거 신드롬 (Asperger syndrom) 의 경계에 있는 아이가 아닌가 생각해 왔다. 만약 이 야가 아스퍼거 신드롭 진단을 받아, 그 대상자로 인정받고, 교육받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적절한 평가와 노력을 끌어내게 된다면 어땠을까도 생각해 봤다. 보통과 특별함의 경계는 늘 모호하다. 내 아이에게 어떤 점은 보통이겠고, 어떤 점은 특별할 수 있다. 그 특별함은 보통 이하도 될 수 있고 보통 이상도 될 수 있다.
부모로서 선생님으로서 가장 먼저 중요하게 해야 할 것은, 일단 아이의 특성에 관한 정보들을 덤덤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열받지 말고,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러면서, 각각의 특성이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계속 돌보아주는 거다. 물론,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Posted by 꼼미



















